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을 원합니다
아무도 고통을 원하지 않죠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지개를 볼 수 없어요
상영관의 쾌쾌한 공기마저 반가웠다. 지루한 책상 앞에 있어야 할 시간에 무려 영화관이라니. 바닥을 두드리는 운동화가 적막한 실내를 깨운다. 번지는 프리지아 향, 모처럼 들뜬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 “영화 좋아하는 거, 미리 알았으면 자주 왔을 텐데.”
- “그냥, 같이 오니까 더 좋아서.”
밝은 조명 아래,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대 넌지시 눈을 맞춘다. 슬쩍 옆을 비껴가는 복잡한 시선, 스낵과 음료를 정리하던 그가 컵에 꽂힌 빨대 두 개를 몽땅 제 입술 안으로 넣는다. 콜라를 두 배로 들이키겠다는 목적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대성공인데.
- “빨대 두 개로 마시면 더 맛있어? 나도 줘.”
- “……아, 미안. 다시 가져올게.”
민망한 듯, 입술에 닿았던 부분을 쓱쓱 닦아낸다. 아니, 가져오지 않아도 돼. 괜찮아. 뭐 어때. 대수롭지 않은 척 대인배의 형상을 띠어 본다. 실상은 ‘네가 닿았던 빨대를 가감 없이 사용하게 해주세요’라는 검은 마음이 득실댔지만 말이다.
첫 데이트와 다름없는 오늘을 위해 이런 행동은 꼭 참아내야 했다. 평소 대뇌를 거치지 않고 주절대는 특기를 가진 나로서는 꽤 힘든 일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절.대. 이상한 말 따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주말치고는 사람이 별로 없다.”
- “날씨가 좋아서 놀러 갔나 봐.”
실내에서 자석처럼 딱 붙어있으니 심장 콩콩거리고 좋다. 입안에서 맴도는 직접적인 고백을 막으려 한 움큼 퍼낸 팝콘을 마구 구겨 넣었다. 역시 입막음은 먹는 게 최고다.
- “뭐해.”
- “…….”
- “이걸 왜…….”
……있잖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아. 다물어지지 않는 입술은 제 역할을 상실한 채, 안쓰러운 눈빛을 머금은 상대방의 시선을 받아냈다. 욕심 많은 다람쥐가 수확 철 도토리를 주워 담다 한계 초과로 알맹이를 뱉어내는 것처럼, 입안에 어정쩡히 자리한 팝콘 송이들도 세상 밖 구경을 시도하고 있었다. 네, 분출 되었습니다! 김여주 선수. 장외 홈런입니다! 목청껏 외치는 어느 캐스터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 “지훈아.”
- “안 뺏어, 천천히 먹어.”
- “아니, 네 볼에 팝콘.”
푸흡-, 터져버린 알맹이들이 매끄러운 뺨에 붙어 꺄르륵댔다. 왜, 하필, 너희들은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꼭 내가 만지고 싶은 부분만 건…… 아니야, 나 뭐래. 이러지 마. 좌우로 얼굴을 세차게 돌리며 다짐을 되새긴다. 이상한 말 하지 말기! 진짜 이상한 말 하지 말기라고!
- “맛있네. 먹을 만해.”
- “아니야, 그거 아니야.”
- “좀 웃기긴 했다.”
- “제발…….”
그는 뺨에 붙은 알맹이를 입속으로 넣으며 가벼운 선처를 보냈다. 가끔 이렇게 먹는 거 좋아해. 나름 위로해주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급히 홀더에 담긴 콜라를 들어 목을 축였다. 당장 적절한 변명의 시간이 필요했다.
- “사실 팝콘 싫어해.”
- “웃기려고 노력 안 해도 돼.”
- “응, 나 같아도 안 믿겠다.”
- “아니야, 너 팝콘 원래 안 좋아해.”
공감하는 척, 그는 입안 가득 욱여넣던 멍청이의 행동을 따라 하며 바람 빠진 소리를 낸다. 아, 오늘은 특별한 날인데 맘대로 되는 게 없다. 꽃도 받았는데. 프리지아도 예쁜데 나는 왜 그래.
- “딴 생각하느라 손에 그렇게 많이 있는 줄 몰랐어.”
- “무슨 생각.”
- “이것저것.”
두루뭉술한 내 대답에, 그가 맞닿은 어깨를 살짝 밀어내며 되묻는다. 이것 저것 무슨 생각 했는데. 둥근 곡선을 그리는 입술이 말꼬리를 늘인다. 그렇게 예쁘게 웃지 말라고 누누이 얘기했잖아. 말도 안 듣는 아이야.
흐트러진 머리칼을 넘기며 어정쩡한 자세를 고쳤다. 아무튼, 단 거 안 좋아하니까 너 다 먹어. 그러자 어깨를 톡톡 밀어내며 장난을 걸던 소년의 둥근 머리칼이 뺨에 닿는다. 줄기찬 광고를 보이던 스크린도 실내조명도 암전 된 시간, 눈동자는 깜깜한 앞을 향했지만 모든 신경은 오로지 가까이 맞닿은 숨소리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 파고드는 달콤한 캬라멜 한 조각.
- “팝콘 말고 나는.”
……
- “어떤 게 더 좋은데.”
승관이는 그랬다. 김여주 너는 당황하면 딸꾹질부터 하는 불필요한 능력을 가졌으니 꼭 숨기고 다니라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참는다. 다행히 히끅거리는 망신은 피할 수 있었으나, 이놈의 콩콩거림이 문제였다. 배급사의 배너가 스크린에 첫 줄을 띄웠고, 동시에 그는 멀찍이 떨어져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영화 시작한다. 덤덤한 말투로 화제를 돌리는 것이다. 나른한 눈꺼풀을 깜빡이며 입술을 매만지던 그가 입 모양을 냈다. 앞에 봐. 집중. 눈웃음으로 한방을 날린다.
……방금 딸꾹질 난 건 모른 척 해줬으면.
Oh My Rainbow
Kiss me hard in the pouring rain
Chapter. 7 <약속>
‘우리, 그때 만날까’
#23.
- ‘난,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았어.’
어느새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았다. 장면 하나 놓치지 않으려 고도의 집중력을 뿜어낸다. 입술을 뜯는 것도 열아홉 답지 못한 집중의 한 부분이었는데, 그런 내 손을 잡고 마디 사이사이 자신의 것으로 채워 넣는 그가 있었다.
내 안에 심벌즈가 사나 봐.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너무 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식인에 검색이라도 해 보는 건데. 고의로 심박수 줄이기 같은 거 있잖아.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헤매는 날 아슬하게 스치며 속삭이는 소년이다.
- “이럴 땐 기대는 거야.”
- “…….”
- “이렇게.”
스크린이 기울었다. 이로써 완벽히 밀착된 것이라. 영화 속 주인공들의 대사와 행복 또는 슬픔에 더는 관심을 둘 수 없었다. 그저 현재의 내가 ‘심장 박동 과다’로 죽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메울 뿐이었다. 물론 사인은 이지훈.
진한 키스신을 연출하는 영화 속 주인공만큼 우리도 밀착되어 있음을 느낄 때, 얼굴이 폭발 직전에 도달했음을 직감하고 과감히 귓속말을 시도했다. 있잖아, 이거 15세 맞나. 좀 야한 것 같아서. 감정을 환기하려 시작한 귓속말에 더욱 붉어지는 까닭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작 키스신 하나로 ‘야함’을 거론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거야.
- “김여주.”
- “놀림은 영화 끝나고.”
- “우리 집에서 같이 볼까.”
- “뭘?”
- “청불.”
※ 청불: 청소년 관람 불가
식은땀이 났다. 우린 분명 로맨스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헛소리의 명인인 누구 덕분에 결국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놀리고 싶은 마음은 부디 참아달라 말도 했건만, 그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다시금 속삭였다.
- “뽀뽀, 청불, 청불 보는데 손만 잡는 사람.”
- “왜, 뭐…….”
- “셋 중에 제일 야한 게 뭐게.”
- “…….”
- “이제 뽀뽀가 야하다는 생각 안 들지.”
불이다! 불이야! 911구조대가 마음 정원으로 신속히 출동했다.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귓불에 닿는 말랑한 촉감은 불안정한 호흡마저 멈추게 했다. 곧 멀어지는 그를 멍하니 보고 있으면, 평소 내가 정의하는 ‘덤덤한 새끼고양이 이지훈’이 조금 더 위험한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사이렌이 머릿속을 울렸다.
- “계속 불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
- “영화도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서로의 눈을 통해 묘한 기류를 만드는 순간, 크레딧이 까만 스크린을 채웠고 상영관 등이 밝게 빛났다.
#24.
난 로제 파스타. 너도 빨리 골라.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가 주문을 기다리는 직원을 향해 반짝 고개를 든다. 로제 파스타 두 개 주세요. 음료는 콜라랑 피치 에이드요. 주문서를 확인한 직원이 빠르게 멀어진다. 얼음물을 들이키는 그를 보며 궁금증 많은 입술을 뗐다. 피치 에이드만 마시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런 내 물음에 가볍게 웃는 그였다.
나에 대해 잘 안다는 승관도 항상 까먹는 부분이었다. 피치 에이드를 외치는 아련한 목소리가 들리든 말든, 뭐가 됐든 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잘 어울린다며 막무가내 주문을 넣는 소꿉친구였다. 아, 갑자기 생각하니까 너무 열이 뻗치는데. 아무튼,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나에 대해 하나라도 안다는 것이 행복의 정점을 찍는다.
- “같이 있으면 저절로 알게 돼.”
- “부승관은 지금도 몰라.”
- “걘 모르겠고. 네가 카페 올 때마다 피치 에이드 노래 부르고 다니잖아.”
- “내가 그랬었나.”
- “아주 4절까지 만드시지.”
마냥 좋기만 하던 기분이 급하강 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이유는 단 하나, 정작 난 지훈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지금처럼 눈치껏 찾아내기에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나는 너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네. 빨대를 휘휘 돌리며 소용돌이를 만든다. 머리를 굴릴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 지금이다, 질문의 타이밍.
- “물어봐도 돼?”
- “어떤 거.”
- “음, 일단은…….”
김여주의 ‘이지훈,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안테나를 높이 치켜들었다. 좋아하는 건 뭐야? 참고로 나는 수험생 되니까 체육 시간 없어서 완전 좋던데.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정도 운동장에 나가 강제 조깅을 해야만 했던 작년 체육 시간. 이론도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전공이 아니면 다신 볼일 없는 ‘철봉의 역사와 유래’와 ‘평균대의 높이’ 등으로 시험 점수가 매겨진다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조잘조잘 떠드는 날 묵묵히 지켜보던 그가 유리잔을 흔든다. 찰랑거리는 얼음 조각들.
- “왜, 체육 좋은데.”
- “어디 아파?”
- “멀쩡해.”
- “체육 좋아하는 사람, 중학교 축구부 이후로 처음 봐.”
물과 맞닿은 얼음 모서리가 무뎌진다. 그는 둥근 조각을 아작 씹으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차가운 걸 담아서 그런지 입술이 더 빨갛다. 다른 건 뭐 없어? 좋아하는 거. 얼음을 물고 있어도 목소리는 달콤해.
- “아, 피자 빵! 매점 피자 빵 중독적이야.”
- “건강에 별로 안 좋아.”
- “그런 논리라면 매점을 없애야 해.”
- “없애 달라고 할까.”
- “차라리 날 없애 줘. 매점은 건드리지 말고.”
- “건의함에 편지 넣어야겠다.”
놀리려는 심보가 가득해 보였다. 이건 대화가 아니라 유독 한 쪽이 완벽히 지고 있는 게임 수준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 한쪽이 나인 것 같기도 하고.
- “음식은? 난 피클은 좋은데 오이는 싫어해.”
- “나는 그 반대. 오이는 좋고 피클은 싫고.”
- “아…….”
- “어, 실망한 어투다.”
공통점을 찾으려 시작한 질문에 도통 맞는 것이 없다. 지훈아, 난 케첩은 좋은데 생토마토는 싫어. 반포기한 목소리를 쥐어 짜내면, 보란 듯이 반대 표명을 하는 확실 주의자. 토마토는 좋아하지만, 케첩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영혼의 동반자 같았던 이지훈 선생님, 어쩜 이리 맞는 구석 하나 없을까요. 적극적인 질문자는 풀이 죽어 냅킨 끝을 접었다 폈다만 반복하고요.
- “보이지 않는 평행선이 있다면 분명 이런 느낌일 거야. 확실해.”
- “또 이래.”
- “혼자 있고 싶으니까 로그아웃 좀 해줄래.”
-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건 뭔데.”
우울해 보이는 내가 안쓰러웠나, 대답만 줄곧 내뱉던 그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기울인다. 가까워진 거리와 올곧게 맞닿은 두 시선. 네가 이러면 내가 또 바보같이 실실 웃게 되잖아. 머지않아 입꼬리는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광대와 손을 잡는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 “……오늘.”
- “오늘?”
- “프리지아가 정말 예뻐서.”
오늘은 ‘프리지아’라 쓰고 ‘이지훈’이라 읽는 날. 내 비밀 미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 따라 어색한 꽃받침을 한 소년이 말갛게 웃는다. 나도 오늘. 이유는 비슷해. 이번엔 네 대답이랑 똑같지. 부드러운 곡선 끝에 박힌 꽃망울, 저곳에 빠져 영원히 헤어나고 싶지 않…… 세상에, 또 멀리 갈 뻔했어.
- “사람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절대 네 생각 안 했어.”
- “내 생각했어?”
- “아니?”
- “했네.”
- “……진짜 조금?”
- “그냥 밥 먹을 생각했겠지.”
공부할 때만 똑똑한 이지훈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래, 네 말대로 난 항상 밥 생각에 들떠 있어. 내일은 치킨마요를 먹을지, 제철인 냉면으로 속을 달랠지, 슈렉 프라푸치노로 입가심을 할지, 메뉴 때문에 밤마다 설레서 잠까지 설친다니까. 한 음절, 또박또박 구글 음성인식기가 되어 심경 고백을 한다. 자신의 예측에 만족감 백프로를 끼얹는 헛다리 전문가는 작은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매일 맛있는 거 먹여야겠네.”
- “한 번에 세 그릇씩 먹으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듯.”
-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영화관에서 팝콘을 욱여넣는 어느 불쌍한 다람쥐를 따라 하며 크게 웃는 그였다. 복수를 다짐하는 두 손가락으로 ‘내 눈이 널 보고 있다’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때마침 나온 피치 에이드에 자신의 음료 빨대를 넣는다. 두 개로 마시면 맛있다. 농담까지 던지면서.
- “지훈아, 생일은 언제야?”
- “11월.”
- “수능 전?”
- “아니, 22일.”
포크로 둥글게 만 거대한 면 덩어리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먹방을 괜히 허투루 본 것이 아니었다. 입이 막혔으니 대신 감탄사를 보낸다. ‘으음’ 또는 ‘으으음’따위의 리액션을 뱉는 입술을 빤히 훑던 그가 무심한 손가락으로 입 주변을 닦아낸다.
- “수능 끝나고 뭐해.”
- “……어?”
- “아니, 시험 끝나고 약속 같은 거 있나 해서.”
목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간 잔여물이 역류하듯 거꾸로 솟는다. 이상 징후에 꽉 막힌 가슴을 틔워내려 잔 숨을 뱉는다. 시커먼 재를 뒤집어쓴 핏물의 환상에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 “우리, 그때 만날까.”
- “…….”
- “그냥, 시험 끝나면 시간 많잖아.”
질벅거리는 소스를 끼얹은 포크가 작은 원을 그린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구덕 함이 엉겨 붙어 거대한 덩어리가 될 때까지, 무거운 입술은 그저 옅은 미소를 그렸다. 소년도 덩달아 웃는다.
- “만나서 가채점 먼저 해도 좋고. 하고 싶으면 밀리지 말고 답 꼭 적어와.”
- “싸우자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하는 게 유행이야?”
- “유행까진 아니고 트렌드 정도.”
두 사람의 목소리가 창밖을 넘는다.
복잡한 소음에 섞인 음성이 이내 오롯한 형색을 띠며 허공을 떠다녔다.
그때 만나, 우리.
기다릴게.
#25.
지훈이는 교무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교무실 구석에 자리한 상담실로 불려가는 일이 잦았다. 수험생에게 있어 상담실을 들락날락하는 건 으레 있는 일이었으나, 현재 그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단순 진학 상담이 아니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모의고사에서 일정한 확률로 오답을 낸 그의 답안지가 의심의 시작이었다. 정답을 교묘히 피해간 답안지를 초짜 교사가 아니고서야 어찌 넘길 수 있겠는가. 그의 담임은 물론 진학상담 부장까지 모인 자리에서, 그는 고의가 아닌 단순 실수였다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증인석에는 승관이까지 합세해 그날따라 지훈이 어지러움과 복통을 호소했음을 강조하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여름방학을 불과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 “법 전공하는 사람들 진짜 존경해야 해.”
- “갑자기 왜?”
- “매일 이렇게 말싸움, 기 싸움 하면서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잖냐. 난 절대 못 해. 아니, 십억 준다고 해도 안 해.”
- “백억 준대.”
- “사랑합니다. 정의를 위해 목숨 바쳐 당당히 맞서 싸우겠나이다.”
승관과 교내 특별 회의실 문 앞에서 이런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눈 것도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종례 후 곧장 내려와 굳게 닫힌 문을 지킨 것도 모자라 한숨까지 폭폭 내쉬는 날 빤히 바라보던 승관이 교복 주머니에 삐딱하게 손을 넣는다.
- “야, 근데 이지훈은 진짜 왜 그런 거냐?”
- “…….”
- “남들은 하나라도 더 맞추려고 눈에 불을 켜는데, 쟨 하나라도 더 틀리고 싶어서 이 난리를 떠네. 미쳤다, 미쳤어.”
이해할 수 없는 승관은 이맛살을 구기며 슬리퍼로 벽을 찼다. 희미한 여러 개의 발자국이 겹쳐 괴상한 모양을 남긴다. 뾰족한 가시에 찔린 듯,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 부스럼이 재가 되어 한쪽 귀퉁이에 버려진다. 승관에게조차 쉽게 말할 수 없어 애꿎은 슬리퍼만 바닥을 찍었다.
- “사정 하나쯤은 다들 있잖아. 우리한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겠지.”
- “설마 대학 포기, 재수, 삼수, 자퇴 이런 건 아니겠죠?”
- “자퇴는 네가 하고 싶은 거고.”
- “님아, 어떻게 알았어. 매일 때려치우고 싶은 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장난을 건다. 시시콜콜 영양가 없는 얘기에 지루해 질쯤, 그토록 기다리던 지훈이 피로함을 가득 담은 채 문밖을 빠져나왔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지훈의 담임은 그의 어깨에 무거운 손을 올렸다. 승관은 제 담임이기도 한 터라, 가벼운 묵례 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 “아까도 얘기했지만,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해.”
- “…….”
- “그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거, 알고는 있니?”
그녀의 사나운 눈빛이 내게 닿는다. 모든 결과의 책임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명백함이 담긴다. 불편함이 그지없는 자리에서, 앞으로는 학업에 모든 힘을 쏟아 정진하길 바란다는 상투적인 문장을 끝으로 진학 부장을 포함한 교사들은 복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 “숨.”
- “…….”
- “숨 쉬어.”
그가 마른 손목을 쥐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잘하게 내뱉은 숨소리에 그제야 잡은 손목을 놓아 준다. 승관은 턱밑을 살살 긁으며 지훈의 눈치를 봤다.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열정적인 고민을 하는 것이다. 물론, 고민과 상관없이 승관의 시작은 늘 비슷했다.
- “자퇴서 한 장 더 있는데 줘, 말아.”
- “네가 다 쓰던지.”
- “성의를 무시당하네.”
- “동반 자퇴 재미없어.”
- “이야, 자퇴를 재미로 하는 인간이 나 말고 또 있었냐.”
승관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치워. 하지 마. 강력히 거부하며 쳐 내리는 행동에 멋쩍을 만도 하다만, 승관은 꽤 익숙한 듯 이번엔 둥근 뒷머리를 슬슬 쓰다듬기 시작했다. 우리 지훈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너무 졸렸어요. 간 큰 승관은 지훈의 다리에 튼실한 엉덩이를 걷어차일 때까지 쉼 없이 조잘거렸다.
어떤 말을 건네든, 상대방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부터 일찍 깨달은 승관은 늘 이런 식의 농담을 던지곤 했다. 헛소리처럼 보여도 분위기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야 지훈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짧게 웃기라도 할 테니.
- “마음 바뀌면 연락해라. 김여주라도 새벽콜은 안 받는데, 너만 특별히 받아준다.”
- “네가 해, 귀찮아.”
- “주제는 자퇴 포함한 일상 얘기.”
사실 무슨 얘기든, 다. 알지, 약속했다. 승관은 풀어진 지훈의 넥타이를 알맞게 조이고는 발밑에 놓인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불쑥 짜증이 치밀었는지 복슬거리는 머리칼을 헤집는다. 다음 시험은 미 응시 좀 미리 박아라. 답 피해서 마킹 했네, 안 했네, 이딴 거지 같은 질문들 좀 귀찮냐. 지훈은 승관의 거침없는 조언에 짧은 바람을 냈다. 생각은 해보고. 가벼운 손 인사 뒤로 승관의 그림자가 멀어진다. 녹녹한 습기가 고인 그것은 이따금 젖은 소리를 냈다.
#26.
공원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물총 놀이에 매진하는 뭇 아이들을 바라본다. 노란 티셔츠 입은 애는 총이 두 개야. 집이 부자인가 봐. 옆 동네 친구의 화법을 따라 하며 상대방의 눈치를 살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장 미래가 달린 그의 선택이 꽤 궁금했으니 말이다. 자신의 힘으로 제 인생을 철저히 무너트리는 것, 그 시발점이 대학 진학이라는 예전의 대화가 떠올랐기에 궁금증은 매초 깊어 갔다. 그는 벤치에 몸을 기대 느슨히 힘을 풀었다. 지그시 감기는 두 눈에 피곤함이 서린다.
왜 안 물어봐, 난 대답할 준비 다 됐는데. 청바람에 닿은 다소곳한 머리칼이 흔들린다. 미동에도 정직하게 반응하는 실타래에 손을 얹어 잠긴 눈꺼풀을 깨웠다. 지훈이 너도 이렇게 홀로 흔들리고 있었는지, 지금도 괴로울 만큼 혼자 흔들리고 있는 건지.
-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줄 것. 오늘의 핵심 요약정리 끝.”
- “뭐야, 상담이 무슨 시험 범위도 아니고.”
- “진짜 별거 없었어. 같은 말 계속하는 것만 빼면.”
사각형 틀에 갇힌 채, 교사들의 채찍과 회유를 한 몸에 받아야 했던 그가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부장 쌤은 커피를 다섯 잔씩 마시더라, 너희 담임은 저녁 식사 때문에 참석을 못 하셨더라, 증언하라 불러온 부승관은 쌤들한테 악수까지 청하면서 안부를 묻더라……. 두 개의 물총으로 분수대를 뛰어다니던 노란색 티셔츠의 아이는 맨몸으로 물을 맞던 아이에게 제 것 하나를 건넸다.
- “그래서, 이지훈 망치기 프로젝트는 잘 되고 있어?”
- “중단했어.”
- “……진짜야?”
- “어, 오늘부터 잠정 중단.”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려 예쁜 보조개를 만든다. 강한 바람에 공원 주변을 수놓은 아지랑이는 힘찬 날갯짓을 했다. 스스스-, 허공에 비껴가는 수많은 소음.
- “혼자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생각해보니까 이젠 둘이라서.”
- “…….”
- “도망치고 싶을 때, 어디든 같이 가줄 내 편이 생겼으니까.”
그래서 망치는 건 조금 나중에.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눈이 찰랑거린다. 여태 그가 삼킨 수많은 얼음 조각들은 다 이곳에 잠겼을까. 밤바다에 반짝이는 별빛에 넋을 잃는다.
- “매일 옆에서 봐줘, 나.”
……
- “그래야 힘이라도 내지.”
아지랑이를 닮은 소년이 어여쁘게 웃는다. 분수대 주변을 탐색하던 노란색 티셔츠의 아이는 자신의 물총을 쥐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손을 뻗는다. 펑-, 분수대의 물빛이 그들의 머리칼을 적신다.
저들 중 어떤 아이일까.
지훈이, 너에게 난.
Epilogue.
구김 없는 지훈의 침대가 정한의 몸부림으로 금세 전쟁터가 됐다. 우리 지훈이, 너무 깔끔하게 살아도 스트레스야. 하얀 솜사탕 이불로 둘둘 몸을 말아 ‘난 김밥, 잘생긴 우엉 김밥’ 따위의 헛소리를 해대며 지훈의 고막을 괴롭혔다. 멀쩡하고 아늑하던 지훈의 쉼터가 정글짐이 되는 건, 정한에게 있어 주삿바늘을 교체하는 것만큼 쉬웠다.
- “남의 집까지 와서 도대체 왜 그래?”
- “들어온 지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이제야 말을 걸다니.”
- “형이 공부할 때 난 건드리지도 않았어.”
- “넌 아는 척 자체를 안 했잖아. 투명인간이 이래서 서럽구나 했다?”
- “나만 보면 롤하자는 사람한테 뭘 더 바래.”
- “널 향한 내 짜릿한 마음?”
지훈은 동그란 안경을 대충 걷어내며 뻑뻑한 눈가를 매만졌다. 아직은 이른 저녁, 야간 근무가 잡힌 정한의 짧은 휴가도 차차 마무리되는 시각이었다. 김밥이 말라가니 참기름을 발라 달라는 짓궂은 장난에, 지훈이 그제야 싱겁게 웃는다.
- “이번 시험 부정행위 걸렸어.”
- “억지로 틀린 것도 부정행위라는 말이 너무 웃긴다 동생아.”
- “머리 좀 쓸걸.”
- “언어는 홀수, 수리는 짝수만 골라서 쏙쏙 틀렸는데 수십 년 베테랑들이 그걸 몰랐을까 봐? 차라리 미 응시를 하지 그랬어.”
- “형도 부승관이랑 똑같네.”
- “걘 뭐야, 이름 설렌다.”
- “관심 꺼, 괜히 말했다.”
겨우 김밥 나라에서 벗어난 정한이 침대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켜는가 싶더니, 곧바로 벌러덩 누워 침대와 다시 한 몸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달고 살아온 ‘눕정한’이라는 별명답게.
- “이모 노발대발하시지? 의대 보내려고 눈에 불을 켜는 양반인데, 이러다 아들 잡아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이제부터 윤정한 상종하지도 말래.”
- “아니, 왜? 이렇게 잘 컸는데? 심지어 잘생겼잖아?”
- “형이 나한테 바람 넣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기억 안 나? 엄마 앞에서 시험 망치자고 큰소리치고 다녔잖아. 그리고 의사치곤 못 미덥게 생겨서 싫대.”
- “으응, 또라이라 그랬구나.”
- “어, 정확해.”
지훈의 검지가 정한의 얼굴을 가리켰다. 완벽한 답안을 내놓은 당사자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지훈은 갑갑한 의자에서 일어나 정한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침대에 등을 맞대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문자를 확인하던 정한의 시선이 잠시 그를 향했다.
- “이모 아직도 학교에서 치맛바람 날리고 그러시나?”
- “몰래 와서 담임한테 돈까지 먹였더라.”
- “넌 어떻게 알았어?”
- “저번에 담임한테 문자까지 해놓고는 휴대폰 화면 그대로 켜 놓고 가던데 뭘.”
- “인생에서 완전 범죄를 꿈꾸신다는 분이…….”
- “그러니까.”
정한은 허리가 아프다 밑밥을 깔아 두고는 은근슬쩍 지훈에게 달라붙었다. 치워, 하지 마, 더워 등등 안간힘을 써 봐도 찹쌀떡처럼 엉겨가는 상대방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지훈은 어이없는 헛바람을 가득 뱉었다. 싫은 것이 아니라, 그런 정한이 귀여워 표현한 본능이었다. 지훈이 지그시 눈을 감는다. 사각거리는 펜 소리 하나 없는 적막이 그저 반가운 그였다.
- “예전에 형이 그랬잖아, 살고 싶어졌냐고.”
- “말도 안 들어 먹는 애가 그런 건 다 기억하네?”
- “나한테는 중요했으니까.”
- “그래서, 대답은?”
- “긍정적.”
- “여주 때문에?”
- “그냥…….”
- “넌 할 말 없으면 맨날 그냥 그냥, 어렸을 때 버릇 어디 안 가.”
정한의 다리가 지훈의 종아리를 툭툭 건드렸다. 이쯤 되면 복수랍시고 정한도 공격을 당했어야 하나, 웬일인지 미동조차 없는 지훈이다. 말끔한 천장을 향한 정한의 눈이 고른 숨소리를 내는 상대방을 훑는다. 숨만 쉬는 시체, 늘 피곤함을 달고 사는 지훈이 안쓰러운 건 비단 오늘만이 아니었기에, 정한의 마음은 더욱 쓰라렸다.
- “살고 싶어. 살고 싶어졌어.”
- “…….”
- “그런데, 계속 신경 쓰여.”
지훈은 굳게 닫힌 눈꺼풀을 들어 정한을 바라본다. 적막 속, 힘없는 두 눈이 서로를 응시하며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 “분명 다른 사람인데, 여주한테서 예전의 내가 보여.”
- “네가 어땠는데.”
- “멀어지려 했던 사람.”
- “쉽게 설명해.”
- “죽고 싶어 했던 사람.”
차가운 팔 덩이로 두 눈가를 덮으며 짙은 한숨을 뱉는다. 여주의 환한 미소 뒤에 남겨진 울음과 괴로움을 느끼며 절망하는 지훈이다. 정한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묵묵히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 “처음엔 나랑 닮아서, 학교에 진절머리 난 것도 그렇고, 그냥 내 꼴이랑 너무 비슷해서 솔직히 마음이 갔어. 그 마음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거였는지도 몰랐는데, 그냥 진짜 친구를 얻은 것 같아서 난 좋았다고.”
- “…….”
- “그런데, 이젠 아예 없어지고 싶어 하는 것까지 닮았다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파. 이제 난 살고 싶은데 걘 아닌 것 같아서, 그게 너무…….”
- “…….”
- “형, 진짜 나 어떡하지.”
웃고 있으면서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그녀가 지훈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문득 도망치고 싶다면 어디든 함께하겠다는 말에 안심이 되기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과도 같은 얼굴을 떠올리며 종일 잠을 청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지훈은 항상 피곤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취를 감출 여주가 마음에 걸렸기에. 정한이 지훈의 무거운 팔을 거둬내며 입술을 뗐다.
- “이제 네가 살려주면 되겠네.”
- “장난할 기분 아니야, 알잖아.”
- “나도 장난 아니야.”
- “뭐하자는 건데. 형이야말로 쉽게 설명해.”
- “너랑 비슷하다며. 그럼 예전부터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라. 누군가가 날 잡아줬으면, 이 지옥에서 꺼내 줬으면……. 다 네가 했던 생각들,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을지 누가 알아? 방법은 네가 더 잘 알고 있겠네.”
정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원무과에서 걸려온 콜에 벗어 놓은 안경을 급히 집어 들며 자리를 털었다. 전신 거울 앞에서 대충 머리를 정리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지훈에게 빙그르르 미소를 남긴다.
- “인생 한 번인데 스무 살은 좀 넘겨 봐야 사는 맛이 나지. 걔도 너도 열아홉에 세상 뜨기엔 너무 어려.”
- “스무 살 넘어서 형처럼 될까 봐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어.”
- “안타깝지만, 완벽한 바디라인은 줄 수가 없단다. 태초부터 본능적인 거라.”
- “그래, 이렇게 될까 봐.”
짧은 농담에도 걱정이 서린다. 흐트러진 이불을 정리하는 지훈의 뒷모습을 눈에 담다, 조심스레 상대방의 팔을 움켜쥐는 정한이다. 동생이라는 명칭이 어색할 만큼, 지훈은 늘 어른스러웠다. 사실, 어른인 척하는 아이의 발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 “지훈아,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표현하면서 살아. 미안한데, 난 지금의 네가 더 좋다. 괜찮은 척 안 해도 우리 이렇게 대화할 수 있잖아. 어른인 척 안 해도 난 널 이해할 수 있어.”
- “…….”
- “난 여주한테 항상 고마워. 꽁꽁 싸매고 다니던 우리 동생 자유롭게 풀어줘서. 어른 흉내 내는 이지훈 말고, 열아홉 이지훈 보여줘서.”
- “…….”
-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은데, 이거 욕심 아니지? 진짜 이지훈 옆에 여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욕심 아니잖아.”
비죽 솟은 지훈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정리하며 정한은 방문을 나섰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공간, 그 안에 지훈이 있었다.
- “소나기 너무 무서워하지 마.”
……
- “다음 날은 진짜 맑거든.”
……
- “약속해,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