어른의 연애 : 인연의 실은 한 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w. 아린류
감기에 걸렸다. 술에, 이틀 연속 야근에, 큰 일교차. 딱 걸리기 좋은 조건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7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어제 야근을 하며 콜라보 프로젝트 완성본을 검토해 부장님께 보내드렸었는데, 딱 확인을 마치셨을 이 시간에 나를 호출 하신다. 불길하다. 피곤한 기운이 몰려와 평소보다 검토를 소홀히 했는데, 잘못된 게 있었나보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 이팀장,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해? "
" 죄송합니다... "
" 검토한 거 맞아? 나 이거 보고 안믿겨서 세 번봤어 "
" 죄송합니다. 수정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
" 내일이 발표인거 알지? 콜라보여도 총 책임자 이름 한 명만 올릴거야. 이팀장 이름으로. 그러니까 준비 잘해 "
사무실에서 나와 4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정말 예상치 못하게 옹성우가 서 있었다. 그것도 뛰어온 듯 가쁜 숨을 내쉬면서.
" 혼나셨어요? "
" 어떻게 아셨어요? "
" 저희 팀 잘못이더라구요 "
" 검토 못 한 제 잘못이죠 "
" 그래도 제가, "
" 팀장님, 제 잘못이에요 "
" ...... "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했던 대화를 나눴다. 4층을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냥, 그 분위기가 서로의 입을 다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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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수정까지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일이 더욱 쌓였다. 내일 있을 발표를 위해 팀끼리 회의를 다시 한 번 더 하고 나니 몸은 이미 지쳐있었다. 시간은 퇴근 시간을 향해 빠르게 치닫았고, 일은 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아, 진짜 더는 못해먹겠다 "
하던 일을 급하게 마무리 짓고 컴퓨터를 껐다. 프로젝트 수정 끝냈으면 다 된거지. 술이나 마실까. 어차피 고생하는 건 내일의 나지 오늘의 내가 아니다. 곧장 회사 밖으로 나와 아무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 이모, 소주 한 병 주세요 "
아, 춥다. 안그래도 감기 걸렸는데. 아무 생각없이 혼자 한 병을 다 비워갈 때 알림이 울린다.
- 답 한 번은 해주지
- 많이 바빠요?
감기도 걸리고, 적당히 들어간 술에 서서히 취해가며 답장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안바쁜데]
[술 마셔요]
[회사 앞에서]
아, 진짜 머리 깨질 것 같다. 남은 술을 모두 비워내고 테이블에 드러 누웠다. 춥고, 머리는 아프고, 짜증났다. 그렇게 10분 쯤 흘렀을까, 맞은 편 의자를 빼내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냥,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번에도 너일까. 이번에도, 너였으면 좋겠다.
" 많이 마셨어요? "
" .....아니네 "
" 누구 기다렸어요? "
" ...... "
" 보아하니, 여자는 아닌 것 같고 "
" ...... "
" 부럽다, 그 사람. 이여주씨가 기다려주고 "
" 안 기다리는데 "
거짓말
" 거짓말 "
" 나랑 술 마실래요? "
" ...... "
"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
혼자서 한 병을 다 비운 뒤로, 다니엘과 두 병을 더 비웠다. 취기가 올라오는게 알딸딸 했지만 왜인지 정신은 멀쩡한 것 같았다. 이제 일어날까요? 하는 목소리에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방을 챙기는 사이 계산을 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하자 웃는다.
"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요 "
" ...... "
" 집 어디에요? 데려다 줄게요 "
" 택시 타면 돼요 "
" 또 선 긋는 거네요 "
" 오늘 얻어먹은 술은 다음에 갚을게요. 그걸로 퉁 쳐요 우리 "
" 알았어요, 대신 택시 타고가는 것 까지만 보고가게 해줘요 "
다니엘이 잡아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래도 옆집사는데 한 번쯤은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답지 않은 기대도 했다. 정말 답지 않는 기대였는지, 현관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사람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했다. 머리가 아픈데, 너를 생각하면 더욱 머리가 아픈데,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포기하고 생각을 해도 결국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 노력의 끝은 너여서, 그래서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또 자꾸 너와 마주치는 그 인연에 자꾸 눈길이 가서,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어서 더 머리가 아팠다. 너와 나의 관계에 다시 ' 우리 ' 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 제 글 전개 속도보다 거북이가 더 빠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