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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 70 >
“아, 전정국!! 물건 좀 제자리에 갖다 두라니까!”
머리를 말리려고 하는데 드라이기가 있던 자리에 없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화장실에서 밖의 정국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어디다 둔 거야. 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화장실을 나왔다. 녀석은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테니스공을 벽에 던졌다가 다시 돌아오면 잡고, 다시 던지고 잡고를 반복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아주 어린애가 따로 없다.
“드라이기 어디 있어?”
“몰라.”
녀석은 공놀이에 집중한 채로 귀찮은 기색을 드러내며 무성의하게 답했다. 찾던 드라이기가 화장대에 바로 놓여있었기에 오늘 아침부터 깽판을 치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다. 수건을 풀고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기 소리가 거슬리는지 녀석이 내 쪽을 바라보더니 다시 공놀이를 시작했다. 드라이기를 끄자 녀석이 내게 말했다.
“오늘은 몇 시에 와?”
저번에 공부하느라 늦게 들어온 뒤로 항상 오늘은 몇 시에 오냐고 아침마다 묻는 녀석이었다. 시험 준비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은 건데 빨리 들어오라고 독촉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가로등이 켜지지 않는 집 앞 골목으로 데리러 오는 정성도 보였다. 벽에 테니스공이 부딪히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정국에게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새 내 뒤로 온 녀석이 내가 차려고 하던 목걸이를 채워주며 말했다.
“일찍 와. 해지기 전에.”
해지기 전에 오면 공부는 언제 하라고. 집에서 공부가 될 리 만무한데. 정국에게 불만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자 초인종이 울렸다. 이른 아침부터 뭐야.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를만한 사람은 택배 기사님 아니면 옆집 밖에 없다. 이 시간이면 당연히 석진 오빠일 터였다. 혹시 아침부터 맛있는 걸 하셨나. 오늘 아침 챙기기 귀찮아서 안 먹으려고 한 건 또 어떻게 아시고. 몸을 흔들며 문을 열었다. 내가 김칫국을 들이켜도 냄비 째로 원샷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1초 정도면 충분했다. 무언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빠가 서있었기에. 이 분은 왜 또 아침부터 밤새서 과제하고 아홉시 수업이라 한 시간 만에 일어났더니 밤새한 과제를 저장을 안 누르고 자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으로 서 계신 걸까.
“너희 집 공사하니?”
“네?”
“벽이 하도 시끄럽게 난리를 쳐 대서 알람이 필요가 없다. 덕분에 핸드폰 배터리 아꼈네. 고오맙다.”
정국의 공놀이 때문에 잠을 깬 모양이었다. 자세히 보니 잘생긴 얼굴에 가려져서 그렇지 처음 보는 동물 캐릭터가 그려진 흰 반팔 티에 회색 추리닝 바지를 입고 듬성듬성 까치집을 지은 머리는 누가 봐도 잠에서 막 깬 차림새였다. 잘생긴 사람은 이런 후진 모습도 얼굴로 커버를 치는구나. 역시 잘생긴 게 최고야. 오빠는 강제 알람 셔틀을 해준 사람이 정국이란 걸 눈치 챘는지 얼굴을 찡그린 채로 신고 있던 복슬복슬한 털 슬리퍼를 벗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정국에게로 다가갔다. 대체 이 여름에 분홍색 털 슬리퍼는 무슨 조화야. 하여간 독특한 캐릭터다.
나는 두 남자를 그대로 두고 현관에서 손만 뻗어 가방을 챙기고는 그대로 조용히 집을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천천히 문을 닫았다. 둘의 유치한 싸움을 안방 1열에서 관전하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괜한 불똥이 튀는 걸 예방하는 게 우선이었다. 싸움 장소가 우리 집이라는 사실이 아주 못 미덥지만 내 몸뚱아리를 지켜야하니. 대의를 위해 소의를 버리기로 했다.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 정국은 몰라도 석진 오빠는 그래도 나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인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불안함이 음습해왔다.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문을 조심히 열어 조그만 틈 사이로 둘의 싸움을 구경했다. 이게 다 내 집을 지키기 위해서다.
“작작 좀 해. 거슬리게.”
“거슬리는 건 네 놈이거든.”
정국은 보란 듯이 테니스공을 벽에 던지며 답했다. 진짜 여러모로 대단한 자식이다. 보는 내가 화가 나네. 오빠는 뭐하는 거야. 한 대 날려야지. 내가 대신 날려주고 싶다. 쌓인 것도 풀겸……. 상상하자 올라가는 광대에 웃음소리가 날 것 같아 입을 막았다.
“정여주?”
입을 막으면 뭐하나. 이미 소리가 새어나갔는데.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눈들을 최대한 태연하게 대했다.
“아……. 두고 간 게 있어서.”
“뭐?”
두고 간 게 없는데 뭐라고 답해. 머릿속에 있는 모든 뇌세포들을 동원해 다시 변명 거리를 만들었다.
“아니, 신발 바꿔 신으려고. 하던 거마저 해.”
내게서 시선을 떼어놓으려했으나 둘은 내가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을 때까지 나를 계속 보았다. 아, 졸지에 구두신고 등교하게 생겼구나. 망할. 내게 따라붙는 진득한 시선을 뒤로 하고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집을 나왔다. 아 망했어.
***
여주가 완전히 떠나자 정국과 석진은 현관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정국은 테니스공을 만지작거렸고 석진은 얼굴을 구긴 채로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넣고 서 있었다. 정국의 공놀이가 거슬려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석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놈이 아직도 여주를 따라다녀?”
“어.”
반응은 제각각 달랐지만 언젠가부터 여주에게 이상한 놈이 들러붙었다는 건 둘 다 알고 있었다. 석진은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넘겼고 정국은 여주를 과잉보호하기 시작했다. 석진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된 건 정국이 여주를 과잉보호하는 수단으로 석진의 핸드폰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을 빌리자는 정국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준 게 잘못이었다. 정국은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석진은 정국이 아끼는 분홍색 코끼리 잠옷을 개고 있을 때를 일부러 노려서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 덕분에 분홍색 코끼리 잠옷을 멀리한지 삼일 째였다.
“와 질기다. 증거는 모았고?”
“모으면 뭐해. 돈 쪼가리 몇 장으로 풀려날 텐데.”
“안 모았구먼?”
“귀찮아. 오늘 잡아서 족칠 생각이야.”
“악마새끼 아니랄까봐 생각하는 거 하고는.”
석진의 도발에 정국이 석진을 향해 테니스공을 팍 던졌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세 그대로 석진은 몸을 살짝 돌려 공을 피했다. 에게 도와주려는 사람한테 할 만한 행동이냐. 석진이 정국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너는 도움을 주고 싶어도 그럴 마음이 싹 가시게 만드는데 그것도 재능이다?”
“무슨 도움. 지금까지 아무런 도움도 못 준 주제에.”
“야,”
석진이 정국을 향해 말을 하다 멈췄다. 저 어린놈의 자식한테 화를 내서 뭐하겠냐. 여주 일이니까 말만하고 끝내자. 석진이 올라온 화를 잠재우기 위해 짧게 숨을 뱉었다.
“스토커는 내가 당해봐서 아는데.”
“당해봤다고?”
“내가 좀 잘생겨야 말이지.”
“꺼져.”
정국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저런 놈한테서 도움을 바란 게 잘못이다. 그냥 날 잡아서 족치는게 빠르겠어.
“들어보라니까?”
“어떻게 떼어냈는데.”
“이사 왔잖아. 여기로.”
“미친.”
정국은 방금 전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석진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확실해. 저번에 여주한테 이사 얘기 꺼냈다가 거절당했는데 또 꺼낼 수가 없잖아. 여주가 거절한 일을 다시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옆집에 천사새끼가 사는 것도 집이 좁아터진 것도 여전히 짜증나지만 여주가 싫다는데 어쩌겠어.
“핸드폰이나 두고 가.”
“내 꺼?”
석진은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하는 말투야 저게?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모르겠네. 하여간에 젊은 것들은 악마고 인간이고 다 글러먹었다. 썩을 것들. 석진이 혀를 끌끌 찼다.
“늙은 티 내지 말고 빨리 꺼져.”
“너는 내가 한 살만 어렸어도 지금쯤 지옥행이야.”
“원래 지옥에서 살거든?”
“......”
“늙은 거 티내지 말라니까.”
썩을 놈의 악마새끼. 석진 이 작게 읊조렸다. 어린놈이라고 해서 마냥 귀여울 줄 알았더니 정국은 꽤나 성가신 놈이었다. 정국을 두고 내기에 응한 과거의 자신을 한 대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계산 착오야. 설마 내가 악마새끼한테 휘둘릴 줄이야. 핸드폰이 없어져 가벼워진 바지 주머니를 석진이 매만졌다. 잠이나 마저 자야지. 아까 핸드폰을 주고 테니스공이나 받아오는 건데. 석진은 정국이 이번에도 벽에다가 공을 던지면 벽을 허물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석진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정국은 선반에 놓인 장미를 골라내는 중이었다. 어떤 새끼가 언제부터인가 여주 곁은 슬슬 맴돌더니 이제는 참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어떤 겁 없는 놈이 장미를 보내고 지랄이야. 정국이 직접 놔둔 장미 서른 송이를 제외하고 다른 장미들을 휴지통으로 던졌다. 정국이 보낸 택배인 줄 알고 받아서 선반에 올려둔 여주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물건이 제자리에 없는 것 하며 밤에 누가 따라오는 것 하며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데도 본인이 그걸 알아채지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말해주기엔 괜히 무서워할 것 같아 망설이기만 했다.
정국이 알던 과거의 여주는 그랬다. 스토커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떨어대는 아이였다. 아직은 지금의 여주보다 과거의 여주를 더 많이 기억하는 정국이었기에 여주가 오기를 밖에서 기다리고 함께 집에 들어오고 빨리 들어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저번에도 여주의 뒤를 따라오는 놈도 모른 채 과자봉지를 흔들며 신나게 뛰어오는 여주에 헛웃음이 나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생각도 없이 와락 안아버리고 그대로 놈을 노려보자 움찔거리며 사라지는 놈이었다. 정국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정여주께서는 오늘도 늦게 들어올 것이 뻔했다. 시험공부인가 뭔가를 한다고. 남은 걱정에 미칠 지경인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국이 여주를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있다는 사실을 안 건 오래되지 않았다. 여주가 학교를 가는 동안 항상 집을 지키던 정국이 지루함을 못 이겨 석진의 집을 갔던 어느 날, 그 미친놈은 덜미를 잡혔다. 정국이 귀찮게 굴자 석진이 친히 정국의 등을 떠밀며 여주의 집으로 다시 보낸 그 때 여주의 집에 초점이 없는 눈을 가진 미친 새끼 하나가 있었다. 하도 재빠르게 도망간 데다 당황했던 탓에 그 순간에 바로 놈을 잡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장면을 같이 본 석진도 예상 치 못한 일에 입만 딱 벌리고 서있었다.
스토커 새끼는 머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여주의 집이 비는 틈을 타 집에 들어오고 밤늦은 시각에 여주의 뒤를 밟고 택배를 보내는 등 별 짓을 다했다. 아직까지 눈치 채지 못한 여주의 둔함에 감탄이 나왔다. 모르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둔함에 화를 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정국은 여주가 알아채기 전에 자기 선에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주가 큰일을 당하기 전에 오늘은 기필코 그 미친 새끼를 잡아 족치리라. 정국이 주먹을 꽉 쥐었다.
***
오늘은 분명히 빨리 들어가려고 했는데 시험 범위는 또 왜 그렇게나 많은 건지 또 날이 어두워졌다. 이건 내 탓이 아니고 그 짧은 시간에 진도를 확확 나가신 교수님 때문이다. 나는 수업 시간에 뭘 했기에 하나도 기억을 못하는 거냐고. 덕분에 공부할 시간만 배로 늘었다. 시험 끝나면 뭐부터 먹을까. 잠시 행복한 상상을 했다. 끝나면 맛있는 것부터 조져야지. 회포를 다 푸리라.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잠시 오늘도 어김없이 앞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째려볼 전 정국 생각이 났다. 요즘 들어서 일찍 오라는 잔소리가 부쩍 많아진 녀석이었다. 오늘은 또 무슨 변명을 해야 하나. 공부하고 오는 건데도 변명을 생각해야하다니 살다 살다 별 일이 다 생긴다. 우리 엄마가 이런 걸 봤으면 이 늦은 시각에 고생한다고 진수성찬을 차려줬을텐데. 엄마가 보고 싶다. 그렇다고 다시 본가로 가겠다는 건 아니고. 엄마 아들과 같은 공간을 쓰고 싶지는 않다. 정국이 인간이라면 맛있는 걸 사주면서 살살 꼬셨을 텐데 통하지도 않고 잘못했다고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 팔자야.
핸드폰은 일부러 켜지 않았다. 녀석이 또 아주 많은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을 것이기에. 폰을 꺼두어서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집에 가까워지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국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막상 녀석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앞서서 손을 크게 흔들었다. 정국은 내 인사에는 답하지 않은 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흔들었다. 연락 안 받아서 화났나……. 지금 핸드폰을 막 켰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핸드폰을 켜서 화면을 뒤집어 녀석을 향해 보였다. 핸드폰이 완전히 켜지자 문자 알림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울렸다. 얼마나 문자를 많이 보낸거야. 정국의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당장 뛰어와.
발신자 김석진인 이 문자 메시지 전에 다른 메시지가 내 몸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정국에게로 뛰어가고 싶었는데.
여주씨.
여주씨.
가고 있어요.
발신자 표시 제한. 이거 뭐야.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등 뒤로 느껴지는 숨 막히는 느낌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내 뒤로 다가오는 한 남자를 목격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에 눈을 확 감았다. 미친.
“살려주세요!!!!!!!”
전정국 말대로 빨리 집에 들어가는 건데. 시험공부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보일 줄이야. 가로등 빨리 갈아달라고 민원부터 넣는 거였는데.
“경찰 부를 거예요 진짜. 소리도 지를 거고.”
남자는 나를 세게 안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긴장을 한 몸이 멋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정국을 부르자니 녀석도 위험해질까봐 부르지도 못하겠다.
“사람 살려!!!!!!!”
내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정여주 눈 떠.”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내 바로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급하게 뛰던 심장이 안정을 되찾으며 감은 눈을 서서히 떴다.
“화내려고 했는데.”
그가 손을 내 얼굴에 조심스럽게 댔다. 나도 모르게 맺혀있던 눈물 한 방울을 그가 닦아주었다.
“화를 낼 수가 없네.”
“......”
“진짜 너는…….”
그가 나를 와락 안았다. 나는 안겨서 그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여기에 가둬놓고 아무데도 안보내고 싶다.”
“헐.”
“집에 들어가 있어.”
“너는?”
“저 새끼 죽지 않을 만큼만 죽이고 갈게.”
“없는데?”
“김석진이 데려갔어.”
“아…….”
“집에 가 있어.”
“나도!”
“뭐?”
“나도 갈래.”
그 놈 낯짝이나 봐야 될 성 싶었다. 경찰에 신고도 하고. 내 일인데 내가 직접 해결해야지. 어떤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넌 이제 뒤졌다.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건 그거고. 석진 오빠한테 고맙다는 말도 해야 하고.
“뭐가 좋다고 따라가. 그냥 가 있어.”
“내 일이잖아. 나도 가야지.”
“일단, 지금은 들어가 있어. 나중에 보게 해줄게.”
“응?”
“별로 안 좋은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래.”
안 좋은 모습? 설마 내가 생각하는 뭐……. 그런 거? 그가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런 거.”
폭력적인 걸 굳이 앞에서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한 발 물러섰다. 잘못한 것도 있고……. 입맛을 다시며 들어가겠다고 했다.
“조심해서 가. 데려다주고 싶긴 한데…….”
“아냐, 괜찮아. 너야말로 살살해. 인간이잖아…….”
“이 와중에 인간이라고 편드는 거야?”
“그건 아니고……. 너 힘들까봐. 음. 그래...”
정국이 피식 웃더니 나더러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걸음을 걸으면서도 정국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안함이 아직 가시지 않기도 했고 그가 계속 보고 싶기도 했고. 그는 내가 완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걸음을 뗐다. 나는 절대 이상한 남자가 따라붙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정말. 일찍 다니라는 말을 잔소리로 들을 게 아니었어.
아까 너무 긴장을 한 탓에 무거워진 다리를 움직이며 계단을 올랐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고 잠부터 자야지. 어두운 복도에 불을 켰다. 복도가 갑자기 환해지자 사람 형체가 드러났다. 우리 집 문을 따고 있는. 남자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석진 오빠가 데려간 거 아니었어? 다른 사람? 발바닥이 저릿하게 아려왔다. 쥐라도 난 것처럼.
같이 달려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네용ㅎ
예쁜 댓글 다들 고마워요. 저두 사랑합니다♥
바로 플러스 편 데려올게요
W. 사프란(Spring Cr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