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단도용 및 2차가공 금지합니다.
시티헌터 (City Hunter)
“ 너 미쳤어? ”꼭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너무 편하게 서있는 아란을 끌고 무작정 방으로 들어와 소리 친 성규였다. 아마도 지금쯤 우현은 이 어이없는 상황들에 혼란스러워 할 것이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갑자기 비가 쏟아진 탓에 온 몸이 비에 쫄딱 젖어 찝찝한 상태로 들어왔는데 대뜸 찾아온 아란이 ‘널 도우러 왔어’ 라고 말하니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는 듯 했다.“ 갑자기 찾아와서는 날 돕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데.”“ 말 그대로야. 김성규 널 돕겠다고. 너와 네 동료들을 도우러 왔다고.”“ 정아란. 너 운동선수잖아.”“ 기사 안 본 거야? 넌 TV도 안 보고 살아? 요새 인터넷이고 TV고 다 내 얘기로 떠들썩한데.”“ …뭐? ”“ 하여간. 진-짜 나한테 관심도 없지.”섭섭하다는 듯 입을 삐죽 내미는 아란이었지만 그런 걸로 서운해 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성규는 별 신경 쓰지 않은 채 축축한 머리를 괜스레 만져댔다. 현재 대중매체가 그녀의 이야기로 시끄럽다는 소리만 들어도 대충 아란이 무슨 짓을 했을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성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요새 들어 인상을 찡그릴 일이 별로 없었는데 또 다시 이런 골치 아픈 일로 얼굴을 구기게 될 줄이야. 아무리 진정을 해보려 해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네가 진짜 미쳤구나, 정아란.”“ 네가 미쳤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난 이미 결심 했고, 네가 반대해도 난 내 결심대로 행동할 거니까.”“ 네 꿈이었잖아.”“ ……… ”“ 국가대표 사격선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너 되게 행복해 했잖아. 그런데 고작 나 하나 때문에 그걸 포기한다고? ”성규의 말에, 생글생글 웃던 아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아마도 정곡을 찔릿 탓이겠지. 국가대표 사격선수. 물론 그 자리에 있으면서 많은 행복감을 느낀 건 사실이다. 열여덟 살이라는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나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그 외에도 여러 선수권 대회,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된 4년 후의 올림픽에서도 여지없이 번쩍번쩍 빛이 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격하면 대한민국의 정아란이라는 이름이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아란은 이미 사람들에게 크게 자리를 잡아버린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을 앞두고 은퇴선언을 했으니 어찌 보면 인터넷과 TV에서 말이 많은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란은 굳어버린 표정을 풀고는 다시 활짝- 웃었다. 물론 약간의 미련이 있는 건 맞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무작정 결정한 것도 아니었고, 자신도 꽤 많은 시간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란은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성규를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오랜만에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열일곱의 김성규와 많이 겹쳐보였다. 그래도 10년 전의 그 얼굴보다는 많이 나아진 성규의 얼굴에 아란은 다행이라는 듯 작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아란이 성규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여름날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대뜸 데리고 온 한 남자아이. 아란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규를 본 그 날을 매우 뚜렷하게 기억했다. 전혀 웃지 않는 얼굴. 그 얼굴에서 보이는 지독한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분노. 고등학생 때 모든 것을 잃은 성규는 뒷바라지 해주겠다는 자신의 아버지의 부탁도 극구 거절하고 학교도 그만 둔 채 고아원에서 지내길 원했다. 그는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고아원에 꼬박꼬박 돈도 보탰고, 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격을 배우러 자주 집에 오곤 했다.그런 성규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아란이었다. 하지만 성규는 쉽사리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에 아란은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도 해봤지만 그 외로움에 허덕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포기가 쉽게 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친구를 하자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성규는 드디어 마음을 열어주었고, 겉으로는 틱틱대도 자신을 대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랬기에 지금 성규가 이렇게 화를 내도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성규여서, 자신의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여서,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네가 날 걱정하는 마음에 그렇게 화를 낸다는 거 잘 알아.”“ ……… ”“ 하지만, 성규야. 난 꿈을 버린 게 아냐. 단지… 새로운 꿈을 찾기 위해 과거의 꿈을 접어둔 것일 뿐이지.”“ ……… ”“ 지금 내 꿈은, 너의 복수를 함께 하는 것. 그거 하나야. 그러니까 네가 내 인생을 망쳤다는 그런 죄책감은 갖지 않길 바래.”아란의 말에, 성규는 더 이상 인상을 찡그리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무표정으로 아란을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에 아란이 어깨를 으쓱하며, 어때? 사격에 있어서 나 정아란 정도면 꽤나 도움 되지 않겠어? 말하니 성규도 이내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란과 마찬가지로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를 그대로 둔 채 좀 씻어야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성규가 욕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아란이 약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집에 와본지는 대략 몇 달 정도 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전보다는 조금 달라진 방의 모습에, 아란이 신기하다는 듯 빙 둘러보고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동안 통화 연결음이 들리더니 곧, 스피커를 통해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성규는 만났니? “ 네, 아빠. 간신히 허락 맡았어요.”- 또 엄청난 잔소리를 들었겠구나.“ 아아- 당연한 걸 묻고 계시네요. 그래도 뭐… ”허락은 받았으니까, 된 거 아니겠어요? 말끝을 흐리다 금세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휴대폰 너머로 제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로 몇 분간 더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은 아란이 휴대폰을 제 주머니에 넣고는 편안한 표정을 해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성규가 욕실에서 나옴과 동시에 방문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규 또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살짝 미소 지은 채 말했다.“ 다들 저녁 먹으러 왔나보네. 타이밍 좋은데? ”“ 어떡해? 어떡하지, 성규야? ”“ 뭘? ”“ 나…… ”떨려 죽을 것 같아.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말해오는 그 모습에, 성규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래놓고는 또 아이들에게 장난을 쳐댈 아란의 모습이 빤히 보여 혀를 쯧쯧- 차는 성규였다. 장난기가 얼마나 많은지, 웬만한 남자아이 저리가라 할 정도다. 긴장된다고 할 때는 언제고 금방 또 앉아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나가자고 보채는 아란의 모습에 성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 안 말리고 나가면 찝찝한데….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는 덕에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던 수건을 대충 의자에 걸어놓고는 젖은 머리를 한 번 털어보는 성규였다.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 시원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뭐, 시원하고 좋기는 하네. 젖은 머리를 한 채로 아란과 함께 방에서 나오자, 거실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이들이 모두 행동을 멈추었다. 우현은 아까부터 내리 생각에 잠겨 있던 건지 소파에 앉아있는 채였고, 명수와 성열은 투닥투닥거리며 싸우기 바빴다. 그리고 성종은 동우가 장 봐온 음식들을 꺼내어 식탁위로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 다섯 명의 행동이 멈췄던 것도 잠시, 이내 곧 성열과 동우가 반갑다는 얼굴을 해보이며 아란에게 다가왔다.“ 우와- 아란아,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 ”“ 누나!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 나도! 지인짜 보고 싶었어, 다들.”이미 성규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동우와 성열은 아란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어서인지 세 사람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운 채 서로의 안부를 묻기 바빴고, 명수와 성종, 우현은 그런 세 사람을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성규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찰싹 붙어있는 세 사람을 떼어 놓고는 일단 소파로 가 앉으라고 눈짓을 해보이자 다들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성규는 호원이 없는 걸 알고는 곤란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려보였다. 그 모습에 동우가 휴대폰을 달랑달랑 흔들며 전화해볼까? 라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성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동우가 단축번호를 길게 꾸욱- 누르더니 이내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은 가라앉은 듯한 호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호원아! 너 어디야? 집에 손님 왔는데.”- 아…. 저 지금 병원이에요, 형.“ 뭐!? 병원? 왜? 어디가 다쳤는데? 많이 다쳤어? ”- 그게 아니라… 아, 동우 형. 제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저 끊어요!“ 어어? 호원아? 이호원!! ”다시 전화한다고 소리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린 호원에, 동우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휴대폰 쥐고 있는 손을 힘없이 내렸다. 어디가 다친 거지. 많이 다친 걸까? 동우가 애꿎은 입술을 깨물며 혼란스러워 하자 동우의 통화를 들은 이들 또한 걱정되는 얼굴을 해보였다. “ 형, 왜 그래요? 이호원 다쳤대요? ”“ 아, 그런 거 같은데…. 지금 병원이래.”우현이 묻자, 동우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대답을 해보였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호원을 걱정하던 중에 결국엔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동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걱정돼서 그냥은 못 있겠다. 나 호원이 있는 병원으로 가볼게. 아란아, 미안.”“ 아니에요, 오빠! 어차피 오빠랑은 아는 사이라 딱히 소개하고 말 것도 없는데요, 뭐.”“ …고마워. 얘들아, 그럼 나 먼저 일어날게. 미안! ”그리고는 남겨진 사람들이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급하게 집을 빠져나가는 동우였다. 그 엄청난 속도에 모두가 벙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성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꼰 채로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하도 고요했던지라 성규의 한숨소리는 모두의 귀에 들렸고, 이내 네 명의 시선이 성규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제 서야 성규가 몸을 다시 앞으로 빼며 입을 열었다.“ 통화까지 할 정도면 크게 다친 건 아닌 거 같으니까 일단은 중대한 사항을 하나 발표할게.”“ ……… ”“ 여기 내 옆에 앉아있는 애는 정 아란이라고 해. 뭐… 내가 힘들었을 때 함께 해줬던 친구이기도 하고, 다들 눈치 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격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지. 마침 행동파로 낄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우릴 돕겠다고 와줬어. 나는 찬성인데, 다들 어때? ”성규의 말에, 성열은 당연히 찬성이라며 웃어 보였고, 성종과 명수 또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제 남은 사람은 우현 단 한 명. 하지만 우현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나 골똘히 하는지 고개를 들어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에 긴장한 아란이 침을 꿀꺽- 삼켰다. 우현은 이 팀의 리더 격이라 그가 반대한다면 아란과 함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하지만 성규는 알았다. 우현은 결코 반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랬기에 성규는 편안한 음성으로 우현에게 말했다.“ 우현이 네 생각은 어때? ”“ 상관은 없지만…. 여자가 하기엔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우와, 지금 저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우현의 배려 섞인 말에, 아란이 두 눈을 반짝이며 우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움찔, 하는 우현이었다. 아, 그러니까, 그게…. 어버버거리는 우현이 귀여웠는지 아란은 조금 장난기가 발동해 우현에게 더더욱 밀착하며 조심스레 성규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나가 역시나. 성규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꼭 그 눈빛이 당장 그 손 떼, 라고 말해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현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아란의 모습에 결국엔 성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란과 우현 사이를 가르고 들어와 그 틈에 낑겨(?) 앉았다. 그에 처음엔 멍했던 아란이 이내 풉,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귀가 울릴 정도로 크게 박장대소 했다. 괜스레 창피해진 성규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고, 그런 성규가 귀여웠던지 우현 또한 고개를 숙인 채 큭큭대고 있었다. “ 자, 그, 그럼 이걸로 모두 만장일치 된 거지? 아 배고프다! 어, 얼른 밥 줘. 밥!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귀여운 성규였다.
동우와의 통화를 끝낸 호원은 저쪽 복도 끝에서 걸어오고 있는 창선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사실 다친 것은 창선이었다. 자신이 복도에서 기다리며 동우와 통화를 하는 동안 창선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창선이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급하게 전화를 끊은 것이었고. 창선은 손부터 팔꿈치까지 길게 붕대가 감겨있는 상태였다. 호원이 칼에 찔릴 뻔 한 것을 막아주려다 되려 자신이 칼에 깊게 베이고 말았다. 일을 대충 마무리 하고는 피를 철철 흘리는 창선을 데리고 급하게 병원으로 차를 몰고 와 거의 떠밀다 시피 응급실로 창선을 밀어 넣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피를 많이 흘려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창선은 조금 안색이 파리하긴 하지만 씽긋- 웃고 있는 상태였고, 그에 안심한 호원이 다행이라는 듯 크게 숨을 내뱉었다.“ 야, 너 나 찌른 그 새끼 얼굴 기억함? ”
“ 어? 아니. 그건 왜? ”“ 왜긴 왜야! 감히 나 이창선님의 팔을 칼로 긋다니. 복수 할 거다.”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복수 할 거라 말해오는 창선의 모습에, 호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여간,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봐 똑같이 유치하다, 유치해. 호원의 비웃음에, 창선이 너 지금 나 비웃냐며 입술을 씰룩이자 호원이 그래, 비웃는다! 하고 소리쳤다. 그 말에 열이 받았는지 창선이 호원에게 마구잡이로 달려들었고, 그 공격을 피한다는 게 그만 창선의 다친 팔을 손으로 내려쳐버린 호원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일순간의 정적. 곧 이어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창선의 비명소리.“ 끄아아악!! ”“ 이, 이창선! 괜찮냐? ”“ 피, 피이…! ”도대체 얼마나 세게 내리친 것인지 꿰맨 상처가 터져 흰 붕대가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아씨, 나 그렇게 세게 안 쳤는데! 게다가 고의도 아니었다고! 당황한 호원이 변명을 늘어놓던 말던, 창선은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일순간의 정적.“ 야, 이호원.”“ 어? ”“ 너 상처 봉합할 줄 아냐? ”“ 야, 내가 의사냐!? 내가 그걸 어떻게 해! ”“ 아씨, 돌겠네! ”“ 왜 그러는데.”“ 아, 나 상처 봉합해준 의사가 여의산데…. 존나 날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고! 글쎄, 내 엉덩이도 막 만지더라니까? ”“ 헐. 변태 의산가? ”“ 그런 거 같아. 노처녀 같았는데…. 아씨, 책임져 이 새끼야! ”창선의 말에 호원이 배를 잡고 웃었다. 정말 그 의사한테는 죽어도 다시 가기 싫다는 듯 얼굴을 완전 구긴 창선이었다. 그 표정을 보자 호원은 그나마 멎고 있던 웃음이 다시 새어 나왔고, 이내 또 다시 병원 복도가 울릴 정도로 크게 웃어제켰다. 그런 호원의 웃음이 단발에 멈춘 것은 그 순간이었다.“ 호, 원아…? ”“ 어? 동우 형, 여긴 왜…? ”자신의 앞에 나타난 동우 때문이었다. 형이 여긴 왜 왔지? 동우가 이곳에 왜 온 줄도 모르는 호원이 철없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우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친 줄 알고 걱정했던 호원은 멀쩡한 모습으로 호탕하게 웃고 있었고, 오히려 저번에 보았던 창선이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에 조금 긴장이 풀린 동우가 크게 숨을 내뱉으며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호원과 창선이었다. 그것도 잠시, 창선은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자신의 팔을 한 번, 동우를 한 번, 쳐다보고는 멍하니 서있는 호원에게 물었다.“ 야, 동우 형 직업이 뭐랬지? ”“ 넌 그걸 고새 까먹냐? 의사잖아, 의사. …어? ”동우의 직업을 말하던 호원이 일순간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는 창선을 바라보자, 창선이 입 꼬리를 최대한 올린 채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왠지 그 미소가 사악해보여 호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감히 저게 우리 동우 형한테…!“ 야, 니네 동우 형한테 신세 좀 지자.”“ …뭐? ”안 된다고, 자기네 동우 형 피곤하게 하지 말라는 팔불출 같은 호원의 말을 일절 무시한 창선이 그를 이끌고 동우의 앞에 가 섰다. 긴장이 풀려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던 동우가,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들자 입에 경련이 일 정도로 어색하게 웃고 있는 호원과, 악마 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창선의 모습이 보였다. 창선의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공포심이 느껴져 동우가 벌떡- 일어나 뒷걸음질 쳤지만 금세 창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형, 저 좀 살려주세요.”그 변태마녀한테는, 절대로 다시 치료 받고 싶지 않아요.창선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 오늘은 한 편이 더 업데이트 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