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파란 미용실
w. 비명
“형, 들어가도 돼?”
“아니, 안 돼.”
가만히 벽을 짚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성종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내가 시야가 막힌 것을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스스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대신에 모든 신경을 청각에 쏟아야 한다는 점. 그것은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앞이 안 보여서 오는 고통보다, 세상의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와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성종의 물음에 곧바로 차갑게 굴었다. 우리 집에 들어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피가 안 섞인 유일한 사람이 성종이라서 더 고마운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만큼 성종이에게 정을 주기란 힘든 일이었다.
“나 궁금한 거 하나 있어.”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선글라스를 벗어 책상 위에 두고서는 옷을 벗어놓고 외출 전 의자 위에 걸어둔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성종이 뜸을 들이는 것을 보니 또 얼마나 내 신경을 건드릴 말을 할 지는 알만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질문을 하든 성종이 곱게 보일 리는 없고, 그에 내가 성종이 원하는 대답을 해줄 수 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마, 내가 대답하지 않는 걸로 이미 성종이는 '그래, 뭔데?' 식의 다정다감한 말로 필터링해서 들었을 지도 모른다. 앞이 보이는 사람은 적어도 심리쪽으론 나보다 똑똑할테니 말이다.
“형은 돈을 어디서 벌어와? 아니, 그러니까... 형이랑 안 지 정말 오래됐는데 나는 형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리고,”
“그리고?”
“내가 대학교 들어가고부터 형이 나 돈 조금씩 보태주는 거 부담스러워. 이제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 괜찮으니까. 형 편하게 살아야지.”
“고마워서 주는 거라고 했잖아.”
“고마운데 왜 항상 집에서 이렇게 대해? 돈이면 다 되는거야?”
“형 힘들어. 오늘 일찍 가봐.”
제법 낮고 굵직한 목소리로 쌀쌀맞게 굴었더니 성종이 그렇게 잘하던 말대꾸 하나 없이 발소리를 냈다. 아마도 간 건 아니지만 방문 앞에서 떨어진 것이겠지. 성규는 침대에 털썩 앉아서는 몸에 힘을 풀고 푹 쓰러져 누워버렸다.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줄 알던 어릴 적부터 어둠을 좋아했었다. 어둠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어둠 속에서 피아노를 쳤건만 오늘 처음으로 이 어둠이 무섭게 느껴졌다. 누워 있으면서도 사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인데 시각 장애인의 시점으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난 누워있는데 난 자고 있는 걸까? 깨어 있는 걸까? 앞이 보이는 사람은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는 할까?
그런 갖가지 생각에 빠져 있던 성규는 결국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열어 음성 인식 기능으로 2시 반이라고 말해주는 기계 누나로부터 시간을 듣고, 오늘의 날씨를 들었다, 음, 오늘은 구름이 끼고 흐림... 되읊고서는 오늘의 날짜를 듣고, 오늘의 일정을 들었다. 만지작 거리다가 곧이어 문자가 왔음을 알고 성규는 의아해했다. 문자가 올 사람이 없을텐데?
ㅡ 삐익! '장동우 선생님'님의 MMS 문자입니다. 성규씨, 오늘 트레이닝 마지막 날입니다. 오후 4시까지 연습실로 나와주세요. 오늘 성열씨랑 처음 만나는 날이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커몬, 커몬. 하하하.
분명 2시 반이라고 했었는데? 성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서 뭐라도 먹고, 옷도 입고... 가는 데에만 1시간은 족히 걸릴 건데? 성규는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성규는 색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상의와 하의의 색조합을 맞추기란 도무지 힘든 일이었다. 그런 성규가 옷을 입기 쉽게 성종이 주로 하얀색 상의와 여러 색깔의 바지를 사줬는데 너무 평범해보이지는 않을까. 너무 누추해보이지 않을까. 여러 고민에 색을 고를 줄도 모르면서 괜히 옷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거의 10분동안 옷을 만지작거리다가 옷을 입고서는 부엌으로 급하게 향했다. 그러다 문인 줄 알고 머리를 벽에 쾅 부딪히는 실수를 범했다. '아윽...' 아픈 부위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면서 부엌까지 겨우 걸어갔다. 냉장고를 열고 시리얼을 꺼내서 간단히 상을 차렸다. 괜히 숟가락으로 우유 한 모금을 마시고서는 '아ㅡ'하고 긴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긴장되는지 시리얼을 잘못 삼켜서 쿨럭거리기도 하면서 겨우 스스로 몸을 가누었다. 다시한 번 휴대폰을 열어 시계를 확인해보니 2시 50분이라고 외쳐주는 기계 누나 덕분에 겨우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었다.
ㅡ 삐익! '달파란 미용실'님의 MMS 문자입니다. 성규씨? 놀라셨죠? 저 미용사 남우현입니다. 손님들 명단이랑 뭐 이것저것 계산하고 보니까 제가 성규씨한테 돈을 만 원이나 더 받았더라고요. 왜 말 안 해주셨어요. 제가 너무 죄송스러워서 돈도 좀 드리고 어떻게 친해진 겸 식사도 같이 할까 해서요. 아니,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단골 손님이신데 또 제가 너무 무심하게 대했나 싶기도 하고... 오늘 저녁 때 시간 되세요? 저녁에 7시에 미용실에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 식사 안 되시면 돈만 받아가셔도 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따라 일이 많이 꼬이네. 성규는 입고 있던 잠바를 마저 껴입고서는 휴대폰을 들고 천천히 답장을 써내려갔다.
[제가 오늘은 약속이 있고요. 내일 뵈겠습니다. 감사해요.]
흠, 너무 무뚝뚝한가? 다시, 다시. 모처럼 나한테 문자가 왔는데 조금 발랄하게 써서 보내줄까?
[어쩌죠? ㅠㅠ 제가 오늘 약속이 있네요! 내일 봬요. 감사합니당. ^^]
아, 너무 발랄한가? 이모티콘은 너무 했나? 아, 어쩌지. 다시, 다시.
[죄송해요.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내일 찾아 뵈겠습니다! 감사해요. ^^]
내가 이 사람한테 문자 보내는데에 이렇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다니. 이 사람이 도대체 나한테 뭐라고 이렇게 정성을 들이게 되냐. 아, 얼른 가봐야지. 으, 얼른 가보자. 성규는 연습실로 향해 몸을 옮겼다. 물론, 선글라스 착용 또한 잊지 않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명령)
오늘도 어김없이 달파란 미용실이 찾아왔습니다 '-'*
독자님들의 댓글 하나하나 너무 감사드리고 읽으면서 행복합니다
더 열심히 글 쓸게요 ㅠㅠ 헝헝러엏ㅇ렁헝
+) 암호닉은 언제든지 받고 있습니다! 많이 많이 읽어주세요
(다만 암호닉 독자분들께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것 뿐...)
암호닉: '볼펜'님, '호호'님, '찡긋'님, '똥개'님, '달규'님, '수면바지'님, '하니'님, '꼬꼬마'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