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빨간 사춘기 - 썸 탈거야
사랑은 컬링 스톤을 타고 +
上
“안녕하세요.”
“아 네-”
그 오빠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이맘 때 쯤, 지긋지긋한 추위에 질려 따스해질 봄날을 기다리고 있던, 그 즈음이었다.
내가 원래 속해 있던 여자 컬링 팀에서 새로 결성된 혼성 컬림 팀이 된 건 감독님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믹스더블’이라는 종목이 평창올림픽 때 처음 추가 된 것도 있고 두 명이서 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도 클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처음에 불만을 토로했다가 쫓겨날 위기에 놓여 깨갱하고 꼬리를 내렸다.
처음 만남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갑자기 같이 팀이 됐다고, 이제부터 하루 종일 붙어서 연습해야 된다고 하는데, 특히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저기- 이거 먹을래요?”
인사 한 마디 나누고, 코치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셔서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던 나에게 오빠가 먼저 말을 건넸다.
초콜릿 바와 함께.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는 여자랑 말 섞는 법을 몰라서 어떻게 친해질 지 고민하다가 먹는 걸로 환심을 사기로 결정하고 나를 만나기 전에 급하게 사왔었다고 한다.
나는 눈만 끔뻑끔뻑, 눈치를 보다가 오빠가 손을 쭉 뻗어서 내 앞으로 다가오게 된 초콜릿 바를 집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시선은 땅바닥에 쳐 박힌 채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죠?”
“네.”
“나는 스무 살이에요.”
“네···.”
“말 놔도 되···나···?”
“네.”
오빠는 최대한 나에게 말을 붙이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대답은 오직 ‘네.’였다.
코치님이 오시고, 경기 규칙을 설명해주신다며 경기장으로 들어가셔서 나는 그저 코치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자 1번 5번을 한 사람이하고, 2, 3, 4번 샷을 한 사람이 하는 거야. 엔드마다 바뀔 수 있고, 스위핑은 아무나하면 돼. 하면서 요령도 익히고, 전략도 짜고. 자, 시작. 국대 선발전 얼마 안 남았다. 강다니엘, 군대 갈거야?”
“아 코치님-”
그렇게 매일매일 함께 연습하면서 서로 호흡을 맞췄고, 작년 5월, 국대 선발전에서 우리 협회 팀들이 우승을 싹쓸이 해 모두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창을 향해 수없이 돌을 던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경기를 위해 우리끼리 울고, 다치고, 아파하며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싫을 때도 많았다.
그래도, 평창에서 좋은 성적만 거둔다면 지원금도 넉넉하게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오기로, 그렇게 버텼다.
-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준결승에 올라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짓는 경기였다.
벌써,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몇 번의 경기 경험에도 심장이 떨려왔다.
“성이름. 쫄지마.”
오빠는 그대로 어깨동무를 하고 나와 발을 맞춰 걸었다.
1엔드의 시작, 내 손에서 스톤이 떠났다.
"약해- 좀 더, 더!“
“그만이요! 어디가요!”
떨리는 손에 힘을 주며 겨우겨우 버티고, 치열한 접전 끝에 1엔드에서 2점을 얻고, 상대 팀의 선공으로 바로 2엔드가 시작됐다.
“일단 하우스 안으로, 네.”
“빨리요, 더 해주세요! 더 와주세요!”
엎치락뒤치락, 그렇게 2엔드, 3엔드··· 마지막 10엔드를 남겨두고 5:5 상황에서, 1점을 득점해 경기를 승리로 만들었다.
“잘했다, 수고했어.”
“오빠 너무 수고 했어요.”
“니는 샷 쏠 때 긴장만 하지마라, 손이 덜덜덜 떨리데.”
“네에···.”
그래도 잘했다,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잡아 내리고 머리 땀났으니까 만지지 말라고 말하자 싫다며 계속 머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다.
짐을 싸서 가려고 했는데 취재진 분들이 인터뷰를 요청하셨다.
얼굴 대빵만하게 잡히겠다, 생각하며 땀을 닦으며 옆을 봤는데 오빠가 없다. 어디갔지, 하고 찾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옷이 덮어졌다.
“땀 닦고.”
“고마워요!”
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오빠의 후드집업을 벗어 팔에 걸었다.
“입어라 춥다.”
“더운데···.”
“또 이따가 춥다고 찡찡 댈거고.”
반박할 수가 없어 주섬주섬 입었더니 오빠는 그제야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다니엘 선수, 첫 올림픽 출전인데,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네, 일단 준결승에 올라가게 된 것만으로 너무 기쁘고, 이게 다 현장에서, 집에서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성이름 선수, 강다니엘 선수와 팀워크는 잘 맞는 편인가요?”
“네- 오빠가 경기를 많이 이끌어주고 경기 전이나 후나 멘탈을 잘 잡아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마치고 오빠를 보니 활짝 웃으며 아이다, 네가 잘해서 그런 거제. 하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흔들흔들거린다.
“네- 강다니엘 선수, 이번 올림픽 목표 성적이 있나요?”
“이왕 준결승까지 온 거 메달을 따고 싶고요, 이왕 메달을 딴다면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패기 넘치는 모습 좋습니다, 성이름 선수는 경기에서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 있나요?”
“좋았던 점이라고 하면 역시 좋은 샷을 쐈을 때, 가장 좋았죠. 완벽하게 하우스에 들어갔을 때 함성소리 들릴 때가 가장 짜릿해요. 하하. 아쉬웠던 점은··· 제가 긴장하면 오빠 말을 잘 못 들어요. 또 항상 중요한 순간에 긴장해서 실수가 나오니까··· 그런 점이 아쉬워요.”
“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 안 듣는 거 아네.”
인터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가는 길에 오빠가 핀잔을 줬다. 나는 풀이 죽은 채 말했다.
“죄송해요···.”
“장난인 건 왜 모를까~”
팔을 퍽 치며 아 진짜! 하니 어어, 선배를 막 치고 그래 어? 교육 좀 받아야 돼. 하는 오빠에 흥, 하며 한 번 째려보고 라커룸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이따 봐- 하는 소리는 무시하고 말이다.
대충 씻고 나와 슬랙스에 후드티를 챙겨 입었다. 최대한 빨리 화장을 하고 나갔는데 역시 오빠는 이미 나와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너무 늦게 왔죠.”
“아이다, 내도 방금 왔다. 밥 뭐 먹을래, 고기 먹을까?”
“네 좋아요!”
컬링 센터 근처 고깃집으로 가 가볍게 3인분부터 시작했다.
“내가 꾸울 게.”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아이다, 내 별명 모르나.”
“에?”
“강고기다, 강고기.”
고기를 잘 구워서 강고기··· 라고 한다. 결국 오빠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열심히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마이 무라.”
“잘 먹겠습니다-”
오빠가 앞 접시에 놓아준 고기를 한 입 먹으면, 와- 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맛있나.”
“네, 오빠 진짜 강고기 인정.”
“인정?”
기분 좋은 지 헤실 대며 계속 내 앞 접시에 고기를 놓아준다.
“오빠 더 드세요!”
“먹고 있다, 니 마이 무라. 더 시켜?”
“네!”
“이모- 여기 2인분요!”
이모는 아이고, 잘 먹네. 하며 우리에게 올림픽 보러 왔냐고 물어보셨다.
“선숩니다. 컬링 선수.”
“오메, 선수님이시여? 오메, 쫌 기다려 봐요.”
급히 자리를 뜨시는 이모님에 어리둥절해 하며 고기를 계속 입으로 넣었다. 얼마 뒤, 이모님이 손에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우리 테이블로 돌아오셨다.
“자자, 이거 먹고 힘내서 메달도 따고!”
이모님은 양념갈비 한 판을 우리 테이블에 올려놓으셨고, 사양하는 오빠에게 됐다며 국가대표 서비스라고 먹고 힘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모님은 종이 두 장과 펜을 건네 싸인을 요청하셨다.
“싸인이요, 해드려야죠!”
웃으며 휙휙 싸인을 하는 오빠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오빠가 왜 그러고 있냐고 물었다.
“저 싸인이 없는데···.”
결국 정자로 ‘성이름’ 하고 큼지막하게 쓴 뒤 대박나세요❤❤ 까지 적고 감사 인사를 한 뒤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와, 갈비 짱이다.”
“진짜 잘 먹네.”
“많이 먹고 이겨야죠!”
“그래, 그래야지-”
고기를 먹는 내가 웃긴 건지, 오빠는 나를 보며 계속 큭큭 대고 웃는다.
“오빠 저 되게 웃기게 먹어요?”
“아니?”
“근데 왜 자꾸 웃으세요···?”
“입도 쪼꼬매 가지고 그 고기가 다 어디로 들어가나- 캐서 귀여워서 웃었다.”
귀엽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 거렸는지 귀엽다카니까 기분 좋은 갑네. 귀여운 우리 이름 마이 무라~ 하면서 나를 놀려댄다.
치- 하며 다시 열심히 고기를 먹은 후 식당을 나와 컬링 센터로 향했다. 그동안 계속 경기만 하고 쉬느라 몰랐는데, 여기도 은근 예쁘게 꾸며져 있다.
“수호랑이다!”
나는 커다란 수호랑 사람(?)을 보고 신이 나서 뛰어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 난 이름이야.”
“이름아, 수호랑은 말을 못 해.”
“왜요?”
“규칙이다. 자원봉사 할 때 규칙.”
왠지 모르겠지만 수호랑이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오빠의 팩트 폭력에 풀이 죽었다.
자원봉사자인 거 아는데··· 알고 있는데도 왠지 6살된 아이가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을 이해한 느낌이다.
오빠는 내가 풀이 죽자 수호랑보다 더 당황했다.
“아··· 내가 또 실수했나. 이름아, 서라. 사진 찍어줄게.”
“아니에요···. 자원봉사자님 힘들어요···.”
“수호랑님,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실래요?”
수호랑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나를 수호랑 옆으로 밀어 넣는 오빠에 결국 브이- 하고 사진을 찍었다.
“아, 아이스크림 먹을까?”
“여기 없어요 아이스크림···.”
“솜사탕! 솜사탕 묵자.”
오빠는 분위기를 전환시켜 보려했고, 나는 솜사탕 소리에 솔깃해 눈을 반짝였다. 오빠는 알고 있다, 내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방법을.
“아 맛있다-”
“엄청 오랜만이다 솜사탕.”
둘 다 냠냠대며 열심히 먹고 있는데 갑자기 강다니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형!”
옹성우 오빠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계셨다.
같은 소속이긴 한데 연습 시간도 다르고 그래서 통성명만 하고 말 몇 마디 해본 적 없는 오빠였다.
역시 볼 때마다 잘생기셨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준결승 축하해!”
“감사합니다!”
“야가 맨날 형 얘기해요, 멋있다고!”
“아 진짜?”
“아 오빠 쫌,”
“어어? 니 얼굴은 왜 빨개지나.”
오빠의 팔을 퍽 쳐서 조용히 시키고 가야할 곳이 있다고 하는 성우오빠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성우 형 여친 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니 얼굴 홍당문데.”
“저 원래 어색한 사람이랑 말 못해요··· 얼굴 빨개지고.”
“아 진짜? 그래가 그 때,”
“그 때?”
아이다. 하고 얼버무리는 오빠에 뭐야, 하고 얼마 안남은 솜사탕을 다 해치웠다.
놀대로 놀고, 숙소에 가기 위해 코치님에게 연락했지만 받지 않으셨다. 어쩔 수 없이 택시에 탔고, 그제서야 피로가 몰려와 잠시 눈을 붙였다.
“이름아, 이름아 일어나라.”
방금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벌써 깨워대는 목소리에 으음- 하며 눈을 뜨니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오빠의 얼굴에 흐에엑! 하고 소리를 지르자 오빠가 되려 으악!하고 뒤로 물러난다.
“아, 아니 니가 계속 안 일어나길래.”
“하하···.”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심장은 왜 이렇게 뛰는 건지, 놀라서 그런 거다. 놀라서. 택시에서 내린 후 오빠와 함께 숙소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고 나는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푹 쉬고, 내일 보자.”
“네.”
내 얼굴이 빨간 것을 오빠가 볼까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오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네, 하고 닫기 버튼을 꾹꾹 눌렀다.
“미쳤어, 미쳤다.”
양 볼에 손을 하나씩 얹고 뜨거운 볼을 진정을 시키려 애썼다.
내가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꽤 오래전부터 부정해왔다.
일단···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추는데 방해가 될까봐. 그리고 오빠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그래서 나한테도 친절한 거고, 그래서 그런 감정이 느껴진 것뿐이라고.
혼자 마음을 접고, 접으려고 노력했고, 다 접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아 몰라, 잠이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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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사랑은 컬링 스톤을 타고 플러스가 왔어요!!!
실은 글이 막 맘에 드는 건 아니에요 ㅎㅅㅎ
그래도 여러분이 많이 좋아해주시니까.. 넘 감사하궁 안 올릴 수가 없궁
재밌게 봐주셔씀 함니당 ㅜ ㅜ
아마 上,下편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성덕 열씨미 쓸게요 ㅠ ㅠ 성덕 독자님들 죄성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