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1 |
오늘 처럼 가을비가 왔었다, 3년 전 '그 날'도. 그가 즐겨마셨던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고 카페를 나왔다. 리모컨으로 차 문을 열고 타자마자 울리는 핸드폰. "여보세.." [야!!! 너 지금 어디야!!!] "아 진짜- 귀청 떨어지겠다. 지금 가- 왜?" [나 아파 죽을것 같아!!] "내가 장담하는데 넌 절대 안죽으니까 걱정마" [진짜 죽을것 같다니까?] "그래 그래- 지금 간다, 가" 기성용이 이러는게 한 두번도 아니고 이젠 나름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정말 큰 일 난줄 알고 부랴부랴 갔더니만 별거 아닌 일이였다. 뭐 예를 들면 테이핑을 해달라든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던지, 손바닥 쬐끔 까진 정도? 팬들은 알려나 몰라 이렇게 엄살 심한거- 쯧쯧 그래도 부상당했다고 한국에 들어와서 재활 받는 친구한테 막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뭐라고 말하는 성용이를 뒤로하고 핸드폰을 홀드 시켜 조수석에 던지듯 내려놨다. 그리고 가을비로 얼룩져가는 전면유리를 빤히 응시하다가 이내 엑셀을 밟는다.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가운을 입었다. 내 이름 세 글자가 박힌 가운은 언제나 신기하다. 그렇게 미쳐있던 축구.. 팀닥터가 될줄 누가 알았겠어. 자랑스러운듯 그렇게 파란색으로 촘촘히 수 놓인 내 이름을 바라본다. 지난 추억도 새록새록 나고 그 추억을 따라 기억을 더듬으면 쓸쓸한 미소도 지어진다. 여느 연인 처럼 잘 지냈었다. 처음엔 원거리 연애라도 좋았다. 그 사람이 날 사랑해주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문제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루, 1주일, 1달, 1년.. 시간이 갈 수록 우린 서로가 힘들어짐을 느꼈다. 매번 힘없는 통화. 서로에게 늘어가던 짜증. 그래, 내 남자친구는 바쁘니까, 다른 남자들과 다르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이런 생각도 한 두번. 날로 힘들어지는 그와의 연애. 아이러니하게도 그래도 사랑했다.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에게만 있었는지 그는 나와 헤어지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해왔다. 웃으며 밥은 먹었냐, 어제 집엔 잘 들어갔냐, 부모님 잘 계시지?, 너도 이제 좋은 남자 만나야지.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척 했지만 뒤에선 쓴 눈물을 삼켰다. 아직도 난 그를 잊지 못한다. 그를 아직도 사랑한다. 그 끔찍한 원거리 연애는 싫으면서 그는 끔찍하게 사랑한다. 모순이라지만.. 풀어헤진 머리를 한갈래로 질끈 묶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안경 쓰면 못생겼다는 성용이의 말에 항상 렌즈를 끼지만 오늘은 잘 끼지 않던 안경을 써본다. 어차피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라운드에서 팀닥터를 보는 체계라서 오늘은 내가 그라운드에 나갈일은 없으니 그를 볼 일도 없을거다. 한갈래로 질끈 묶은 머리하며, 정말 공부 잘하는 애들이나 쓸법한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니 정말 야근 밥 먹듯이 하는 대한민국의 성실한 일꾼같다. 물론 현실에선 아니라는게 함정..헣. 오전 내내 차트를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어제 저녁에 다운 받은 영화를 2편이나 보고 자서 그런지 무척이나 피곤한 탓에 테이크 아웃해온거 까지 합치면 커피를 무려 5잔이나 마셨다. 그것도 오전 동안.. 헤롱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시계를 보니 11시 30분. 점심시간까지 30분 남았다. 창가로 가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가을 볕이 꽤나 뜨겁게 내리쬔다. 보기만해도 후끈후끈 해지는게 내가 다 더워진다. 단연 내 눈엔 그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스트라이커. 내가 왜 그 때.. 그 사람을 놓쳤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하다.
어두운 내 표정을 살피던 오빠가 꺼낸 첫 말은 차트가 가득 담긴 상자를 달라는거였다. "아냐 내가 들게" "들어준데도" 결국 그가 상자를 가져가고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내가 오늘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기에 쓴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모든 스텝들이 퇴근한 시간. 어둑어둑한 밖. 그리고 고요한 복도에는 내 구두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그도, 나도 느릿한 걸음이였지만 내 귀에는 요란하게 들렸다. 복도의 창문은 예쁜 노을빛으로 물들었고 그와 나는 그 노을빛을 고스란히 내리받으며 조용히 걸었다. 예뻤다, 그 노을이. 빨갛고, 노랗고... 거무스름한 보라색까지 뒤엉킨 노을의 모습이.. 지금 내 심정을 말하는것 같아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나려한다. "오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싶은 그를 불렀다. 떨리는 내 목소리를 난 느꼈지만 워낙 울리는 소리에 그는 눈치채지 못한듯 했다. 그래.. 모르는게 나아. "와" "우리.. 헤어질까?" 그는 그 어떤 동요도 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춘다거나, 뒤를 돌아본다거나, 하물며 걸음이 느려진다거나.. 그 어떤 동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본 남자친구한티 할 말이 그거 밖에 없나" "힘들어 나.." "............" "............" 힘들다는 내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 사이에 그 어떤 말도 오고가지 않았다, 내 사무실에 도착하기 까지. 내 사무실 앞에서 그는 한 손으로 상자를 들고는 한 손으로 문 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소리 하나도 없이 부드럽게 열리는 문. 그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가자 마자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는 뒤 돌아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두고 그가 허리를 피며 날 봤을 때.. 나는 봤다. 이 때 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상처 받은 눈을.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궈낼것 같은 그의 눈을 보며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여전히 창문으로 비춰지는 노을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온통 검은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가 다가옴을 느끼자마자 그의 말캉한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거부 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는건 행복한 일이니까.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그의 입술을 받아 들이면 그는 조심스레 떨어진다. "이래도... 이래도 내 안사랑하나" "............"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증명해보였으니까. 내가 아직 당신을 사랑한다고 증명해 보였으니까. "내는.. 니 얼굴 못 보고, 니 머릿결 못 만지고, 니한테 키스 못하는건 참아도 니가 내 땜에 힘들어 하는기는 못 참는다" "............" "많이 힘드나" "1년 365일 중에 오빠랑 내가 만나는 시간... 60일.. 힘들어 오빠" 내 어깨를 잡고 있던 그의 두 손이 털썩 하고 떨어지고 그래 라는 그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내 귀가를 맴돈다. 어둠이 점점 몰려와 노을빛 보다는 보라색으로 가득한 하늘을 보며 울었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막아내지 못했다. 날 끌어안는 그. 이제 다시 그의 체온을 느낄 수 없음에 죄여오는 가슴을 달래며 여전히 그를 밀어내지 못하는 나를 질책했다. "니는 잘못 없다. 내 잘못이다. 울지마라. 힘들지 말라고 놔줬는데 더 힘들어하면 우야노" 오른쪽 귀에 나긋나긋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질끈 눈을 감았다. 우린 끝났다고, 더 이상 내 귀가 반응하면 안된다고. 내 허리에 꼭 감겨있던 그의 팔이 풀러지고 그는 내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눈물을 닦아줬다. 얼마 전 염색 했다고 자랑했던 다갈색 머리칼도 넘겨주고 빈대코라고 놀렸던 코끝도 살짝 잡아당기며 울지말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항상 달콤하다고 했던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항상 달콤한줄만 알았던 그의 입술이.. 내 눈물로 짠 맛이 난다. 끝은 짜다, 그와의 이별은.
살짝 쳐져있던 블라인드를 더 짙게 치고는 창문에서 뒤를 돌았다. 창가에 있는 티슈 두어장을 뽑아 눈물을 닦고 거울 앞에 다시 서봤다. 눈가와 코끝이 빨개진게 아무리 봐도 운 얼굴이다. 안돼겠다 세수라도 좀 하고 와야지. 기성용 만나면 또 뭐라고 하겠네. 훈련이 끝마쳐지기 전에 얼른 다녀오려 문을 딱 여는 순간 당황한 얼굴로 서 있는.... 그 사람, 박주영. |
평행선 2 |
"니 울었나" 나는 고개만 푹- 숙인채 고개도 못 들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이렇게 추한 모습을 그에게 들키게 되서는.. 생각해보니 나 오늘 안경 썼지.. 아.. 거기다가 울었으니 얼굴은 가관.. 머리는 한갈래로 질끈 묶어서는 대한민국의 성실한 일꾼 같은..... 아... "고개 들어봐라" 절대 들지 못한다. 운 얼굴도 보여주기 싫은데 안경까지 쓴 모습이라니. 난 말 없이 고개를 저었고 그를 피해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막 탁- 하고 소리 나게 잡히는 내 손목. 3년 전이였다면 손목이 아닌 손이였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져 왔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러는 내가 싫다 정말. "와 울었는데" 이런 식이다 그는. 헤어지고 같이 보낸 3년이란 시간 동안 아무렇지 않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날 대해왔다. 나에게 그렇게나 쉽게 정을 뗀건지.. "그냥.. 노래가 슬퍼서.." 되지도 않은 거짓말에 그가 속아 넘어갈리 없다. 그래도 스르르 풀리는 손목을 매만지며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니 엉망진창인 얼굴. 들켰으면 일날뻔했네.. 찬 물을 틀어 정신 없이 어푸어푸거리며 세수를 해댔다. 머릿속도 깨끗하게 비우고 싶은 마음이다. 3년 전 일을 아직까지 생각하면서 울다니. 아직 나는 힘들다. 알고있다. 내가 힘들어할 자격이 없다는걸. 힘들다고 헤어져서는 더 힘들어하고 있으니 난 그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자격 조차 없다. 그는 많이 힘들었을까? 내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는 많이 힏들었을까? 내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힘든것 처럼... 수건으로 얼굴을 꼼꼼하게 닦고 화장실을 나오자 저 복도 끝에서 기성용이 여- OOO 이러면서 오는데 애써 외면하면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다다- 하는 소리가 나면서 기성용이 달려오는걸 느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아프다는 자식이 왜이리 멀쩡한거야. 옆에 척- 하니 따라 붙어서는 말이 없다. 평소 같으면 장난도 걸고 훈련 끝나고 뭘 하자느니, 밥을 먹자느니 이런 말이 나와야하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를 올려다 봤다. "울었네" "아닌데" "맞는데" "아냐" "아닌 얼굴이 그 모양 그 꼴이냐? 너 또... 아니다" "............" "............" "맞아, 성용아. 나 한심하지? 3년 전 일 아직도 못 잊어서 어린애 처럼 맨날 엉엉 울어. 아직도.. 아직도.. 못 잊어" 검은 뿔테 안경을 벗기고 안경 다리를 접어 가운 넥 부분에 걸터 놓고는 난 빤히 바라보는 성용이. 내 어깨에 손을 두른 성용이는 고개를 숙여 그새 눈꺼풀을 비집고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줬다. 찌질이 처럼 맨날 운다며 타박하는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형 말 처럼 좋은 남자 찾아. 너 처럼 능력 있는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3년 전 애인을 못 잊고 그래-" 낮고 다정한 성용이의 목소리에 내 눈물은 더 많이, 더 많이 흘렀다. 여자들은 달래주면 더 운다고 했던가. 맞나봐, 그 말. 날 끌어안은 성용이는 내 등을 계속해서 토닥였다. 휑한 복도에 울려야할 내 울음소리가 성용이 가슴팍에 막혀 내 귀에 증폭 되어 들렸다. 오늘 여러모로 우는 구나. 내 울음소리가 조금 사그라들자 성용이는 내 어깨를 잡고는 날 살짝 밀쳐내었다. "너 우니까.." "못생겼다고?" "응" "이씨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근데 귀여워" "됐어 나쁜 자식아!" 세수 한게 도로아미타불이 되었고 난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가운에 걸터 놓았던 안경을 다시 쓰고 식당에 내려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정말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성용이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고 그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아, 근데 내 사무실엔 왜 왔는지 안물어봤네..
얇디 얇은 힐에 혹여 잔디라도 상할까봐 잔디밭 바깥쪽으로 나가려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와 울고 그라나" 당신 때문에요. 당신이 맨날 생각나서요. 3년이 지났는데도 안 잊혀져서요. 끔찍히도 잊고 싶은데 자꾸만 생각나서요. "얼굴이... 더 많이 탔네. 훈련 할 때는 자외선 차단제 바르라니까" 사귈 때 부터 해왔던 잔소리를 오늘도 어김없이 늘어놓자 그는 말 없이 웃는다. 그 웃음 예쁘니까 어디가서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마.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썬블록 샘플을 그에게 건냈다. 멀뚱 거리며 바라만 보는 그의 손을 끌어다가 손에 쥐어줬다. "너무 많이 타면 피부에 안좋으니까 훈련 할 때 만이라도 발라. 얼굴만 바르지 말고 목에도 좀 바르구"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그.. 3년 전이라면 내가 발라줬을 텐데 이제는 모른척 그냥 뒤돌아 갈 수 밖에 없다. 가을 바람에 가운이 조금 펄럭이는걸 느끼며 잔디밭을 벗어나 사무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번도, 단 한번도 뒤 돌아 보지 않고.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면 난 선수들의 오후 훈련이 끝나는 대로 집에 가서 잠이나 잤겠지만 그의 얼굴을 한번 보고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문자로 성용이에게 SOS를 쳐놨다. 훈련 끝나면 보겠지 뭐.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일을 했다. 하루종일 그 놈의 차트만 붙잡고 있으려니 어깨가 다 뻐근하다. 기지개를 한번 피며 창문을 바라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는게 보인다. 곧 훈련도 끝날것 같고. 묶었던 머리를 다시 예쁘게 묶고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훈련이 끝났는지 해산!!!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그라운드에 쩌렁쩌렁 울렸고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에 기대어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수업 끝났다고 기뻐하는 초등학생들 같달까.. 외관상 다친 선수는 없는지 살피다가 성용이와 눈이 마주쳤다. 입모양으로 문자라고 말하자 손을 들어 오케이 표시를 한다. 바보 처럼 빙구 웃음을 짓더니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기대어 있던 창문에서 떨어져 가운을 벗고 자켓을 입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내 몸뚱아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만들어낸 긴 그림자가 오늘 따라 슬퍼보인다. 내가 움직이는대로,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똑같이 따라하는 그 긴 그림자가 많이 슬퍼보인다. 또 울것 같아서 창문에 블라인드를 짙게 치고 가방을 챙겼다. 오늘 검토를 끝낸 차트를 옮기고 내일 검토해야할 차트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내일은 내가 그라운드에 나가야하니 아마 다른 팀닥터가 보게 되겠지. 거울을 보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묶은 머리도 괜찮고 부었던 눈도 가라앉아 괜찮아졌다. 가방을 챙겨매고 그라운드로 내려가 성용이를 기다리자니 다르 선수들은 저마다 인사 한마디씩 하면서 가는데 왜이리 늦게 나오는건지.. 아직 그와 성용이만 나오지 않은것 같다. 마지막 선수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나니 그제서야 둘이 하하호호 웃으며 느긋하게 나오는데 얼마나 미워야지. "형 그럼 내일 봐요" "OO이도 잘 가고" 성용이에게 눈 인사를 한 그는 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나 역시 눈 인사로 대답하고 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좋아? 형이?" "미칠만큼" "잊지도 못할 만큼?" "응" 짧은 한숨을 내쉰 성용이가 영화나 보러가자며 날 이끈다. 내가 한심해 보이겠지? 바보로 보이겠지? "내 차로 가자. 내일 너 데리러 갈게" "나 기분 안좋다고 너무 선심 쓰는거 아냐?" "그러게. 내일 갑자기 데리러 가기 싫어지면 어떡하지.." 아휴 저게 진짜. 말이라도 못하면. 조수석 문까지 열어주는 성용이. 얘가 갑자기 왜 안하던 짓을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여자 아낄줄도 알고 철 좀 들었구나 싶다. 성용인 차를 빙- 돌아 운전석에 타서는 시동을 건다. 무슨 영화 볼까, 멜로 영화, 무슨 멜로 영화야- 야한 영화 보자, 싫어! 멜로가 좋다고, 야한 영화가 좋지! "그렇게 밝히다가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차인다 너-" "여자친구 앞에서는 안 밝힐거거든?" 티격태격 여느 친구 처럼 다투면서 영화관에 도착했고 다행이도 결국 내가 우겨서 보게된 영화를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팝콘과 콜라를 사서 입장한 영화관. 영화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됐음에도 사람들이 얼마 없어 편히 관람할 수 있을것 같았다. 영화는 식상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여자주인공을 도와주는 재벌집 아들 남자주인공. 가문의 격차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산다.. 뭐 이런 얘기. 정말 안봐도 뻔한 얘기였다. 영화는 클라이막스로 내달리고 있었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고 영화의 긴장감을 풀리는듯 했다. "OOO" "응 왜" 영화에 정신이 팔려 성용이의 부름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서 키스하는 순간. 진짜 예쁘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해봤으면.. "내가" "으응.." 해가 지는 바닷가에서 모래사장에 앉아 진하게 나누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키스신은 정말 예뻤다. 정말 나도 저런 남자를 만나 저런 낭만적인 사랑을 해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정말 멋있지 않느냐고 성용이에게 물으려 성용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성용이의 진지한 눈을 마주했다. 그 눈동자가 뭐라고 나에게 말을 하는것 같은데 못 알아듣겠다. "내가 한국에서 훈련 끝날 때 까지 이렇게 하면 주영이 형 잊을래?" "............." "앞으로 있는 대표팀 훈련 끝나는 날 마다, 이렇게 데이트 해주면 주영이 형 잊을래?" 어느새 영화는 끝이나고 몇 되지 않는 사람들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영화관을 빠져나갔다. 어두컴컴했던 영화관에 불이 들어왔다. "대답" "............" "어허- 대답" 성용이의 다갈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에게 성용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뭔가 자꾸 말하는것 같은데 모르겠다. "응. 잊을래" 그를 잊고 싶은건 확실했고 성용이라면 믿을 수 있다. 성용이라면... 잊게 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성용이와 있을 땐 항상 웃으니까. "손" 오른손을 쓱 내밀면.. 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왼손을 들어올려 성용이의 손을 맞잡는다. 내가 하는 짓.. 잘하는거 맞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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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3 |
정말 오래전 부터 좋아했다. 주영이 형과 사귀기 전부터. 새로 온 팀닥터라고 소개할 때 부터 좋아했다. 일부러 깊지 않은 태클에 걸려넘어져서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 밖으로 나와보기도 했다. 아까 복도에서 내게 안겨 펑펑 우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녀를 달래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몇 년의 노력 끝에 주영이 형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자부할 만큼 그녀와 친해졌다. 농담도 서슴치 않고 할 만큼. 멀리서 보는 그녀는 어쩌면 멋진 여자일 수도 있다. 여자는 되기 힘들다는 팀닥터, 저 혼자의 힘으로 이뤄내고 누구 한테 밉보일 만큼 성격이 나쁘지도 않고 뽀얀 얼굴에 짙게 진 쌍커풀, 외모도 나쁘지 않다. 겉으로는 하하호호 즐겁게 사는것 같지만 가까서 보면 아니다. 속은 물러 터져서 상처만 가득 안고 있고 또 소심하긴 얼마나 소심한지 사랑하는 사람한테 조차 이런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고 또 망설인다. 그 힘든 원거리 연애를 하면서 헤어지자고 말하기는 얼마나 망설이고 망설였는지 나는 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니까. 지금 만큼은 부상 당해서 재활치료 한답시고 잠시나마 한국에서 쉴 수 있는게 감사하다, 주영이 형 보다 더 가까이에 있을 수 있어서. 차트를 넘기며, 제 다갈색 머리칼도 넘기며 부상 당한데는 괜찮냐며 물어오는 그녀에게 별로 나아진게 없다고 엄살을 피웠다. 어차피 사실은 차트에 다 나와있을거고. 또 미간을 좁히며 엄살 부린다고 잔소리를 늘어 놓는것도 예쁘다. 그냥 어제 확 사귀자고 했어야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고작 한다는 말이 훈련 끝나고 데이트 해주겠다는 말. 기성용 멍청한 자식!!!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이건 약이고 안에 들어있는 설명서 대로 사용하면 되. 오늘은 내가 그라운드에 있을거니까 니 엄살 안통한다-" 볼펜 뒷꽁지로 내 머리를 아프지 않게 두어번 두드린 그녀가 차트를 접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뒷모습 까지 예쁘다. 내 얼굴엔 싱글벙글한 바보 웃음이 잔뜩 피어 있겠지만 영 표정 관리가 안된다. "오늘은 저녁 같이 먹을까?" "그래" 확실히 어제 보단 기분이 좋아진듯한 그녀의 표정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것 같다. 그녀가 힐을 한 쪽에 벗어두고 운동화를 갈아신었다. 힐 신고 한번 쯤 그라운드 밟는다고 잔디가 다 죽는것도 아닌데, 경기도 아니고 훈련이니 경기장에 들어올 일도 얼마 없을 텐데 그녀는 그라운드에선 꼭 운동화를 신었다. "그냥 힐 신어도 된다니까" "잔디 상하잖아" "에이 그 쪼끔 밟아서는 안 상하거든?" 주영이 형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한번만, 딱 한번만 더 잡았으면 OO인 주영이 형을 떠나지 못했을 텐데. 그렇다고 내가 주영이 형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만약 내가 주영이 형이였다면 한번 더, 아니 몇 번이고 잡았을거다. 힘들다는 여자친구에게 너무 이기심을 부리는게 아니냐고 비난할지는 몰라도 말이다. 비록 그녀의 눈동자는 날 따라다니는게 아닐지라도 내가 공을 뺏었을 때 만큼은 날 바라봐주는게 좋다. 알고있다. 1달 후에도 OO이는 여전히 주영이 형을 좋아할거라는걸. 하지만 또 알고있다, 그래도 난 포기 못한다걸. 거친 몸싸움에 한번씩 넘어지고 나서 그녀를 보면 괜찮냐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난 항상 오케이 싸인을 보낸다. 수비수에게서 공을 받아 주영이 형을 보고 공을 찼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상대편의 거친 태클로 주영이 형이 넘어진다. 그라운드 밖을 보자 그녀는 주영이 형에게서 눈을 때지 못한다. 누가 봐도 안절부절한 눈동자로 바라본다. 딱히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제 하도 체념이 되서. 근데 기분은 나쁘다. 주영이 형이 인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 그녀를 향해간다. "오빠 괜찮아?" "괘안타" 별거 아니라는듯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웃으주는 주영이 형. 락커룸에서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넌지시 말하던 형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바보같은 OOO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좋아할텐데. 말로는 축하해요 형 이라고 했지만 진짜 이게 뭐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여기 묻었어" 여느 여자나 그렇듯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말하는걸로 푼다, 그녀는. 지금 처럼 뭘 먹으면서 쫑알쫑알 얘기할테면 더 없이 귀엽고. 입가에 묻었다며 휴지로 닦아주자 헤헤 하고 웃는데 너무 귀여워서 낮에 안좋았던 기분은 다 날아가버린다. 너는 참 날 쥐었다 폈다.. 잘도 가지고 논다. "성용아" "응" 새우를 좋아하는 그녀인걸 알기에 내 접시에 있는 새우는 그녀의 접시로 옮기며 대답했다. 아, 이거 까먹기 어려우려나- 조개도 줄까. "너는 왜 여자친구 안만나?" "여자친구 있으면 축구에 집중이 안되잖아" "에이- 다른 선수들은 잘만 하던데?" "아냐 난 아니야" 사실은 니가 내 여자친구라면 축구에 더 집중이 잘 될것 같아. 그라운드 밖에 있는 너한테 더 멋있게 보이고 싶고 한 골이라도 더 넣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내가 다치면 니가 치료해주고 부상 당하면 니가 봐주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랬으면 좋겠어. "야 그만 줘- 나 진짜 살 찐단 말이야" 점점 그녀의 접시에 쌓여가는 해물들을 보며 그녀는 그만 주라며 날 말렸다. 통통했던 옛날의 그녀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남자친구 생겼다고 관리한다더니 귀엽고 통통했던 몸매는 사라지고 왠 깡마른 젓가락이 걸어다니니 내가 보기엔 안쓰러웠다. 문제는 주영이 형과 헤어지고도 살이 안쪘다는거. 지금 부터라도 찌우지 뭐- "이제 너 남자친구 없잖아. 먹어도 돼. 해물 좋아하잖아-" "니가 언제부터 나에 대해 잘 알았다고 그러셔" "말랐다고 남자들이 다 좋아하는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좀 먹고 다녀. 맨날 커피만 마시고 잠은 안자고 그러니까 그렇게 젓가락 같은거 아냐" "젓가락은 무슨 뱃살이... 어휴.." "먹는데 자꾸 그런 얘기 할래?" "네 네- 안하겠습니다" 포크로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 한 입에 먹는 모습에 왜 부모님들이 자식들 밥 먹는거보고 안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식사가 끝나고 결국 끝끝내 계산은 저가 하겠다고 해서 결국 계산은 그녀가 했다. 아 이거 남자로서 자존심이 확 구겨지는데.. 그녀를 데려다주려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계속 망설여졌다.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나는 언제가 제일 멋있어?" "뭘 그런걸 물어보고 그래-" "그래야 여자친구를 사귀던 말던 하지" "음.... 프리킥이나 코너킥 찰 때" "하긴 그 때 내가 좀 많이 멋있긴 하지. 내가 찬 코너킥 누가 골 넣으면 진짜.. 와 나.." "주영오빠가 헤딩으로 딱 넣으면 멋있는데" 자신이 말 해놓고도 당황했는지 어버버 거리는게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질투심이 들끓어올랐다. "주영이 형... 확실히 잊는 방법 알려줘?" "..........." "주영이 형 여자친구 생겼데. 나이는 우리랑 동갑이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고, 사귀는지는 좀 됐고" "..........." "이미 뭐... 상견례 이런거 한것 같더라. 딱히 너한테 말을 안했다기 보다는...." "..........." 내가 본 그녀의 표정 중에 제일 슬퍼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 난 곧 바로 후회했다. 내 순간의 시기심이 그녀를 슬프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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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4 |
"이미 뭐... 상견례 이런거 한것 같더라. 딱히 너한테 말을 안했다기 보다는...." ".............." 조심스레 내 표정을 살피며 말하던 그가 이내 말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그를 보고있지 않아서 어떤 표정을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성용이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딱히 입을 꾹 다물고 있겠다는 다짐을 했던건 아니다. 그냥 할 말이 없었을 뿐이였고 성용인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아끼는것 같았다. 차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 현관 앞에 세워졌다. 탁-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나며 차 문이 닫힌다. 성용이 역시 내려서서 차 반대편에서 날 빤히 바라본다.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더 심란해지거든?" "그럼 어떻게 봐야돼?" "음.... 평소 처럼 장난도 치고, 괴롭히고, 엄살도 부리고" 그제서야 성용이가 소리 없이 활짝 웃는다. 차에 기대어 서서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데 새삼 내 친구지만 참 잘생겼구나- 싶다. "오늘도 잠 안자고 혼자 울 예정이야?" "아닌데-" "음... 그럼 슬픈 영화 틀어놓고 펑펑 울 예정인가-" "그건 좀 생각해봐야겠다" "안돼겠다. 영화 같이 볼까? 나도 좀 슬픈데"
그와 헤어진지 딱 1년 되는 날. 얼마나 슬프던지 혼자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며 숨죽여 울었던게 생각난다. 그 때는 정말 딱 죽고 싶었는데. 영화의 도입부일 뿐인데 벌써 부터 내 눈에 눈물이 맺히는게 느껴진다. 그 때 내 손에 꼭 쥐여지는 휴지 몇 장. 고개를 들어 성용이를 올려다 보면 활짝 웃고 있다. 그런 성용이의 얼굴을 보고도 웃을 수 없음에 미안해져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아냈다. 아무리 닦아내고 또 닦아내고 계속 흐르는 눈물. 성용이는 다시 TV 스크린 속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 그가 여자친구가 있다는것 때문에? 결혼을 전제로 사귄다는것 때문에? 나는 박주영이라는 세 글자만 머릿속에 떠올려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게... 그게 힘든건가.. 그런것 같다. 나는 3년 동안 다른 남자는 커녕 그 마저도 잊지 못해 이렇게 아직까지도 눈물만 쏟아내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런다는게 나에겐 힘든것 같다. 항상 차트더미에 쌓여 바빠서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 나와 달리 잘나가는 축구선수 남자친구 잘 챙겨주는 여자일까? 먹는거라면 사족을 못 쓰고, 남자친구 생겼다고 다이어트 한다던 나와 달리 원래 부터 몸매 좋은 여자일까? 트러블 때문에, 작은 눈 때문에 항상 화장 하는 나와 달리 민낯도 당당히 보일 수 있는 그런 예쁜 여자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생각은 성용이가 내 손을 잡아옴과 동시에 끊겨버렸다. 그만 울라는 말 같아서 훌쩍이며 눈물을 다시 닦아냈다. "있잖아, 니가 자꾸 힘들어하고 그러면 같이 힘들어 하는 나도 좀 생각해주라" "으응" 그저 친구로서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말을 하는 성용이의 눈빛이 그렇게 진지한지도 모르고. 긴 한숨을 내쉰 성용이는 휴지로 남은 내 눈물을 닦아줬다. 코가 막혀옴에 코를 들이마시자 기겁을 하며 풀으라며 애 취급 하듯이 흥! 흥! 거린다. "이거 놔-" "빨리 흥 하라니까" "내가 할거야!" 성용이 손에 든 휴지를 뺏어들고 아무리 친구라지만 차마 성용이 앞에서 코를 풀 수는 없어 대충 닦는 시늉만 하고 던져서 휴지통에 골인시켰다. 한 손을 척- 하니 내 어깨에 올린 성용이는 다 울었쪄요- 하면서 끝까지 애취급을 했고 우리는 또 투닥투닥하며 평소 처럼 돌아왔다. 성용이가 아니였다면 눈물 콧물이 뭐야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추접스럽게 펑펑 울었을텐데 그래도 친구라고 달래주니 기분도 한결 나아진것 같다. "내가 괜한 말 한거 아니지?" "아냐- 알면.. 더 잘 잊을 수 있겠지 뭐. 설마 예비 품절남 못 잊겠냐" 아직도 애 취급을 하는 성용이가 미워 가슴팍을 퍽- 하고 치자 윽- 하고 거의 죽는 시늉을 한다. 아아, 기성용이 엄살쟁이라는걸 까먹을뻔 헀다. "근데 나 자고 가도 되냐?" "아니아니아니 절대 안돼지!" "지금 시간 엄청 늦었는데.. 나 졸음 운전 하다가 사고라도.." "알았어 알았어! 대신 내일 아침은 니가 하는거다?" "아침은 생략한다" 시간이 늦었다며 불쌍한 표정 짓길래 불쌍해서 봐줬더니.. 기필코 아침은 하기 싫다 이거지? 허- 하며 바람빠진 소리로 웃자 성용이도 따라 웃는다. 편한 옷 없냐며 징징대는 성용이에게 예전에 그가 입던 옷을 줘야하나 하고 망설이다가 동생꺼라고 말하며 츄리닝 티와 바지를 건냈다. "동생이 키가 큰가보다. 나한테도 맞네" "응? 으응.. 좀 커" 금새 어두컴컴해진 집 안. 성용이는 거실에서 자고 나는 안방에서 자지만 여자 혼자사는 집이 넓으면 얼마나 넓다고, 안방과 거실이 꽤나 가까워 숨소리까지 들린다. 아직 안자는건지 불규칙한 성용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아직 안자? 하고 묻자 응- 핸드폰 라며 낮게 깔린 목소리를 낸다. "고마워 성용아. 너 아니였음 진짜 밤새도록 울고 불고 했을텐데" "그니까 나한테 좀 잘해- 맨날 엄살 부린다고 구박하지 말고" "그래..... 우리 같이 좋은 여자, 좋은 남자 만나서 연애 좀 해보자. 솔로들 끼리 뭐하는거야- 청승맞다. 그치?" "............." "벌써 자?" "............." "자는 구나.." "OOO" "안 자네?" 몇 초 동안의 적막함을 깬 성용이의 목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고 느껴지면 그걸 착각일까. 평소 성용이 답지 않다. 분위기도 내 시야가 느끼는 깜깜한 처럼 어두운것 같아 괜스레 성용이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고, 긴장되고 그랬다. 어떤 말을 할지도 모르면서. "잘자라고.." "뭐야 싱거워- 기성용" 뭔가 할 말이 있는것 같았지만 그냥 모른체 지나갔다. 왠지 중요한 말 같아서 아끼고 아껴야 할 수 있는 말 같아서. 때가 되면 말하겠거니 하고. 어제 오늘 너무 많이 울어서 일까, 무거워진 눈꺼풀이 자꾸만 자꾸만 내려왔다. 좀 더 성용이와 대화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했다. "잘자... 성용..아" "너도"
그게 귀여워서 잠결에 피식 웃고는 욕실로가 샤워를 끝내고 옷을 주워입었다. 화장대에 앉아 화장 먼저 하려다가 주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래도 잘나가는 축구선수 아침을 차려줘야 할것 같았다. 김치찌개를 좋아할지 된장찌개를 좋아할지 고민하다가 해주는대로 먹겠거니 하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숟가락, 젓가락을 놓고 이제 화장 좀 해 볼까하고 뒤를 딱 돌아섰는데 으앗 깜짝이야! 땀을 닦으며 헉헉대는 성용이가 서있다. 기척이라도 좀 하던가. "운동 갔다왔어?" "그냥 조깅" "씻고 나와서 밥 먹어" 거실 통유리창으로 따뜻하게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걸 보고 성용이 얼굴 한번 보고 예쁘게 아침이 차려진 식탁을 한번 보고.. 왠진 간질간질하는 기분에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와 사귈 때도 느껴본적 없는 간질거리는 느낌. 이건 설레임도 아니고, 긴장도 아닌데.. 이게 뭐지. |
평행선 5 |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꼭 신혼부부 같다, 그치?' 그 날 아침, 성용이는 아침을 먹으며 이런 소리를 해서 내게 등짝을 한 대 맞은 후 훈련장에 갔다. 아마 내가 느낀 그 간질거리는 감정이 그런 감정 같아서, 들킨것 같아 부끄러웠던것 같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훈련이 끝나고 데이트를 했다.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텅 빈 그라운드에 앉아 놀기도 하고. 그리고 오늘은 성용이가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가버렸다. 요즘 자꾸만 느껴지는 나에 대한 성용이의 다른 마음. 아닐거야 아닐거야 하고 내게 최면을 걸어봐도 성용이은 맞다고 맞다고 자꾸만 눈으로 나에게 말을 한다. 아마 영화관에서 성용이의 눈이 내게 하려던 말이 이거였나 싶다. 어느 순간 부터 성용이의 마음을 자꾸만 부정하게 됐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선수들이 가버린 휑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앉아 멍하니 있었다. 노을도 지고, 살랑거리는 바람도 불고.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떴다 해봤다. 그가 여자친구가 있다는걸 알게된 다음 날 부터 난 편히 그를 볼 수 없게됐다. 원래도 편히 볼 수 는 없었지만. 그리고 성용이 몰래 혼자 울기도 여러 날. 느릿하게 감은 눈을 다시 느릿하게 떠보면 그라운드 저 건너편에 갑자기 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도. 아.. 여자친구구나. 빨리 내가 비켜줘야하는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도저히 다리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눈동자는 자꾸만 그를 따라다닌다.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넘겨주는 모습, 손을 잡는 모습,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 발 맞추어 걷는 모습. 내 눈에 다 보인다, 다. 눈을 감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데 자리를 뜰 수도 없다. 한참을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을 봤다. 고개를 떨구고 땅을 바라봐도 흐리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봐도 흐리고 그렇게나 내가 사랑하는 그를 바라봐도 흐리다. 자꾸만 진동이 울리는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 없는 내게 익숙한 목소리로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누구긴 누구겠어 기성용이지. [여보세요? OO아?] "성용아....." [들려? 전화기가 이상..] "나 못 잊겠어. 나 못 잊어 성용아" [OOO. 왜 그래..] "나 못 잊어... 나 어떡하지 성용아..?" [지금 갈게. 훈련장이지?] 내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듯 전화를 뚝 끊어버린 성용이. 두 사람이 아주 느릿하게 그라운드를 돌고 돌아 그가 날 발견할 때 까지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의 옆에 있는 여자는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한건지 그에게 자꾸만 뭐라고 말을 걸었다. "하아.. 하아.. OOO"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내 이름이 불려지면 고개를 뒤로 젖혀 뒤에 있는 성용이를 올려다 본다. 그 새를 못 참고 또 흘러나오는 눈물. 그가.. 그가 다 보고 있겠지? 내가 우는것도, 성용이가 헐레벌떡 나를 향해 뛰어온것도. 아냐 그러면 뭐해 그는 이미 결혼할 여자가 있는걸. 성용이는 내 머리통을 정면으로 두고는 내 옆에 앉아 절 바라보게 한다. 몇 초 동안 아무 말 없이 내 눈만 바라본다. "이거 놔" 내 볼을 양 두손으로 잡고 놔주지 않는 성용이의 팔을 떼내면 성용이는 다시 내 두 볼을 잡아온다. 그리고 예고없이 들어닥치는 성용이의 입술.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입술을 떼내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옭아매는 성용이. 어둥바둥 발버둥을 쳐봤자 안된다는걸 알고 가만히 있으면 입술이 떼어진다. 빰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손을 올리면 내 손을 단단히 잡는 성용이. 왜? 왜 그렇게 화난 눈을 하고서 날 바라보는거야? 왜.. 혹시 내가 모르는 니 마음이 있니? "잊어. 무조건 잊어. 결혼할 사람이야. 잊으라고! 왜? 왜 난 안돼? 내가 지금까지 계속 눈치줬잖아. 나 좀 봐달라고" 어느새 성용이와 내 앞까지 온 그. 그의 여자친구도 우릴 봤는지 쉽사리 우리를 지나치지 못하고 서 있다. "늬들 싸우나" 여자친구의 손을 꼭 잡은채 말하는 그를 보고는 성용이의 팔을 뿌리치고 옆에 있던 가방을 들고 그 자리를 떴다. 또각또각하고 나는 구두소리가 듣기 싫었다. 빠르게 걷는다고 걷는건데 성용이는 성큼성큼 뒤에서 조금의 간격을 유지한채 걸어오는것 같았다. 개의치 않고 걸었다. 요즘 성용이가 데리러 오고, 데려다 주는 바람에 차를 몰고 올 필요가 없어져 주차장에 내 차는 없었다. 그래 뭐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주차장을 지나치려는데 성용이가 내 손을 잡고는 주차장으로 질질 끌고 간다. "............" 조수석에 날 태우고 운전석에 탄 성용이는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그와 그 여자를 보더니 이내 거칠게 엑셀을 밟아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그만 잊어. 형은 너 안좋아해. 다른 여자 보면서 웃고, 다른 여자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다른 여자 사랑.." "알아.. 알아 성용아. 아는데 안 잊혀져. 너한테 이러는것도 미안하고 오빠한테도 미안한데 그게 안돼" 또 또 아이 처럼, 바보 처럼 성용이 앞에서 펑펑 운다. 이럴 수록 성용이 마음에 모진 짓하는거인줄 알면서도 난 이기적이게도 성용이 앞에서 운다. 그것도 서럽게. 마음 여린 성용이는 또 우는 내 모습에 갓 길에 차를 세우고 휴지로 눈물을 닦아준다. 그 모습에 더 눈물이 난다. "이제 나 좀 봐줘" 그 한마디에 끅끅 대기만 하던 울음이 터져 성용이에게 안겨 펑펑 울고 말았다. 지금 나 보다 힘들 사람은 성용인데 성용이 가슴팍이 다 젖도록 울었다. "성용아.." 말 없이 날 내려다 보는 성용이. 그 눈빛이 너무 다정해서, 날 너무 좋아하는것 같아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는 너에게 마음 못 줘.. "그렇다고 너 이용해서 그 사람 잊은 생각 없어" "이용해. 내가 잘해줄게. 형 생각 안나게 내가 잘해줄게. 나 이용해서 형 잊어" "기성용" "응" "............." 이렇게 순순히 대답을 해버리면 난 할 말이 없다. 그에게도, 성용이에게도 난 죄인이니까. "나 믿고 따라올 수 있지?" 난 이기적이게도 그 날 아침 그 간질거리는 느낌 때문에 성용이 마저 놓지를 못한다. 아니, 어쩌면 난 조금씩 그 느낌에 익숙해지고 있는걸지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 여기저기 얼룩진 눈물을 닦아주곤 안전밸트를 고쳐매준다. 내 입술에 짧은 키스를 하는것도 잊지 않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 옆으로 넘긴 앞머리를 매만지며 싱긋 웃는 성용이. 이 쯤 되면 난 이미 성용이의 포로다.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는 포로. |
평행선 6 |
선수들이 짐을 챙겨 나오는 락커룸 앞에서 마주친 그.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인사를 해온다. 가슴이 따끔따끔 아프다. "요즘 얼굴 좋아보인다. 좋은 일이나도 있나" 얼굴이 좋아보인다는 그의 말. 하나도 안좋다. 이미 내 눈과 귀는 그에만 반응한다. 훈련 받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내 눈동자는 그만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성용이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미안해 죽을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척 웃어주지만 속은 쓰리고 쓰리다는걸 누구 보다 잘 안다. 그래서 좋지 않다. "형 몰랐어요? 우리 사귀는데" "아... 축하한다. 저번에 늬들 입술 부닥치는거 다 봤다 아이가" 락커룸에서 짐을 싸서 나오던 성용이가 내 어깨에 떡하니 제 손을 얹더니 내뱉은 말. 그는 조금 당황한듯 하다가 웃으며 축하한다고 했다. 둘이 동갑이라서 말도 잘 통하고 잘 맞겠다며 성용이와 나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내 표정이 어떤지 지금 짐작이 가지 않는다. "형도 결혼하시면 축하해드릴게요" "싸우지말고 잘 지내라. 저번에 늬들 싸울 때 을마나 맴이 안좋았는지 아나" "네네- 잔소리 그만하시고 형수님한테 가시죠- 약속 있는것 있던데"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말하고 그는 자리를 떴다. 그리고 성용이는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마주치려 했다. 거부 없이 성용이의 눈을 바라봤다. "화났어?" "아니" "슬퍼?" "응" "울거야?" "아니" 슬프다니 보다는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지는 느낌. 어차피 그도 결혼할 여자가 있는데 나라고 남자친구 못사귈게 뭐가 있냐는 심산이다. 이제야 그를 좀 놓아줄 수 있나 싶다. 눈물나지 않고 씁쓸하기만 한걸 보면 이제야 그를 조금은 놓아줄 수 있는것 같다. 이제야.. 3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서야. "착하다, OO이. 울지도 않고" "애 아니라니까-" "어이구 네네-" 여전히 내 어깨에 손은 얹은채 우리는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저녁을 뭐 먹을까, 영화 볼래?, 차 마시러 가자..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평소 처럼 우린 대화를 했다. 어쩌면 난 아직 그를 놓아줄 준비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놓아줄 수 없는데 억지로 잊는걸 수도 있다. 성용으로 인해서. 성용이는 그 보다 잘해줬으면 잘해줬지 못해주진 않았다. 항상 사소한거에 신경 써줬고 그러면서도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해줬다. 내가 만약 그 사람 보다 성용이를 먼저 만났고, 성용이를 좋아했다면 정말 예쁜 사랑을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잘해줬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기전 굿바이 키스도 잊지 않고 성용이의 차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까지 현관에 서 있었다. 몇 일 전 주차해 둔 그대로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내 차를 바라보다가 이내 집으로 들어왔다. 몇 일 새에 집 안엔 성용이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혹시라도 집에서 DVD를 보는 날이면 성용이는 항상 집에서 자고 갔으니까. 쇼파 옆 탁상에는 잘 개어져 있는 이불과 성용이의 여벌 옷이 있다. 항상 컵 하나는 찬장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이젠 가까운 곳에 컵이 2개가 있다. 현관에 서서 성용이의 흔적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높게 틀어올렸던 머리를 풀려는데 전화기가 울린다. 잘 들어갔냐는 성용이의 전화 같아서 보지도 않고 어- 성용아 라며 전화를 받았다. [아.. 내다] "오빠......" [성용이 전화 기다렸나] "아냐 방금 헤어져서 잘 들어갔냐는 전화인줄 알고.. 미안해" [아이다. 성용이 좋은 아인거 니도 알기다. 잘 지내라. 싸우지들 말고] "오빠도 곧 결혼하는것 같던데.... 잘 준비해.." 자꾸만 목이 메어와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빌어주는 일. 너무 힘들 일이다. [준비는 무슨.. 이제 결혼 날짜 잡으려 한다] "봄에 결혼하고 싶댔잖아.. 뭘 고민하고 그래.." [니.. 우나?] "아니- 내가 왜 울어. 지금 복도라서 좀 울려서 그래" [봄에 결혼하고 싶기는 한데...] "오빠 미안 나 끊어야 될것 같아. 갑자기 급한 전화가 들어와서" [그래 미안타. 내일 보자] 급히 전화를 끊고 막을 수 없이 봇물 처럼 터져나오는 눈물을 쏟아냈다. 자꾸만 자꾸만 눈 앞이 흐려지고 똑똑 흐르는 눈물. 그는 내가 이제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나도 안괜찮은데... 이렇게 전화통화 하나만으로도 쉽게 눈물이 나는데...
"네? 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원정경기인 평가전에 내가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동료 팀닥터에게 잘 모르겠다는 말을 전했다. 솔직히 해외 갈 수 있는 기회가 적을텐데 궂이 왜 나에게 갔으면 한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보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동료 팀닥터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는 그라운드 밖에 서서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훈련인데도 불구하고 열심히들 뛴다. 코치진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선수들끼리 사인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는 그라운드 안. 그에게서 시선을 때려고 노력했다. 팀닥터인 만큼 여러 선수들을 고루 보려고 했다. 바쁘게 차트를 넘겨가며 다른 선수에게 한 눈을 판 사이 그가 넘어져 그라운드에서 나뒹굴고 있다. 재빨리 그의 차트를 넘겨보며 현재 상황을 체크했고 코치진들이 들어오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오빠 괜찮아?" 상대팀의 태클에 무릎을 다친듯 무릎을 매만지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도 무릎 때문에 고생하더니 한번 다친뒤로 계속 다치고 있다. "안되겠어요. 저번에 다친 곳이예요. 병원에 가는게 좋겠네요" 코치진들에게 말을 하고 그를 부축해 그라운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성용이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저번에 다친데 맞지? 병원에 가는게 좋겠어" "심한거 아이다. 원래 한번 다친데는 계속 아픈기다" 툭툭 털며 일어서는 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정말 괜찮은건가.. "그래도.." "성용이가 내 째려본다. 개안타 안카나" 힐끔하고 성용이를 보자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그와 나를 보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그래도 걱정이 되서 경기 전에 꼭 한번 병원에 들르라고 했다. 손을 설레설레 흔들어보이며 그는 터벅터벅 다시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아니까.. 선수들의 훈련이 끝나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누가 휙- 하고 손을 낚아채길래 뒤를 돌았더니 성용이가 잔뜩 뿔난 표정으로 서있다. "나도 다친것 같아" "엄살쟁이- 질투해?" "아냐- 진짜 다친것 같아" "어이구- 그랬어요-" 마주잡은 손을 놓으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하자 정말 다쳤다며 치료해달라고 애 처럼 때를 써서 결국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익숙한듯 간의 침대에 앉아 대충 여기여기 저기저기 다쳤다고 하는데 도통 어디가 아프다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어디냐고" "아 여기!! 저기!!" "너 자꾸 엄살 피울래?" 아 여기 말이야- 하면서 내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해온다. 어떻게 밀어낼 수도 없이 성용이가 저항하려는 내 두 손을 잡아챘고 다른 손으로는 내 허리를 옭아맸다. 민망한 소리가 사무실 가득히 울려퍼졌고 진한 키스는 끝날 줄을 몰랐다. 느슨해진 성용이의 손을 살짝 뿌리쳤다. 성용이의 입술이 떼어졌다. 기분 좋게 활짝 웃는 성용이 때문에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다. 뾰로통해져 입을 쭈욱 내밀자 한번 더? 란다. 어이가 없어 웃자 또 따라 웃는다. "너 진짜..." "왜? 미워할 수가 없어?" "응" 예상과 달리 내가 너무 빨리 인정을 하자 꼬투리 잡은게 없어진 모양인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그러면 주름 생긴다니까-, 아까 질투났어, 아니라며?, 질투야 질투. 투정 부리는 그가 귀여워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줬다. 뭐 자기는 애가 아니라고 또 한소리를 하긴했지만. |
평행선 7 |
[오늘도 늦으면 알아서해] "아, 안 늦어! 너나 잘 하시지?" [나는 항상 잘 하거든?] "아 그러니까 오늘도 잘 하라고! 나도 잘 할거야" [알았어 사랑해 뿅] 뚝 하고 끊긴 전화. 사랑한다는 성용이의 말에 벙 쪄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런 성용이가 귀여워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제 딴에도 쑥스러웠는지 뿅 하고 끊는 것도 귀엽고.. 옷 갈아입는 것도 까먹고 한참을 웃다가 시계를 보고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간만에 훈련 없는 날, 성용이와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놀다 오기로 했다. 저녁엔 같이 유람선도 보자고 했던 싱글벙글한 성용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 부터 일어나 열심히 준비를 하자니 자꾸만 성용이와 보낼 시간이 기대되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옷을 차려 입고 구두까지 신고 현관의 전신거울 앞에 서 봤다. 평소엔 잘 입지 않던 여성스러운 나폴나폴한 치마를 입으려니 영 불편했지만 설레이는 마음이 더 크다. 사랑한다는 성용이의 말이 자꾸만 귀에 맴도는것 같다. 바보 같은 웃음이 자꾸만 지어지고 설레이는 마음은 싹을 틔우다 못해 꽃까지 피운다. 집을 나서면 또각이는 구두 소리가 듣기 좋다. 한 걸음 두 걸음 성용이와 만나기로한 약속 장소에 가까워지는 만큼 내 미소는 점점 짙어진다. 짙은 적색 벽돌이 깔린 이 도로를 따라 쭈-욱 따라가다 보면 성용이와 만나기로한 횡단보도가 눈에 띈다. 예쁜 적색 벽돌과 내 구두의 마찰음이 경쾌하다. 신호등은 빨간불이 켜저 있고 맞은 편에는 성용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보면 그 사람의 이름이 뜬다. 조금은 망설이다가 이내 어- 오빠 하고 받으면 다급한 누군가의 말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뭐라는거지.. 나한테 하는 말인가.. [OOO씨세요?] "네? 네.. 맞는데요?" 상대편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기분 나쁘다. 성용이와 눈이 마주치면 굳은 내 표정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여기 병원인데요, 박주영씨 아시죠? 박주영씨가..] "주영 오빠요?" [박주영씨가 지금 응급실에 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요. 빨리 와주세요!] 손과 다리에 힘이 풀리고 놓칠뻔한 휴대폰을 고쳐 잡고 끊긴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도저히 고개를 들고 성용이를 볼 수가 없다. 불쑥 뒤를 돌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끊긴 전화를 보고는 왔던 길을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그가, 그 사람이, 지금.. 지금.. 아프니까. 내가 가야하니까. 지금 나에겐 성용이의 표정, 성용이의 마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머릿속엔 이미 그의 혹시나 다리가 잘못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 뿐이다. 휴대폰에는 계속 성용이의 이름이 뜨며 진동이 울렸지만 받을 수 없다. 차마 그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어떻게 왔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뛰어들어간 응급실.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줬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 걸음을 멈추고 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한 걸음, 한 걸음 응급실의 간의 침대들을 살피고 그를 찾는다. 의사와 간호사가 모여있는 한 침대. 빠른 걸음으로 그 쪽으로 다가간다. 후- 후- 하고 신호흡을 한다. 저기요-, 박주영씨 보호자 되세요?, 네... 제가.. 보호자예요. "교통사고예요. 정확한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머리에서 출혈이 있어서 가벼운 뇌진탕 정도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축구.. 축구선수예요, 그 사람. 다리는.. 다리는 괜찮아요? 네?" "외상은 머리 부분의 출혈 밖엔 없는것 같네요" 보호자 서명란에 싸인을 하고 우글우글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제 각기 흩어졌다. 애써 힘 주고 있던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빼고 의자에 털썩- 하고 앉았다. 하얀 붕대를 머리에 감고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그. 규칙적으로 들리는 기계음, 그의 손에 꽂아져 있는 주사 바늘, 피에 젖은 오빠의 옷... 손을 가져가 잡아봤다. ".... 오빠 손은.. 여전히 따뜻하구나...." "............." "다행이야 오빠, 다리 안다쳤데. 다행이야.. 다행이야...." 군데 군데 피가 묻어 굳어진 그의 손을 더 꼭 잡고 얼굴을 부벼댔다. 사귈 때 처럼, 3년 전 그 날 처럼. 침대 옆 탁상에 그의 휴대폰이 놓여 있다. 순간 든 생각은 그의 여자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하나 하는 건데.. 전화를 해줘야 맞는거겠지만 왠지 전화를 하기가 싫다. 그래도 해야겠지.. 그의 휴대폰의 전화번호부에 들어가자 언뜻 성용이에게 들었던것 같은 여자 이름이 있다. 끝까지 통화 버튼을 눌러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다가 이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은 계속 가는데 전화는 받지 않는다. 한숨을 쉬며 받기를 기다리는데 내 가방에서도 진동이 울린다. 휴대폰을 확인하면 성용이의 수 십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후 음성..] 그의 전화기를 내려놓고 내 전화기를 붙들었다. 그리고 성용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채 1번을 가기도 전에 다급하게 받는 성용이. 더, 더, 미안해 진다. [OOO!!] "성용아.." [너 지금... 어디야] "........미안해. 미안해, 성용아." [지금 어디야? 내가 갈게.. 괜찮아. 나 괜찮다니까? 지금 어디야..] "........병원..." [.....왜?] "오빠가.. 주영이 오빠가 좀 다쳤어" 짧은 한숨을 내쉬고 결심을 한듯 그 몇 단어를 내뱉어 냈다. 성용이는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겠지. 나에게 배신 당한 느낌이겠지.... 갈게 라는 두 글자를 말할 성용이는 내가 뭐라고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끊어진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뭘 잘했다고 눈물이 흐른다. 소리도 없이 주르륵 흐르는 눈물이..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닦고 닦고, 또 닦았다. 피 묻은 오빠 손에도 떨어지고 그런 오빠 손을 잡고 있는 내 손에도 떨어지고. "오빠.... 나 어떡해... 오빠는 나 다 잊었는데 난 어떡해" 엉엉 우는 소리를 내며 또 다시 아이 처럼 난 운다. 항상 상처 받는건 성용인데, 울어야 하는건 성용인데 맨날 내가 운다. 잘한것도 없는데. 우는것 마저 성용이에게 미안해서 이제 울지도 못하겠다.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죽을 만큼 미안해서 성용이 얼굴도 이젠 못 보겠다. 이제야 마음 다 잡고 그를 잊을 수 있나 했는데 아직 나는 아닌가 보다. 아직도 못 잊나 보다. 결혼 한다는 말까지 들었는데도 안되나 보다. "잊고 싶어, 오빠. 잊을래 오빠.... 나 좀... 나 좀 어떻게 해줘..." 아무 잘 못 없는 그의 손만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낮디 낮은, 무거운 성용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리기 전까지. "그만해 OOO" 성용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처음 들어보는 성용이의 무거운 목소리. 낮디 낮아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목소리. "형이 여자친구 있다잖아. 결혼한다잖아. 상견례까지 했다잖아! 왜 난 안봐줘? 나는, 난 안보여? 봐달라고 했잖아. 나 이용해서 잊으라고 했잖아" 여전히 내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성용이는 내 옆으로 와 내 고개를 들었다. 화난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부드러운 성용이의 손길에 나는 더 미안해진다. "가" ".........." "가, 성용아. 나... 못하겠어. 이제야 오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봐. 절대 못 잊을것 같아. 그냥... 내 마음에라도 둘래. 우리 그만하자" 마지막 말에 힘을 주어 말하며 성용이를 올려다 봤다. 의외로 성용이는 담담했다. 화난 표정도, 슬픈 표정도 아닌 그냥 무표정. 아무 감정 없는 표정. 내가 그랬던것 처럼, 아주 매정했던것 처럼 성용이도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주 느릿한 걸음으로 응급실을 나갔다. 그 느린 걸음으로 성용이가 응급실을 나갈 동안 빤히 바라봤다. 그 넓은 어깨가 축 처져서는 느리고, 느리고, 또 느린 그 걸음을. "아직도 내 좋아하나" 목이 잠긴 목소리로 불쑥 말하는 그.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면 여전히 감은 두 눈 사이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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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8 |
"힘들어서해서 놓아줬도만 와 더 힘들어 하고 있노. 3년간 그리 살았나" "오빠..." "내가.. 내가 무슨 맴으로 니 놓아줬는지 아나. 내는 진짜 니 생각만 하고 놓아줬다. 힘들대서 힘들지 말라고 놓아줬고 질질 짜서 이제 울지 말라고 놔줬다. 근데 니는 뭐꼬. 내 아픈거 꾹꾹 참아가믄서 니 놔줬는데 니는 뭐꼬. 이제는 내가 잡아줄 수도 없는데 어쩔기가" "말했잖아. 마음에라도 담아둘거라고. 오빤... 오빤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라고. 나 같은거 신경 쓰지 말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내 손목을 잡음과 동시에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여자친구인것 같은데 받아. 나 갈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응급실을 나서는데 그의 통화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병원이다, 아이다 많이 안다쳤다, 괜찮다 안카나, 천천히 와라. 나한테만 해주는 말인줄 알았다. 나한테만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주건줄 알았다. 나만... 나만 그에게 그런 말 듣는 줄 알았다.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눈물. 닦는걸 포기하고 그냥 흘리기로 했다. 마침 병원 앞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 버스에 타서 의자에 털썩 앉아 창 밖만 바라봤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 없다. 나 때문에 힘들어할 그와 성용이에게 미안하다. 이제와서 내 마음을 알게된 그에게나, 이제야 마음 다 잡은줄 알았던 성용이에게나 나는 나쁜 사람일 뿐이다. 햇빛이 쨍쨍 내비치는 좋은 가을 날씨. 가을 답게 하늘은 높다.. 파랗고. 열려진 창문 새로 솔솔 들어오는 가을 바람이 제법 차다. 이상하게도.. 해가 쨍쩅한데 바람이 차다.
"제가 경험이 없어서.... 괜찮을까요?" "그러면서 다 배우는거죠 뭐.. 죄송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위로랍시고 내뱉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선 뒤를 돌아 도망치듯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가 미루고 미뤄뒀던 차트들을 다른 팀닥터가 다 검토한건지 책꽂이에 잘 정리되어 꽂혀있다. 바보 처럼 할 일도 제대로 못한다. 한숨을 쉬며 책상을 바라봤다. 자주 쓰는 펜이 굴러다니고 탁상 시계의 초침이 똑딱이면서 돌아간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창문을 통과해 사무실에 길게 드러웠다. 손을 가져다 대보면 검은 그림자가 진다. 마치 내가 있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똑같이 움직이는 그림자. 따뜻한 기운이 손에 닿는다. "애 처럼 뭐하고 있어" 소리도, 인기척도 없이 들어온 성용이가 평소 처럼 털썩하고 간이 침대에 앉는다. 그럼 나는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어색하게 말을 건넨다. "부상 때문에.. 왔어?" "어" 짧은 성용이의 대답, 날 꿰뚫어 보는 듯한 성용이의 눈빛에 더 이상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내리 숙였다. "고개는 왜... 숙여" "미안해서" "........니가 뭘" "다" 여전히 초침이 똑딱이는 사무실 안에서 성용이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듯 숨도 함께 멈추게 된다. 나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숨이 막히는 그 침묵을 성용이가 먼저 깼다.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약 다 썼어. 이제 거의 다 나은것 같아" "영국... 언제 들어가?" "평가전 끝나면 들어가겠지" 진열장에서 지난번에 줬던 약을 성용이에게 건냈다. 아무 말 없이 약을 받아든 성용이는 뚜벅 뚜벅 걸어 사무실을 나가려 한다. "성용아..!!" 뚝- 하고 멈춘 성용이의 발걸음. 조금 뜸을 들이고 있는 날 기다리는듯 성용이는 그 몇 초를 가만히 서 있었다. "미안해. 우는것도 이제 미안해서 못 울겠다.. 병원에서 한 말, 진심이야. 미안해" "..........." "성용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너에게 줬던 내 마음, 니 말 하나 하나에 받았던 감정 다 정리 못해. 너 혼자 정리해" 나는 염치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성용이에게 용서 받기를, 성용이가 나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기를 원했던걸까? 정말...? 쾅-!! 큰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그에게나 성용이에게나 이기적이다. 난 끝까지 내 생각만 한다. 입으로는 그를 잊고 싶다고 하면서도 애초 부터 난 그를 잊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를 생각하는게 너무나도 익숙해서.
잠시 쉬는 시간인 그라운드. 얼마 전 당한 다리 부상에서 겨우 헤어나온 선수 한 명의 다리를 요리조리 살피는데 대뜸 그 선수가 나에게 원정 경기를 같이 가느냐 묻는다. 곱상한 외모 때문에 소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는 이 선수.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데 내가 당황한 표정을 내비치면 안될것 같아 그냥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성용이와 그가 동시에 날 바라보는게 느껴진다. 굳어지려는 입가를 애써 끌어올리는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에이- 같이 가실거죠? 네? 같이 가요-" "... 저는 이번에 안가기로 했어요" 깔아앉은 내 목소리에 그 선수는 당황했는지 아.. 그래요.. 하고 만다. 딱히 의도한건 아니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원정 경기를 앞둔 한국에서의 마지막 훈련. 성용이를 보는것도, 그를 보는것도 오늘도 마지막이다. 둘 중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조금 기울어진 오후의 해는 아침 보다 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감독님의 집합하라는 말에 선수들이 하나 둘 제자리르 찾아간다. 난 애써 성용이와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응급상자를 정리하는걸 도우려는듯 다가와 한 쪽 무릎을 꿇은 성용이가 붕대를 상자 안에 넣는다. "나 때문에, 형 때문에 그러는거면 그럴 필요 없어" "그런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는 그냥 주영이 형 마음에 담아두면 되는거고 나는 널 마음에 담아두면 되는거야. 다를거 없어" 응급상자에 차곡차곡 도구를 넣은 성용이는 자크 까지 잠궈주곤 일어났다. 비록 짧은 대화지만 우린 대화하는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응급상자를 들고 일어섰다. 자질구레한게 담긴 응급상자가 무거운 만큼 내 마음도, 내 기분도 무겁다. 터덜터덜 뒤돌아 걸어가는 성용이의 뒷모습을 본다. 그리고 성용이 보다 조금 더 앞서 걸어가는 그. 못난 나를 질책하며 그라운드를 등지고 돌아섰다. 나오려는 눈물을 또 꾹꾹 눌러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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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9 |
"또 우나" 주변을 둘러보니 주차장엔 그 많던 차들이 다 빠져나가고 몇 대 밖에 남아있질 않았다. "힘들대서 놔줬드만 왜 더 힘들어하노. 내가 아직 니를.. 좋아한다고 해도 내는 이제 니한테 몬 간다. 와 그렇게 힘든 길을 걸을라카나" "힘들어도 좋아서. 그 때 오빠 놔버린게 후회되고 왜 다시 잡지 않았는지도 후회돼" 또 다시 흐르는 내 눈물을 보곤 그는 내게로 다가와 눈물을 닦아준다. 오빠가 자꾸 이러면 나 기대고 싶어. 그러면 안되는데 자꾸 그래. 해가 또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길고 긴 그림자가 그와 내 사이에 져 있고 내 머리칼이 바람에 날릴 때 마다 그림자 또한 움직인다. "아직도 니를 보면... 이럴 땐 니 머리칼도 정리해주고 싶고, 밥 먹을 때 반찬도 놔주고 싶고, 혼자 길 걷고 있으면 손도 잡아주고 싶고 그렇다. 아무렇지 않은척 니한테.... 인사를 할 때도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성용이 자식이랑 사귄다고 했을 때, 늬네 입술 부닥칠 때... 내는 어땠겠나" 당황한 내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내 두 손을 부여잡고 계속 말을 이어가는 그. 따뜻하다.. 따뜻해. "내가 니를 사랑해도 지금은 못 간다" "............." "니는 나한티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내도 니 못 잊는다. 그 마음이면 된기다." 자꾸만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던 그가 날 끌어 안았다. 얼마만에 그의 품에 안겨보는건지 따뜻하기만해 그의 어깨가 다 젖도록 울었다. 우린 너무 먼길을 돌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3년 전의 일로 그 역시 힘들어 할 줄은 몰랐다. 너무..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해왔으니까. 나는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그 말, 그 마음이면 된거라는 그 말. 아, 내가 그에게 이런 사람이구나. 나는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였고 소중한 사람이구나. 내 허리를 꼭 둘러 안는 그가, 내 어깨에 턱을 대고 가만히 내 등을 쓸어내리는 그가.. 3년이 지나도 너무 익숙하다. 그의 품이 내 자리인 마냥. 한참을 그의 품에서 울었다. 아니, 그도 울고 나도 울고. 아무도 없는 빈 주차장에서 울리는 내 울음소리, 그리고 내 심장에 들리는 그의 사랑한다는 말 소리. "오빠는 결혼해서 예쁜 아이 낳고 잘 살아. 나는... 잊어도 되고 안잊어도 되고..... 예쁜 딸도 낳고 오빠 닮은 잘생긴 아들도 낳고 그렇게.." 울음 섞인 내 목소리에 날 더 꽉 끌어안는 그. 그가 현재 여자친구를 사랑하든 날 사랑하든 상관없다.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겉으로 표현할 수 없어도 좋다. 그가 날 잊어도, 잊지 않아도 좋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내가 그를 잊지 않으면 되니까. 내 허리에 둘러졌던 그의 손을 풀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까마디 까만 머리칼, 까무잡잡한 피부, 흑갈색 눈동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 "와 그렇게 보나" "잘생겨서" "사랑한다" 내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그의 입술. 내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물다가 내 허리를 감싸곤 내 치열을 훑는다. 사귈 때는 고르지 못한 내 치열에 그가 농담도 했었는데.. 조금씩 파고드는 그가 버겨워 차에 살짝 기대자 그는 날 가두듯 양 손을 차에 짚었다. 사랑한다는 그의 말이 이 키스 보다 몇 백배는 더 달콤하다. 마지막이 될 그의 말이 자꾸만 내 귀에 맴돌고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그 세 글자, 사랑해.
병원 측에서 예상했던 그 가벼운 뇌진탕 조차 없다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곧바로 병원을 퇴원했다. 에이전트가 호들갑을 떨며 평가전에 무리 없이 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옆에서 기뻐했지만 내 귀에 그런 소리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한 숨만 폭폭- 쉬어대는 날 이상하게만 바라볼 뿐 그 어떤 것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경기력이 떨어진 탓에 에이전트가 고생했었는데 또 그녀 때문에 마음이 안좋다고 하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뻔했으니까. 무슨 말을 하려듯 자꾸만 입만 벙긋거리는 에이전트를 모른척하며 한국에서의 마지막 훈련을 했다. 그녀와 내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짐작했겠지. 그녀를 보는 마지막 날. 그녀와 내 마음을 다시 확인 한 날. 울고 싶었다. "오빠는 결혼해서 예쁜 아이 낳고 잘 살아. 나는... 잊어도 되고 안잊어도 되고..... 예쁜 딸도 낳고 오빠 닮은 잘생긴 아들도 낳고 그렇게.." 큰 바늘로 심장을 찌르는것 마냥 쿡쿡 아파온다. OO이가 없는 동안 날 봐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건 아니다. 사랑한다. 다만 OO이 만큼 사랑하는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녀와 헤어진다고 해서 내게 죽을만큼 힘든 시련이 오지는 않겠지만 OO이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는건.. 안된다. 너 닮은 딸, 나 닮은 아들 낳고 살고 싶다는 말이 턱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그녀가 날 살펴본다. 머리칼, 눈, 코, 입..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 마다 상처에 과산화수소를 부은듯 따끔따끔 아려온다. 바람에 그녀의 머리칼이 날린다. 3년 전 그 날 처럼 짙은 노을이 깔린 하늘. 그 하늘 아래 우리 두 사람이 서있다, 그 짙디 짙은 노을을 받으며. 노을 빛이 서린 바람을 받으며. "와 그렇게 보나" "잘생겨서" 헤어지기 전 행복했던 나날들 속에서 그녀가 나에게 잘생겼다고 했던, 멋있다고 했던 장면들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간다. 너의 그 예쁜 입술에서 나에게 멋있다고, 나만 들으라는듯 속삭이면 나는 너에게 말했지. "사랑한다" 3년 동안 해주고 싶었던 말. 이제는 그 한 마디로 그녈 향한 내 마음을 모두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렸다. 바래고 바래서 탁해진 빛 만큼이나 우리 사랑은 바랬다. 그리고 충동적인 내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고 너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어 버렸다. 항상 키스를 할 때면 놀라던 너 때문에 나는 조심스레 너를 안았다. 너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 날 간지럼을 태운다. 그 예쁜 머리칼을 정리해 넘겨주고 달콤한 너의 아랫입술을 물고 놔주지 않는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 자꾸만 내 마음은 그녀를 원하고 또 원한다. 점퍼 안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흔들리지 않는다. 널 너무 사랑하니까. 아니, 그 한마디로는 정의되지 않으니까. 나는 그녀를 잊으려 다른 여자를 만나고, 약혼하고, 결혼을 하겠지만 그녀 만큼은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남자 만나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지금 처럼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나 보다 널 아껴줄 남자가 생겨도 나는 잊지 않았으면 한다. 말도 안되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나는 행복하게 다른 여자와 웃으며 살지언정 그녀는 나를 봤으면 좋겠다. 그 때 내가 널 잡았다면, 단 한번만이라도 널 잡았다면 우리의 현재는 달라졌을까? 널 다독이고 널 좀 더 아껴주고 널 좀 더 사랑해줬다면 우리는 지금 어떨까?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우는 너의 모습 따위는 보고 있지도 않겠지. 이 쓰디쓴 이별을 맛 보지 않아도 되었겠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녀를 못 잊는다고 했다, 그녀도 날 못 잊는다고 했다. 엇갈린건 아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까.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우리는... 평행선이다.
마지막 인사라도 할려고 했다. 널 잊지는 못해도 다음에 볼 땐 웃으면서 친구로 보자고, 그렇게라도 니 옆에 있고 싶다고. 내 진심을 담아 너에게 인사하려고 했다. 왜 하필이면 내가 널 부를 때 너와 주영이 형이 눈이 마주쳐버린걸까. 알고 있었다. 형도 널 잊지 못하고 너도 형을 잊지 못하는걸. 그러면서도 나는 형에게 너와 사귄다는 장난스러운 말도 하고 부러 형 여자친구 얘기도 많이 꺼냈다. 더 이상 형과 너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못이라도 박듯.. 내가 나빴다. 그래서 내 마음에 자꾸만 스크래치를 내는 너에게 되려 미안했다. 내 마음이 아픈건 괜찮아도 니가 우는건 못 볼것 같았다. 나 때문이 아니라 형 때문이라면 더더욱. 그 어느 누가 들어도 가슴 아플 너랑 형의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접어야겠다고, 너를 향한 내 마음을. 내가 형 보다 먼저 널 좋아했고, 내가 형 보다 너와 함께한 시간이 많았고, 내가 형 보다 너에게 잘 해준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했고 항상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내 자부심을 짖밟아버려는 너의 사랑. 내가 아닌 형에 대한 사랑. 모든게 내가 형 보다 먼저더라도 그 하나가 나에게 없다면 난 진거라걸 알았다. 형과 너의 대화를 듣고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형과 너의 애절한 키스를 보면서 미련 없이 돌아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설 자리는 없어보였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전원을 껐다. 혹시라도 너에게 전화가 올까봐. 애써 눌러놓은 내 마음을 니가 다시 헤집어 놓을까봐. 너를 형을 바라보고 못 잊고, 나는 널 바라보고 못 잊는다. 엇갈린건 아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까.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우리는... 평행선이다. |
평행선 After story |
평가전은 3대 0으로 완승을 했다. 그의 발 끝에서 나온 2골과 성용이의 프리킥에서 나온 골, 1골. 내가 안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거기 갔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테니까. 나는 그에게나, 성용이에게나 걸림돌이다. 그리고 나라는 걸림돌은 그에게 더 컸나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걸 보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리는 그를 클릭해서 기사를 본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박주영, 2년 간 열애한 여자친구와 파혼', '봄신랑 박주영, 파혼' … … 내 눈에 보이는 수 많은 글자 중에 딱 눈에 띄는 두 단어, 박주영, 파혼. 거짓말 같아 목을 늘이 빼고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가 눈을 비벼보기도 했다. 아무리 눈을 의심해봐도 내가 본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그 동안 졌던 죄에 대한 벌을 한꺼번에 받는 느낌. 나는 그가 결혼해서 행복해지길 바랬다. 봄에 결혼하고 싶다던, 예쁜 딸을 낳고 싶다던 그가.. 행복한 결혼 생각을 하길 바랬다. 그가 날 옛사랑의 추억 쯤으로 잊지 않아 준다면 그에 감사할거라 생각했다. 그 바램 마저도 나에겐 과분한 바램이였나 보다. 몇 톤 짜리 해머로 두들겨 맞은듯 멍해진 머리.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리고 눈의 초점이 다시 그의 이름을 맞췄을 때 주저 없이 인터넷을 껐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파혼을 했을까,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기사를 냈을까.... 난 또 이기적이게도 날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싶어 한다. 내 이기심에 애꿎은 사람이 둘이나 다쳤음에도, 이렇게 벌을 받는데도 사랑이란 감정의 이기심에서 빠져나오질 못한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휑한 창 밖을 본다. 비가 온다더니 하늘은 어둑어둑하고 햇빛 한 줌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짙은 구름이 끼여있다. 금방이라도 터질것 같은 내 울음 만큼이나 하늘도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부을것 같다. 그 날, 그가 나에게 한 말을 곱씹어 본다. 자신도 날 잊지 못하고, 나도 그를 잊지 못하니.. 그러니, 그 마음이면 된거라던 그의 말. 날 달래기 위함이였을까, 자신을 달래기 위함이였을까. 마찰음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굵은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얼룩지는 창문 처럼 내 마음도 잔뜩 얼룩져 있다. 그 날의 그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울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것 같았다. 남자는 우는게 아니라던 그가.. 울것 같았다. 아파했다, 내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음에. 비는 점점 거세지고 창문에서 나는 마찰음은 더 커졌다. 창문은 이내 물을 뿌리는것 마냥 흐리멍텅 해졌다. 또 다른 헤어짐을 맞이했던 그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이제 알았다. 그가 그 날 했던 모든 말은 그가 아닌 나를 달래기 위함이였다는걸. 한 숨을 내쉬었다. 뿌옇게 변한 유리창에 그의 이름을 써봤다. 듣기만 해도 눈물 나는, 마음 아픈 이름. 박 주 영 비를 쏟아내던 하늘에 천둥 번개가 쳤다. 크다 못해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비는 더 거세게, 더 많이 내린다. 저 아래로 추락하는 빗방울은 나락을 추락하는 내 마음 같다. 덜컥- 하고 떨어져 버린 심장 같이, 끝도 없이 추락하는 그 무언가와 같이. 짧게 진동이 오는 휴대폰을 보면 새로운 문자가 왔음을 알린다. 홀드를 풀고 메세지를 열면 익숙한 그의 번호가 뜬다. '사랑해' 나는 그를 잊지 안겠다고 했다. 그는 날 잊지 못할 사람이라고 했다. 엇갈린건 아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까.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만날 수 없는 우리는... 평행선이다. |
곧 새로운 망상으로 연재될 평행선 Part2. 가 이 망상 그 후 이야기라서 보시는데 지장이 있는 독자님들이 계실것 같아서 모아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