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드디어 민석이 입을 열었다.
루한은 바짝 정신을 차리며 민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석은 고개를 돌려 정면을 주시했다.
곧 회상에 젖어든 듯 그의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해져갔다.
루한은 민석에게서 볼 수 없었던 어두운 기색이 번지자 그에게 좀 더 집중을 하며 그의 말을 들으려했다.
"저는 중국에서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
"분명 2년동안 중국에서 있었던건 맞는데 제 기억 속의 중국은 고작 한달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고가 있었대요. 그래서 그 한달동안의 기억도 모두 병원에 누워서 보낸 기억이죠."
민석의 이야기를 듣던 루한은 그가 해주는 이야기에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이야기 자체가 진지하기도 했지만 그의 표정은 그뿐아니라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케했다.
루한은 어렸을적 팔에 생긴 상처를 떠올리며 자신의 팔을 쓰다듬었다.
루한은 민석에게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그 사고에 대해 물었다.
"... 무슨 사고인지 물어도 될까요?"
"화재였어요.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불길이 떠올라 악몽을 꾸고 해요."
"..."
"그 불길의 기억이 강해서 그런가 사고 전의 기억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9살 초반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는거죠."
"... 그렇군요."
민석의 대답에 루한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가지의 아련했던 기억이 어지럽게 헝클어졌다.
설마했던 일이 점점 더 확실해지자 바짝 굳어버린 머리를 다시 움직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루한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가는데 민석은 아무것도 모른채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냈다.
"그래서 특별했어요... 시우민이라는 그 이름이. 저의 중국에서의 2년을 알아줄 것 같았죠. 그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이 언젠가 나타나
지 않을까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정작 그 이름을 쉽게 쓰지는 못했어요. 그 이름을 들을 때면 사고와 병원에서의 기
억이 생생해서 힘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맞아요. 이상해요. 루한씨에게는 긴 생각도 없이 바로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왔어요. 그런데 더 이상한건... 항상 꺼낼때마다 힘들
었던 그 이름이 루한씨가 불러줄때에는 오히려 좋았어요. 듣기도 좋았고, 마음도 왠지모르게 편해진달까..."
"..."
"그래서 루한씨가 계속 시우민이라고 불러주었으면 했고, 그래서 본명을 말하지 못한 것 같아요. 미안해요."
민석의 말에 루한은 이제 애가 탔다.
묻고 싶은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혹여 괜한 질문으로 그를 힘들게할까 쉽게 물어보지 못했다.
루한은 좀 더 단서를 얻기위해 민석에게 질문했다.
"...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조그마한 것이라도 생각나는 것이 없는겁니까...?"
"없어요. 그 일은 떠올리려 애써도 머리만 아플뿐이었... 루한씨, 왜그래요?"
민석이 고개를 내저으며 루한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기때문이다.
어두운 얘기이긴 하지만 마치 자신의 일처럼 조급해하는 루한이 너무 진지해진 표정을 짓고 저를 보자 순간 입이 다물어졌다.
민석의 물음에 루한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약간 씁쓸하게 보였지만 민석은 루한이 웃었기에 그냥 함께 미소를 짓고 넘겼다.
"저... 루한씨."
"네, 우... 아니 민석군...?"
"루한씨가 괜찮다면 계속 전처럼 불러주었으면 좋겠어요."
"..."
민석의 말에 루한의 씁쓸한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아... 아니에요. 그냥 편한데로 부르세요."
루한의 반응에 거절이라고 생각했는지 민석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민석이 시무룩해진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한은 민석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올려 민석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알수없는 표정의 루한은 손을 천천히 올려 민석의 손을 잡았다.
민석이 놀라며 빼내려 했지만 루한은 꼭 잡은채 놓아주지 않았다.
"시우민... 시우민... 우민..."
"... 루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