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러블리즈 - 첫눈
"살고 싶어, 죽고 싶어?"
"글쎄요."
"이런 질문에 글쎄라고 대답하는 건 뭐지?"
"그다지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거든요."
"..."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다들 그렇지 않아요?"
너를 처음 본 그날 너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었다.
사랑해도 될까요?
07 - 上
(그의 이야기)
w. 복숭아 향기
기약없는 생활이었다.
데뷔라는 꿈을 안고 연습실로 들어온 애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연습실에 가면 반 정도를 가득 메우던 애들이 이제 나를 포함해서 6명만 남아있었다.
데뷔가 또 미뤄졌으려나. 아니면 이렇게 6명이서만 데뷔를 하려나.
길거리 캐스팅으로 입사하게 된 나와 다르게 멤버들은 대부분 오디션을 보고 입사를 한 친구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많이 모자랐다. 무엇이? 내 실력이.
어디가서 주눅들고 사는 성격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거는 나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꾸준히 들었던 말이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너 자신을 네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너를 사랑해줄 수 없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아니. 맞는 말이었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고.
하지만 언제까지나 사람이 한결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감을 가득 안고 처음 연습실 문을 열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문 하나 여는 거 조차 쉽지 않았다.
힘이 없다는 말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면 또 누군가가 퇴사를 하지 않았을까, 또 모르는 얼굴이 들어온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멤버들에 비해 뒤쳐지는 내 모습을 거울로 봐야하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 때문에 문을 열기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형. 뭐해요?"
"아. 들어가."
이런 생각을 굳이 멤버들에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세상에 힘든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이걸 '힘들다'라고 표현을 해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내 고민아닌 고민을 아는 사람은 윤기밖에 없었다.
다른 멤버들을 못믿거나 그래서 말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아니었다.
그냥 가장 나이가 비슷해서.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고민거리도 나오고 그러는 법이잖아.
그리고 윤기의 반응은 놀랍도록 담담했다.
내게 있어서 가장 최선의 반응이었다. 어줍잖은 위로보다는 그냥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게 가장 필요했는지도 모르니까.
"아. 소식 들었어요?"
호석이가 이런 말을 할 때는 대부분 두 가지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나오던 애 하나가 퇴사를 하거나
"오늘 새로 누구 들어온다던데."
이름 모를 누군가가 새로 들어오거나.
"아니."
"이번에는 얼마나 있을까요. 최단기록이 이주였는데."
"그러게."
"그래도 정국이나 태형이가 옆에서 많이 챙겨줬는데 말이죠."
그러게.
누군가 들어올 때마다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나와 다르게 태형이나 정국이는 먼저 다가가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태형이가 다가가는 편이었다.
정국이 역시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으니까. 다만 태형이가 옆에서 친근하게 구니 자기도 조금씩 자기만의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걸 알아채기도 전에 다들 나가버린다는 것이 문제지만.
"들어가자."
"네."
혼자 있을 때는 한참동안 망설이던 문을 호석이와 함께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연습실 안에는 못보던 얼굴 하나가 늘어나있었다.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온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아이였다
-
"노래 해봐."
"...네?"
"노래 해보라고. 노래 잘해서 들어왔다며."
"형..."
벌써 태형이랑 어느정도 말을 튼 모양이었다.
옆에서 들어보니 둘이 동갑이란다. 반갑겠네. 그러고보니 태형이랑 동갑인 애는 처음이었다.
갑작스런 내 말에 아이는 눈동자만 데록데록 굴려대며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서 그런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노래 잘해서 들어왔다며. 나 말고 다른 사람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불러야 하는 직업을 가지려고 들어왔잖아.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야지.
내 한 마디 때문인지 호석이도 태형이도 내 눈치만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태형이는 그렇다 치지만 호석이가 내 눈치를 보는 일을 거의 드물었다. 그도 그런게 평소 새로운 연습생을 주로 대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호석이었다.
윤기랑 남준이는 작업때문에 너무 바빴고 나는 그냥 옆에서 지켜만 볼 때가 많았다.
가르치거나 혼내는 몫은 호석이, 옆에서 달래주거나 친근하게 대해주는 몫은 태형이와 정국이.
이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룰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보니까 너무 텃세부리는 거 같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장난삼아 들어오는 곳이 아니었고 어느정도의 위계질서 등등은 필요했다.
특히나 남자들끼리 있는 공간이니 더더욱.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새로운 연습생을 마냥 혼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내지 못하거나 게으름을 부리거나 등등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그랬으니까.
이것은 호석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만 아니면 호석이도 꽤나 친근하고 다정하게 구는 편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못해?"
"..."
"이것도 못해서 어쩌려고. 월말평가 때는."
"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태형이와 호석이가 옆에서 들썩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잡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것을 고민하는 듯 싶었다.
따라나오지 말라는 뜻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지금은 동생들 앞에 있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동생들에는 윤기도 포함되어있었다.
내 손짓을 본 태형이와 호석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래. 내가 한 번 뭐라 했으니 너희가 달래줄 차례이지.
언제 잘랐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잠깐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할 거 같았다.
-
왜 그랬지.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도 알고 있었다. 처음이니 긴장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연습생 선배가 다짜고짜 노래를 하라 그러면 누구라도 당황을 하겠지.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정말 쫓아내고 싶었나? 그건 아니었다. 누군가 계속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는 것은 이제 지겨웠다.
열등감인가?
라고 생각을 하기에도 좀 부족했다. 우선 나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노래를 잘해서 춤을 잘춰서 들어왔겠지. 오디션을 봐서 들어왔다 하니 그건 맞을 것이다.
이거 말고 내가 아는 게 뭔데?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거? 태형이랑 동갑이라는 거?
한숨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아무 생각없이 회사 근처를 걷다보니 도착한 곳은 작은 놀이터였다.
지난번에 남준이랑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고 그랬는데. 회사 사람들한테 들킬까봐 미끄럼틀 뒤에 숨어서 몰래.
그네 위에 앉았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 만든 그네라 그런지 내게는 좀 너무 낮은 느낌이었다.
조금씩 발을 굴렀지만 그네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땅에 닿아있는 내 발 때문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원래 이럴 때는 대부분 밤인데 지금은 낮이었다. 그것도 매우 해가 쨍쨍한 한낮.
분위기 잡는 거 쉽지 않네.
두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따가 가서 사과를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애들이 아이는 잘 달래줬을까. 내가 지금 이런 거 걱정하고 있을 때가 맞을까.
데뷔는 할 수 있을까. 아니. 그걸 떠나서 나는 여기서 계속 버틸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해가 너무 눈이 부셔서 그런가.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들 이럴 때는 눈물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더라고.
하지만 나는 굳이 숨기거나 돌려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것은 눈물이었다.
그것도 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눈물.
울어서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울어서 해결이 되는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매일 울면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고민 역시 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다. 어릴 때 울고 있으면 엄마나 아빠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뭘 잘했다고 우냐고. 그 당시에는 들을 때마다 더욱 서러워지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울 자격이 되는 건가.
혹시나 누군가 볼까봐 고개를 숙이고 입을 틀어막았다.
동생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일지라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
못보던 손이 불쑥 앞으로 내밀어졌다.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 한 소녀가 서있었다. 소녀의 손에는 손수건이 들려있었다.
섬유유연제 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하얀색 손수건이었다.
"...뭐야?"
"그냥. 울길래요."
"울지 말라는 말은 안해?"
"내가 왜요?"
"..."
"어차피 울거잖아."
뚝뚝 떨어지던 눈물이 잠시 멈췄다.
멍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힐끗 내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울던 안울던 어차피 속상한 일은 그대로인데 울면서 마음이라도 안정시키는 게 더 낫지 않아요? 스트레스도 풀리고."
너와의 첫만남이었다.
-
"왜 우는지는 안물어봐?"
"굳이."
너는 내 옆에서 그네를 타며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입고 있는 치맛자락이 나풀거렸다. 그러고보니 교복이네. 태형이나 남준이랑 동갑이려나.
중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어른스러웠다.
"근데 학교 안가?"
"가기 싫어서요."
"날라리네."
"그쪽도 뭐... 그냥 여기 있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그럼 뭐..."
낯가림이 없는 걸까.
처음 본 나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울어도 된다 라는 네 말이 떨어지고 나서 나는 계속 울었다. 덕분에 네가 준 손수건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지만.
"근데 왜 반말해요?"
"너는 왜 존댓말하는데?"
"그쪽이 반말해서."
"교복 입었잖아. 나보다 어리네."
"나이 많아서 좋겠네요."
"별로 안좋아."
그다지 다정한 대화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화제가 정해져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냥 이런 말을 하다가 저런 말도 하고 혼자서 넋두리를 하면 가만히 듣기도 하고. 뭐 그런 근본없는 대화였다.
사실 이건 나랑 윤기가 자주하는 대화이기도 했다.
정확한 핵심 없이 그냥 두루뭉술하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대화하는 거.
이런식으로 나도 윤기도 서로의 고민을 알아채기도 했지. 지금쯤 윤기는 뭐하려나. 작업실에 있으려나. 아니면 피디님이랑?
"얘."
"성이름."
"어?"
"내 이름이요. 얘는 너무 정없어서."
"그쪽이라는 호칭도 정없는데."
"딱히 궁금하지는 않아서요."
싱겁긴.
"너는 왜 사냐?"
"되게 뜬금없는 질문인 거 알죠?"
"지금 뜬금없지 않았던 게 없는데."
"그건 그렇지만."
"응? 그래서. 왜 사는데?"
"그러게요."
"어?"
"그러게요. 왜 살까요."
"...살고 싶어, 죽고 싶어?"
"글쎄요."
"이런 질문에 글쎄라고 대답하는 건 뭐지?"
"그다지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거든요."
"..."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다들 그렇지 않아요?"
"나는 모르겠는데."
"그럴 거면 이런 질문을 왜 해요?"
"그러게."
절대 다정한 대답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해서 내가 원하는 것 같은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정말 내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슴에 있던 웅어리가 조금은 내려간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너는 고개를 돌려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게으름은 이 정도 부렸으면 충분했다. 이제 슬슬 들어가야지. 태형이도 호석이도 내 걱정 많이 하고 있을테니까.
"고마웠어."
"뭘요."
"땡땡이 적당히 치고 들어가."
"봐서요."
"잘있어."
너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발을 힘차게 굴렀다.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조금씩 움직이던 그네가 붕 떠올랐다.
나는 그런 너를 뒤로 한 채 다시 회사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나와 너의 만남은 이렇게 별거 아닌 것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만남 중 하나였다.
아니. 하나였을 것이다.
['둘셋!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내가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티비 속에서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네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
[암호닉]
데이지 뷔밀병기 단아한사과 호두껍질 지민둥이 새글 짐데이 핑진 김석이긴 너만보여 짐니재이 골드빈 두부 짐느러미 하나의 방탄 딱콩 하리보 쵝오
쮸글 핀아란 진달래 별하늘 망개짐니 공백 붕어 뜌 민스님 피치모드 청퍼더 여하 일구구삼 빙빙 베네핏 강여우 키딩미 달달 초록하늘 1218 롸?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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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러브 단비
사실 그냥 자려고 했는데 지금 이 기분은 이 부분을 쓰지 않으면 안될 거 같은 기분이라...ㅎㅎ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을 석진이와 여주의 과거 모습입니다.
여주 성격이 많이 다르다 느끼는 건 착각이 아니에요.
이건 석진이 역시 마찬가지고요.
분량 조절에 실패할 거 같아서 상하로 나눌 수 밖에 없었어요.
하편은 상대적으로 조금 짧을 수도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릴게요.
그럼 다들 잘자세요. 아침에 글을 보시는 분들은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