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놈
04 처음과 그대로
---
"싫다고, 빌려주기“
“싫어 네가, 그냥”
생각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강다니엘이 왜 나한테?라는 의문은 커져만 갔다. 나는 결코 뒤에서 강다니엘 욕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피해를 준적도 없었다. 강다니엘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애였고, 나는 그냥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으니까 애초에 접점이 없었기에 피해를 줄려고 해도 줄 수가 없는 관계였다.
그런데 내게 싫다고 말을 하던 강다니엘의 얼굴에는 나를 싫어함이 분명이 서려있었다. 아니 도대체 왜? 수학책을 빌려달라고 한 게 그렇게 큰 잘못이었나. 아니 그건 전혀 말도 안 되잖아. 저번에 수진이한테는 먼저 책을 잘도 빌려줬으면서.
오늘 기분이 별로 였던걸까. 뭐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나도 한 번씩 이유 없이 기분이 엄청바닥을 칠때가 있으니까. 그럼 진짜 그냥 오늘 기분이 안 좋은 건가.
“야, 옹 말해봤어? 안 빌려준다고 하지?”
“아니 엄청 잘 빌려주던데, 오늘 수학 안 들었으니까 천천히 돌려줘도 된다고까지 하더라.”
다른 애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강다니엘을 몰래 훔쳐보면서도, 기분이야 안좋다가도 좋아지는 거니까, 지금은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합리화를 했다. 진짜로 기분이야 안 좋다가도 갑자기 좋아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옹성우가 내미는 손에 보이는 강다니엘이라고 떡하니 적힌 수학책을 본 순간 내가 지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 건가 싶었다. 아까는 오늘 수학이 들어서 못 빌려준다고 했으면서. 사실은 오늘 아예 수학수업 자체가 없어? 뭐지 이새끼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지.
강다니엘에게 수학책을 빌리러 갔는데 처참하게 까였다.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애들하고는 잘 노는 모습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나한테는 오늘 수학이 들었다고 말해놓고는 옹성우에게 오늘 수학이 안들었으니 천천히 책을 돌려줘도 된다는 말과 함께 책을 빌려주었다. 그러니까 강다니엘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게 아니라 그냥 내게 책을 빌려주기 싫었던 것이다. 내게 책을 비려주기 싫은 이유는 내가 싫기 때문이다.
오늘 있었던 일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정리를 하였다. 근데 결론이 뭐 이래 나 뭔데 불쌍하지?
강다니엘이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한 번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강다니엘은 우리학교의 우상이었다. 외모, 재력, 머리, 성격 뭐 하나 빠지지 않는.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모나지 않고 빛나는 성격이었다. 소외되어 있는 학우까지 챙길 정도로 착하고 친절했으며, 자격지심에 저를 욕하고 다니는 무리들을 보고도 웃으며 인사를 하는 강다니엘은 미련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강다니엘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라.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나라니... 바로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여린 내 마음에 무리였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열받네. 지가 뭔데 나를 싫어해?”
“강다니엘이면 그럴 수도 있지”
“참 나, 그나마 배려해서 수학이 들었다고 말한 건데, 눈치도 없게 굳이 확인 하냐고 하더라. 싸가지 없어!!”
“싸가지라면 너도 만만치 않잖아.”
“야! 옹성우 다시 말해봐, 내가 뭐?”
“여주 너만큼 착하고 좋은 애가 어디 있다고 강다니엘은 널 싫어한데? 진짜 이상한 애다 그치? 하하하”
은근히 신경을 긁어대는 옹성우에게 단단한 주먹을 들어서 보여주자 금세 꼬리를 내리며 눈치를 보며, 강다니엘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강다니엘이 나를 싫어한다. 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마자 느낀 감정은 의기소침, 무기력, 서운함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 화였다. 분노. 강다니엘 니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처음 본 사람한테 그렇게 싸가지 없게 구는 거냐고!
수학시간에 불쑥 치민 강다니엘의 생각에 화가 차올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탓에 복도로 쫓겨나면서부터 강다니엘을 향한 전쟁을 선포를 준비하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강다니엘의 반으로 씩씩대며 걸어갔다. 뒷문을 세게 열고 들어가서 뒷자리애의 어깨를 툭 치자마자, 또 왔냐라는 눈빛을 보내더니 알아서 강다니엘을 불러주었다.
“왜 또 무슨 볼 일 있어? 충분히 말해준거 같은데”
“응 아직 볼일이 있더라고”
“네가 뭐라고 해도 네가 싫은 건 변함없으니..”
“나도 너 싫거든, 내가 지금 니가 좋아서 이렇게 붙잡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큰 오산이야. 아주 큰 대접에다가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거라고, 나도 너 싫다고 싫어! 왜냐면 그!냥! 싫으니까!”
싫다고 외치는 내 모습에 강다니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싫다고 할 줄은 상상도 못했나봐. 큰 소리로 싫다는 말을 한 탓에 강다니엘 반애들과 복도에 있던 애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으나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싫다는 내 말에 잔뜩 구겨진 강다니엘의 얼굴에 기분이 좋아져서 당장 옹성우에게 달려가서 볼에 뽀뽀를 퍼붇고 싶을 정도였다.
“강다니엘, 오늘부터 전쟁이다.”
“대박 김여주 너 다니엘한테 전쟁이다하고 선포했다며”
강다니엘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반으로 돌아오니 언제 소문이 벌써 퍼진 건지 수진이가 잔뜩 흥분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강다니엘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애는 너밖에 없을 걸, 다들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안달인데 와 여주 너 진짜 특이하다, 다니엘 착한데 왜 싫어해? 혹시 관심받고 싶어서?
강다니엘에게 전쟁을 선포한 나를 보며 반응은 정확히 세 가지로 갈렸다. 강다니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며 큰소리친 나의 엉뚱함에 놀라움을 보이는 사람, 강다니엘이랑 왜 적으로 지내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 그리고 일부러 강다니엘에게 관심 받고 싶어서 관종짓을 한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 나는 진짜 순수하게 강다니엘이 싫어서 전쟁을 선포 한건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강다니엘 네 가면을 벗겨주마.
“강다니엘, 오늘부터 전쟁이다.”
“....”
“네가 날 싫어한다니 죽어라, 감히 내게 수치심을 안겨주다니”
“....그만해라”
“김여주 소설 너무 많이 본 듯, 전쟁이다.라니, 쯧쯧 멘트가 너무 구리다 구려, 이 옹성우님에게 물어보지 그랬어, 내가 더 멋진 멘트를 알려 줬을 텐데. 네가 내가 모욕감을 줬어. 어때 이게 한결 낫지? 지금 가서 이 멘트로 다시 하고 ㅇ.....아! 미안, 미안 김여주 아!”
“그래 우리 성우 내 손맛이 많이 그리웠나보네, 그럼 이 누나가 많이 예뻐해 줘야지. 우리 성우는 입이 그렇게 예쁘더라”
“여주야...흥,,흥분을 가라앉혀 보자...아아아!”
아 그래 유일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옹성우. 내일이 아쉬울 게 없는 옹성우는 눈치도 버려가며 신나게 나를 놀려댔다. 어디까지 하나 그냥 보고만 있었더니, 끝도 없이 입을 놀려대는 옹성우에 결국 주먹이 나가고 말았다. 조만간 옹성우랑 강다니엘을 세트로 묶어서 보내버려야겠다.
“아이쿠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내가 앞을 못 봤네”
“뭐 눈이 작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건 아니거든!”
“인정하기 싫으면 말고. 떨어진 종이나 좀 주워줄래?”
“싫은데, 싫은데, 내가 주워 줄 거였으면 왜 밀쳤겠냐?”
가정통신문을 가득 들고 가는 강다니엘을 발견하자마자 화장실을 가려던 발길을 돌려서 그대로 강다니엘에게로 돌진하였다. 내가 달려들자마자 잽싸게 피한 강다니엘 때문에 바닥에 철퍼덕하고 엎어졌으나 계획대로 가정통신문이 복도에 흩뿌려졌으니 성공이었다. 넘어진 게 내가 아니라 강다니엘이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종이를 주우라는 강다니엘의 말에 최대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는데, 주변에 있던 여자애들이 손수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하나하나 주웠다. 이게 아닌데...
“자 니엘아. 도와줄까?”
“아니야 괜찮아, 고마워”
“쟤는 싸가지 없게 지가 쳐놓고 저러냐”
다 주운 종이를 강다니엘에게 건넨 여자애들이 뻘쭘하게 서있는 나를 보며 욕을 하였다. 니들이 나서서 그렇게 도와주면 내가 진짜로 나쁜 사람이 된 거 같잖아. 괜히 미안하게... 강다니엘이 더 괴롭혔다고!
“난 괜찮아.”
표정을 싸늘하게 굳힌 채로 나를 보며 괜찮다고 말을 하는 강다니엘의 표정에 종이 치고 선생님이 와서 교실에 안 들어가냐고 소리를 칠때까지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좀 심했나... 강다니엘 쟤는 자기는 괴롭히면서 지가 당하니까 표정 굳히는 거 봐, 치사하게....
---
처음 맞는 뒷풀이는 OT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 않은 게 신의 한수였다. 기대를 했었다면 괜한 씁쓸할 기분만 덤으로 얻을 뻔했다. 다른 애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할 동안에도 나는 이리현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나는 다른 사람과 먼저 친해지는 능력은 일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술 냄새와 함께 시끌벅적한 소음들이 후각과 청각을 자극하였다. 이미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지만, 새로운 장소는 또 다른 분위기를 안겨주었다. 옆에 있는 이리현이 생명줄이라고 생각하며 팔을 꼭 붙들자, 갑자기 징그럽게 왜 이러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이리현에 미소를 날려주었다. 어쩐지 이리현의 표정이 더 굳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개의치않고 팔을 더 꼭 붙잡았다.
이리현을 따라서 앉은 자리에는 모르는 얼굴들 투성이었다. 내게 오티에서 봤다며, 강다니엘이랑 동창맞지?하며 말을 하는 애들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오늘처음 보는 애들뿐이었다. 이리현은 오늘 하루 동안 계속 나랑 붙어있었으면서 어떻게 얘들과 친해진 건지 이름을 부르며 편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나만 빼고 다 친한 것 같다. 나도 슬쩍 대화에 끼여 보려고 했지만, 끼여들 수가 없었다. 아까는 나 안다고 했으면서 저들끼리 신나서 떠드는 대화에 결국 끼지 못하여서 그냥 술과 함께 차게 식어갔다.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신입생이랑 재학생이랑 섞어서 앉자”
학회장 선배의 말에 자리에서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 테이블을 보니 다들 움직일 마음이 없는 듯 하여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혼자 먹을 술 다른 곳에서 여기서 먹나 저기서 먹나 거기서 거기였다.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아싸같네 나. 옹성우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 올 줄이야.
옆 테이블에 강다니엘이 앉아있었지만 그 옆에 우진이가 앉아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다. 오늘 예쁘고 잘생기고 귀여운 선배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학회장선배가 그 선배들은 오늘 수업이 있어서 못 온다고 했었다.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자 마셔마셔, 어, 선배가 주는데 안마실거야?”
선배부심을 부리며 동기여자애에게 계속해서 술을 권하는 진상선배를, 술을 이기지 못하여 바닥에 잔해물들을 흩뿌린 동기 녀석을, 앞에 앉아서는 묘하게 계속 내 외모를 까내리는 동기애를, 역시나 술자리에서도 사랑을 받는 강다니엘을 보고 있자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 앉아 있나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반듯한 앞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동기 여자애는 거절이란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성격이 좋은 건지, 진상선배의 술을 계속 받아먹었다. 볼이 불그스름하고 간간히 숨을 몰아 내쉬는 게 취기가 오른 게 분명한데도 계속 술을 마시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더 이상 마시면 안될 것 같은데...
“선배, 저도 한잔 주세요. 지은이 취한 것 같은데”
진상선배가 부르는 이름을 주워듣고는 지은이와 진상선배 사이에 끼여 들었다. 그리고는 내 빈 잔을 진상선배를 향해서 내밀었다.
“요거 요거 물건이네, 이름이 뭐야, 우리 예쁜 후배는?”
“김여주입니다. 선배님”
“이름도 예쁘네, 선배님은 무슨 오빠라고 불러”
오빠는 무슨, 당신은 앞으로 꼬박꼬박 선배님이라고 불러드리겠습니다. 예의상 미소를 지으며 조금 더 친해지면 그렇게 부를게요, 선배님. 하고 대답을 하곤 따라주는 술을 원샷 하였다.
아니 근데, 이 선배는 언제까지 술을 주려고 쉬지도 않고 계속 술을 주냐. 정작 자기는 먹지도 않으면서. 괜히 오지랖을 부렸나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옆에서 해롱해롱 거리는 지은이를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에 술주정하면 앞으로 학교 생활하는데 피곤해 질 테니까. 지은아 내일 술 깨면 내 간을 위해서 해장국 정도는 사줘야한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모르겠다. 오늘 나를 보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술을 따라주는 진상선배의 행동에 술이 역류할 지경이었다. 아오 선배만 아니었어도, 실수인척하면서 한 대 팼다 내가. 중간 중간 자리가 바뀌는 와중에도 내 옆자리는 계속해서 진상선배 차지였다.
이건 다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어머 여주야 너 볼 살 엄청 많다. 다이어트 안해?’ 라고 하며 시비를 시전 하던 동기 여자애 때문이었다. 나는 얘 이름도 모르겠는데 어디서 내 이름은 듣고 와서 계속 나한테 시비를 터는지 모르겠다. 시비를 터는 이유는 아마도 강다니엘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여주 넌 엄청 평범한데 어떻게 다니엘이랑 친해진 거야?’ 강다니엘이라는 이름을 꺼낼 때마다 묘하게 굳어지는 입매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여튼 어딜 가나 강다니엘이 문제다.
어쨌든 동기의 눈물 나는 친절 덕에 내 자리는 진상 선배 옆이 고정이었다. ‘여주야 송찬선배 옆자리에 앉아야지!’하고 큰 목소리로 말을 하는 동기의 입을 틀어 막고 싶었다. 앉고 싶으면 너나 앉아.
몇 잔 일지도 모를 정도로 소맥을 연거푸 비워댄 결과, 옆에 앉아있는 진상선배의 얼굴이 하나였다가 두 개였다가를 반복하였다. 아 술버릇이 나오기 전에 여기서 그만 먹어야겠다.
“선배님 저 그만 마실게요. 취한 것 같아서요.”
“술은 마시는 건데 뭐, 더 마셔 더 마셔, 취하면 오빠가 데려가줄게.”
“아니요, 집에는 제가 걸어서 가야죠.”
그냥 이 진상선배의 뺨을 한 대 치고 아싸로 4년 동안 학교를 다닐까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아, 이 지상 변태를 어떻게 하면 좋지...
“선배님, 손은 좀 치워주시죠”
“어이쿠 내 손이 왜 거기 있지.”
실수였다는 듯 말을 한 진상선배의 손은 다시 내 허벅지 위에 올라와있었다. 진지하게 이 선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한 끝에 허벅지 위에 올려진 선배의 손을 탁 잡아채려고 하는데 다른 커다란 손이 그보다 먼저 선배의 손을 쳐냈다.
“선배, 손 간수 잘 하세요.”
무표정으로 진상선배를 보며 말을 하는데, 옆에서 보는 나까지도 괜히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와, 귀여운줄만 알았는데 박력도 있었어.
우진이의 눈빛에 쫄았는지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진상선배는 우진이가 쳐낸 손을 하번 보고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드디어 갔네. 우진아 고마워”
“아니야”
“진짜 내가 딱 뺨때리기 직전이었는데 막아줘서 고마워. 4년 동안 아싸 예약인가 했는데”
“그냥 뺨때리지 그랬어.”
“나 아싸되라고..?”
“아니, 니가 왜 아싸야. 내가 있잖아.”
우진아 너 혹시 등에 날개 감춰뒀니? 라는 말을 삼키며 우진이에게 곱게 발라놓은 치킨을 줬다. 포크에 찍힌 치킨을 보고 ‘이거 나 먹으라고?’하고 말을 하는 우진이에게 내가 아주 열심히 바른 치킨이야 내가 먹을 거 아무나 안주는데 우진이 너니까 특별히 줄게. 하고 말을 했다. 보는 사람이 선덕선덕해지는 웃음을 지은 우진이가 고맙다고 말을 하며 치킨을 먹으려고 하는데 중간에 끼여든 손에 치킨은 그대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야! 그걸 왜 니가 먹는데! 그거 우진이꺼라고!”
“음, 맛있네. 여주야 하나 더 줄래”
“네가 쳐먹어”
치킨을 보란 듯이 꼭꼭 씹어 먹는 강다니엘의 얼굴을 보니 올라왔던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우진이랑 나의 핑크빛 분위기를 방해하다니.
“그거 여주가 나 먹으라고 준건데”
“미안, 여주가 준 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하나 발라서 줄까?”
“아니, 됐어.”
굳이 조금 전 진상선배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술을 먹는 강다니엘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자기 옆자리에 와서 앉으라고 눈을 빛내는 싸가지없는 동기의 눈빛이나 방금까지 자기가 있던 테이블 사람들의 눈빛은 보이지가 앉는걸까, 왜 굳이 내 옆자리에 와서 술을 마셔서 저 따가운 눈빛을 내가 모조리 받게 하는지...하
“야, 웬만하면 다시 니 자리로 돌아가는게 어때?”
“싫은데”
“저기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주 예쁘게 생긴 동기의 얼굴이 보이지 않니? 어서 가보렴, 우리 이리현이도 너를 기다리는데 빨리 가봐”
“내가 왜?”
“왜 냐니, 니가 가야지 내가 이 따가운 눈초리를 안 받고, 우진이랑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낼 거 아니야!”
“아...”
그래 이제 알아들었으면 이만 꺼져 주지 않을래? 라는 표정으로 강다니엘을 쳐다봤다. 엉덩이를 들고 원래자리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은커녕 오리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내 쪽으로 바짝 붙어오는 강다니엘이었다.
“그럼 더 가기 싫은데”
강다니엘이 내가 밀착하자마자 표정이 확 굳어버리는 이리현의 표정을 보여서, 강다니엘을 세게 밀어버렸다. 이리현을 향해서 오해라고 열심히 눈빛을 보냈으나 굳어진 이리현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난 아마 강다니엘 때문에 제명에 못 살 것 같다.
“우진아, 너 술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내가 데려가 줄까?”
“응? 여주 너가 데려다 준다고? 내가 데려다 줘야 할 것 같은데”
“아니야, 난 술 취해도 혼자 집에 잘 가. 우진이 넌 잘생겼는데 귀엽기까지 하니까 혼자 가면 위험해 내가 데려가 줄게.”
뭐가 웃긴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웃고 있는 우진이를 따라서 웃다가 가방을 챙겼다. 아, 지은이도 집에 데려다 줘야할 것 같은데, 이리현은 친한 애들 많으니까 데려다줄 사람이 있겠지. 그럼 지은이만 챙기면 되겠다.
“강다니엘, 지은이 집까지 안전 귀가 부탁해”
“...”
“넌 나빼고 모두에게 친절하고 착하니까 거절하진 않겠지? 그럼 부탁한다”
강다니엘의 어깨를 살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불쑥 내 손목을 잡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비꼬아서 말한 거 들켰나. 모를 줄 알았는데...
“우진아, 내가 여주 데려다 줄 테니까, 너가 지은이 좀 데려다줘.”
“아니 내가 여주 데려다줄..”
“우진이 넌 #여주 집 모르잖아. 그러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가자, 김여주”
아니, 난 우진이 집에 데려다 줘야하는데... 내가 왜 너랑 같이 집에 가야 되냐고! 강다니엘에게 우진이랑 같이 가고 싶다고 말을 해야하는 데, 손목을 꽉 붙잡은 강다니엘의 악력과 어딘가 살벌해 보이는 표정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 진짜 그런 무서운 표정 짓는 건 반칙이지...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데!
강다니엘과 같이 걷는 밤길은 오래전 처음으로 같이 걷던 밤길을 떠오르게 했다. 그때도 강다니엘은 말을 걸 수 없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 걸었었는데. 어째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얘는 변한 게 없냐, 아무 말도 못 하고 세발자국 떨어져서 걷는 나도 그대로고.
BEHIND
화장실에 들어가는 진상선배의 모습을 본 다니엘이 진상선배를 따라 들어간다. 그 사이에 술을 많이 마신건지 비틀거리며 서서 볼일을 보는 진상선배를 보던 다니엘은 일부러 진상선배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그렇지 않아도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는데, 제법 세게 어깨를 친 다니엘의 힘에 진상선배는 바닥으로 넘어진다.
“아오 씨, 누구야!”
“아, 선배 죄송합니다. 제가 술에 좀 많이 마셔서..”
“적당히 쳐먹어, 술 취해서 다니지 말고”
누가해야 될 말인지 모르겠는 말을 한 진상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비틀거리며 다시 바닥으로 넘어진다. 화장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진상선배의 모습을 보며 조소를 흘리던 다니엘은 손을 내민다.
“선배 잡고 일어나세요.”
다니엘이 내민 손을 잡고 진상선배가 일어나려는 순간, 다리를 건 다니엘에 다시 바닥으로 넘어지고 만다.
“야 이새끼야 지금 장난해!”
“네, 지금 장난하는데요.”
다니엘은 바닥에 누워서 소리를 치는 진상선배의 말을 가볍게 받아쳤다. 발음도 새고 눈을 자꾸 감는 게 다음날이면 기억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굽혔던 무릎을 편 다니엘은 너무 세지 않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게 진상선배의 오른손을 밟았다. 짧게 비명을 지른 진상선배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아- 더럽게”
조금 전 진상선배의 손을 잡았던 오른손을 깨끗하게 씻어낸 다니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여주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갔다.
“그냥 화장실에서 살지 왜 다시 왔냐, 우진이랑 핑크핑크 좀 해보자.”
“우진이는 마음이 있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아픈 곳 찌르지 마라. 재수 없어”
다니엘을 흘기고는 다시 치킨을 열심히 바르는 여주의 모습에 다니엘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는 우진이 줄거니까 너 탐내지마!‘
으름장을 놓는 여주의 모습에 다니엘은 또 우진이의 입에 가기 전에 치킨을 먹을 생각뿐이었다.
----------
너무 늦게 돌아왔죠?ㅠㅜㅠㅜㅠ 죄송해요 대신 분량을 짱짱하게 돌아왔습니다.ㅎㅎㅎ
다들 진상선배 손 치우는거 다니엘인줄 알았죠?그렇죠?!!!ㅋㅋㅋㅋㅋ
(ㅠㅜㅜㅜㅜ 점검때문에 이미지가 안올라가서...ㅠㅜㅠ 이미지는 다음에 올릴게요ㅠㅜㅠ)
넘치는 암호닉 신청에 저 행복에 살고 있습니다ㅠㅜㅠㅜ감사해요 ♥
♡암호닉♥
[째로베로스], [구르밍], [엿기], [바니], [말차],
[요정], [베리], [뿜뿜이], [달빛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