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절대명령을 해지한다."
"감사합니다. 다니엘님."
"이리 와봐."
지훈이 다니엘에게 다가가자, 다니엘이 두 손으로 지훈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초췌해진거야"
"다니엘님..."
지훈이 울먹울먹거렸다.
물론 다니엘도 절대명령이 요정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게 아니었고,
그래서 이런 사소한 것에 절대명령을 써 지훈을 고생시킨 것이 미안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저 여인과의 기싸움에서 이기려면....
**
"요정! 오늘은 상태가 괜찮아 보이네~"
"다시 돌아왔어요!"
"그래. 이제는 파업하지 말구~ 다니엘이 괴롭히면 나한테 당장 말해 내가 대신 복수해줄게"
"우리 다니엘님은 누구 괴롭히고 이러시는 분 아니세요!"
"뻥치시네!!!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데?"
"아니예요!!!"
깜짝이야. 요정이 소리지르는 거 처음봤어..
"알았다 알았어."
"다니엘님에 대해 안좋은 말하면 여주님한테 화낼거예요. 여주님은 착하지만, 그런 건 아주 안좋아요"
그래 니네 잘났다 진짜!!
**
다니엘은 아직도 비본님의 명령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대체 자신이 다가갈 수 있는 인간 여인이 누구란 말인가.
"다니엘님.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겠습니까"
"음..별의 후계 또는 빛의 후계가 현재 어디 있는지, 접선은 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겠느냐"
"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누군데?"
"으악!!깜짝이야!!"
내가 나타나자 요정이 깜짝 놀라 자빠지려고 했다.
하기사, 얘네 얘기 엿듣고 싶어서 살금살금 왔으니 뭐.
**
"이 넓은 서울 바닥에서 그 후계들을 어떻게 찾아?"
"요정들의 네트워크가 존재해요. 다른 후계님들도 다 저같은 시종요정이 있으니 그들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다른 요정들도 다 너같이 이렇게 귀여워?"
"제가 제일 귀여울걸요?"
하..깜찍하다.
"다른 요정들은 왜요?"
"너같이 귀여우면 구경하게 따라가려고 했지"
**
"여주님!!여주님!!"
"왜!!나 바빠 빨리 얘기해!"
"내일 다니엘님이 다른 후계님들 만나기로 하셨어요! 같이 가주실 수 있어요?!!!"
드라이기 소리를 뚫고 요정이 모임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른 후계들도 다 파트너를 데리고 온다나 뭐라나.
"그거는 너가 아니고 다니엘이 부탁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어제 여주님이 저한테 말씀하셨으니까 제가 다니엘님을 대신하여 부탁드리는거예요! 들어주실거죠..?"
으악. 저 눈빛을 보고도 어떻게 거절해
**
"굳이 저 여인을 데리고 가야 하는 건가. 혼자 가면 안되는 것이냐"
"다니엘님! 다른 후계님들보다 부족한 걸 드러내시면 안됩니다!"
"곁에 여인이 없는 것이 어찌 부족한 것이란 말이야"
"저희도 후계님들의 명령에 대해 간략하게는 배웁니다.
비본님의 명령. Be Born, 후계의 재생산과 관련된, 즉 여인에 관련 된 명령이라는 것."
"...."
"당연히 여인이 없으면 다른 후계님들보다 진도가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다른 후계들을 만나고자 함은, 그 여인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하기 위함이다."
"다니엘님!!!!"
"흥분하지 말고"
"다른 후계님들은 다니엘님의 경쟁자란 말입니다. 경쟁자에게 해답을 묻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있단 말입니까.."
"원래, 답을 아는 자에게 힌트를 얻어야 더 나은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이기는 방법이고, 나는 그래왔다."
"그러니까!!!!! 다른 후계님들이나 다른 요정들이 다니엘님을 우습게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신들도 다니엘님을 얕잡아보고."
다니엘은 울상이 된 지훈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어루만졌다.
"네 생각은 갸륵하고, 또 나는 그 여인을 데려갈 것이다. 그러니 내 걱정은 덜거라. 착한 요정."
**
"여주씨! 오늘 왜이리 꾸몄어? 남자친구 생겼어?"
"남자친구는 아니고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ㅎㅎ"
안꾸미던 사람이 꾸미고 오면 남친 생겼냐는 그놈의 개소리는 언제 없어질라나..
그나저나 빨리 요정들 보고 싶다~
**
"여주님. 내가 한 말 잊지 않았죠? 다니엘님이랑 연인사이인 척! 이왕이면 다니엘님을 섬기는듯한 그런 행동을 보여주시면 더 좋구요!"
"내가 왜 그런 놈을 섬겨?"
"다른 후계님들보다 더 잘나보여야 해요. 우리 다니엘님은."
"하..."
"한 번만 부탁드려요..네?"
신들이 요정을 두는 이유가 이건가.
자기 부탁 대신 시키고 거절 못하게 하려고?
진짜...거절하면 내가 죄인이 될 것 같은 저 눈빛...
**
"여어 다니엘! 오랜만이야~"
"다니엘. 용케 내려왔네."
와...신계의 미래는 밝겠다.
저렇게 얼굴들부터 광채가 나는데..
솔직히 다니엘 얼굴보고는 신보다 잘생긴 인간들이 많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뭐람. 역시 잘생긴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고 신이었던 거야.
"안녕하십니까. 빛의 후계 시종 대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별의 후계 시종 진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물의 후계 시종 지훈입니다."
역시 요정은 요정인가.
어쩜 저렇게 하나같이 다 귀엽지..?
**
와..여자들 왜 다 예쁘냐.
하긴...다 생긴대로 노는거지..
근데 이런 자리에서 수트입은 다니엘 보니까 나름 또 꿀리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분위기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비본님의 명령은 잘 수행하고 있나?"
"여인들은 다들 어떻게 찾았나."
"비본님이 애초에 내려주실 때 여인에게 내려주시지 않나. 자네는 다른 미션인가."
"아무래도 다니엘은 태생이 남다르니 명령도 남다른 명령인가"
"하하하 야 민현. 너무 그러지 마~ 같이 오신 여성분 민망하시겠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태생이 남다르다고? 다니엘이?
자세한 건 집에 가서 지훈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표정관리 해야겠다.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김여주라고 합니다. 지금은 YU전자 경영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YU면 진짜 큰 곳이잖아요. 와 대단하다..!"
"다들 소개 좀 해주세요"
여자들끼리 모여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빛의 후계 성우라는 사람과 같이 온 여자는 백화점 인포 직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별의 후계 민현이라는 사람과 같이 온 여자는 메이크업아티스트라고 했다.
다들 너무 아름답고 화려했다.
왠지 나 혼자 너무 평범한 사람같아 보였다.
에잇 진짜. 요정들 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현자타임이람.
확실한 건, 요정들은 진짜 누가 봐도 요정이었다.
생긴 것도 요정이고.
물론 우리 요정이가 제일 예쁘고 귀여웠지만, 다른 두 명의 요정들도 정말로 미남들이었다.
**
"다음에 또 봅시다."
"그 다음은, 천상에서 보는 걸로"
하..밤늦게서야 이 길고 긴 모임이 끝이 났다.
왜 우리 요정이가 그렇게 부탁을 했는지 알겠다.
어찌나 여자들이 그 후계들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던지.
서비스업 여자들이라 그런가.
거의 우리 요정이가 다니엘 모시듯 그렇게 후계들을 모시더라.
거의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었다.
**
"여주님. 고마워요"
"뭐가...으으 피곤해 어제 칼퇴해서 오늘 야근 확정인데"
"다른 여자분들은 정말로 오래 같이 살다보니 저렇게 바뀐 거예요."
"...잠깐. 뭐라고?"
"그냥 자연스럽게, 저렇게 바뀐거라구요. 섭리와 같은 거예요"
"그럼 나도 저렇게 바뀐다는거야? 아니지?"
"저 분들은 신의 후계님들에게 선택받은 자들이예요. 그래서 신보다 하등한 계급이 되어 신을 모시게 되는 것이구요."
신에게 선택받은 자는 자연스럽게 신에게 순종하게 된다.
그것이 섭리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다니엘에게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니 괜찮다.
**
"여주씨. 마지막 수정본 체크 좀 부탁해. 그것만 마무리하고 공동문서에 업로드시킨다음에 퇴근해줘."
"네 알겠습니다"
과장 새끼...겁나 간단한 것처럼 얘기하네.
그 수정본이 200장짜리다 새끼야!!!!!!
아 진짜 어제 너무 늦게 자서 졸라 피곤한데. 망했다.
[3시간 뒤]
툭툭-
"으앗 깜짝이야..! 너 여긴 어떻게 왔어!"
"어제 들었어요. YU전자 경영팀에서 일한다. 오늘 들었구요. 야근 확정이다."
"뭐야.."
"그렇다면! 내가 와서 도와줘야죠"
역시 우리 요정이....뒤에? 다니엘?!
"뭐야 쟤는 왜 왔어"
"쟤라니요. 다니엘님께"
"나는 쟤라고 해도 되지 뭘. 암튼, 다니엘은 왜 왔어"
"저는 다니엘님 곁을 벗어나지 못해서 같이 가자고 다니엘님께 간곡히 부탁드렸어요."
"감사히 여기라는 말이다."
"왔으면 내 일이나 도와 그럼"
와....역시 신은 신인가?
200장을 어떻게 5분만에 읽지? 나는 3시간동안 50장 읽었는데...
"이 멍청한 인간들. 5차 수정본인데 이렇게 틀린 게 많다니."
"무슨 소리야. 그냥 한번씩 읽기만 하면 되는건데."
"그러니까 최종까지 이 모양이지. 자 이 문서에는 오타 포함 세 가지 오류가 있어. 첫째..."
놀라웠다.
까딱하면 큰 오류로 이어질 수 있던 미세한 반도체 거래액의 오류를 잡아내었고, 거래 관련된 법에 대해 논리적 오류를 집어냈다.
오타도 10개나 있었다. 이걸 어떻게 다 잡아내냐..
이정도면 물의 신 후계가 아니고 글자의 신 후계인 것 같은데..
"와...대박이다."
"이걸 가지고 여태껏 씨름을 했다니. 정말 한심하군."
"야. 너 말 함부로 하지마."
"...."
"너는 신이라 쉽겠지. 근데 이건 나같은 애들은 밤새워 봐도 이 실수 중 하나 골라내면 다행이야.
못찾아냈다 걸리면 상사한테 혼나고, 징계받고. 그렇게 사는게 내가 그동안 살아온 길이야.
한심하다고 평가하지마. 그렇게 한심해 보이면 한심하지 않게 사는 사람 만나서 그 사람한테로 꺼져."
사실.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될 문제고, 진짜로 걸렸으면 김과장님한테 겁나 깨지고 유팀장님한테 깨질건데.
고마운건데, 자존심이 상했다.
내 회사에 그들을 두고 혼자 내 집으로 와버렸다.
--------------------------------------------------------------------------------------------------------------------
♡암호닉♡
[셸]
여행도 다녀오고 방학 바쁘게 보내느라 연재가 늦었습니다 ㅠ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