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연애 : 관계의 정의, 애매모호함, 그 어디 쯤.
w. 아린류
아, 진짜 죽겠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술을 마셨고, 또 그 몸을 편히 쉬게하지도 않으니 온 몸이 부서질 것 만 같았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시간을 확인했다. 7시 43분. 출근이 한참이나 남았을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시간에 회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있었다. 이유를 묻는다면 그저 미련한 내 탓이라고 밖에 못 하겠다. 디자인 팀 부서에 몰래 들러 어제의 자켓을 다시 돌려놓으려는 계획이었으니까. 단지, 옹성우와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 심산으로.
" 여기서 뭐해? "
" 어......? "
그래, 이렇게 마음대로 안돼야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 아, 그, 어, 이거 자켓이요! "
" 존댓말 쓰지마. 둘 밖에 없어 "
" 아, 어제는 제가 취해서 그런거구요. 죄송합니다 "
" ...... "
" 자켓 감사했어요. 책상 위에 놓아둘게요 "
" 제 자켓 때문에 일찍 나오신 거예요? "
" 네, 드렸으니 갈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내 부서로 돌아왔다. 인생에서 장르가 왜 이렇게 빨리 변하는지, 주인공인 나 조차도 정말 따라가기가 버겁다.
의자에 기대 눈을 붙이려 했을 때, 핸드폰의 알림이 울렸다.
- 뭐해요?
- 나 또 무시당하는 건가?
- 연락 정도는 괜찮다며
그래, 나 이 남자랑 연락 중 이었지. 확인하지 않은 메세지가 17개. 그 중 미리보기로 확인 한 메세지는 3개. 저장된 이름은 ' 강다니엘 ' 평소였다면 늘 하던대로 건성 건성 대답했겠지만 지금을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니, 하기 싫었다.
첫 만남은 5개월 전 이었다.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료를 받기 위해 지인을 통해서. 스물 여섯 살 이었다. 나보다 연하였다. 그런데도 나와 같은 직급을 갖고 있기에 적잖이 놀랐었는데, 알고보니 회사에 밝히지 않은 회장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금수저.
' 저 이여주 씨 한테 관심 있어요 '
' 저는 없는데요 '
' 내가 싫어요? '
' 좋진 않죠 '
' 왜요? '
' 어려서요 나이도, 그냥 다 '
' ...... '
어려서, 싫었다. 그냥 그게 다였다. 한 번 더 알림이 울리는 휴대폰을 신경질 적으로 덮어놓았다.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일은 마음대로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진행 중인 두 가지 프로젝트가 모두 순탄하게 흘러갔으니. 프로젝트가 순탄하다고 해서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야근까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팀원들의 한에서만. 어제 하루종일 일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어제 일과 오늘 일이 합쳐져 배로 늘어났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야근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렇게 시간이 11시를 막 넘어가고 있을 때 였다. 노크도 없이 대뜸 팀장실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 서류에 집중하던 고개가 빠르게 문을 향해 올라갔다.
" 아근하시네요.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
하며 내 책상으로 다가와 오렌지 주스를 놓는다. 옹성우가. 퇴근하던 길이었는지 왼손에는 서류 가방과 오늘 아침 내가 건네 준 정장 자켓이 들려있었다.
" 회사지만, 완전 사적인데, 반말해도 될까요? "
" ...... "
" 커피 사려다가 관뒀어. 너 카페인 잘 못 마시니까 "
" ...... "
" 나 아직 안 잊었어. 너 다시 보면 하겠다고 한 말 "
" 아니, 그건, "
" 아직 그 말 안했잖아. 내가 말하면, 그 때 대답해 줘 "
" ...... "
" 너 성격 알아. 이렇게 나 피하는 거 보면 안변했다는 증거겠지 "
" ...... "
" 부담스럽게 안할게. 그래서 아직 번호도 안물어봤잖아 "
" 물어봐도 안 알려줬을거야 "
" 알아 그래서 이렇게 바치는 거잖아, 뇌물 "
" ...... "
" 그럼 일 열심히 하세요. 내일 회의 때 뵙겠습니다 "
닫힌 문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래, 내가 흔들리는 것도 흔들리는 거지만, 니가 이렇게 흔들고 있구나. 다시 만나면 하기로 했던 그 말이 생각나는 내가 싫다. 9년 전의 니가 떠오르며 무슨 말을 한다고 했는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 야속한 기억이 싫다. 카페인을 잘 먹지 못하는 내 사소한 것 하나 기억한 니가 싫다. 그렇게 크게 열병을 앓고도, 그렇게 크게 데이고도, 그렇게 울고도 또 너에게 이렇게 설레려하는 내가, 이런 내가 너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