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리네요. 여태까지 둘이 삽질하는 것만 보다가, 이렇게 멀쩡한 제 얼굴을 보니 주위가 환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하하핫.
제가 오늘 이렇게 나온 건, 주변인으로 이름만 등장하지 제대로 된 비중이 없는 것 같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인 둘의 모습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나왔어요. 어쩌면 당연하죠. 둘의 문제는 둘이 해결해야 하는거니까요. 그래도 제가 너무 등장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 같아 비집고 나왔습니다. 둘의 봄날이 아니라 실망하셨더라도, 제 얼굴이 꽃 같으니 괜찮으실 거라고 믿어요.
옹성우랑 OOO는 고등학교 때부터 유명했어요. 아니, 중학교 때부터 더 유명했을 거에요. 저는 둘을 고등학교 와서 만난 터라 중학교 때의 일들은 잘 모르는데, 둘 다 한 외모하는데다가 꼭붙어다녀서 그런지 이미 사귄다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더라구요. 저도 그러려니 했죠.
옹성우랑은 같은 반이 되어서 알게 됐는데 ...얘가 참 성질이 더럽더라구요. 처음에는 OOO 말고는 아무도 상대하려고 하지도 않는 찐따에 불과했어요. 자식이 생긴건 좀 잘생겨서 애들이 호감을 가지고 다가가긴 했는데, 더러운 성깔이 모조리 쳐내는 게 참 대단하더라고요. 사람이 그러기 힘든데 말이죠 하핫.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해진 건, 제가 한 얼굴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왜냐면 OOO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왔으니까요. 아마 옹성우를 제외하면 제가 OOO 인생의 첫 남자일지도 몰라요. 이건 OOO의 말을 통해 들은 사실이니 신빙성은 충분해요. ...이 말을 옹성우가 듣는 순간 느낌 상 머리를 쥐어뜯길 것 같긴 한데, OOO는 젠틀하지 않은 옹성우를 싫어하니까 그럴 리가 없겠죠? 그러길 바래요..
처음 OOO가 말을 걸어 온 건 도서관이었어요. 친구가 아닌 남자로 말하자면, 물론 옹성우가 화를 내겠지만, 솔직히 OOO도 예쁜 얼굴 때문에 남자애들 사이에서 유명 했거든요. 옹성우의 그 열렬한 사랑에 OOO의 외모가 포함이 안 되어있다면, 제가 황제가 아니라 시종이 될 수 있을 정도라니까요. 아 무슨 황제냐구요? 제 별명이 황제거든요. 주변에서 지어줬어요. 제가 너무 우아하고 고급지다나 뭐라나. 하하하.
OOO가 뭐라고 했는지는 아직도 기억이 나요. 그 책, 영화로도 나왔는데.. 혹시 봤어? 였어요. 자기가 말을 걸어놓고서도 한동안 말이 없길래 흥미롭게 바라보긴 했죠. 그러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서는 당황하는데, 그 때는 나름 귀여웠어요. 지금은 징그럽게 느껴지지만요. 그 때 처음으로 제대로 얼굴을 봤는데, 명찰에 적힌 이름표를 보고나서 알았어요. 아, 옹성우랑 사귄다는 애구나. 저는 예의있게 생긋 웃으며 당연히 봤지, 이게 얼마나 명작인데. 하면서 대꾸해줬어요. 제가 괜히 황제가 아니라니까요.
그 이후로 도서관에서 OOO를 만나는 건 자연스러웠어요. 미술을 하는 애라던데, 의외로 책을 좋아하더라고요. 한 번 더 편견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줬죠. 저는 학생회장이니까 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도서관에 거의 살다시피 했었고, 생각보다 자주 만나게 됐어요. 그 덕분에 친해진 것 같아요. 아. 제가 옹성우보다 OOO랑 먼저 친했다는 건 옹성우에게 비밀이에요. 옹성우는 자기 때문에 알게 됐다고 알고 있는데, 이걸 알게 된다면 질투의 화신이라 그 망할 성격으로 얼마나 난리를 칠 지 생각만 하면 끔찍하거든요.
제가 OOO와 얘기를 자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OOO는 옹성우가 굉장히 친절하고 성격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더라고요. 그 말에 딱히 반박은 안 했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죠. 제가 그동안 봐 왔던 더러운 성질의 옹성우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그 때는 둘이 사귀고 있는 줄 알았던 터라, 새끼 순정파네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소름끼치는 이중인격 같네요. 여자애들 뿐만 아니라 남자애들이 말을 거는 것도 온갖 짜증을 내던 녀석이었는데, 얼마나 포장을 하고 다닌건지.. 대단한 놈이에요, 옹성우도.
제가 옹성우랑 친해진 계기는 웃기지만 체육 창고에 갇힌 날이 있었어요. 정말 놀랍게도, OOO와 옹성우가 아닌, 저와 옹성우가 갇혔다니까요. 옹성우는 그때까지만해도 저와 한 두마디 정도 나누는 사이었어요. 학생회장이자 학급회장인 제가 아주 가끔씩 필요할 때만 이거 필요하니까 가져와, 하면 응 혹은 알았어, 로 대화가 끝이 나는 그런 사이였죠. 갇히게 된 계기는 우습지만 옹성우는 체육부장이었어요. 창고 정리를 부장과 회장이 하고 오라는 거였죠. 딱히 불만도 없었으니 굴러다니는 공들을 주워서 창고에 집어 넣는데, 뒤따라 들어오던 옹성우와 함께 문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닫혔어요. 어디가 잘못 맞물린건지, 고장이 난건지는 몰라도 그 소리가 이상해 문을 덜컹거리며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더라고요. 남자 고등학생 두 명이 흔들어도 꼼짝 않길래, 이건 포기해야겠다 싶었죠.
옹성우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털면서 매트리스에 앉았어요. 부유하는 먼지들과 숨막히는 정적이 짜증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네요. 갇혀도 하필 옹성우라니. 좀 친분이 있던 친구라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이라도 떼울텐데 말이죠. 정말 차디찬 정적이 흘렀어요.. 저는 이런 상황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고, 이런 기회로 친해질 겸 목을 가다듬는 척 옹성우의 눈치를 봤어요. 옹성우는 참 성격이 좋아요. 아는 척도 안 하더라고요. 보통이면 말이라도 걸던가 눈이라도 마주치던가 할텐데. 그쵸? 하하..
그래서 별 반응이 없길래, 그냥 제가 아무 얘기나 늘어놨어요. 요즘 시험 문제가 참 어려워진 것 같다,부터 선생님들이 혼내는 강도가 전보다는 덜하다,며 참 서로가 신경도 안 쓰는 문제에 대해서 주절거렸어요. 도대체 어느 과정에서 OOO가 옹성우를 친절하게 봤는지는 몰라도 한마디 대꾸 없는 옹성우 덕에 제 심기만 불편해졌죠. 그러다 옹성우가 처음으로 제 얼굴을 본 건, 옹성우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어요. 남의 연애사에 대해 늘어놓는 건 취미가 아니었지만, 그제서야 마주치는 눈에 이 자식에겐 이게 통하는구나 싶었죠.
/OOO랑은 잘 지내?
/...네가 걔를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아냐니? 걔 유명해.
예쁜걸로. 옹성우는 참 살벌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어요. 그 때도 그런 순간이었죠. 저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처럼 이를 가는 같은 얼굴에 하하.. 웃으며 두 손을 들었어요. 그저 미적 기준에 대한 생각이었어 불쾌했다면 사과할게. 옹성우는 여전히 짜증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살기를 내비치진 않더라고요. 순간 등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었죠.. 이 새끼 진짜 성질 더러워..
/근데 둘이 어떻게 사귀게 됐어? 둘이 같은 중학교라던데. 그 때부터 사귄거야?
옹성우에게 별명이 하나 있는데, 옹성우와 멍청이를 합쳐서 옹청이라는 게 있어요. 옹성우는 그 때 정말 옹청이 같은 표정으로 저를 바라봤었죠. 처음으로 아주 미약한 호감이 차오르는 순간이었어요. 그나저나 왜 그리 내 말에 그렇게 반응하나 했는데, 옹성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어요. 소문이 그렇게 났냐? 나랑 걔랑 사귄다고.
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근데 소문이라니, 사귀는 게 아닌건가? 제가 조금 궁금한 표정을 짓긴 했는지 옹성우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어요. 고작 열일곱 처먹은 놈이 세상은 팔십 년 정도 산 노인 분처럼 한숨을 내쉬더라고요. 뭔 놈의 숨이 그리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오르는지, 폐활량 하나 기가 막힌다 싶더라니까요. 옹성우는 그때부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너네가 그렇게 보는 걸, OOO는 전혀 모른다. 그 소문은 내 희망사항일 뿐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좋아하기 시작했다. 걔도 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맨날 복잡하다.
저는 참 기분이 떨떠름하더라고요. 여자친구랑 헤어진 지 석 달이 넘어가는 시점이었거든요. 그닥 친하게 대해주지도 않는 놈한테 연애 상담이나 해주려니 기분이 좋았어요. 정말 좋았어요.. 하하..
그래도 옹성우의 표정을 보아하니 한 두해 삭힌 게 아닌 듯 싶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면 거진 3년을 좋아한 건데, OOO도 참 눈치가 없다 싶었죠. 옹성우는 정말 오랫동안 묵혀뒀는지 정말 말을 많이 했어요. 친해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긴 했는데, 너무 주절거리니까 답답함이 확 끓어 올랐죠. 그냥 고백해! 제 말에 옹성우는 고개만 저었어요. 무섭다는 게 이유였어요. 지금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데, 먼저 선수를 쳤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돼버릴 게 무섭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왠지 옹성우가 안쓰러워졌어요. OOO가 첫사랑이자, 기나긴 짝사랑의 주인공이라는 게 참 딱하더라고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옹성우 옆으로 가서 앉았어요.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고 문도 열리는 것 같았죠. 내가 최대한 응원해줄게. 제 말에 감동 아닌 감동을 한 건지, 옹성우는 그 때부터 저에게 잘 해주더라고요. 물론.. 남들보다 조금 잘해주는 거였지만요..
그 때부터 저는 옹성우 편이 되었죠. 옹성우도 만나보니 좋은 아이더라고요. 물론 싸가지는 매일 밥에 물 말아먹듯이 처먹는 놈이었지만, 그래도 생각은 바른 아이에요.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고 흐를수록 OOO 하나만 바라보는 순정파인 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 옹성우 친구의 입장으로 OOO가 요즘 말로 과하게 표현하자면 눈새에다가 답답이긴 한데, 둘이 서로 호감이 없는 건 아니었거든요. 아무리 다가가라 주변에서 외쳐도, 둘 사이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거니까 저는 그냥 지켜보기만 했죠. 원래 제 3자란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옹성우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날에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군대에 가야하는 것조차 좋아하는 여자한테 말 못하는 심정이 어떠겠나 싶더라고요. 아 참 저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한 학기 끝낸 후 바로 군대를 다녀왔어요. 옹성우가 군대를 가는 시점에 전 거의 제대를 앞두고 있던 터라, 그냥 토닥여주기만 했어요. 그래도 OOO한테 너 가는 거 말하는 게 예의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지만 옹성우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고개만 끄덕여줬어요. 보는 사람도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데 본인은 오죽하겠죠.
그 때만 해도 OOO가 옹성우 마음 몰라주는 바보라고만 생각했는데, 옹성우가 가고 제가 제대한 뒤에 만난 OOO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 하더라고요. 이유는 그거였어요. 옹성우의 빈자리. 동아리 덕분에 친해진 다니엘이나 재환이와 함께 넷이서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는데, 그 날은 걔네가 일이 있어 빠지고 둘이 술을 마신 날이었어요. 참.. 이 날도 비밀이에요.. 옹성우는 지금 눈이 돌아가서, 남자와 무슨 일이던 단 둘이 있기만 해도 지랄을 하기 때문에.. 제발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하하하..
어쨌든 그 날도 어김없이 소주를 드링킹하는 OOO를 챙겨주고 있었어요. 옹성우의 부탁 아닌 염려가 있었으니, 저는 우정을 생각해서 잘 챙겨줬죠. 저만큼 잘해준 친구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도 돼요. 하지만 OOO가 요즘 재환이만 차는 것 같으니 조용히 하도록 할게요..
OOO는 그 날, 많이도 울었어요. 다니엘과 김재환이 있을 땐 헤실헤실 웃기만 하더니, 저랑 남게 되니까 옛날 일도 떠오르고 해서 그런지 눈물을 뚝뚝 떨구더라고요. 그러면서 옹성우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아마 얘는 이 날을 기억 못해서 아직도 자기 마음을 제가 모르는 줄 알거에요. 하지만 저는 좋은 사람이라 이런 건 다 기억하죠. OOO는 서럽게 울면서 술을 들이켰어요. 울면서 마시는 술은 체한다며 제가 아무리 달래도 계속 울더라고요. 그 때 생각했죠. 옹성우가 마냥 삽질하는 게 아니라, 둘이 서로 삽질을 하고 있구나 하고 말예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개입할 수도 없는 문제라 한숨만 쉬었죠. 그래도 어쨌든 서로 마음은 같은거니, 희망은 밝구나 싶었어요.
울면서 엎드린 OOO 머리 위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아요. 취해서 제대로 듣지도 기억하지도 못할테지만 계속 떠들기만 했어요. 그냥 그동안 옹성우한테나 OOO한테나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요.
옹성우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옹성우는 나쁜 사람이야. 그렇다고 아예 싫어하지는 말고, 지금보다 조금 더 좋아하도록 해. 네 마음도 잘 알겠는데, 내가 봤을 땐 옹성우는 네가 좋아하는 그 마음보다 한 세 배는 더 너를 좋아하는 것 같거든. 물론 네 마음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다가가봐 멍청이 듀오야.. 진짜 옹성우만 옹청이인줄 알았더니 너도 멍청해. 아 하긴.. 끼리끼리 만난다는 소리가 괜히 있는게 아니야. 너나 걔나.. 에휴.
왠지 술이 쓰게 느껴진 건, 제 옆구리가 시려서였을까요? 하하핫.
조금 더 주저리주저리 떠들다가 사장님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길래 OOO를 겨우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줬어요. 이 고생을.. 옹성우가 알아야 저에게 잘해줄텐데.. 알리면 제 목숨이 위태롭고.. 물론 이 날을 제외하고는 둘이 술을 마신 적은 없어요. OOO가 저와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더라구요. 제가 그렇게나 잘해줬는데, 너 그러면 안 되는거야.. 잠시 외로우니까 좀 쉬다 올게요.. 하..
그래도 요즘엔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하핫.. 옹성우가 조금 더 대담해진 게 기특하나고 해야할까요? 자식을 키운 것 마냥 뿌듯합니다. 당황하는 OOO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긴하지만.. 둘이 싸워서 저를 화나게 하는 건 좀 그렇네요. 옹성우는 살짝 다툰 날에도, 어떻게 해야 OOO하고 잘 풀어야 할까 하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는 제가 귀찮기는 하지만 금새 풀고 와서는 귀를 접어대며 재롱 부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아직은 별 말 안 하고 있어요. 물론 OOO는 자기가 잘못한 날이 더 많아서 제게 많이 혼나지만요.
오늘도 옹성우에게 어김없이 연락이 옵니다. 내용은 대충, OOO를 봤냐는 물음이 전부이지만 저는 성심성의껏 대답 해줘요. 나도 몰라 새끼ㅇ... 아, 이건 잘못 친거에요. 하하하.
둘이서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로 다른 길로 땅굴 파는 것도 참 어려운데, 둘이 잘 해내고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 땅 파다 보면 둘이 이뤄지는 날이 오겠죠? 어차피 주변에는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사람들 뿐입니다. 처음에 OOO에게 호감을 표하는 남자들은 일찍이 옹성우가 처리했으니까요. 그걸 말하자니 입이 아파오는 것 같습니다. OOO는 정말 알아야 할텐데요. 옹성우의 두 얼굴을요..
저는 오늘도 옹성우의 심부름으로 OOO를 만나러갑니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잔뜩 지쳐있는 OOO 얼굴을 보는 것보다 옹성우 심부름으로 몇 마디 나누면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게 훨씬 낫습니다. 둘이 삽질을 빨리 끝내서 잘 만났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지겹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데, 둘 사이가 행복해지는 게 가장 좋은 길이니까요. 여러분들도 저와 똑같은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쵸? 왜 그렇게 바라보시나요? 제 얼굴이 빛나나요? 하하하하!
★
참 놀랍고 어이없게도, 미대 캠퍼스에 들어가자마자 만난 사람은 김재환이었다. 멀리서부터 깨발랄하게 뛰어오는 모양새에 낯이 익다 싶더라니, 김재환이 손에 물통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옹성우는 입을 꾹 다물더니 자기와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줬다. 살짝 아파서 아, 라고 작게 내뱉었는데 그걸 또 들은건지 미안하다며 손을 쓸어대는게 너무 다정한데다가 김재환의 눈길이 느껴져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김재환의 표정은 참..
ㅡ ... 좋아보이시네요...
참.. 그랬다. 허탈한건지 어이가 없는건지, 아무튼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 안녕.. 김재환.. 하하.. 옹성우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더니 흔들던 내 손을 반대쪽 손으로 붙잡아 내렸다. 너무 다정하게 인사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김재환이 무슨 표정이었지.. 아마 나보다 더 좋지 않은 표정이었을 거다. 대체 이런 근본 없는 짜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만간 황민현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았다. 황민현은 옹성우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니까.
ㅡ 저 그럼 갈게요.. 동방에는 오지 마세요.. 제발...!
재환이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리를 지나쳐 갔다. 동방에 오지 말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간절하게 들리는지, 어제 일도 포함해서 미안한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 콩나무가 될 것 같았다. 옹성우는 그제서야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잡아 당겼다. 빨리 가자. 너 수업 늦어. 그렇긴 하지만 별 다른 사과 없이 재환이를 보낸 것도 그렇고 이 상태로 들어갔다간 미대 캠퍼스가 난리날 것 같아 옹성우에게서 손을 빼냈다. 빼내는 와중에 생긴 실랑이에 성인 남자가 힘을 주고 있는 게 참 세구나 싶었지만, 내 표정이 좋지 않음을 알았는지 옹성우는 겨우 손을 놔주었다. 이젠 옹성우가 손을 놔줘야만 하는구나. 내 힘은 따라갈 수가 없어. 새삼 옹성우가 남자인 게 느껴져 옹성우의 온기만 남은 손바닥을 만지작거렸다.
옹성우는 그게 어지간히 마음이 들지 않는지 인상을 썼는데, 표정이 이유 모르게 불안해 하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안 좋아졌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신경 쓰이는 것 투성이다.
옹성우는 삐졌는지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삐진 와중에도 얌전히 졸졸 따라오는 게 귀여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겨우 참았다.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앞까지 오는 내내 투덜투덜, 터벅터벅. 어찌나 쿵쿵 걸어대는 지, 땅바닥이 꺼지는 줄 알았다. 이런 애가 내일 모레 스물넷 되는 성인 남자인가 싶어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우리 옹옹이 삐졌어요? 옹성우가 키가 나보다 한참 크기 때문에 까치발을 세우고 부들거리며 겨우 쓰다듬을 수 있었지만 옹성우가 귀여운 건 귀여운 거였다. 왁스를 바르지 않는 생머리가 찰랑이는 게 촉감이 좋아서 계속 만지작거렸다. 옹성우는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내 팔을 붙잡아 몸을 바짝 끌어당겼다. 강의실 건물 바로 앞이라 놀란 내가 옹성우를 밀어내려고 하는데, 또 다시 끼쳐오는 스킨향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품에 갇혔다.
나는 너무 약해진다. 이 살내음과 시원한 스킨향 하나면 무너져버린다. 나 원래 이렇게 쉬운 여자 아닌데..
건물 안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쳐다보는 게 느껴져 황급히 옹성우에게서 떨어졌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노려보는데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이 떠나가질 않는 얼굴에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옹성우는 천천히 뒤로 걸으며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빨리 들어가, 라고 말하는데 네가 그렇게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 하고 말할 수도 없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그러고 서 있을 옹성우를 아니까.
그나저나 한숨이 푹푹 나왔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쏟아질 시선들이 막막하기만 했다.
나 이제.. 마스크 쓰고 다녀야 될까봐.. 옷 매무새에 묻은 스킨향에 얼굴이 뜨겁다.
(남들 앞에서 내꺼 각인시킨 게 기분 좋은 옹성우의 모습이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메타메타몽몽.. 메타메타몽몽입니다..!
저 정말 감격스러워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낮에 글을 쓴 여파인지 답글을 달다가.. 10시 쯤 잠들어서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잠 다 깼는데 글이나 써볼까 하고 글잡 들어왔다가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ㅠㅁㅠ
좋아해 6화와 8화가 초록글에 올라갔어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ㅠㅠ 너무 너무 감사하고 뭐라 말씀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이 초록글이 제 글을 조금이나마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ㅠㅠ
게다가 신알신을 마흔 분 정도 신청해주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흔 분을 넘었다고 하네요.. 70분이라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
제가 보답해야 할 건, 더 좋은 글과 소재로 여러분들께 즐거움을 드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벽에 (정말 원래는 계획에 없던) 민현이 특별편으로 찾아 뵙게 되었어요
여주랑 성우를 보고 싶어 하셨던 분들은 조금 실망하셨을 지도 몰라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대구리를 박는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특별편으로 꾸리고 싶은 마음에 우리 황제님을 등장시켰어요 그냥 재밌게 읽어주시고 낮에 올라갈 10화도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도 많이 늘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빠지신 분들이 있다면 제게 꼭 말씀해주세요 ㅠ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_ _)
〈암호닉> : 암호닉을 신청해주시면 완결이 끝난 뒤, 텍스트 파일과 미공개 번외를 보내드립니당 꺄앗
1 / 고사미 / 설렘옹청 / 파요 / 사용불가 / 민주눅 / 예그리나 / 요정 / 댄싱쥬스 / 댕구리 / 월광 / 1217 / 옹옹 / 10 / 말랑 / 째니재환 / 다민 / 짱짱맨뿡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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