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손..""손이 뭐."대화의 시작부터 삐걱거리던 크리스는 모든 대답을 단답, 혹은 시비조로 내뱉었다. 기분이 나쁠 상황이건만 내내 제 걱정만 하며 우물쭈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소년이 크리스는 영 아니었다."손 이렇게.."소년이 든 하얀손에는 빨간 생채기들이 잔뜩 져있었다. 소년은 그 쓰라린 손을 들어 살짝 떨었다."손이 이렇게 떨려요."처음 다가왔을때부터 주눅 들어있던 눈은 이제 크리스를 동정어린 눈빛과 함께 약간의 당혹감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이년전에..""너 무슨 말하려고 온거냐 꼬마야."크리스는 들고있던 야구배트 머리를 다시 땅에 비비며 말했다. 얘기를 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신호였지만 소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홈런..친거 있잖아요.."넓은 운동장에 노을이 지면서 소년의 얼굴 또한 노랗게 물들어 보였다. 소년은 주황빛 입술을 다시한번 뗐다."..다시 보고싶어요.."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갈색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떨어졌다. 가지런히 모은 두다리와 무릎에 올린 쓴 손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눈앞이 핑돌며 크리스는 눈을 감았다. 소년의 말한마디 한마디가 망치가 되어 쿵쿵 내려치는것 같았다."..그거 보고 일어났거든요..야구 하다가..찢어졌었는데..여기가.."소년은 소년의 무릎에 올려진 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살짝 두드렸다. 깨질듯 아슬아슬한 도자기를 어루만지듯이 무릎을 손으로 쓸던 소년은 이내 고개를 들었다."멋있었어요. ..지금도..그렇고..지금은 쉬는거잖아요."소년의 얼굴은 반은 웃고 반은 우는 삐에로 처럼 일그러졌다."다음 시합..보러와도 되죠?"소년은 어떤 부탁 하는것을 쑥스러워 하는 타입 같았다. 안절부절 하는 행동과 살짝 높아진 목소리 톤이 소년을 설명했다. 일주일뒤 열리는 경기에 나와봐야 크리스가 나올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입꼬리만 올려 웃은 뒤 꾸벅 인사를 하고 홀로 천천히 그라운드 위를 걸었다. 소년의 등에 내리쬐는 가을의 부드러운 노을은 소년을 보호하듯 제각기 빛을 내뿜었다. 크리스는 소년이 자신의 새끼손톱이 될만큼 까지 바라보다가 들고있던 배트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감독님..""어.""..그.."잔뜩 기합이 들어간 크리스가 말할듯 말듯 입을 옴짝거렸다. 전국 프로야구 시합 결승인 오늘 승리하지 못하면 팀은 다시 만년 2위에 머무를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성적이 부진한 크리스가 그라운드에 올라가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년전 팀의 에이스로서 몸이 부서져라 야구에 매진하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다.".....아닙니다."크리스를 언짢게 보던 감독은 한숨을 푹 쉬더니 선수들이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다 끝났음 알아서 그만둘것이지.."크리스는 말없이 감독의 뒤를 밟았다. 일주일전의 그 소년이 눈에 밟혔던것처럼 크리스는 그 목소리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걸어갔다. 우스운 일이다. 더이상 못 뛰는것도 아니고 힘이 부족한것도 아닌데 한때 그라운드를 날아다니던 자신이 뛰게 해달라고 부탁도 못한다는 것이. 소년은 긴 시간동안 벤치에 무력히 앉아있는 모습만을 볼것이다. 소년이 보는 잠잠한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홈런을 치고 모든 이들의 박수와 함성속에 사는 특 에이급 선수일까. 크리스는 벤치에 앉기전 소년에 대한 죄책감을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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