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온유 & 이진아 - 밤과 별의 노래
sns의 위력은 대단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았던 내 게시물에는 수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나를 팔로우 하는 사람들 역시 기하급수적을 늘어났다.
신기하네. 나는 그냥 내가 누군지 밝혔을 뿐인데.
계속해서 울리는 인스타 알람이 시끄러워서 우선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해놓았다.
사실 인스타 알람을 끄는 방법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사랑해도 될까요?
05
w. 복숭아 향기
"..."
"왔어요?"
"미쳤죠?"
"그건 아닌데."
김석진이 나를 부른 곳은 본인의 소속사 건물이었다.
영화 보자 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약속 장소를 영화관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소속사로 부를 줄이야.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부른다고 그냥 나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감독님이 바로 알려주시던데."
"..."
"물어볼 거는 그거 하나?"
"왜 불렀어요?"
"영화 보자고."
"..."
"아직 원작 안보지 않았어요?"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아직 원작을 보지 못했다. 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한 것이 맞았다.
누구한테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심각한 기계치였다. 그런 내가 영화 다시보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핸드폰 어플 무음 설정 하는 방법도 모르는 내가 말이야.
리메이크 작을 촬영할 때 원작을 보는 사람도 있고 원작을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각각의 이유는 간단했다. 원작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서 또는 원작에만 국한되지 않기 위해서.
시나리오만으로 봤을 때는 단순히 시골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한 여자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런 작품이 한국에까지 와서 리메이크 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로 나는 원작을 볼 필요가 있었다.
보는 방법을 몰라서 문제였지만.
"아직 저도 원작은 못봐서."
"..."
"이왕 보는 거 같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속도 좋네요."
"그러는 이름씨도 결국은 나왔잖아요?"
"그건..!"
"속 좋은 사람들끼리 영화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배실배실 웃으며 말을 하는 김석진에게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그거 말고는 딱히 내가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
"그나저나 왜 그렇게 칭칭 감고 왔어요?"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요?"
"그건 아니고."
"..."
알면서 지금 그런 말이 나오나?
굳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기자들은 나를 찍지 못해 안달이라는 것을. 게다가 나는 인스타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그들에게 핵폭탄을 던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내가 김석진의 소속사 건물로 들어간다? 기자들에게 찍히면 아주 좋은 먹잇거리나 던져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조금 늦은 시간에 매니저 오빠도 부르지 않고 혼자 여기까지 찾아왔다.
오는 방법은 뭐... 간단했다. 택시 타면 그만이지.
직접 운전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더 위험했다.
"깡도 좋네요."
"뭐가요?"
"나도 봤거든요. 인스타."
...
안바쁜가.
"깡이 좋다고 해야할지 겁이 많다고 해야할지."
"..."
"그건 잘 모르겠지만요."
"굳이 석진 씨한테 그걸 평가받고 싶지는 않아요."
"아. 여기 금연건물이니까 담배는 안돼요. 정 못참겠으면 옥상 가면 되고."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내가 담배 핀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가만히 김석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회사 안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시간에 온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김석진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기에.
"여기서 봐요."
"여기는..."
"맞아요. 우리 연습실."
"..."
얼마 전까지 연습을 했는지 연습실 안 공기는 묘하게 뜨듯하고 눅눅한 느낌이었다.
땀냄새라고 해야하나.
내가 미간을 찌푸리는 걸 눈치챘는지 김석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공기 청정기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연습실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건데 말이지.
그 넓은 연습실을 이렇게 땀냄새로 가득 채우기에 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슨 말이냐고? 연습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말이었다. 안무 대형 맞추는 거 말고는 딱히... 멤버들을 연습실에서 본 기억이 그다지 없었다.
때문에 이 느낌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연습의 흔적이잖아.
어찌보면 당연한 거고.
"팝콘 좋아해요?"
"안먹어요."
"살찔까봐?"
"...짠 거 안좋아해요."
"그럼 콜라?"
"안먹어도 괜찮아요."
먹는 거에 한이 들린 걸까.
왜 자꾸 이렇게 먹을 것을 권하지 못해 안달인거지.
많이 먹는지는 모르겠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김석진은 그다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는 것이었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간단하게 다른 사람들 몸매를 스캔하는 것이 버릇이 된지 오래였다.
그다지 좋은 버릇은 아니었지만 특히 다른 아이돌들을 볼 때는 더더욱 주의깊게 보는 편이었다.
혹시나 내가 뒤로 밀려나게 될까봐 두려워서.
김석진은 객관적으로 봐도 마른 편이었다. 어깨는 넓지만 허리는 가늘었다.
여자인 나보다 허리 사이즈가 적게 나간다 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남자 치고는 꽤나 가는 편이었다.
문득 방탄소년단 안무가 어떤지 떠올랐다.
...
살 찌는 게 이상한 안무이긴 했다.
"노트북으로 볼 건데 괜찮죠?"
"네."
"언제까지 존댓말 쓸 거에요?"
"네?"
"우리 이제 한 달 동안 계속 마주보고 지내야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한 달 넘게지만.
김석진의 말에 멀뚱히 두 눈만 깜박였다.
그러니까 지금 말을 놓자고 말을 하는 건가?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당장 말 놓는 건..."
"그럼 나는 놓을게."
"...어?"
"계속 이름씨 이러는 것도 불편하고. 말 놓는 게 친해지는 데 지름길이라고도 하니까."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었다.
"물론 부담스러우면 바꿀게. 근데 오늘은 나름 친목도모 때문에 만난 거니까."
"..."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좋아."
"김석진."
"와. 바로 말 놓는 거 봐."
미안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다.
-
"원작 보는 거 때문에 보자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왜 다른 멤버들이 여기에 왔는지 알 수 있을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언제 왔는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음... 이름이 뭐더라.
"태태. 콜라 그만 사오라고 했지."
"맥주 싫단 말이야."
"오랜만에 마시고 싶었는데."
아. 맞아. 김태형이랑 박지민이었다.
지난번에 무대 끝나고 나한테 쪼르르 달려와서 이런저런 말을 걸었던 멤버들.
작업실에 있다가 김석진 문자 받고 달려왔단다. 지금 또 전정국도 오고 있단다.
나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어... 이름씨?"
"네?"
"맥주 드세요?"
"아니요."
"아... 그러실 거 같..."
"맥주 도수 약해서 취급 안해요."
"..."
뭐지, 이 정적은.
머리를 긁적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와서 내숭부리는 것도 웃기잖아.
그냥 푸스스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 형."
"응?"
"고창 가서 조심해."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뭔 개소리야.
미리 말을 하는 것이지만 나는 절대 김석진과 술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주량 많은 남자를 잘 보지 못했던 것도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내가 어떻게 알아.
굳이 김석진이 아니어도 남자와 술을 마신 적은 거의 없었다. 혼자 마셨으면 혼자 마셨지.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이 자꾸 반짝거렸다.
무음으로 바꿔놨어도 알람이 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거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는 거 같은데.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콘센트 꽂을 만한 곳을 찾았다.
다들 핸드폰이 있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충전기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충전기 빌려도 될까요?"
"물론이요!"
"고마워요."
"나한테는 반말하면서 태형이랑 지민이한테는 존댓말 하는 거야?"
뒤에서 들려오는 김석진의 말은 무시하고 핸드폰을 꽂았다.
충전이 되려나 모르겠네. 알람이 저렇게 많이 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석진이 내 뒤에 서있었다.
"왜?"
"핸드폰 왜 그렇게 반짝거려?"
"알람 때문에."
"무슨?"
"인스타."
"...너 그거 안꺼놨어?"
끌 줄 몰라.
라고 말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조금 상해 입을 꾹 다물었다.
김석진은 한숨을 내쉬며 내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패턴을 하는 방법도 잘 몰라 그냥 놔둔 나였다.
때문에 그는 어렵지 않게 인스타 알람을 해지할 수 있었다.
내 개인적인 물건을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손을 대는 것이었는데 마냥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계속해서 울리던 알람도 꺼졌다.
"이제보니 너..."
"뭐."
"컴맹이구나?"
"근데."
"있잖아. 프랑스에서는 왜 라면을 못먹는지 알아?"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젓가락 쓸 줄 몰라서?"
"다 불어써서!"
크흐흐흐흐흐흐ㅡ흐흐흐흐흐ㅡ흐흐흐흐흐흫.
김석진은 거의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김태형, 박지민을 봐서는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재개그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지난 번 박지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진짜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다시금 걱정이 밀려 들어왔다.
-
영화는 잔잔했다.
시나리오로 읽는 것 이상으로 잔잔하게 흘러갔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보면 여자 주인공 혼자서 이것저것 만들어먹는 내용이긴 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용이 마냥 없지는 않았다.
말없이 계속해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이거 하나였다.
지금껏 내가 지내온 일상과는 전혀 다르게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물론 여자 주인공 혼자서 하는 고뇌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냥 평화롭지는 않지만.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걱정하는 내 모습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나랑 너무 다른데 내가 이 역을 연기할 수 있을까.
사실 연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나는 사는 것이 연기나 다름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술 못마시는 척, 담배는 냄새도 맡지 못하는 척, 멤버들이랑 사이가 좋은 척, 척. 척. 척.
그런 '척'들이 연기의 가장 기본이니까. 내 일상은 연기로 가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그것이 피곤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왜냐고? 익숙하니까.
빌어먹게도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그다지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그런 동물이었다.
"왜 그래?"
"...뭐가?"
"아니야."
"영화보는데 말 걸지마."
김태형, 박지민은 우리의 뒤에 자리잡고 얌전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금 소란스럽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전정국 역시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랑 김석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트북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아까 팝콘을 먹겠다고 했는데 김석진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갑자기 먹기 싫어진 걸까.
바로 옆에서 사각거리며 뭔가를 먹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좋기는 했지만.
영화는 길지 않았다.
하지만 한 편이 더 남아있었다. 이거까지 보고 갈까, 아니면 그냥 갈까.
지금 가버리면 남은 한 편은 언제보지. 어떻게 보는지도 모르는데.
"하나 더 볼래?"
"시간이..."
"내일 스케줄 많아?"
"아침부터."
"그럼 그냥 다음에 보자."
"..."
"우리도 내일 바쁘거든."
바쁘다는 사람들 치고는 너무나도 열심히 과자를 먹는 것 같았지만...
우선 내게 나쁜 제안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갈 때도 택시를 타던지 해야지. 충전기에 꽂아놓은 핸드폰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나를 멀뚱히 바라보던 전정국의 시선이 서서히 내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뭐지?
"뒷문..."
"...네?"
"뒷문으로 나가라고?"
(끄덕끄덕)
"왜?"
"기자."
"기자가 숨었다고? 언제부터?"
"나 올 때."
"너 올 때 기자가 숨고 있는 거 봤다고?"
(끄덕끄덕)
이건 무슨 대화지.
전정국은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과자에 집중했다.
김석진은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왜?
"기자 왔나봐."
"기자가 왜?"
"나야 모르지. 건덕지 있을까 해서 왔을 수도 있고."
"..."
나 들어오는 거 찍혔으면 어쩌지.
"정국이 올 때 숨는 거 봤다니까 걱정은 하지 말고."
"혹시 모르잖아."
"뒷문 데려다줄게."
"..."
"눈에 안띄게 조심해서 나가."
"...응."
연습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김석진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방금 전 까지의 평화로움이 한 순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알람이 꺼져서 조용해진 핸드폰을 세게 그러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영화를 찍으러 시골로 가면 이런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까.
데뷔를 한 이후부터 쉰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나였다.
나 혼자 멤버들의 수입까지 책임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앞에 있는 김석진의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그러쥐었다. 김석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
"OOO에서 메인보컬을 맡고 있는 성이름 입니다."
"어?"
"이제부터 김석진씨와 같이 영화를 찍게 될 사람이기도 해요."
"..."
"잘부탁드립니다."
김석진은 내가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그러쥐며 작게 웃어보였다.
"저도 잘부탁드려요."
라고 말을 하며.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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