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성규는 뭉뭉이가 여전히 무섭다>
결국 우현덕분에 반강제적으로 이환웨딩에 이력서를 넣게된 성규. 쇼파에 앉아 안절부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가 휴대폰을 만지고있던 우현에게 물었다.
"우현씨... 저 될까요?"
그러자 버럭 화를내며 소리치는 우현이다. 된다고 돼! 내가 몇번을 말해야돼, 성규씨 거기 백프로라고 취업 된다고! 아니, 단지 성규가 저 될까요? 하고 물어봤을 뿐인데 왜이렇게 화를 내는거지? 라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이랬다. 화장실문을 벌컥 열고 그 안에서 볼일을 보고있는 우현에게 저 될까요? 마당에있는 뭉뭉이에게 사료를 주고있는 우현에게로 쫓아가서 자신을 보고 크르릉대는 뭉뭉이에게 잔뜩 쫄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될까요? 뭉뭉이 산책시키고있는데 또 따라와서 멀찌감치 떨어져서는 큰 소리로 저기요, 이름이 뭐에요? 묻는 성규에게 우현이요, 남우현. 이라고 대답한 우현. 남우현? 우현씨, 저 진짜 될까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물어오는 성규에 진저리가났던 우현은 끝내 폭발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 알겠어요 미안해요..."
그 모습에 주눅이 든 성규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런 성규를 잠시동안 화난 눈으로 보던 우현이 이내 쇼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으로 걸어가 문을 쾅! 닫고는 한참동안 나오질 않는 우현이다. 그 한참이 지나자 문을 열고 나타난 우현은 어느새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살짝 푸른끼가 도는 말끔한 코트를 걸친 우현을 보고 물었다.
"어디가요?"
"네, 어디 가요."
"아...음... 잘 갔다와요."
성규의 의도와는 다르게 돌아온 우현의 대답에 머쓱해진 성규가 뒷머리를 몇번 긁적였다. 나 저녁먹고 들어올거니까 이따 뭉뭉이 밥 주시고. 우현의 명령아닌 명령에 고개를 끄덕여보인 성규. 뒤이어 우현이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것을 지켜본 성규가 씨익 웃었다. 이제 이곳은 완전히 내세상! 혼자 남은것에 기뻐하며 천장을 향해 두 팔을 펼쳐보인 성규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리모컨을 집어들어 우현이 틀어놨던 게임방송에서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음악방송으로 채널을 바꿨다.
헐. 마침 티비에서는 걸스데이의 무대가 진행되고 있었고 섹시한 소진님의 자태에 성규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고는 황급히 곱게 무릎을 꿇고 티비화면을 집중하여 바라보았다. 중간부터봐서 그런건지 일분도 채 되지않아 끝나버리는 무대에 아쉬운듯 입맛을 쩝 하고 다신 성규가 리모컨을 집어들어 채널을 휙휙 돌렸다. 그때 마침 성규의 손가락을 멈추게하는것이 있었으니,
"어머"
성규가 입가에 손을 갖다대고는 중얼거렸다. 오후 다섯시가 채 되지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십구금딱지가 붙어있는 방송이 나오고있었다. 자신을 유혹하는 살색들과 민망한 소리들의 향연에 침을 꿀꺽 삼킨 성규가 리모컨을 들고있던 팔을 서서히 내렸다. 살과 살이 부딪히면서 내는 야살스러운 소리에 헙 하고 숨을 들이마신 성규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영상에 집중해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현관문에서부터 울리는 도어락의 잠금해제 소리에 깜짝 놀라 리모컨을 집어들어 건전한 채널로 황급히 돌렸다. 여기다! 금세 건전한 채널로 돌린 성규가 들고있던 리모컨을 등 뒤로 홱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열리는 현관문.
"아, 내 정신좀봐. 휴대폰을 놓고가면 어쩌자는거야."
머리를 주먹으로 콩콩 쥐어박고는 자신을 자책하며 들어오는 우현의 목소리가 성규의 귓구멍에 콕 박혔다. 그래, 왜 너는 휴대폰을 놓고가고 그러냐! 속으로 외친 성규가 미세하게 안면 근육을 꿈틀하고 움직였다.
쇼파위에 올려진 휴대폰을 집어들고 주머니에 넣던 우현이 티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멈칫했다. 믿습니까? 아멘-. 고개를 돌려 바라본 티비 화면에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한 중년의 남성이 믿습니까?를 외치고 있었다. 열렬한 기독 신자구만. 티비 앞에 무릎을 꿇고 그것을 보고있는 성규를 보며 한 우현의 생각이었다. 그러고는 미련없이 현관문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신발을 챙겨신고는 다시 밖으로 나간 우현. 그가 나간 뒤 문이 닫히고 띠릭 하는 소리가 들린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성규다. 미짜딱지를 뗀것은 수년도 더 됐지만 남의 집에서 당당하게 그것을 보는것은 매너가 아닌것같아 들키지 않은것이 다행이었다.
"좆될뻔했네"
거실바닥에 드러누워버린 성규가 중얼거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비록 자신은 무교였지만 이 순간 만큼은 기독교라며 천장을 응시하며 생각한 성규가 눈알을 도륵 굴려 티비의 머리 벗겨진 아저씨를 보고 또다시 중얼거렸다.
"아저씨도 쌩유베리 감사"
* *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어떻게 됐긴, 내가 원 펀치 쓰리강냉이로 와다닷!"
"지랄"
"지랄 아니야, 볼래? 여기 영광의 상처... 어?"
일전에 있었던 성규를 도와주다 붙은 사채업자들과의 싸움을 떠올리며 기범에게 등을 들이밀던 우현이 멈칫했다. 우현의 행동을 보며 웃고있던 기범은 우현이 어딘가를 노려보고있자 그의 시선이 닿는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왜그래?"
"근데 저기있네."
"누가?"
"나 때린 새끼들."
"니가 원 펀치 쓰리강냉이 날렸다며"
말이 그렇다는거지 임마. 기범에게 위협적인 손짓을 해보인 우현이 술집으로 들어가는 그들을 눈으로 쫓았다. 옆에 서있던 기범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하고 찍어보인 우현이 말했다. 야, 똥차 불러. 우현이 말한 똥차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그 똥차가 아니었다. 수년동안 유흥을 즐기던 우현이 어쩌다 만난 주먹 꽤나 쓴다는 형님아닌 동생이었다. 똥차네 패밀리의 우두머리를 특유의 능글거림으로 꾀어낸 우현은 그들과 거의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사실 똥차네 패밀리의 본 이름은 따로 있었으나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똥들 치워주는것이 딱 똥차라고 우현이 막무가내로 부르는 것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똥차에 대한 설명은 이쯤 접어두고 본론으로 넘어가면 기범은 현재 상당히 의아한 상태였다. 웬만한 일들에는 똥차가 귀찮아할거라며 부르지않던 우현인데 왜 갑자기?
"진짜 불러?"
"불러"
단호박을 통째로 집어삼킨듯 매우 단호한 우현의 대답에 기범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어, 똥차. 할일 없지? 그러면 여기로 세명만 보내. 아, 여기가 어디냐면... 대충 위치를 설명한 기범이 전화를 뚝 끊었다. 야, 불렀어. 우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기범. 그에 우현이 이를 까득 갈았다. 내가 오늘 너네들 족친다... 우현이 이를 너무 꽉 문 탓인지 옆에있던 기범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 * *
'째깍째깍'
거실에 가만히 누워 시계소리를 듣고있던 성규가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절대로 가만히있는게 아니야. 나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곡을 연주하고 있다고. 시계소리가 째깍째깍, 내 배가 꼬르륵, 창 밖의 뭉뭉이가 왈왈... 혼자서 중얼거리는 성규의 모습은 미친사람과도 같았다.
"뭉뭉이가 왈왈?"
눈을 있는 힘껏 크게 뜨며 상체를 벌떡 일으킨 성규가 벽에 걸려있는 시계로 눈길을 돌렸다. 맙소사! 정신을 놓고 잘가라 시간아 하며 시간을 보내버리니 어느새 시계바늘은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해! 뭉뭉이 배고프겠다. 내가 저녁을 거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뭉뭉이는 그렇지 않았다. 있는 힘껏 호들갑을 떨어대며 부엌으로 간 성규가 서랍을 뒤지며 개 사료를 찾았다. 여기있다! 맨 오른쪽의 아래 캐비넷에서 커다란 개 사료를 찾아낸 성규가 입가에 환한 미소를 걸쳤다. 밥그릇은 거기 있으려나? 무거운 사료더미를 끙차, 하며 들어올린 성규가 고개를 갸웃하며 현관문을 나섰다.
크르릉. 현관문 밖을 나서자마자 들려오는 대형견의 위협적인 소리에 성규는 몸을 움찔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안녕? 개가 사람의 언어를 알아들을리는 만무했지만 입꼬리를 올려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인 성규가 저를 보며 위협적인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크르릉대는 뭉뭉이에게 인사했다. 그 크르릉 소리가 왜 이제 밥을 주러나왔냐며 자신을 타박하는것같아 의기소침해진 성규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좀 늦었지?"
하하... 성규의 말이 끝나자마자 왈! 하고 짖는 뭉뭉이에 놀라 숨을 헙 하고 들이마신 성규가 이내 휴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좀이 아니라 많이 늦었네. 속으로 생각한 성규가 손을 벌벌 떨었다. 아, 이제 어떡하지? 초 3때 개한테 물린 이후로는 개를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꿀꺽 침을 삼킨 성규가 뭉뭉이에게로 한걸음 내딛었다. 그래, 옳지... 착하다... 응 그래 거기 가만히 있어... 개를 잡으러 가는건지 밥을 주러가는건지 구분이 가질않는 성규의 행동에 뭉뭉이가 좀 더 크르릉대며 성규를 위협했다. 쉬이, 착하지? 가만히 있어 엉아가 밥줄께 밥. 성규의 입에서 나온 밥이라는 말에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양껏 드러내었던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뭉뭉이다. 그런 뭉뭉이의 반응에 혹한 성규, 파들파들 떠는 두 손으로 힘겹게 들고있는 개 사료를 흔들어보였다.
"그래 뭉뭉아, 밥이야 밥!"
성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왈! 하며 달려드는 뭉뭉이. 그에 왁 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치다 제 발에 걸려 뒤로 자빠지는 성규다. 얼굴로 쏟아지는 사료들에 눈을 꼭 감는것과 동시에 뭉뭉이가 달려들었다. 성규의 얼굴로 떨어진 사료들보다는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사료들이 월등히 많았으나, 바닥에 떨어진건 절대 주워먹지 말라는 주인의 귀띔이라도 있었는지 성규의 얼굴에 붙어있는 몇 안되는 사료만을 햝아대는 뭉뭉이다. 으으... 얼굴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개 혓바닥의 감촉에 얼굴을 잔뜩 찡그린 성규가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가뜩이나 무서워 죽겠는데 제 위로 올라타 움직이지 못하게 앞발로 가슴께를 꾹 누르는 뭉뭉이의 행동은 무서움에 배가 되는것이 충분했다.
"사, 살려줘..."
성규를 올라탄 뭉뭉이가 그를 해칠것같지는 않아보였으나 성규에게 개는 두려움의 대상 0순위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뭉뭉이는 여전히 성규의 얼굴을 햝짝이고있을 뿐이었다. 끼익- 성규가 마당에 꼼짝없이 누워 파들파들 떨고있게된지 얼마 지나지않아 대문이 열렸다.
"어? 뭉뭉아 뭐하아니"
잔뜩 꼬부라진 혀로 말하는 남자, 술에 떡이된 우현이었다. 눈 앞에 나타난 우현의 모습에 그에게로 손을 뻗은 성규가 외쳤다. 우현...씨... 저좀 살려주...세요... 성규의 말을 들은건지 못들은건지 휘적휘적거리는 다리로 걸어온 우현은 뭉뭉이와 성규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노무시키, 너 인누와. 성규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뭉뭉이의 두 앞발을 질질 끌더니 저 멀리로 홱 던져버리는 우현이다. 그에 덩치와 맞지 않는 깨갱 소리를 내며 내동댕이쳐진 뭉뭉이가 구석으로 가더니 몸을 둥그렇게 말아 주저앉았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의 모습은 이렇다 하고 보여주기라도 하는듯 한껏 풀이죽어있는 모습이었다.
"김성규씨, 불쌍한 김성규씨..."
가슴께를 누르고있던 뭉뭉이가 사라지자 상체를 일으킨 성규의 눈에 들어온것은 자신을 동정심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바라보고있는 우현이었다. 김성규씨는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이어지는 우현의 말에 기분이 상한 성규가 얼굴을 찡그렸다. 감자기 뭐래는거야 이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햝고있던 뭉뭉이에게서 구해준것은 정말 고마웠지만 이런식의 동정은 절대 사양이다. 직장도 없고... 그리고... 우현이 계속 웅얼거리더니 결국에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흙바닥에 코를 박아버렸다.
"이 남자 술주정도 만만치 않구만?"
제 술주정이 구토라는것은 주변인들에게서 익히 들어 알고있는 사실이었지만 이 남자는 뭐지, 기절인가?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미동도 하지않는 우현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던 성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난 성규가 우현의 팔 사이에 제 손을 끼워넣어 몸을 일으켰다. 낑낑 소리를 내며 우현을 질질 끄는데 흙바닥에 잔뜩 비벼지고있는 코트가 눈에 밟혔다. 비싸보이는데... 잠시 고민하던 성규가 미련없이 우현을 다시 끌기 시작했다.
* * *
"뭉, 뭉뭉아... 거기다가 싸버리면... 크흡..."
쇼파위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성규가 두 주먹을 머리에 갖다대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거실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고있는 뭉뭉이의 배변활동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것이 그 이유였다. 어제의 외출복 차림으로 거실에 널부러져있던 우현은 잠에서 깨자마자 노발대발하며 쇼파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성규를 깨웠다. 그 이유는 불보듯 뻔했다. 자신이 아끼던 코트 밑자락이 흙과 엉켜있는 채로 엉망이 돼 있었던 탓. 성규는 그쪽이 너무 무거워서 차마 업을수는 없었다며 우현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고 그에 화가난 우현은 급기야 마당에서 놀던 뭉뭉이를 집 안에 들여놓는것까지에 이르렀다.
'왜요, 뭐가 어때서요? 원래 우리 뭉뭉이 집 안에서 길렀어요' 뭉뭉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말하던 우현의 모습을 떠올린 성규가 주먹을 더욱 꽉 쥐었다. 입은 삐죽 나와가지고는 아랫니의 덧니를 자랑해대며 심술을 부리는 우현의 표정은 분명히 얄미웠다. 게다가 지금은 뭉뭉이의 저에게 떠넘기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유치한 그의 행동에 치가 떨린다.
"어흑... 냄새야..."
이놈의 개시키는 제 주인한테 배변 혼련도 못받았나, 생후 몇개월 된 강아지도 아니면서 왜 거실 한복판에 싸지르고 다니는건데! 성규의 소리없는 외침이었다. 틀어막은 코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것의 냄새가 아찔해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휴지, 휴지... 눈에 보이는 갈색 덩어리부터가 시각을 자극하고 있었기에 일단 그것을 덮어두기로 한 성규가 부엌 식탁에 놓여져있는 곽티슈에 손을 뻗으며 다가갔다. 스윽 스윽, 뽑아든 휴지 뭉치를 손에 쥐고는 살포시 그 덩어리에 내려놓았다. 자, 이제 시각을 되찾았으니 이번에는 후각이다! 생각한 성규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저 큰 덩어리를 어떻게 치우지... 집게로 집어야 하나? 집게가 있으려나? 아니면 손으로? 고무장갑을 낄까, 장갑이 어딨지? 뭉뭉이의 변을 손으로 치우기로한 성규가 다시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려하던 그때였다. 현관문에서 울리는,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보이는 우현이다. 뭔가를 품에 안은 채로 들고 오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개사료다.
"읏샤"
개 사료를 쇼파 옆에 내려놓고는 무거웠는지 주먹으로 허리를 톡톡 쳐대는 우현이다. 킁킁, 윽. 이게 무슨 냄새야? 집 안에서 풍기는 묘한 향에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틀어막은 우현이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성규에게 물었다.
"당신 애완견이 똥싸서 그래요."
"똥? 그래서, 치웠어요?"
성규에게 물으며 거실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던 뭉뭉이에게로 다가가는듯 싶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앞으로 한걸음 내딛은 왼발에서 무언가 물컹하고 밟혔기 때문이었다. 휴지 사이사이로 비집고 나온 뭉뭉이의 그것들은 우현의 양말을 푹 적셨다. 휴지로 덮인 그것을 보며 '아니요 아직 저기 있어요'라고 말하려던 성규의 입은 조용히 다물어졌다.
* * *
"우왓, 뭉뭉아 미안해!"
소매를 걷어올려 물에 젖지않게끔 하고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샤워기를 붙잡고있는 성규. 욕조 안의 뭉뭉이가 몸을 흔들면서 물기를 털어내자 그 물을 맞고는 몸을 흠칫 하는 성규다. 아니, 왜 이런것까지 나한테 시켜? 울상인 성규가 물이 흘러나오고있는 샤워기를 조심스럽게 뭉뭉이에게 가져가자 이번에는 월월 하며 짖어댄다. 그것에 또 겁을 집어삼킨 성규는 결국 샤워기의 물을 끌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우현은 뭘 하고 있을까, 분명 방에 콕 박혀서 게임이나 하고 있을것이다. 한숨을 푹 내쉰 성규가 물이 나오지않는 샤워기를 만지작거렸다.
'카톡'
컴퓨터 앞이 아닌 침대에 무료하게 누워있던 우현이 휴대폰에서 울리는 메세지 도착 알림음에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들었다. '아버지'. 메세지 미리보기 화면에 뜬 발신자의 이름에 우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니, 아버지가 언제부터 카톡을 쓰셨지? 앱만 깔아놓고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김비서님한테 배우셨나? 신기해하며 보기 버튼을 꾹 누른 우현의 표정은 금세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인사 1팀 월요일부터 출근이다.', '8시까지 출근시간 엄수할것.' 휴대폰 화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아버지의 딱딱한 말투에 왠지 출근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메세지는 총 세개였다. 두개는 방금 전에 읽었고 나머지 한개의 내용은 이랬다. 내일 오후 3시 문영타워 앞. 중진그룹 둘째 딸. 만나라. 아버지가 말하는 중진그룹의 둘째 딸은 며칠 전 성규가 알바하던 카페에서 만났던 여자를 가리키는것이 분명했다.
"안가면 목이라도 따버릴 말투시네"
입을 삐죽 내밀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써내려간 우현이 전송버튼을 눌렀다. '알겠어요' 긍정의 의미가 담긴 간결한 답장이었지만 우현의 머릿속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퇴짜를 놓을까, 잠시 고민하던 우현이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열두시 오십분. 슬슬 성규에게 점심밥을 차려달라고 독촉할 시간이 된듯해 벌떡 일어난 우현이 핸드폰을 침대위에 내던지고 방을 나섰다. 우왁, 물 털지마 이놈아! 으악 미안해, 미안! 뭉뭉이를 씻기는게 맞긴 한건지 잔뜩 소란을 피우는 성규에 우현이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