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밥 얻어먹으러 나가서 왜 지쳐서 들어오냐? 윤기오빠 만나고 온 거 아니야?"
"응. 근데 밥을 억지로 먹었더니 체한 것 같아…."
"뭐 먹었는데."
"스테이크.."
"와우. 너는 스테이크를 억지로 먹냐? 나 참.. 돈 없는 사람은 부러워서 어떻게 사냐?"
"미안.. 부러우라고 말한 건 아닌데..
우리 월세 안 냈지.."
"엉. 기다려라. 이 언니가 오늘 월급이니 낼게."
"미안해.. 두달동안 난 돈도 안 내고.."
"안 낸 거냐? 못 낸 거지."
돈이 없어서 두달동안 월세를 내지도 못 했다. 그렇다고 월세를 낼 형편도 아닌지라
한달에 옷 한 번 사입는 것도 힘들 정도랄까.. 6년동안 같이 살면서 빚도 1000만원 가까이 있다보니
돈 1000원만 있어도 통장에 넣는 그런 상황이다.
화영이라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내 사정 봐줘가면서 돈을 다 내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서 더 집에 못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안 구해지고.. 괜히 서러워져서 베게에 얼굴을 묻고 닭똥같은 눈물을 찔끔 흘렸는데.
화영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빠르게 들어보였다.
"노여름 너 이거 버린다? 3년전부터 버린다~ 버린다~ 하더니. 징하게도 갖고있네."
"잠깐!…."
"뭐."
"아냐.. 버려."
예전에 3년이나 사귄 김석진하고 찍은 사진이나, 반지가 담긴 유리상자를 버린다는 화영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화영이가 진짜 버린다? 하고 다시 확인사살을 한다.
응. 된다고. 내 말에 진짜? 하고 다시 되묻는 화영이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 하지만 내 손으로는 못 버리니까
네가 버려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내 말에 화영이가 그럼 버린다- 하고 쓰레기봉투에 넣으려기에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아서는 소리쳤다.
"내가!!"
"아오! 놀래라!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미쳤나!"
"내가! 버릴게.내가 버려야 버리는 거지! 그럼!"
"그 버려보세요. 자."
화영이가 못 믿겠는지 나를 놀려댔고, 나는 그 유리상자를 짜! 하고 신나게 쓰레기통에 던졌다.
6년동안 버리지도 못 하고 찔찔 짜기만 하던 나만 봐왔기에
화영이가 놀란 눈으로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내가 예! 하고 소리를 지르면
화영이도 같이 소리를 질렀고, 옆집에서 시끄러운지 벽을 쾅- 치기에 우리는 다시 조용히 멈춰서서는 베시시 웃었다.
저녁이 되었다. 재수없게 눈까지 내리니 기분이 안 좋아서 커텐을 쳐버리고선 한참을 멍때리는데.
누군가 우리집 문을 쾅쾅- 두드렸다.
아무래도 여자 둘이서 사는 거라 무서워서 아무말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곧 익숙한 목소리의 아줌마가 소리친다. 보나마나 월세 받으러 온 거겠지.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이 동네 개들이 다 놀라서 짖는다.
문을 열자 주인 아줌마가 역시나 월세 얘기를 하다가 꺼낸 얘기는
"두달이나 밀렸어. 다른 집들은 꼬박꼬박 주는데. 우리집도 사정이 있는지라.
더는 못 기다려줘.. 집까지 빼줘야 될 수도 있어."
그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아줌마에 화영이랑 나는 지친듯 침대에 누워서 한숨을 쉬다가
뭐가 또 재밌는지 키득키득 웃기 바쁘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왜 항상 불쌍할까. 당연한 거겠지만..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내가 보기엔 돈이 전부인 것 같아서.. 현실이 참 슬프다.
그러다 250에 30을 더 얹혀서 준다는 윤기오빠의 말에 떠올라 화영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나 가수 매니저할까?"
"미쳤냐?"
"왜 바로 미쳤냐고 그래…."
"꼼꼼해서 잘은 하겠다. 근데 뭔 가수 매니져야. 윤기오빠가 꽂아주디??"
"응!"
"하지마. 그거 가수보다 더 힘들대."
"한달에 250.. 아니! 280!"
"해."
"……."
"당장."
"그래서 말인데.."
"어. 돼 돼."
내 말에 된다며 신난 듯 흥얼거리는 오빠를 보니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저렇게 콧노래도 못부르는데 어떻게 노래를 만든대. 완전 음치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보이는 오빠를 빤히 보고있으면 오빠는 아씨- 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아마, 전화를 안 받나보지? 뻘쭘한듯 헛기침을 하고선 나를 보는 오빠에 같이 뻘쭘하게 봐주자
오빠가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돈은 좀이따 계좌로 보내줄게. 일단은 이 새끼 좀 만나러 가자.
아마 집에 있을 거다."
"응. 근데..!"
"응?"
"누구야?"
"에?"
"가수 누군데? 누구라곤 말 안 해줬잖아…."
내 말에 아아아아- 하고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선 베시시 웃는 윤기오빠가 새삼 너무 행복해보여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있어. 완전 착하고, 정 많고, 눈물 존나 많은 새끼. 걱정마. 인기 많은 새끼는 아니라.
너 힘들지는 않을 거다."
"……."
"가자."
타- 하고 자신의 차에 올라타는 오빠에 나도 따라 조수석에 올라탔다.
완전 착하고.. 정 많고, 눈물 많은 사람..? 다행이네.
못된 사람은 아니겠지. 오빠랑 친한 동생이라면 뭐..
딱 봐도 엄청 비싸보이는 오피스텔에 입을 떡 벌리고 아파트를 올려다봤더니
윤기오빠가 내 입에 손가락을 한 번 넣어보고선 말했다.
"야. 이 집이랑 내 집이랑 3000만원밖에 차이 안나. 우리집에 왔을 때보다 더 놀래냐??"
3000만원밖에? 내 표정을 보고 또 웃음이 터진 윤기오빠가 지하로 들어가는데
우와.. 지하 마저도 비싸 보여.. 진짜 촌에서 온 사람 처럼 입을 벌린 채로 엘레베이터까지 탄 것 같다.
25층에 사시는구나.. 아파트라곤 15층까지 있는 아파트에만 살아봐서 모든게 다 신기하다.. 신기해.
와 근데 더 신기한 건.. 층마다 집이 하나씩 있다는 것이다.
문 앞에 서서는 초인종벨을 누르자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고, 문을 열어주지않자 윤기오빠가 야아- 하고
문을 두드린다.
"열어주겠지이.. 성격이 급해서 어떻게 살려고 그ㄹ.."
오빠가 이 새끼 일부러 안 열어- 하고선 비밀번호를 치는데 나도 모르게 눈을 가렸다.
남의 집 비밀번호는 함부로 보는 게 아니니까. 아마도 말이다.
문을 열자마자 엄청나게 넓은 신발장에 1차로 입이 떡 벌어지고, 다음으로 복도가 보이는 현관에 2차로 입이 떡 벌어졌다.
또 3차로는....
"야 너는 집에 있으면서 전화도 안 받고, 문도 안 열어주냐?"
분명히.. 인기없는 사람이라고 했었잖아.
"맨날 비밀번호 치고 들어오면서 뭘 열어달라는 거야."
이 사람은 티비만 틀면 나오고, 길거리를 지나다녀도 이 사람 노래소리가 들리고..
얼마전에 미국가서 상까지 다 받아 온 사람인데... 이게 인기가 없는 사람이야?
"네가 빨리 안 여니까 그러지. 네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인마.
아! 얘는 내 친한동생 노여름 인사해 둘이."
"아.. 안녕하세요."
버릇처럼 악수하려고 손이 먼저 뻗어졌다. 내 앞에 서있던 전정국은 나를 한 번 내려다보고선
그냥 등 돌려 걸어가 식탁 의자에 앉는 남자에 나는 뻘쭘한 손을 거뒀다.
"얘 운전은 할줄이나 알아?"
초면부터 운전은 할줄이나 아냐며 나를 얕보는 이 남자는..
"네! 할줄 알아요."
전정국이다.
눈하덮 2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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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이 내용을 공책에 썼었던 거니까... 이 글도 늙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