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白日夢]
* * *
김종인과 몸을 섞은지도 벌써 3년째다. 지금이 고등학교 1학년이니까.
섹스를 하는 이유? 간단하다. 나는 돈이 필요하고, 김종인은 돈이 많으니까.
지금 우린 그저 한 편의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럽고, 비참하고, 징그럽고, 엿같은.
...
벌써 1시간째 김종인네 집 앞에서 김종인을 기다리고 있다. 다리가 저려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쪼그려 앉았다. 시침은 숫자 9를 넘어서고 있었다.
12시면 엄마가 돌아오시니 그 전엔 돌아가야 하는게 경수의 철칙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오늘은 종인을 만나지 못할 것만 같아 일어서서 집으로 향했다.
날씨는 꽤 쌀쌀했다. 올 겨울은 일찍 오려나 보다. 철 지난 바람막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올해도 역시나 이 바람막이 하나로 겨울을 버텨야했다.
작년도 그랬고, 재작년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내년도 그럴 것이다.
벌써부터 그 한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 경수는 걸음을 더 빨리했다.
1시간이 걸렸다. 버스를 타면 일찍 도착했겠지만 버스비마저 아까운 상황이다. 오늘도 허탕이다. 엄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람막이와 교복을 벗어 개어 놓은 뒤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보기 흉했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퀭한 두 눈과 하얀 볼에 불긋하게 돋아있는 상처.
"이건 언제쯤 없어질까."
그 상처를 살짝 만져보지만 상처가 없어지기 무섭게 다른 부분에 비슷한 상처가 날 것이다.
이 더러운 현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자신있어하는 것.
...
난 걸레다.
* * *
다음 날 김종인은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 카톡이나 한번 해볼까. 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가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김종인이 사준 핸드폰. 연락이 안되니까 원할때 섹스도 못한다며 사준 핸드폰이다.
더럽다, 더러워. 더러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더럽지 않은 것이 과연 무엇일까. 아니, 있기라도 한 걸까.
쾌락에 가득차 눈물을 흘리는 눈, 더러운 소리를 내뱉는 입, 쓸데없이 가늘고 긴 손가락-김종인은 손가락마저 야하게 생겼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걸치고 있는 교복이 내겐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아 답답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냐.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됐다. 모두들 하나같이 급식실로 달려간다.
학교에서도 변변한 친구조차 없는 나는 급식도 먹지 않았다. 학교에서 급식비를 대주기는 하지만 그냥 싫었다. 나까짓게 음식 축내서 뭐해. 그냥, 먹고싶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 틈에 섞여 평범하게 웃고 놀며 장난치는 것은 사치다.
텅빈 교실. 허전하다.
뒤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인기척에 1분단 맨 앞줄에 앉은 나는 뒤를 돌아 봤다. 누군가 책상에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김종인의 친구였다.
이름이 뭐더라. 백, 백 뭐였던 것 같은데.
김종인이 안 와서 안 내려가는건가.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남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시선을 거뒀다.
불필요한 생각은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되.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도와본 적이 없었다. 엄마를 잃어 버리고 울고있는 어린 아이를 보아도, 동네 깡패들에게 돈을 뜯기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만원인 지하철에 올라탄 허리 굽은 할머니를 보아도. 누군가가 쫓아온다며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젊은 아가씨를 마주쳐도.
그들을 철저히 외면한다.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난 차라리 그들이 부러울 정도니까.
자고 있는줄만 알았던 남자애가 잠이 깼는지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오는듯한 발소리가 들렸다.
"야."
자신의 앞에 선 남자아이를 보았다. 아, 변백현.
명찰에 붙은 이름을 보니 기억이 났다. 종인의 입에서 몇 번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밥 안 먹냐."
"…원래 안 먹어."
나를 내려다보는 눈엔 호기심이 가득 차 있다. 학교에선 김종인과 일절 아는 체도 하지 않으니, 당연히 변백현과 섞일 일 또한 없었다.
"같이 먹을 친구 없냐. 내가 같이 먹어줄게. 가자."
"배 안고파."
"아 눈치 없는 것아, 내가 같이 먹을 사람 없어서 그런다. 오늘 친구가 학교 안 와서 그래."
친구란 말에 살짝 동요되었다. 혹시 얘라면 김종인이 왜 등교를 하지 않았는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전과는 다르게 표정이 조금 풀어진 걸 눈치챘는지 변백현이 팔목을 잡고 보챘다.
"야, 나 배고프다고. 얼른, 얼른!"
넌, 오늘의 이 행동을 죽도록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다. 순순히 너를 따라가는 나를 왜 그랬냐며 후에 화를 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너를 이용하고 있다. 한 순간의 이익을 위해선 못하는 짓이 없는 나다.
* * *
"응, 미국으로 가족 여행갔어. 4박5일로. 부러운 새끼. 가서 기념품 좀 사오랬는데, 그 새끼가 사올까?"
변백현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말을 계속 이어가는 것을 보아 친화력이 상당한 것 같았다. 쉬지도 않고 말하고 먹고, 말하고 먹고. 입에 쥐나겠다.
"아…, 가족 여행."
"응. 근데 우리 반 애들한테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봐?"
젓가락을 내 반찬으로 향하면서 하는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자 '에이, 재미없어. 반응이 없냐 애가.' 하면서 웃었다.
밝은 아이인 것 같다. 얼굴에 그늘도 없고. 고민도 없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속이 울렁였다. 얼마 먹지도 못했지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변백현이 살짝 인상을 썼다. 원래 가끔 울렁 거리는거야, 신경쓰지마…. 하고 말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변백현이 먼저 선수를 쳤다.
"니 소시지 내가 다 먹어도 되?"
백현이 이를 보이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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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셥입니다아.. 저의 멤짱에 서식하고 있던 놈 하나 던져놓고 가요.. 하하 클럽만 쓰다가 요런거 쓰려니까 막 손가락이 오글토글......하하핳 신알신 해 놓으셨던 분들 놀라시겠어요.......그냥, 이건 제가 심심할 때 끄적이던 거 그냥.. 중간중간 틈틈히 연재 할게요.. 저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쓰고 싶었어요..! 아, 백일몽은 원래 아이들이나 청소년에게 자주 보이는 현상인데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을 뜻해요. '크게 정복자형과 순교자형의 두 유형으로 구별된다. 정복자형의 백일몽을 꿈꾸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강력한 힘, 지식, 높은 지위, 인기, 명성을 얻는 승리의 주인공과 동일시함으로써 거기에서 자기실현, 우월성, 지배력 등의 만족의 기쁨을 얻는 것이고, 순교자형은 자기를 실패와 무능, 고난에 싸인 비극의 주인공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출처] 백일몽 | 두산백과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왔습니다.. 경수는 순교자형! 종인이가 정복자형! 이 무거운 주제를 어떻게 데리고 나갈지...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