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w. 잠결
00.
어렸을 적 어둠이 무서웠던 나에게 어머니는 마치 오래 전부터 흘러 내려오는 전래동화처럼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 이야기는 어렸을 때 무척 궁금했던 이 캄캄한 지하 밖 세상. 나는 태어날 때부터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 속에서 생활하였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성에 있는 하인 중 최하위 하인들만 살아가는 곳이라고 하였다. 당시 지하 밖 세상이 궁금했던 나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과는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곤 하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세상은 늘 오싹하고 무서운 곳, 지하 밖 세상을 궁금해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늘 같은 말을 하곤 하셨다.
"아가, 만약 이 어미가 죽어 이곳을 나가거든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말거라. 특히 이 성의 '주인'은 더더욱."
"왜요, 어머니?"
"그들의 겉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우나 속은 더럽고 추악하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렴. 그 말과 함께 내 뒷머리를 조용히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에 나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며 어머니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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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6살이 될 무렵에서야 지하 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넓은 세상을 눈에 담기에 짧은 시간, 그 시간마저도 노동으로 얼마 보지도 못한 채 다시 지하로 돌아가야 했지만 지하 속에서 듣던 이야기와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양초 하나로 그 커다란 어둠을 이겨내던 나는 지하 밖으로 나오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에 턱이 발 끝까지 떨어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이야기는 늘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이루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과히 멋졌다. 어머니의 말은 거짓말이었어. 어머니는 나를 속였어! 여태까지 믿었던 어머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깨닳자 배신감에 지하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였다. 그런 내 모습을 두려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늘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었던 나에게 커다란 일이 생겼다.
나는 부엌에서 불을 떼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18살, 곧 성인이 될 나이였지만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과 비교하면 어린 나이이다. 아주머니들로 가득한 부엌 한구석에 앉아 입으로 호호 불며 부채질만 하고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아주 잠깐의 일탈을 꿈꾸고자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부엌을 뛰쳐 나갔다.
지하와 부엌만 다니던 아이가 고작 뛰어봤자 얼마나 뛸 수 있을까. 나는 멍청하게도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살던 지하 속 세상이 아닌데 같은 계단, 같은 벽 방향 감각까지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지나가는 하인을 붙잡고 말하고 싶지만 혹여 말했다간 내가 도망간 사실을 알고 내쫓거나 나를 다시 캄캄한 지하 속에 영원히 가둬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문득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바보, 멍청이!
눈가에 맺힌 눈물은 어느새 볼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하나 둘 떨어졌다. 이제서야 어머니가 생각이 나다니, 난 정말 나쁜 아이야. 소리없이 흐느끼며 벽에 쓰러질듯 기대어 울고 있을 때쯤,
뚜벅, 뚜벅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천천히 제 앞으로 다가와 섰다. 고개를 올려 구두의 주인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눈물에 고개를 올리지도 못하고 구두만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을 무렵, 위에서 들리는 달콤한 음성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숙녀분 혼자 이러고 있으면 위험해요."
"...히끅... 끅..."
"곧 어머니 오실 텐데,"
우선 나를 따라 와요, 라며 손을 내미는 남자의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다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순간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말라던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정도로 그는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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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써본 작품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