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달라진게 많았다. 첫날에 그토록 뛰어다니고 편의점의 문을 부서지도록 두들기던 사람들이 없어졌고 그르렁 거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더 커졌다. 가끔씩 좀비와 눈을 마주치기에 행사용 천막을 창고에서 끌어와 빛이 들어오는 곳은 다 막아버렸다. 낮인가 밤인가는 알 수 없었고 시간 또한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입에 넣은 사탕이 전부 끈적하게 녹아 내릴즈음 형광등이 깜빡였다. 아마, 전기도 끊길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전등을 찾았다. DMB로 튼 채널에서는 지직거리는 화면만 나왔고 라디오에서는 비상사태라며 좀비에게 닿지 말라는 똑같은 멘트만 나올 뿐이었다. 이렇게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고 말을 듣지 못하다가는 결국 말하는 법을 잊을것만 같아 떨어트린 사탕 봉지를 주워들고 안녕, 사탕봉지야.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하루가 예전보다 더 좆같았다. 그렇게 눈을 감는데 바깥쪽에서 자동차가 세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클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는 좀비가 부딛친거겠지 싶었는데 사람의 궁금증은 어쩔 수 없는건지 이미 걸음은 큰 창쪽으로 다가가 현수막을 걷어내 바깥을 보고있었다.
창문을 내리고선 주변을 둘러보는 남자가 흉측한 몰골을 한 좀비가 아닌 멀쩡한 사람인 걸 보고 나서야 현수막을 걷어 창문을 손으로 두드리자 그제서야 그사람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어, 하며 가리켰다. 그리고선 슬쩍 눈치를 보더니 문쪽으로 다가와 두들겼고 문을 열자 말없이 들어와 문을 잠그고선 한숨을 뱉었다
“ 와, 드디어 만났네요. 사람. ”
“ 누, 누구세요? ”
“ 저도 사람이죠. 와, 여기 대박이네. 먹을꺼 잔뜩있고… 아, 나는 이재환. ”
“ 이홍빈이요… ”
“ 여기도 좋은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있는 곳 있거든요, 한 네명정도? 같이 갈래요? ”
그 말에 수없이 고민을 했다. 바깥을 며칠간 보지 못했지만 위험한게 분명했다. 식량도 이 곳이 충분했고 위험하지도 않았고 혹여 좀비가 들어온다면 던질 물건들도 약간은 있었으니. 그러나 그런걸 이기는게 사람과의 정이었다. 이런 대화를 해본게 언제더라. 그렇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가요, 하며 베실베실 웃으면서 흔들고 있었다. 결국은 여기서 슬퍼하는 이 하나 없이 외롭게 좀비가 되느니 차라리 일찍 죽더라도 내가 죽는다면 슬퍼할 사람들이 있는 그 곳을 택했다. 그러자 그가 환하게 웃으며 그럼 나갈까요? 하고 손을 끌었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서 쪼르르 달려와 사탕하나를 집어 입에 물었다. 그 곳엔 음식 많이 있어요? 하고 묻자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래도 빵같은건 챙겨야되요, 거기 빵돌이 있거든. 하고 살짝 웃으며 빵을 한 품 가득 끌어안고 나가요, 하며 바깥으로 향했다. 고개를 물 한두병을 챙기고 뒷자석에 잔뜩 실은 뒤 조수석에 앉아 안전밸트를 맸다. 잠깐 밖에 있었는데 썩은내가 진동을 했다. 일주일 밖에 안 지났는데 시체도 전부 썩어 파리가 날렸고 어디서 날아온건지 까마귀가 시체 위에 앉아있기도 했다.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도로쪽으로 나가니 차들은 전부 얽히고 설켜서 길이 막혀있었고 흘끗 바라보던 그가 으, 하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차를 돌려 도로보다는 좁은 골목길로 힘겹게 들어섰다.
“ 중간중간 어디 많이 들려야할텐데 괜찮을까요? 사람들 남았나 하고. ”
“ 혼자 다녀오시게요? ”
“ 같이갈래요? 무섭지 않을까? ”
“ 혼자 있는 것 보단 낫겠죠. 어디어디 들를건데요? ”
“ 음, 오늘은 그냥 저기 아파트 보이죠? 어제 110동까지 왔다갔다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111동만 돌고 어두워질 것 같으니까 바로 돌아갑시다. ”
약간의 대화가 오가고 금방 정적이 흘렀다. 그는 뭔가 말 하고 싶은 모양새였다. 그러나 어색한 분위기에서 어떤 말이 나와도 금방 또 어색하게 변질될게 분명해기에 그냥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흘끗흘끗 날 바라보던 그가 몇 살이에요? 하고 물었다. 스물 한 살이요. 하고 옹알거리자 방긋 웃으며 자기가 더 나이가 많다며 자연스럽게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다. 별로 거슬릴만한 문제는 아니어서 그냥 그렇구나, 나보다 나이가 많구나. 정도로 인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날때부터 웃음을 잃지않는 그를 보고있자니 웃지않는 내가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원래, 이럴때는 안 웃지 않나. 궁금증을 끌어안고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열려다 바깥 풍경을 보고 식겁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흉측한 꼴을 한 좀비들이 사람들을 물어뜯고있었고 죽어버린 사람들은 신체 일부 한, 두 개를 잃은 채로 쓰러져있었다. 그게 한두개라면 모를까 전부 쌓여있었다. 얼마나, 죽은걸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듣기싫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고개를 드니 창문에 피가 잔뜩 튄 채로 차가 물컹한 무언가를 밟았다. 재환은 아무 생각 없이 아까와 같이 콧노래만 부르고 있었고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낀건지 살짝 바라보다가 당황했다는 게 보일정도로 갈길잃은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고있었다. 놀랐어? 하고 묻는 말에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러니까, 하며 마른 입술을 훑었다. 그런 생물체를 죽이는게 맞는 일이고, 변명할 거리도 아닌데 변명하려는 그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 아, 그러니까. 걔가 갑자기 튀어나와서…너가 놀랄 줄은 몰랐어, 그래도 걔 계속 살려두면 계속 사람 죽이고, 아니 그렇다고 해서 걔가 영영 죽는 것 도 아닌데… ”
“ 아니에요, 괜찮아. 어디 들른다고 했죠? 111동? ”
“ 어, 어… 가자. ”
낮이라 그런지 꽤나 밝았다. 그렇다고 해서 좀비가 안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차에서 내려 보이는게 짧지만 좀 두꺼운 각목이 보여서 그걸 집어들자 옆에 있던 재환이 옆에 있는 긴 각목을 집어들었다. 다행히도 엘리베이터가 작동되고 있어서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일 층입니다.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열리자 안에 쓰러져있는 사람과 그의 팔을 물어뜯고있는 좀비의 모습이 보였다. 그르렁 거리는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려서 우리를 바라봤다. 울부짖는 그의 입에선 아직 삼키지 못한 붉은 핏덩어리와 살점이 보였고 구역질이 났다. 한발짝씩 다가오는 좀비를 바라보던 재환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머리를 내려치고선 여러번 더 내려찍었다. 피가 튀고 부르르 떨리는 몸이 멈추자 마구 내려치던 재환의 손도 멈췄다. 어깨로 얼굴의 피를 한번 닦고 신발 굽으로 머리를 한번 더 내려 찍고선 그 각목으로 안에 있던 시체도 바깥으로 끌어냈다. 질질 끌려오는 그 사람의 붉은 살덩어리를 바라보다 재환의 옷 끝자락을 붙잡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피 비린내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눈을 질끈 감자 재환이 돌아보며 그냥 돌아갈까? 하고 물었다. 이런 것 때문에 짐덩이가 되고싶진 않아서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다 한 손으로 내 팔목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맨 윗층으로 올라가서 일일이 문을 하나씩 두드리며 안에 사람을 찾는 일인데 꽤나 위험했다. 갑자기 좀비가 아래서 튀어 나오기도 했고 쓰러져있는 시체를 발견하기도 했으니. 그러나 재환은 익숙한 일인 듯 각목으로 여러번 내리쳐 죽였다. 주머니에 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절반을 내려왔건만 발견하는건 좀비와 피에 젖은 시체와 정적이 흐르는 집 뿐이었다. 아무도 있지 않은 집은 세 가지로 나눠진다. 좀비에게 당했거나, 식량 부족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고있거나, 모르는 척 혼자 살아가려하거나.
“ 저기, 계세요? 사람 안 계세요? ”
2층까지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한명이라도 발견되면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을텐데 아무도 나오지 않으니 나와 재환을 제외한 사람이 이 동네에 살긴 사는 걸까. 일주일동안 전부 죽어버린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운빠진 걸음을 옮기며 힘겹게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문을 두들김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아무도 없었다. 허탈하게 웃으며 뒤를 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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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저번편에 홍빈이 밖에 안나왔다는 생각에
일단 다음편 그냥 데려왔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