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requiem(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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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은 어두웠다. 완전한 어둠이 아닌, 어슴푸레한 정도였지만. 뉴욕 시내의 이곳 저곳에서 환하게 등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흘러내린 캐시미어 재질의 얇은 이불을 다시 별빛의 목가까지 끌어올려 덮어준 택운이 잠이 든 별빛의 등을 두어번 토닥였다.
기껏 마카롱까지 사들고는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 과속까지 해가며 펜트하우스에 들어 선 순간, 택운은 온 몸에 힘이 쫙 빠짐을 느꼈다. 별빛이 잠 들었는데? 책을 읽다말고 자신을 반겨주며 생글대는 학연의 얼굴이 택운은 재수 없게만 느껴졌었다.
막 담배에 불을 붙인 학연이 슬리퍼를 신으며 테라스로 나오는 택운에게 한 쪽 눈을 깜빡였다.
“옷 갈아입었네?”
“왜 나한테 윙크질이야, 미친놈아.”
“담배 피는거 봐 달라고. 하루종일 별빛이 놀아주느라 못 폈단말이야아ㅡ.”
“말꼬리 늘이지마. 징그러우니까.”
“너무해! 내가 하루종일 별빛이 데리고 잘 놀아줬는데!”
“그니까… 그게 싫은거다.”
“레오 질투하는거야? 응?”
응? 응? 담배를 입에 물어 씹힌 발음으로 학연이 웅얼거렸다. 자신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학연에, 택운이 신경질적으로 학연의 다리를 걷어찼다. 악! 까인 정강이를 부여잡고 주저 앉는 학연의 모습을 덤덤하게 내려다보며 택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양쪽 팔을 교차시켜 팔짱을 낀 택운이 보들보들한 연회색의 니트를 걸친 자신의 어깨 위로 얼굴을 부볐다. 그제부터 급격하게 내려 간 기온에 행여 별빛이 감기라도 걸릴까 노심초사하던 택운이었다. 혹시나 자신이 테라스로 나오면 별빛이 졸졸 따라나오기라도 할까봐 테라스에 나선것도 며칠만이었다.
난간에 몸을 반쯤 기댄 택운이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프리덤 타워의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것이 눈에 띄었다. 코를 찡긋거리며 택운의 옆에 선 학연 또한 끝없이 입으로는 툴툴대는 말을 내뱉으며 화려한 밤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학연이 73층이라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펜트하우스에서 내려다보는 일개미만한 크기의 자동차들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택운은 그럭저럭 적응이 된 상태였기에 그런 학연의 말이 딱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일 별빛이 데리고 쇼핑 갈거야.. 최근에 같이 밖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네.”
“내일? 내일 엠마(Emma) 온다던대?”
“…엠마가? 엠마가 왜. 지금 마카오에 있지 않아?”
“아, 말 안해줬었나? 엠마 지금 뉴욕이야.”
“조지랑 같이?”
“아니? 조지는 아직 마카오일걸, 엠마만 먼저 왔다던데.”
“……….”
“메리랑 헨리 데리고서! 별빛이가 보고싶나보지.”
택운이 학연의 마지막 말에 학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학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별빛이를 빼돌려야하나. 택운이 진지하게 고민하며 허리를 숙여 차가운 난간에 이마를 기대곤 눈을 감았다. 작고 귀여운 아기천사 같은 메리와 헨리는 반가운 손님이었지만, 엠마는 택운에게 마냥 반갑기만한 손님은 되질 못했다. 더군다나 쇼핑을 할 때라면 더욱이. 택운은 지난번 갤러리아의 모든 매장을 한군데도 놓치지 않고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수많은 쇼핑백을 쥐어주던 엠마가 떠올라 머리를 좌우로 약간 설레설레 내저었다.
엠마는 학연의 친누나였다. 앤더슨 인더스트리(anderson industry)라는 미국의 거대한 군수기업을 운영하는 젊은 CEO인 조지 앤더슨(George anderson)과 6년 전 웨딩마치를 울리고, 슬하에 어여쁜 5살짜리 남여쌍둥이를 둔 엠마는 당차고 밝은 성격이었으며, 상당한 미인이었고, 혀를 내 두를만큼 쇼핑을 즐기기도하는 각 명품관에서는 이미 유명한 쇼퍼(shopper)였다. 또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적극적이었다. 엠마에게도 차희연이라는 한국 이름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조지와 결혼을 한 이후로는 누구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침 일찍 데리고 나가야겠네. 엠마 오기전에.”
“…글쎄-.”
“설마 아침식사 전에 찾아오겠어?”
택운이 고개를 들며 눈을 뜨고는 뉴욕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자세한 내부가 들여다 보이지않는 뉴욕의 밤거리는 아름답기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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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침대가 크게 출렁이는 느낌에 택운이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를 위로 쓸어 넘기며 몸을 일으키던 택운이 자신을 보며 방긋대고 있는 엠마의 얼굴에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엠마?
“레오- 오랜만이야.”
“…엠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별빛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
“아직도 자는구나, 아가는.”
“……….”
“어머! 그 사이에 피부는 더 좋아졌네.”
마쉬멜로우 같아. 별빛의 얼굴을 마구 주무르며 만지작대던 엠마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택운이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하, 정신을 차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슬리퍼를 신은 택운이 자신에게 레오!하고 방 문턱에서 쪼르르 달려 와 안기는 메리를 익숙한듯 안아들었다. 낭패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택운이 자신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메리를 편안하한 자세로 고쳐 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여쁜 드레스를 입은 메리의 치맛자락을 잘 정리해준 택운이 잠에서 막 깨어 난 별빛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엠마?”
“별빛! 일어났구나.”
“아… 오랜만이에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와락 자신을 끌어안는 엠마에 별빛이 끙끙대며 잠긴 목소리로 인사를 건냈다. 애쉬 그레이로 염색한 부드러운 엠마의 머리칼이 별빛을 간지럽혔다.
택운이 콧잔등을 긁으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가죽쇼파에 앉은 택운은 자신의 무릎에 앉아 블루베리 초콜릿을 먹고있는 메리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베시시 웃자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주고는 메리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한숨을 내뱉었다. 잠도 완전히 깨지 못한 비몽사몽한 상태의 별빛을 끌어안고는 연신 방긋대며 자신의 네일 폴리시를 자랑하고있는 엠마를 바라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나갈 채비는 커녕 별빛을 깨우기도 전에 택운의 펜트하우스로 쳐들어 온 엠마는, 통유리로 된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쿠션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쇼파에서 잠이 든 학연에게 헨리를 데려다놓고는 곧장 별빛과 택운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 온 모양이었다.
“레오!”
“오랜만이야, 헨리.”
“너무해. 나도 오랜만에 보는거면서….”
학연은 삐딱하게 서 한쪽 무릎에 온몸의 체중을 받치고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짧은 다리로 달려 와 자신의 옆에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목을 끌어안는 헨리의 머리를 쓰다듬은 택운이 다른 손으로는 헨리를 밀어내는 메리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택운은 아이들을 이뻐했고, 아이들 또한 그런 택운을 매우 좋아했다.
우리 보스, 전혀 이쪽 사람들 취향은 아닌데말이야. 킬킬대며 애덤이 했던 말은 농담조였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단 것을 좋아하고 귀여운 동물과 아기를 이뻐하는 택운의 모습은 인페르노의 보스라는 타이틀을 단 채 아무렇지않게 사람을 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질감이 느껴지는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난 가끔 쟤 무서워. 싸이코 같아. 학연이 기지개를 펴며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는 모습에 택운은 총을 집어들어 학연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눴었다.
“레오. 오늘 별빛이 데리고 쇼핑 나갈거야?”
“쇼핑 가요?”
“어머! 엔이 웬일이야? 말 잘했다. 우리 쇼핑가자, 쇼핑!”
“……하….”
택운은 진심으로 학연을 아프리카로 보내야하나 고민했다. 신이 나 손뼉까지 쳐가며 별빛을 일으켜 세우는 엠마를 바라보다 택운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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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뭐가?”
“이번에 인페르노가 하는 선박사업말야, 그거.”
“엔이 아니라 걔네 보스가 직접 움직였다면서.”
원식이 얼음이 가득 한 글라스에 오렌지주스를 부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문 홍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자. 홍빈이 원식이 건내주는 글라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며 입술을 삐죽댔다.
“아, 왜 우리한테는 강제수사권이 없는거지?”
“체포권도 없어.”
“…아, 리벨리어스에 들어가는게 나을 뻔 했어.”
“미친놈.”
“아! 아, 왜에!”
홍빈의 뒷통수를 둔탁한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내리친 원식에 홍빈이 빽 소리를 질렀다. 하마터면 홍빈이 입고 있는 검은색의 셔츠를 더 진하게 물들일뻔한, 홍빈의 손에 쥐어져있는 오렌지주스가 가득한 글라스를 빼앗아 탁 소리가 날 정도로 테이블에 내려놓은 원식이 혀를 차며 자신의 잔을 한번에 비워내었다. 원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인페르노의 일이라면 심각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지는 홍빈을 대체 어떻게하면 좋은건지, 원식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혹이라도 나기만 해봐라, 아주. 아아, 내 잘생긴 뒷통수-. 홍빈의 잘생긴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구겨진 홍빈의 미간을 원식이 검지손가락으로 꾹, 꾹 눌러주었다.
“한번 알아볼까? 응? 인페르노 쪽은 몰라도, 중국 삼합회 쪽을 털다보면 뭔가 좀 나오지 않겠냐?”
“어. 않겠어.”
“개새끼, 거참 너무하네…….”
“좀 참고 기다려봐.”
“아! 얼마나 더 참으라는건데!”
애새끼처럼 칭얼대는 홍빈의 입을 틀어막아야하나 원식은 잠시 고민했다. 결국에는 혼자 축 늘어진 홍빈의 어깨를 토닥인 원식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홍빈을 바라보았다.
“곧.”
“…뭐?”
“곧이라고. 조금만 더 참아.”
“……….”
“리벨리어스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중인데,”
“……….”
“위에서도 아직 지켜만 보고있어. 우리한테 어쩌면 득이 될지도 모르니까.”
“……….”
“켄이… 레오를 물어 뜯을려하거든.”
“뭐야! 왜 나한테는 말 안해줬어?”
원식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보였다.
“나도 방금 안거야.”
뭐든 하나만 물렸으면 좋겠다. 그렇지? 원식이 작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장난스레 칭얼대던 홍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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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죽겠어요. 글 완전 마음에 안 들어.. 꾸역꾸역 썼더니 피가 말려. 밑에 한장면 더 있었던거는 안비밀. 짧게 써서 자주 올려야하는지, 길게 써서 가끔 들고와야하는지.. 끙.. 아 정말이지 그냥 바로 총격전이나 선상파티 같은 장면으로 타임워프 하고싶네요. 탕탕탕! 탱고음악이나 뉴에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 다 뒤졌지만 마음에 드는 bgm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재!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