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은 자유롭게 틀어주세요!
"너 그거 아냐? 너 해파리 닮았어!"
"시바라 그럼 니는 아메바 닮았디!"
초등학교 내내 들어왔던 내 별명은 해파리였다. 아주 못 생긴건 아니었지만 때깔이 곱지 않은 머리칼, 땅딸막한 키와 약간은 통통한 종아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엄마의 유전자를 받아 그나마 최선을 다하고 있던 눈을 제외하곤 내 몸뚱아리는 평범 그 자체였다. 그런데 김상균이 나보고 예쁘댄다. 시력이 혹시 나쁜 건 아닐까, 아니면 눈에 이상이 있다던가. 혹시라도 시력이 나쁘다면 최대한 라식수술과 안경 쓰는 것은 하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것도 아님 가끔 뭐뭐 나라가 연구한 조사나 칼럼에 따르면 콩깍지는 장점을 극대화 시켜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효과가 있다던데 이 쪽이기를 빈다. 기왕이면 평생 깍지 쓰되, 그래도 아주 가끔만. 내가 사랑받고 싶을 때만 쳐다보아야만 한다. 아니면 내가 정말 예쁜 줄 아는 착각을 할지도 모른다. 눈에서 꿀이 떨어진 다는게 이런 것일까. 앞을 보지 않으니까 어디 부딪힐 것 같은데 꼭 내 얼굴 보기를 고집한다.
"저기요, 사장님. 앞 보고 걸읍시다."
"네?.."
"제 시야 가리시면 저도 위험해져요."
"어, 잠시만요."
내 자존감을 채워주기 위한 그만의 계책일까, 아니면 그냥 날 놀리려는 것일까. 이 자세를 텍스트로 쓰기엔 매우 모호하지만 김상균은 내 얼굴에 시선을 내리꽂으며 모로 보고 상. 하체는 정면을 보고 걷고 있었다. 저러다 집까지 가면 목 디스크가 걸리지는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사장님 앞 똑바로 보고 걸으란 소리엔 짙은 양 눈썹이 개키워지며 강아지가 되었다가 내가 위험해 진다는 말에는 곧바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김상균이 말했다.
"힘들었어요."
"뭐가요."
"너 나한테 오는 거 기다리느라."
손 깍지에 다른 커다란 손 하나가 겹쳐진다. 급작스레 밀려오는 따뜻한 신경에 오감이 정지한다. 김상균의 지문이 천천히 내 손가락 마디 안쪽까지 칩임하며 내가 자기것이라는 걸 각인시킨다. 겨우 손 잡기 하나 했을 뿐인데 내 교감신경을 건드려 온 몸의 털이 빳빳이 기립했으며 등가에 땀이 줄줄 맺힌다. 시발. 모솔인 거 티내냐! 김상균의 손은 차가웠다. 뼈마디가 저릴 정도로. 나는 이 한파에 한 줄기 구원자처럼 그의 손가락 사이를 으스러지도록 잡았다. 날 얼마나 기다린거야...빨간 코, 푸르뎅뎅한 입술, 차가운 손 길어진 머리. 모든 것이 그가 날 기다린 시간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를 입증케 했다. 가슴이 쓰러렸다. 못난 년. 한 없이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
"어머어머 세상에."
미친 반응 보소. 박수까지 짝짝 치면서 반응 하는 게 권현빈 거의 아줌마인줄. 김상균에게 빛나년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허락을 맡고 대충 현빈이와 용국이에게 그 썰을 풀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더 잘난 여자가 김상균 곁에 5년씩이나 있었단 거다. 다시 한 번 쓰라렸던 그 기억을 반추시키며 이야기를 풀자, 별빛을 박아 또렷해진 눈동자들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문제의 시발점을 설명한 뒤에는 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문점이 뒤따른다. 자, 그럼 여기서 우리는 김빛나가 올 때 해야 하느냐.
"야, 만약에 있잖아? 그 사람이 너 비웃잖아? 머리칼 쥐어 잡아!"
권현빈은 주먹에는 주먹으로 나가자는 복수의 방법을 내놓았다. 그냥 뭐 보편적인 대답이네. 10점 만점에 0.1점도 드리겠다. 너무 짠가.
"그X(ㄴ ㅕ ㄴ) 모가지를 꺾어서 콧구멍을 찔러버리자!!"
김용국이 제 손바닥을 부딪히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과 어투가 흡사 아동이 선생님 점심시간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해맑다. 김용국은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중국인이라고 들었는데 그 X들어간 말은 어디서 배운지 모르겠다.
"그 말 어디서 배웠어요. 오빠"
"사장님. 가끔 비속어 쓰셔. 진짜진짜 화날 때만."
"거짓말 말아요."
"진짜야. 언젠가 쓸 때가 있다고 알려주심."
이야기를 마친 김용국은 더 흥미가 없어졌는지 디저트를 제조하러 들어간다. 뭐지. 충격먹은 건 나뿐인가? 사장님이 비속어를 쓰신다고? 뒤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가 욕의 근원을 상세히 설명하라 독촉하자, 김용국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슬핏 찌푸리며 조리기구 몇 개를 주방 테이블 위로 던진다.
"그럼 내기하든가."
"알바하면서 사장님 언젠가 비속어 한 번은 쓴다."
"오키 용국 오빠 돈은 내 것이다."
***
머리를 대충 질끈 고무줄로 질끈 묶고 밀가루를 잰다. 김상균이 이제 여유로울 때는 같이 데이트 하자고 해서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윽고 주방의 경계에 있는 흰 커튼을 걷는 사라락 소리와 함께 김상균이 들어온다. 검은 구둣발이 주방을 넘는 순간 나는 뒤로 넘어오는 후광에 놀라고 말았다. 김상균이 웬일로 유니폼을 벗은것이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의 착장, 단추는 사람이 고지식해 보일정도로 목 끝까지 단정하게. 그러나 팔 끝은 조금 걷어서 요리를 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성난 초록색 핏줄을 보여주도록. 이것은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라 불리는 와이셔츠 착장의 법칙이 아닌가! 코 끝이 저릿해진다. 시발 코피와 동시에 험한 욕이 쏟아질 뻔했다. 김상균 사랑해!!! 큼큼. 나는 목울대를 가다듬어 칭찬을 할 준비를 한다.
"사장님. 오늘 유니폼 안입어요? 셔츠 입은 거 예쁘네요."
"응, 고마워. 저녁에 볼 일이 있어서."
응 고마워래 미친...나는 왜 김상균의 반말에 씹덕사를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상균은 최근 들어 반말이 편해졌는지 한 번 말을 놓고 난 뒤로는 둘이 있을 때만 반말을 썼다. 디저트를 가져가기 위해 주방으로 넘어온 권현빈이 김상균의 착장을 보곤 광대근육을 한껏 폭발시킨다. 그리고 카페 사람들 다 들으라는 듯이 소리친다.
"사장니임! 설마 얘한테 잘 보이려고 정장 입었어요?"
"아, 아니에요!!"
권현빈(22세)/깐족대마왕,밋토
"마핰핰핰. 사장님 진짜 웃기네여."
김상균이 눈썹이 아래를 향하며 얼굴이 빨개진다. 코끝이 잠깐 찡긋하더니, 정신을 각성한 듯 허둥지둥 위생 비닐장갑을 낀다. 손이 살짝 미끄러져 상균이 밀가루를 그릇에 아무렇게나 쏟자, 어느새 쟁반 위의 설거지 거리들을 들고 들어온 용국이 그를 보고 또 팩폭을 날렸다.
김용국(23세)/프로팩폭러
"사장님 얼굴 불타는 고구마 같네요."
"오빠! 사장님이 아니래잖아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 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와 등의 구전 속담과 같이 나는 남자친구의 편을 좀 들어야겠다. 저 놀림의 고수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맞는 김상균을 변호하기 위해 나는 소리쳤다. 아니라고요. 내 남친 오늘 볼 일 있대잖아! 변호하다보니 평소에 김용국에게 놀림받은 서러움까지 가산되어 더욱 언성이 높아졌다. 그 때 김용국에게 씩씩대는 나의 옷깃을 누군가 가만히 그러쥔다. 뭐야, 이 애기같은 손짓은. 뒤를 돌아보니 귀 끝까지 홍조가 올라 토마토처럼 변한 김상균이었다.
"..너한테 잘 보이려고 입은 거 맞아."
ㅏ..시발 코피..
***
"고마워요. 그럼 하루만 카페 부탁할게요."
"아..."
"용국 씨 말대로 저 편하자고 다섯명 고용한 거니까. 저희 둘 쯤 없어도 돼죠?"
두 손을 모은 김용국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란 이런 것인가. 김상균 역시 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김용국의 게으름을 찌른다. 데이트 하기에 정말 딱 좋은 구실을 만든 것이었다. 권현빈과 김용국을 비롯하여 알바생들의 표정이 심상찮다. 김상균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기에. 일단 요리실력부터 비등하지 않았으며 민폐 손님이 왔을 때의 대처를 하는 건 김상균만큼 숙련된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평소 손이 빠르기로 유명한 김상균과 달리, 김용국은 몸짓이 엉기적거렸으며 권현빈은 건망증이 심했다는 점이었다. 나와 권현빈, 김용국 이 셋이 카페의 망나니 3총사였으니. 알바생들의 표정을 본 김상균이 다시 넥타이를 조이며 웃었다.
"하루 쉴까요?"
"전 찬성입니다"
반대를 던질 자, 그 누구겠는가. 다들 애벌레가 변태하듯 손을 꾸물거리더니 유니폼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진다. 휴식의 기쁨에 취한 함성이 가게를 떠나가도록 울렸다. 사장님은 나를 만나고 어쩐지 가게 쉬는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매출이 하강그래프를 띌까봐 김상균을 보며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내 표정을 읽어낸 김상균은 여유롭게 입매를 고치며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가게 망해도. 나 잘하는 거 많아."
앞서 언급했듯이 김상균은 인서율 유명대학 문과 출신에 가끔은 책도 출판하고 있었다. 제목이 3행시 잘 하는 법 이었나. 김상균의 그런 강한 자신감에 당연한 동의를 표한 뒤 문을 열었다. 그러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지 몇 시간 전 대화의 화두가 되었던 여자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들어왔다.
"어...?"
여자의 가로로 깊게 패인 고양이 눈매가 김상균과 나의 손에 매섭게 떨어졌다. 한 품에 착 안길듯한 낭창한 허리, 하느작거리며 옷과 함께 춤출 듯한 검은 머리카락. 오랜만에 본 여전히 여자는 아름다웠다. 온했던 김상균의 시선이 차갑게 굳어진다.
"너, 내가 또 오지 말라고 했지."
여자는 자신이 고혹적임을 나타내듯이 붉은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깔끔하게 칠해진 붉은 손가락이 유려하게 올라가서는 이윽고 김상균의 턱에 도달하여 그의 관심을 보챈다. 툭, 투둑. 손가락이 두어 번 김상균의 턱을 두드리자, 김상균이 여자의 손목을 쥐고 내동댕이치듯 공중에 놓았다. 왜 하필 지금 온것인가. 뇌리로 황막히 떨어지는 그날의 설움에 나는 눈물이 두둑히 차올랐다. 잊고 싶은 악몽이다. 팔짱을 낀 여자는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내 시선에 제 얼굴을 맞추었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더 크다. 눈을 아래로 모으며 갈팡질팡하는 내 시선을 느낀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자신의 외관에서 나오는 강한 자신감과 오만에서 떨어진 웃음소리였다. 하하.. 높은 고소가 3층 건물을 찌른다.
"상균아, 너랑 안 어울린다."
"네 급이 있지."
"너랑 할 얘기 없다고 했어."
"얜 근데 너무 어린애 같잖아. 여동생 같은 거랑 구분을 좀 해."
저게 미쳤나! 울컥 성을 내려던 권현빈을 김용국이 제지한다. 한참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내던 여자가 자기 손을 모아 제 치아를 수줍게 가렸다. 언제 봐도 정말 예쁘다. 여자의 붉은 립스틱과 새까맣기만 한 가방에서 나는 이상하게 기가 죽었다. 김상균이 그랬는데. 난 안 예쁜 구석이 없다고. 그럼에도 이 울적해지는 기분은 뭐란 말인가. 고개가 한 없이 추락한다. 내 부족한 얼굴을 부디 저 여자가 세심히 가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김상균은 그런 내 심정을 읽었는지 내 손을 쥔 자기의 손가락에 더 힘을 보탰다. 핏줄이 터질듯이 쥐는 김상균의 손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김상균이 나를 슬쩍 돌아보고 입모양으로만 말하며 나를 얼렀다.
...괜찮아. 고개 들어.
이윽고 고개를 돌린 김상균의 차가운 제지가 떨어진다.
"나 여자친구 생겼어, 데이트 해야 돼."
"그래서?"
아니, 저 시발뇬이. 여자친구도 있는데 어디서 행패야. 뒤에서 속닥거리는 권현빈의 뒷담이 귀에 들어온다. 알바생들의 뒷담화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지었다. 이윽고 눈물을 볼을 타고 턱 끝을 튕겨져 나가더니 검게 입은 옷에 스며들었다.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뭐뭐 연구에서 남자의 마음을 잡기엔 여자의 눈물밖에 없다나 뭐라나. 어디서 배알도 안먹힐 구식 정보를 들고 와서 이 지랄인가 싶다. 김상균은 내 손을 끌고 여자의 코 끝에 맞추어 등을 맞댄다. 그리고 시선을 조금 돌려 가늘게 뜬 눈으로 여자를 쏘아보았다.
"저기요."
"한 번만 더 오시면 신고합니다."
"뭐?"
"꺼지라고요. 얼굴만 봐도 토 쏠리니까"
김상균은 여자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단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여자의 표정이 뭔가에 얻어 맞은 듯 넋을 놓는다. 알바생들은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뭐가 그렇게 시원하고 통쾌했던지 껄껄 웃었다. 가히 완벽한 김상균만의 민폐손님 대처법이었다. 김용국과 권현빈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좋아했다. 야, 사장님 비속어 썼지? 썼지? 나 여주한테 돈 뜯을거다 하며 아까의 내기를 회상했다. 김용국은 콧구멍을 찌르지 못했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아, 방금 그 x 진짜 콧구멍 찔렀어야 하는데!"
진짜 김용국 상또라이 새끼...권현빈보다 얌전한 줄 알았는데 도찐개찐이다. 뭐, 괜찮다. 콧구멍을 찌르는 것보다 더 통쾌한 복수를 했기 때문이다.
***
"사장님 저 귀여워요?"
"어? 응 당연하지."
김상균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그리곤 내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듯이 미간을 찡긋하며 내 코를 쥐었다 놓아주며 웃었다. 김상균은 봄의 시작점을 쥐고 있는 가로수길 아래에서 기분이 좋은지 계속 피실 웃음을 흘렸다. 나를 바라보는 김상균의 볼에 살풋 볼우물이 패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했는 답을 들었는데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이 난다. 내가 급이 낮다느니 다 그렇다 쳐도 뭐? 날 여동생으로 보는 거 아냐? 뭐 시바 이런 말을 해?
"에이씨..."
그녀가 신고 있었던 빨간 구두와 비교되는 닳아 밑창이 사라진 운동화를 본다. 검정 운동화 코로 아무렇게나 바닥을 긁어대자, 굳은 흙이 밀려와 운동화가 더 더럽혀 진다. 에이씨! 김상균은 쫙 빠진 정장인데 난 이게 뭐람.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단단히 신경써서 나올 걸 그랬다. 가로수 길은 확실히 커플이나 사람이 많았는데 대부분 여자들은 대부분 봄이라고 구두를 신고 나왔다. 나만 꽃샘 추위 덜 풀렸다고 운동화에 조끼패딩...아 미친 냔. 밑창이 다 떨어진 운동화를 계속 쳐다보며 걷자, 상균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 깔며 내 기분을 살핀다.
"운동화?"
"어? 아니요, 사장님!"
"나한테 솔직히 말해줘."
"....힝.."
입술을 모로 말며 말하기를 망설였다.
"괜찮으니까."
"저..앞으로 잘 꾸밀게요."
김상균이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내 튼튼한 허리를 잡았다. 끙차- 붕 공중으로 한 번 유랑한 몸이 벤치에 사뿐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벤치에 앉은 나를 확인하고 한 쪽 무릎을 꿇는다. 김상균의 동글동글한 정수리가 나를 맞닥뜨렸다. 김상균은 두상까지 완벽했다. 가끔 생각한다. 김상균은 대체 모자란게 뭘까. 저 수많은 능력과 외모 중 한가지라도 나한테 주면 좋았을텐데.
내가 쓸데 없는 망상으로 헤매고 있을 때 김상균은 내 운동화를 보더니 풀어진 끈을 다시 묶어주었다. 어...? 큰 손에 의해 돌아가던 끈은 곧 깔끔하게 나비모양이 된다. 진짜 섬세하다. 운동화를 이리저리 들며 감탄을 하는 도중 상균이 운동화 쪽에서 시선을 틀어올려 나를 향해 말한다. 그리고 아이를 어르듯 한 손으로 나의 볼을 쓸었다. 바람에 꽃잎이 쓸려 나가듯 그의 손가락에 나의 솜털이 부드럽게 실려나간다.
"나는 네가 뭘 입든 예뻐."
"...사장님."
"네가 입고 싶은 거 입어. 그게 정답이야."
웃음이 절로 생긴다. 김상균은 하루에 몇 번씩 내 심장에 무리를 주는지 모르겠다. 저 몽글몽글한 발언에 심장도 구름처럼 변해가는 것 같다. 김상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꽃처럼 예쁠까. 나는 일어서서 손을 내미는 김상균을 다시 잡는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는 날 위해 쇼핑을 할 시내로 결정한다. 곧 가게에 들어가 옷을 한 바탕 털고 나온다. 한아름 안고 온 옷을 기쁨에 취해 안자, 김상균이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배고프지?
***
"아이스크림 두 개 주세요."
여자 종업원이 우리를 힐끔 거린다. 그러다 아예 대놓고 길게 찢어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배회하다 뭉글뭉글한 것을 콘에 얹었다. 아, 역시 옷차림 때문에 그런건가. 하긴 정장과 조끼 패딩은 좀 언밸런스 하긴 하다...하하하.. 김상균은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내 손을 잡고 싱글벙글했다. 신기하다. 난 긴장할 때마다 손에 땀이 나는 편이라 손에 땀이 줄줄 배이는데 끈적하지도 않은지 불편한 기색 하나 없다. 아니면 그냥 알아도 참아주는 건가. 그 배려심이 고마워 웃어주자, 귀엽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틈에 종업원이 아이스크림 두 개를 건넸다. 그리고 하는 말.
"저...남매끼리 정말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
"동생분이 정말 귀여우세요!"
어...나는 뭔가 돌덩이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어쩐지 오늘 김빛나가 온 것부터 내 기분을 더럽게한다 했다. 그래도 김상균이 잘 풀어준다 했는데 결국엔 귀여운 사람이 낀 커플이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남매라는 흔한 오해가 기분을 망친다. 내 어린애 같은 얼굴이 역시 문제인가? 속에서 알 수 없는 설움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마 저 말에 너희 둘이 누가 봐도 커플로 안 보여, 안 어울려 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어깨가 늘어진다. 설마 아까 김빛나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 눈엔 정말 내가 귀여운 여동생 처럼 보이나. 나는 몰려오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입술을 가로로 물고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니요, 저 여자친구인데요 라고 말했다간 사람들이 무안할려나. 온갖 답변들의 충돌로 회로가 어지러울 때 김상균은 깔끔하게 답변을 했다.
"아니요, 여자친구인데..."
"어?"
생각 외로 김상균은 깔끔하게 웃으며 대처를 했다. 그리고 안녕히 가시라는 친절한 인사에 미소까지 지어 주었다. 뭐야 김상균...생각보다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은건가? 같이 상해주길 바랬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당황한 티는 낼 줄 알았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 어쩐지 서운한 마음에 입술을 댓발 내밀었지만 차마 말할 순 없었다. 김상균은 나와 다르게 인간관계 자체에 굉장히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고 남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에?
"사장님, 아이스크림 왜 버려요? 새건데!!"
쓰레기통에 아이스크림이 툭 떨어진다. 뭐야 사장님. 먹기 싫음 싫다고 말을 하...
"나 저 가게 다시 안 가."
"네...?"
아이스크림이 아까워 휴지통에 얼굴을 넣고 발을 동동 구르다 김상균을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무표정이 된 김상균이 못 만질 것을 만졌다는 듯 아이스크림을 쥐었던 오른손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자꾸 제 얼굴에 대고 마른 세수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 저러지. 김상균은 내게 다가와서 약간 화난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방금 그 옷가게 돌아가서 커플티 다 사자. 사야겠어."
...아깐 내가 하는 게 정답이라면서요...?
***
결국 커플티를 색깔별로 싹쓸이하려는 김상균의 충동구매를 간신히 막는다. 뭐야...어쩐지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내가 그냥 기분이 '언짢았다' 면 김상균은 나 '화남' 이거였다. 어찌 됐든 나보다 더 화내는 그 고도의 반응이 썩 기분 나쁘진 않았다. 심지어 집으로 바래다 주는 자동차 안에서도 저렇게 툴툴거리니. 김상균은 항상 나보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나와 사귀고 나서는 어린 아이 같아질 때가 부쩍 있었다. 내 손길에 의해 아이 같아지는 김상균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착하게 살자.' 혹은 '맑게 깨끗하게 자신있게'가 사명인 김상균이 저렇게 감정에 휘둘리다니. 사랑에 빠진 남자는 확실히 이상하다.
"들어가면 전화 줘요. 사장님."
"어..."
김상균은 뭐가 기분이 안 좋은지 시선을 살짝 아래로 깔고 머리칼을 두어 번 쓸어 내렸다.
"왜 그래요, 사장님?"
이윽고 고개를 든 김상균이 어둑한 그림자를 등지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사박사박. 단정한 구둣소리가 이렇게 긴장감을 주는지 처음 알았다. 김상균은 늘 잘 웃다가도 항상 이렇게 무표정이 된다. 가로로 늘어진 눈썹, 너무 높아 그림자가 진 콧대, 긴 입꼬리 나를 담는 눈동자까지 그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결국 내가 주먹을 바싹 쥐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가, 그 성격만큼 빳빳하게 다려진 검은 자켓이, 마침내는 검은 그림자가 새콤한 바람을 맞고 아무렇게나 나부낀다. 바람에 흔들려 머리카락이 검은 눈동자를 가린다. 그 심리가 더더욱 수수께끼가 된 만큼 긴장에 굳었던지 심장이 이상해진다. 왜 김상균의 무표정만 보면 가슴이 이렇게 저릿해지지. 김상균의 커다란 손이 벽을 밀며 다가온다. 긴장에 굳은 나의 몸이 시계추처럼 기울어지며 자연스럽게 벽을 의지한다. 순식간에 좁혀진 얼굴과 얼굴의 거리에 침을 꿀꺽 삼켰다.
"너, 여동생 같지 않아."
"네?"
"너 나한테 여자야."
이윽고 얼굴이 말도 안되게 다가오며 나와 그를 한점으로 만든다. 눈이 꼭 감긴다. 말캉. 말랑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내 혀를 무법자처럼 침범했다. 살짝 내 혀를 건드리고 다시 뗀 김상균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나 여동생한텐 이런 짓 안 해."
"...사장님."
여러분, 저 또 코피나고 있습니다...오늘 코피로 홍수 볼 예정이에요...
***(김동한 시점)
[야 김동한 이거 어울리삼? 잘 어울리지]
[사진]
[어]
[반응 보소. 개 싱겁네 새끼]
오늘도 김여주는 나한테 사장이란 인간과의 달달한 모습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가장 알고 싶지 않은, 아니 알기 싫은 정보였다. 사장님이랑 쇼핑했다며 옷을 한 가득 찍어서 보여주질 않나, 아니면 앵두 귀걸이 사줬다고 자랑하질 않나. 체. 겨우 저 정도 가지고. 아마 내가 너한테 쓴 음식값만 10년동안 천만원은 넘을 것이다. 나랑 사귄다면, 아니 그냥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저깟 귀걸이쯤 한 박스는 사줬을 거라고. 휴대폰을 닫아 쇼파 옆의 탁자 위로 던져 버린다. 앞으로 한 번만 너한테 카톡이 온다면 나는 휴대폰을 끌 생각도 있다. 아니 네가 다른 남자와 헤벌레 하는 모습만 안 볼수 있다면 저깟 휴대폰 평생 안 쓸수도 있다.
"동한아 치킨 먹어."
"이따가요."
나는 치킨을 좋아한다. 피자도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면 너의 식욕이 내 식욕과 다르지 않다. 너는 평생 모르겠지. 처음엔 네게 반지나 귀고리 등을 선물하려 했다가 별 큰 반응을 보이지 않길래 매우 서운했던 것을. 10년 전 치킨 닭다리 하나 양보했을 때 네 얼굴이, 네 입매가 벌어지는 걸 보고 나는 없는 알레르기를 만들어야 했던 것을. 온갖 음식 알레르기를 만들어서 너에게 음식을 양보해야 했던 사실을 말이지. 그래서 네 웃는 모습을 볼 때 부른 배를 둥둥거리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내 유일한 행복이었다.
"진짜 안 되는 건 안 되는건가..."
소파 위 탁자위에 곱게 붙어져 있는 너와 나의 어깨동무 사진을 본다. 너한테서 사장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구나. 사장님이 5년동안 만났다 떨어졌다 했었구나. 나는 10년을 너랑 붙어 있었는데 라는 허망한 생각. 10년동안 너의 발이 되고 손이 되고, 친구란 이름으로 애인도 차마 못할 일을 나는 해내었는데 라는 생각. 내가 대단하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단지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내 사랑의 크기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네가 날 생각하는 마음보다 곱절은 더 클것이라 말하고 싶은 거다. 네가 사장님과 사귀겠다 통보식으로 말한 이후로 나는 의욕을 잃었다. 내 인생의 모든 역사속에서 함께 걸어주었던 네가 없어졌다. 나는 그저 죽은 세포의 잔재처럼 무기력하게 누워 집안에서 의미없이 예능프로를 틀어놓는다. 그게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눈물을 흘리는 건 좋다. 눈물을 흘릴 때마다 내가 감정에 취약한 인간이란 걸 인정하고 속이 좀 개운해진다. 한참 아무 말 없이 사진을 들여다보다 사진을 안 보이도록 내렸다. 엄마가 말했다.
"녀석 너 요새 왜 그래? 사춘기때도 팔팔했던 놈이."
사춘기 때도 팔팔하던 건 다 네 덕택이었다. 나는 지금 너 하나 잃었다고 오지도 않았던 감정의 사춘기를 끌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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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바로 완결화에서 언급하겠습니다!!!
15분 뒤 후기와 함께 바로 완결편 올라갑니다!!!
댓글 두 번씩 쓰기 좀 그러신 분들은 완결화에서 봅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