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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ning 전체글ll조회 2010l 1

* 무단도용 및 2차가공 금지합니다.
Morning (kysoo42@daum.net)

 

 

 

〈EM>시티헌터 (City Hunter)〈/EM>

26
 

 

 

 

 

 

 


톡- 톡. 묽은 액체들이 작게 방울져 하나하나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하얗고 비쩍 마른 너의 팔뚝에 아프게 꽂혀있는 바늘은 곧, 너의 혈관으로 약을 전달한다. 벌써 나흘. 나흘째 너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네가 눈을 뜨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굳게 감겨있는 그 눈이 괜스레 원망스럽고 가슴이 아팠다.


성규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가만히 누워 있는 우현의 머리를 다정스레 쓸어 넘겼다. 동우 형은 단지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조금 오래 자는 것일 뿐이라고, 안심하라 말을 했지만 나는 하루 빨리 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우현아, 어서 깨어나 너의 그 입술로 내 이름을 불러줘. 그 예쁜 눈 안에 나를 담아줘.

 

 

 

“ 우현아….”

 

 

 

성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김상철의 알 수 없는 그 눈빛을 본 뒤로, 성규는 심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런 그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우현, 그 뿐이었지만 그는 현재 지치고 아픈 몸을 한 채 자신의 앞에 잠들어 있었다. 그 누구도 크게 다친 사람 없이 성공적으로 마친 두 번째 임무였지만, 아직 그 일에 대한 뒷처리가 남아 있었고 그 일은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우현이 눈을 뜨기 전엔 차마 이 집을 홀로 나서기가 힘들었다.

 

 

 

“ 나 되게 한심하다. 그치.”

 

 

 

너는 가면 갈수록 강해져 가는데 나는 어째서 이렇게 한없이 약하기만 한 걸까. 성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우현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여전히 차갑기만 하던 그 손이, 자신의 체온으로 인해 따뜻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있어. 그렇지? 우리도 이렇게나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들이잖아.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거 없이 살아 숨 쉬는 사람.

한숨이 잇새를 타고 절로 흘러 나왔다. 성규는 한참동안이나 우현을 바라보다 이내 살풋 미소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일어날 거야. 그렇지? 다시 예쁘게 웃어주는 그 날만을 기다리며 내가 참을게. 그러니까 우현아, 하루 빨리 일어나줘.

 

 


하염없이 너를 기다리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 * *

 

 

 

 

 

지친 얼굴을 한 성규가, 우현의 방문을 닫고 나와 한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낀 채 몸을 지탱하곤 힘겹게 걸어 소파에 풀썩-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신문을 들어 곧바로 눈으로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나 신문의 1면은 자신들의 기사였다. 임무를 마친 그 날부터, 지금까지. 늘 1면을 장식하는 시티헌터의 기사. 그리고 TV만 틀면 질릴 정도로 나오는 뉴스 보도들.

 

[시티헌터,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시티헌터, 그들에겐 대체 무슨 일이?]

[시티헌터는 정의의 사도? 아니면 그것을 위장한 국가테러범?]

 

 


성규가 보고 있던 신문을 탁- 덮고는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다. 시시하고 지루했다. 흥미로는 기사거리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몸을 뉘이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뒤늦게 잠이 쏟아졌다.

 

 

 


다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성규는 2층에서 뛰어내린 탓에 왼쪽 발가락에 금이 가 깁스를 하게 되었으며, 불편하게도 목발을 짚고 생활해야 했다. 우현은 심한 감기 몸살에 5일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이었고, 호원은 근육이 놀란 상태에서 주먹을 써 인대가 늘어나고 말았다. 아란은 이마가 찢어져 하얀 거즈를 붙이고 있었고, 그나마 멀쩡한 것은 얼굴에 자잘한 상처 몇 개를 매달고 있는 명수였다.

 

 

 

“ 명수야 이거 어때? ”

 

 

 

부엌에서 알콩달콩 깨를 볶으며 음식을 만들고 있는 성열과 명수였다. 간을 좀 봐달라며 팔팔 끓는 김치찌개를 수저로 한 술 떠, 호호 불고는 명수에게 한 입 먹여주는 성열이었다. 적당히 식은 찌개의 맛을 본 명수는 이내 눈을 예쁘게 접어 웃어 보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에 성열 또한 예쁘게 웃으며 가스 불을 끄고는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 이쁜아.”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쁜이’라는 말에, 성열이 명수 쪽을 돌아봤다. 그와 동시에 훅- 밀려  들어오는 그만의 향기. 현재 성열은 명수의 품 안에 안긴 상태였다. 명수는 성열을 꼬옥- 안은 채 그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해맑은 아이처럼 배시시- 웃었다.

 

 

 

“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꼭 막 결혼한 신혼부부 같아.”

 

 

 

명수의 말에 성열이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응, 그러게. 너무 좋다.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서로를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예쁜 연인이었다. 명수는 성열을, 성열은 명수를 눈에 담았다. 이렇게 서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사랑하는 그 감정이, 사랑 받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 고마워, 명수  야.”

“ 응? ”

“ 크게 다치지 않고 와줘서.”

 

 

 

명수는 그저 웃어 보였다. 성열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달콤한 향내음. 매일 느끼는 것인데도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명수가 성열의 허리를 껴안고 있던 팔을 풀어 그 하얀 얼굴을 두 손으로 다정스레 감싸 올렸다. 그리곤 당황한 성열의 얼굴을 보며 한 번 씨익- 웃고는 쪽, 하고 그 앙증맞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다. 짧은 베이비키스였지만 성열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인해 수줍게 달아올랐다. 괜히 그 모습이 귀여워, 그의 머리칼을 부스스, 헤집어 놓은 명수가 이내 몸을 움직여 식탁 위에 인원수대로 수저를 놓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벙쪄있던 성열도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분주하게 움직이며 냄비뚜껑을 열었다. 하지만 그 뚜껑을 열자마자 성열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다 식은 찌개였고, 이내 성열은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 …다시 끓여야겠네….”

 

 

 

 

 

 

 

-

 

“ 누나, 거즈 갈아줄게요.”

“ 어? 그래줄래? ”

 

 

 

바닥에 앉아 소파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있던 아란은, 구급상자를 들고 온 성종으로 인해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는 성규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확실히 우현이 저렇게 누워 있으니 성규도 꼭 병든 닭 마냥 시름시름 앓는 것 같았다. 하루 빨리 우현이가 일어나야 할 텐데…. 아란이 바닥에서 일어나 소파에 털썩- 앉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자, 성종이 구급상자에서 소독약과 새하얀 거즈를 꺼내며 작게 웃었다.

 

 

 

“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

“ 그냥….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팀 분위기가 영 아닌 거 같아서.”

“ 하긴. 저도 그렇게 느껴요.”

 

 

 

성종이 아란의 이마에 붙어있는 거즈를 조심스레 떼어내자 꿰맨 자국이 나있는 상처가 보였다. 성종은 꼭 제가 아프다는 것 마냥 인상을 찡그리며 상처부위를 소독한 뒤, 입으로 호- 불고는 그 위에 깨끗한 거즈를 새로 붙여주었다. 아플 만한데도 아란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성규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곧 들려온 목소리로 인해 금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긴 했지만.

 

 

 

“ 누난 참 멋진 거 같아요.”

“ 응? ”

“ 강해요, 누나는.“

“ 음, 그 말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성종의 말에, 아란이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장난스러운 모습에 성종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고, 아란은 그런 성종이 귀여운 듯 장난스레 그의 머리칼을 헤집어 놓았다. 다 됐다는 듯 구급상자를 탁- 하고 닫는 성종의 모습에 아란이 미소를 거두곤 아까와 마찬가지로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 놀란 성종이, 소파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다시 앉아 아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누나 정말 왜 그래요? ”

“ 성종아, 나 어떡하지? ”

 

 

 

정말 난처한 얼굴을 하고 울어오는 아란에, 보채지 않고 아무런 표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저 스스로 입을 열어 한탄을 하기 시작하는 아란이었다.

 

 

 

“ 사실 나 이번 임무를 하면서 많이 느꼈어. 정말 이 팀에 온 게 잘한 걸까, 괜히 와서 방해만 한 건 아닌가 하고.”

“ 에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나가 오고 나서 우리 팀 분위기가 얼마나 밝아졌는데요.”

 

 

 

성종이 아란의 어깨에 손을 얹어 다독였다. 그런 걱정 하지 말아요. 따뜻한 성종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아란은 아까보다 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픈 우현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어느 샌가 자신은 아픈 우현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현재 아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은 도움을 주러 온 것이지, 보호를 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이번 일로 인해 제 자신에게 꽤나 큰 실망을 했다. 밤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아란, 겨우 이거야? 너 이정도 밖에 안 돼? 하고.

아란이 짜증난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긴 생머리가 서로 엉켜 산발이 되어 버렸고, 그 모습에 성종이 기겁해 그만 하라며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그에 아란이 산발이 된 머리를 한 채 예쁜 얼굴을 못나게 뭉그러뜨리며 울상을 지었다.

 

 

 

“ 필요해. 필요해, 성종아.”

“ 네? 뭐가요? ”

“ …훈련.”

 

 

 

훈련이라는 말에 성종의 입이 자동으로 떡- 벌어졌다. 운동선수를 하며 지겹게도 받아왔을 그 훈련을, 여기서도 하겠다는 말인가? 성종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말리려 해도 아란의 다짐이 너무나도 확고해 보여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결국엔 포기한 듯 허공에 크게 숨을 내뱉었다.

 

 

 

“ 몸싸움 말하는 거죠? ”

“ 응.”

“ 누구한테 배우게요? 성규 형? ”

“ 뭐어!? ”

 

 

 

성종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어선 크게 소리를 지른 아란이었다. 그 갑작스런 고주파에 놀란 성종이 눈을 크게 떠 보이며 어깨를 움찔했다.

 

 

 

“ 왜, 왜요? 성규 형이랑 제일 친하지 않아요? “

“ 그야 그렇긴 하지만…. 안 돼! 김성규는 죽어도 싫어! ”

“ 어째서….”

“ 몰라서 물어? 쟤는 성격이… ”

“ ……… ”

 

 

 

‘뭐 같잖아.’ 이어진 아란의 말에, 성종이 잠시 멍하게 있다 이내 입을 벌려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해오는 아란의 얼굴에 진심이 가득가득 담겨 있어서. 성종의 웃음에 아란 또한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차마 자는 사람 앞에 두고 개 같다고는 못하겠다.

 

 

 

 

“ 음… 우현이 형이 제일 잘 가르쳐 줄 거 같긴 한데 지금 상태가 영 아니니 우현이 형은 안 되겠고. 그럼 명수 형? ”

“ 안 돼! 걔도 안 돼!! ”

“ 아, 왜요! ”

 

 

 

성종이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성규 형은 성격이 뭐 같아서 싫고, 우현이 형은 아파서 안 되고. 그나마 몸 상태도 제일 낫고 성격도 좋은 명수 형이 딱 제격인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는 성종을 보며, 아란이 정말 모르겠냐는 듯이 얼굴을 구겼다.

 

 

 

“ 명수는 왜 안 되냐면! ”

“ ……? ”

“ ……너무 잘 생겼잖아. 분명 집중이 안 될 거라고! ”

 

 

 

너무나도 진지한 아란의 얼굴에, 순간 성종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곧 그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하긴, 명수 형이 조금 많이 비현실적인 캐릭터긴 해. 비주얼 끝장나, 싸움 잘해, 머리 좋아. 정말 신몰남이 따로 없다. 아, 그 싼 티 나는 발음만 제외한다면.

 

 

 

" 아, 이호원! "

“ 에? 우리 형이요? ”

“ 응. 남은 사람이 이호원 뿐이야. 그리고 걔가 제일 잘 싸우지 않아? ”

“ 아아- 그렇긴 하지만…. 누나, 한 가지 충고해드리자면, 우리 형한테 배울 바엔 차라리 우현이 형이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우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드네요.”

“ 안 돼! 그럼 너무 늦는단 말야. 오케이, 그럼 이호원으로 결정. 조금 이따 가르쳐 달라고 가봐야겠다.”

“ 어어? 누나! 정말 후회 할… ”

 

 

 

…텐데. 이어지는 성종의 말은,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를 뜨는 아란으로 인해 그대로 허공에 흩어지고 말았다. 기분이 좋은 듯 팔랑팔랑 걸어가는 아란의 모습에, 성종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누나, 근데 그거 알아요? 우리 형은 누나가 그렇게도 배우기 싫다고 소리를 쳤던 성격 뭐 같은 성규 형보다 성격이 더했음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고, 플러스로 다혈질에, 도중에 안 하겠다고 땡깡을 피울 수도 있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 형은 남 가르칠 만한 위인이 못 된단 말입니다….

 

 

 

“ 에휴, 모르겠다.”

 

 

 

성종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밑 칸에 있는 담요를 꺼내어, 새근새근- 고요한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어 있는 성규에게 덮어주곤 자신의 방으로 가려 발을 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 가지 사실.

 

 

 

“ …가만? ”

 

 

 

성규 형 보다 무섭지 않은 우리 형. 명수 형보다 못생긴 우리 형. 풉- 뭐야. 이거… 한 마디로,

 

 

 

“ 만만하다는 거구만? ”

 

 

 

 

 

 

 


…아아- 불쌍한 우리 형.

 

 

 

 

 

 

 

 

-


“ 호원아 붕대 갈… 어? 아직 자는 구나.”

 

 

 

붕대를 갈아주려 호원의 방으로 들어온 동우는, 여전히 꿈나라에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곤 침대 밑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두 팔을 포개어 침대 위에 올려놓은 채 그 위에 턱을 괴고, 잠들어 있는 호원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 헤- 잘 생겼다.”

 

 

 

눈도, 코도, 요 입술도. 동우는 정말 사랑에 푹 빠진 눈을 한 채 호원을 바라보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하고는 호원의 오른손에 감겨있는 흰색의 붕대를 조심조심 풀어내기 시작했다. 붕대를 다 풀어내고 팔을 지탱해주고 있던 석고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자, 아플 정도로 퉁퉁 부어있는 손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을 보자마자 동우의 얼굴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부스럭부스럭. 호원이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제 팔에서 느껴지는 따듯한 체온으로 인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시선을 살짝 내리까니 익숙하고 귀여운 머리통이 보였다. 혹여나 자신이 깰까, 조심스레 석고를 팔에 댄 채 꼼꼼하게 붕대로 다시 고정시켜주고 있는 동우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호원은 별 말 없이 그저 작게 웃으며 그가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 다 됐다! ”

“ 으헉!! ”

 

 

 

붕대를 무사히 다 감은 동우가 소리치며 고개를 홱- 들어 올리자,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튀어나온 기괴한 비명소리. 동우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두자, 소리 없이 낑낑대며 턱을 부여잡고 있는 호원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자신이 고개를 들면서 그의 턱과 충돌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놀란 동우가 무릎을 세워 자세를 높이곤 호원의 상태를 살폈다. 꽤나 아팠던지 호원이 몸을 웅크린 채 한참을 고통스러워하다 이내 헉, 헉 하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턱을 만지고 있던 손을 내렸다.

 

 

 

“ 호, 호원아 괜찮아? 어떡해…! ”

“ 하…. 아파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형.”

“ 흐엉… 미안해애….”

“ 괜찮아요, 지금은.”

 

 

 

호원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는 듯 시선을 주자, 여전히 울상인 얼굴을 한 동우가 호원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침대에 착석했다. 그가 앉자마자 장난스런 미소를 씨익- 지으며 그대로 동우를 와락- 안아버린 호원이었다. 다친 오른 손이 살짝 부딪혀 조금의 통증이 일긴 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 호, 호원아…? ”

“ 잠깐만요.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우리.”

 

 

 

그 말과 함께 동우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는 호원이었다. 그에 동우 또한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호원의 허리에 손을 감아 깍지를 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고요한 정적 속에, 두 사람만의 사랑이 피어올랐다.

 

 

 

“ 형, 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

“ 뭐를? ”

“ 형은 저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

 

 

 

호원의 질문에, 동우의 입이 앙- 다물어졌다. 자신이 호원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라면 첫 만남. 호원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였다. 난생 처음 남자에게 이끌렸고, 자신에게 모질게 대할 때에도 슬프고 아팠을 뿐, 그가 밉지는 않았다. 동우는 한참동안이나 대답을 망설이다 이내 호원의 가슴팍에 포옥- 얼굴을 묻으며 작게 웅얼거렸다.

 

 

 

“ 처음부터. 너한테 첫눈에 반했어, 내가.”

“ 헐. 진짜요? ”

“ 으응….”

“ 에이, 그럼 내가 졌네? ”

“ 응? ”

 

 

 

자신의 품 안에 안긴 동우를 살짝 끌어내 그 얼굴을 두 손으로 다정하게 감싼 호원이 씨익- 멋들어진 미소를 지었다. 호원의 손 때문에 못나게 뭉그러진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동우가 미간을 곱지 않게 구기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을 움직이던 그 순간,


쪽- 하고 호원이 동우에게 입을 맞추었다. 자신의 뽀뽀에 그저 동그란 눈을 끔뻑끔뻑 움직이는 동우의 반응이 웃겨, 절로 올라가는 입 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는 호원이었다. 형. 동우 형? 조심스레 그를 불러보아도, 동우는 별다른 반응 없이 숨만 쉬는 생물인양 멍하니 호원을 응시했다. 아, 진짜 귀엽다.

 

 

 

“ 형, 대답 안 하면 저 이번엔 더 진하게 갈 거예요? ”

“ 으헝? 아니, 그러니까 지금 우리 뭐 한… 우읍! ”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능구렁이 같은 미소를 지은 호원이 그대로 동우의 두툼한 입술을 한 입에 삼켜버렸다. 당황한 동우가 제 손을 어찌할지 몰라 허공에 띄우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훔쳐 본 호원이, 그 손을 잡아 자신의 허리에 두르게 하고는 더욱 더 그 작고 귀여운 생물체에게 농염하게 파고들었다.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감쳐물자 동우의 입이 저절로 열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호원이 혀를 집어넣어 그의 입안을 살살 간지럽혔다. 동우가 살짝 몸을 움찔하며 이리저리 피하려 하자 호원이 지그시 눈을 내리 감고 그의 혀를 더욱 더 뜨겁게 옭아맸다. 숨 쉴 틈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덕에 호흡이 불안정했던 동우가, 그의 어깨를 살짝 밀어내자 호원이 그 하얗고 작은 손을 자신의 손으로 따뜻하게 감싸 쥐며 마무리로 앙증맞은 입술을 아프지 않게 살짝 깨물고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 사랑해요.”

“ 호…원아.”

“ 비록 시작은 형이 먼저였지만, 앞으로 내가 형을 더 많이 사랑하면 되니까. 아니, 더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 ……… ”

“ 진짜 사랑해요, 동우 형.”

 

 

 

그 다정한 고백에, 동우가 활짝- 예쁘게 웃으며 그대로 호원의 목을 끌어 당겨 와락- 껴안았다. 그리곤 그의 어깨를 귀엽게 턱으로 꾸욱- 짓누르며 그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 나도. 나도 사랑해, 호원아.”

 

 

 

 

 

 

 

 

 

 


* * *

 

 

 

 

 

 

“ 아 이호원, 제바아알!! ”

 

 

 

다짜고짜 자신의 방으로 불쑥- 찾아와서는 싸움을 가르쳐 달라는 아란의 발언에 호원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싸움이라니, 이게 웬 쌩뚱맞은 부탁이란 말인가? 호원이 콧방귀를 뀌며 아란에게 등을 지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리자, 아란이 표정을 구기며 자신 쪽으로 호원의 몸을 돌렸고, 그와 동시에 그의 잘난 미간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 내가 왜 널 가르쳐줘야 하는데! ”

“ 내가 강해지면 너희들 싸우는 데도 더 도움이 될 거 아냐! ”

“ 김성규나 김명수 있잖아.”

“ 걔네는 안 돼! ”

“ 어째서? ”

 

 

 

호원의 질문에 순간, 아란이 헙- 하고 숨을 들이키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차마 그 이유를 말했다간 호원이 길길이 날뛰며 안 한다고 할 것이 눈에 뻔히 보여서. 아아- 어쩌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야?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란의 모습에, 호원이 싫으면 말라는 듯 입을 삐죽- 내밀며 이불을 손으로 잡는 그 순간, 아란이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냅다 소릴 질렀다.

 

 

 

“ 좋아! 네가 나 가르쳐주면, 내가 너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지.”

“ 아이고, 퍽이나.”

“ 정말이야! 너 이거 안 들으면 후회한다? ”

“ 그게 뭔데? ”

 

 

 

역시나 단순한 우리의 이호원. 아란의 말에 금방 솔깃해져서는 잡았던 이불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그녀를 곁눈질로 흘겨보았다. 아란은 자신의 수법이 통해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풀썩-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꾸욱- 감았다. 동우 오빠, 미안해요. 내가 진짜 급해서 그래요. 저를 죽어도 용서하지 마세요.

 

 

 

“ 동우 오빠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줄게! 오빠가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그리고… ”

 

꿀꺽-


“ 과거의 여자들까지도.”

“ 콜!! ”

 

 

 

 

혹시나가 역시나. 이것만은 정말 꺼내지 않으려고 했건만 이게 아니면 절대로 자신을 가르쳐줄 호원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어쩔 수 없이 동우를 강제로 희생시켜야했다. 그래, 이호원 너라면 동우 오빠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지. 아란은 동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는 사실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싱글벙글- 아란의 얼굴을 보며 호원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 뭐야, 그렇게도 좋냐? ”

“ 그러는 너는? 너도 지금 되게 바보 같이 웃고 있거든? ”

 

 

 

호원이 아란의 말에 급히 웃음을 멈추었지만, 신나는 건 어쩔 수가 없는지 입 꼬리를 부르르 떨며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굉장히 웃기면서도 무서워 아란이 치를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호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 자, 그럼 가볼까? 우리의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질 그 장소로.”

 

 

 

 

 

 

 

 

 

 

* * *

 

 

 

 

평소 우현이 자주 훈련하던 사격연습장으로 아란을 데리고 온 호원은 들어오자마자 훅- 밀려들어오는 먼지 섞인 공기에,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신경질적으로 겉옷을 벗어 휙- 던졌다. 넓기는 엄청 넓고 더럽기는 또 엄청 더러웠다. 남우현은 이런 곳에서 하루 종일 총을 잡고 사격을 했다니. 새삼 존경스러워지네. 호원이 입맛을 쩝- 다시며 아란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처음 와보는 이곳이 신기한지 굉장히 큰 연습장에 입을 떡- 벌리고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여간, 저 왈가닥.

 

 

 

“ 정아란! 훈련 안 할 거야? ”

 

 

 

자신을 부르는 호원의 목소리에, 아란이 정신을 차리곤 재빨리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호원과 마찬가지로 겉옷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는 다시 한 번 연습장을 쭈욱- 훑어보았다. 넓기는 참 넓지만 창문이 하나도 없어 통풍이 전혀 되지가 않는다. 몸을 계속 움직이다 보면 덥고 땀도 날 텐데 통풍이 되질 않으니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다.

 

 

 

“ 내가 가르쳐줄 건 별로 없어. 내가 팔만 멀쩡했어도 네 상대가 되어주겠는데 보다시피 병신이라.”

 

 

 

호원이 다친 제 팔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말하자, 아란이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언어선택 하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벌써부터 더운 것인지 불쾌한 듯 양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낮게 욕을 읊조리는 호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자세를 고쳐 잡곤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 일단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싸움. 뭐, TV예능프로 게임할 때 보면, 우스갯소리로 기싸움이 제일 중요하다고 해서 그걸 되게 우습게 볼 수도 있는데, 그건 실전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여. 일단 한 판 붙기 전에 상대방에게 기를 눌리게 되면 선공격도 빼앗길 확률이 높아지지. 그럼 거의 90%는 진다고 보면 돼.”

“ 호오….”

“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방금 말 했던 선공격. 일명 선빵이라고들 하지. 일단 한 번 맞아보면 알겠지만, 센 녀석한테 당하면 진짜 맥도 못 추린다? 한 방 먹고 뻗는 경우도 허다하고 그 충격에 허덕이는 동안 상대방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어? 당연히 계속해서 공격을 해오겠지. 그럼 거의 너의 완패. 사실 싸울 때 기술보다도 더 중요한 건 의외로 기싸움과 선공격이라고 보면 돼.”

“ 우와, 너 좀 다르게 보인다? ”

“ 조용히 하고. 그 다음으로 내가 알려줄 건 4개의 급소.”

“ 급소? ”

 

 

 

모든 게 신기했다. 자신이 전혀 몰랐던 세계를 배우는 것 마냥 괜스레 설레었다. 하지만 꽤나 진지한 모습으로 가르쳐주는 호원의 모습에, 아란은 그 들뜬 마음을 애써 감추고는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는 모범생처럼 정자세로 호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 모습에 호원이 작게 풉-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 사람의 급소를 아는 건 싸울 때 정말 중요해. 특히 너 같은 여자들은 남자를 당해낼 힘이 없어서 한 방으로 끝내는 법으로 좋게 쓰이기도 하지. 일단 자주 사용되고 쉽게 건들 수 있는 것은 귀 뒤, 목 뒤, 인중, 그리고 명치. 이 급소들은 상대방이 공격을 해오는 그 타이밍을 노려 역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편이 편해. 예를 들면, 네가 나한테 주먹을 뻗는다 치자? …나한테 공격해봐.”

 

 

 

호원의 말에, 아란이 정말 때릴 기세로 달려들며 긴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호원이 그 팔목을 가볍게 낚아채 등 뒤로 꺾고는 깁스를 하고 있는 오른쪽 손 날로 아란의 목 뒤를 지그시 눌렀다. 그에 아란이 우와- 하는 탄성을 내질렀고, 호원이 잡고 있던 아란의 손을 놓아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 이런 식으로 하는 게 기본 역공격. 뭐, 되게 흔하게 보여서 과연 이게 먹힐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도 주로 이렇게 싸우거든. 그런데 잘 알면서도 늘 당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기술이야. 근데 너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 남자의 주먹을 낚아채기는 힘들 테니 주먹이 날아오는 그 순간, 몸을 상대방의 옆으로 틀어 일단 피한 뒤 낚아채는 게 좋을 거야. 한 번 해봐.”

“ …어? ”

“ 날 상대로 한 번 해보라고. 간다? ”

“ 어어? 야! 이, 이호원! ”

 

 

 

아란이 말릴 새도 없이 호원은 주먹을 뻗었고 그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아란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호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며 표정을 구겼다. 살짝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짜증스러운 듯한 호원의 얼굴. 그에 아란이 어색하게 웃으며 괜스레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민망해라.

 

 

 

“ 너 그러고 있으면 무조건 당한다니까? 우리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며. 그럼 겁내지 말고 해. 실전이라고 생각 하고 하라고. 나 이번엔 진짜 공격한다? ”

 

 

 

바로 훅- 날아 들어오는 호원의 왼 팔. 아란이 미간을 구기며 눈을 치켜뜨고는 자신에게로 달려드는 그 주먹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집중을 하니 꼭 그 주먹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거의 눈앞에 왔을 때 쯤, 아란이 재빨리 호원의 옆으로 몸을 틀어 주먹을 피한 뒤, 그의 손목을 그대로 잡아채 등 뒤로 꺾어 귀 뒤를 가볍게 눌렀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자신이 해냈다는 것에 놀란 아란과, 배운 것을 금방 실천해낸 그녀의 모습에 굳어버린 호원. 그 정적은, 잡고 있던 호원의 팔을 스르륵- 힘없이 놓은 아란으로 인해 깨졌다.

 

 

 

“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너 이번에도 못 막았으면 진짜 그 얼굴 나한테 깨졌을 걸? ”

“ 우와, 신기해….”

 

 

 

아란은 현재 신세계를 만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냥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렇게 또 엄청 힘든 일은 아니었나보다. 단 한 번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감이 마구 솟구친 아란이 싱긋- 웃으며 다음 것을 알려달라며 호원을 보챘다. 그에 호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 그 다음은 명치와 인중. 명치는 어딘 줄 알지? 가슴뼈 아래 중앙의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 명치야.”

“ 아…. 거기 맞으면 다들 엄청 아파하던데…. ”

“ 나도 꽤나 맞아봤는데 이거 정말 장난 아냐. 맞아본 사람만 안다, 이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으으, 하는 신음소리를 내는 호원의 모습에 아란이 놀랍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저렇게 설명을 하는 호원을 보고 있자니 새삼 그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달라보였다. 역시 국정원 특채가 아무나 되는 건 아니구나…. 호원의 또 다른 면을 본 것 같은 기분에, 아란은 한동안이나 벙쪄있었다. 물론,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보다 크게 소리를 친 호원으로 인해 정신이 금방 돌아오긴 했지만.

 

 

“ 근데 사실 명치나 인중을 때리는 방법은 딱히 없어. 이건 네가 자주 훈련하고 싸워보면 알게 될 거야. 여럿 상대하다 보면 상대방의 움직임이 보여. 아- 다음은 어디로 주먹을 뻗겠구나, 그럼 나는 어디로 파고들면 되겠구나 하고. 예를 들어 내가 너에게 정면으로 주먹을 뻗어 들어온다면, 넌 어떻게 할래? ”

“ 으음… 그, 글쎄? ”

“ 나 같으면 아래로 숙이고 들어가 상대방의 명치를 때릴 거 같은데.”

“ 우와! 정말 그럼 되겠구나! ”

“ 그럼 상대방이 발을 뻗는다면? ”

“ 음… 그, 글쎄…. 그것도 잘….”

“ 나라면 발이 날아오는 방향을 잘 보고 있다 옆으로 몸을 틀어 피한 뒤, 방심한 상대의 인중을 내려치거나 명치에 주먹을 꽂을 거야.”

 

 

 

생각보다 간단한 해답에, 아란이 짝- 하고 손바닥을 마찰시켰다. 하지만 호원은 또 다시 안타까운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아아, 이 어린양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건가…. 아란은 현재 자신의 말만 듣고 그렇게 행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자신은 애초부터 말했다. 명치나 인중부근은 상대방에서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건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정면으로 주먹을 뻗어 들어오거나, 발을 뻗는 것은 자신이 든 예시 중 하나일 뿐이지, 실전에서는 상대방이 옆구리를 노릴 수도, 그리고 되려 자신의 명치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답답한 마음에 호원이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안 그래도 몸이 힘들고 지치는데 덥고 습한 공기 덕에 머리끝까지 짜증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결국엔 성종의 예상대로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버린 호원이었다.

 

 

 

“ 어어? 야, 이호원! 너 뭐해! ”

“ 아아- 몰라. 안해, 안해! 힘들어 뒈지겠네, 진짜.”

“ 야, 이러기야? ”

“ 어. 이러기다.”

 

 

 

또 다시 유치한 일곱 살 남자아이로 돌아온 호원의 모습에, 아란이 혀를 끌끌 차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땀이 많은 체질인 듯, 별로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원은 이미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칼이 땀에 축축하게 적셔져 있었다. 그에 아란이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노래를 부르듯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 동우 오빠 과거의 여자는 어땠을까나? ”

“ ……… ”

“ 아아- 그래, 동우 오빠는 첫 사랑이 되게 늦었다고 했었어. 그게 몇 살 때였더라? 스무 살 때였나…? ”

“ …아, 해! 한다고! 하면 될 거 아냐! ”

 

 

 

역시나 단순한 이호원. 아란의 계략에 넘어가 몸을 벌떡- 일으키곤 먼지 묻은 바지를 탈탈, 털었다.

 

 

 

“ 자, 내가 치고 들어갈 테니 한 번 막아봐.”

“ 뭐, 뭐? 야, 이호원 자, 잠깐! 으아악!! ”

 

 

 

두 사람은 밤이 다 가도록 훈련을 했고, 아란은 본의 아니게 몇 대 맞아 피멍이 들어야만 했지만 호원도, 아란도 팀의 번성을 위해 쉬지 않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서로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물론 호원의 목적은 좋은 뜻에서 살짝 어긋난 것이긴 했지만.

 

 

 

 

 

 

 

 

 

 

 

* * *

 

 

 

 

 

굉장히 넓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무실. 새까만 정장을 차려입고 고급가죽 소재의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는 그저 웃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양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분명 미소 짓고 있었지만 남자의 눈동자엔 왠지 모를 분노와 살기가 어려 있었다.

 

 

 

“ 그냥 이대로 두실 겁니까? ”

 

 

 

그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이가 질문을 던졌다. 그 또한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우람한 체격에 험악한 인상. 그리고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있는 채였다. 그의 질문에도 남자는 그저 재미있다는 듯 양껏 미소를 지으며 제 스스로 잔을 채웠다. 약간은 탁한 노란빛의 양주가 잔에 담기고, 남자는 그것을 또 한 번에 원 샷 해버렸다. 그리고 이내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려 자신의 하수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누가 그냥 둔댔나? 잡아서, 더한 꼴을 당하게 해줘야지.”

“ 그럼 어째서….”

“ 김명수. 그 변호사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알아와.”

 

 

 

남자의 명령에, 그의 하수인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인사를 해 보이고는 크고 넓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남자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잔에 담겨있는 얼음을 입에 털어 넣고 와그작, 씹어 먹었다. 차갑고 단단한 얼음들이 한 순간에 가루가 되어 그의 입 안에서 처참히 녹아 내렸고, 이내 그 잔해들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찾을 수조차 없었다. 남자는 비어버린 제 잔을 차갑게 바라보다 이내 작게 미소 지었다.

 

 

 

“ 아직은 조금 더 즐기게 해주자고.”

 

 

 

 

 

 

 

 

 

…다시는 맛보지 못할 그 평화를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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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이제서야봤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시티헌터 진짜 많이 기다렸는데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제 계속 연재해주실꺼죠? 사랑합니다ㅜㅜ♥♥♥♥♥
10년 전
독자2
설화에요 ㅠㅠㅠㅠㅠ명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가요 ㅠㅠㅠㅠ 전 다음화로 정주행 이어나가겠슺니다!!! 작가님 사랑해요 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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