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X우현 하녀조각 워낙 큰 저택인지라 한창을 빙글빙글 돌고서야 도착한 목욕실이었다. 우현이 들고 있던 와인병과 그가 입을 옷가지들을 내려놓고선 문 앞에 섰다.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갈색 나무 문이었다. 두 소매를 걷고선 옷을 간단히 정리한 우현이 미세스 박의 말을 떠올렸다. 특별히 자신을 올라오라고 했단다. 평소같더라면 미세스 박이 했을 일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들어온 남자 하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는지 자신을 부른 탓에 처음으로 자신의 주인을 대면하게 된 우현이였다. 그는 어떻게 생겼을까.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 아님 머리가 거의 벗겨진 배불뚝이 아저씨? 어떤 모습이든 S그룹 부사장이라는 그냥 높은 것도 아니고 까마득하게 높은 위치에 서있는 자신의 주인을 볼 생각에 조금은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답답한지 와이셔츠의 단추를 몇개 풀고 크게 숨을 들이 마신 우현이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문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연 문 너머에는 뿌연 수증기로 가득차 있었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하얀 대리석 위를 비추었다. 보라색 샤워커튼 뒤에서 그가 오늘 하루 일에 찌들었던 노곤한 몸을 욕조에 담구고 있을 것이다. 우현이 조용히 발을 옮기며 와인병과 입을 옷가지들은 샤워커튼 앞에다 놓고 바닥 위로 뱀의 허물같이 어질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씩 제 품에 안아 들었다. 하나같이 자신은 평생 입을 수 없는 브랜드들의 옷이었다. 그는 꽤나 독한 향수를 쓰는것 같았다. 제 품에 안아든 옷가지들에 스며든 독한 향수냄새에 우현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자신의 할 일을 다한 우현이 나가기 위해 나무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꺼운 샤워커튼 뒤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 남… 우현이라 했나? 문의 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낮은 목소리가 욕실에 울려퍼졌다. 순간 당황하던 우현이 아무말도 하지말고 나오라는 미세스 박의 말이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조금의 적막이 흐르자 예상이라도 했듯이 그가 계속 말을 해왔다. - 전에 있던 년이 꽤 쓸만했는데. 전에 있던 여자 하녀라면 미세스 박에게 이미 들었었다. 나이는 저보다 5살쯤 어렸는데 그만 병이 나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꽤 오래가겠다던 그녀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우현은 성규가 말하는 '쓸만했다' 라는 말이 무얼 뜻하는지 몰랐다. 그 여자애가 일을 잘해서 쓸만했는지, 아님…. - 허리 하나는 끝장나게 돌렸거든. 잡고 있던 손잡이를 놓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대체 왜 이런말을 자기한테 하는지. 우현이 막 입을 떼려던 차에, 샤워 커튼 너머로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샤워커튼이 반쯤 열리며 제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이 생각하던 노인네도 아니고, 아저씨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얼굴의 주인이었다. 물에 젖어 달라붙은 갈색 머리 아래로 쭉 찢어진 눈이 날카로워 보였다. 쭉 뻗은 콧대를 타고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는 모습이 마치 먹이를 두고 입맛을 다시는 한마리의 하이에나 같았다. 그는 제가 놓고 간 와인을 병째로 들고선 마시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목젖을 타고 물방울들이 흘렀다. 병에서 입을 뗀 성규가 우두커니 서있는 우현을 나른한 눈으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조그마한 녀석이 자신의 옷가지들을 꼭 끌어안고 있는 폼이 어색했다. - 펠라, 잘하나? 자신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시선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 불편한 분위기가 싫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는걸 간신히 참은 우현이었다. 그런데 펠라를 잘하냐는 성규의 질문에 마치 제가 벌거벗은채 성규의 앞에 서있는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에 눈 앞이 뿌얘졌다. 울먹거리며 아무말도 못하고 입술만 달싹 거리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가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채 크게 웃었다. 미세스 박이 교육을 잘 시켜놨어. 그치? 성규는 모든것이 재미있었다. - 맘에 드네, 나가봐. 나가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씩씩거리며 나가는 우현의 귀에 곧 또 보자 는 성규의 말이 맴돌았다. 뭘 보긴 또 봐. 우현은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온 몸이 새빨개져 나가는 우현을 본 성규가 입을 비죽거렸다. 혼자 남은 성규는 욕조 깊이 몸을 담구고 눈을 감았고, 우현은 애써 울음을 참았다. 그날 밤, 우현은 꿈을 꾸었다. 자신이 김성규의 발을 핥는 꿈.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우현은 울었다. 지독히도 조용한 저택이었다. * * * 언젠간 쓸 성우 하녀 중 조각글 독방에 한번 올려서 보신분 있으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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