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 11 [짐작]
“ ……”
“ ……”
노래가 끝나고 조원들이 벙찐 표정으로 멈춰있었다. 나와 김준면은 조금 가쁜 숨을 뱉었다. 왜 다들 반응이 없지?
“ 와, 쩐다… 이건…”
“ 형. 답나왔어요. 일등이에요. ”
그제서야 박수가 터져나온다. 김종대와 변백현이 호들갑을 떨며 휘파람을 불었고 구 선배와 여선배도 박수를 쳤다. 김준면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 그 정도야?”
“ 형. 이게 일등못하면 소치올림픽 뺨치는 오심이에요.”
“ 도경수도 쩌는데 형도 춤 잘 추시네요. 그러다 둘이 스캔들나겠어요. 하하하.”
김종대가 광대를 치켜올리며 웃어댔고 스캔들이란 말에 김준면는 애써 웃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았다.
“ 단체는 잘 돼가? ”
“ 네네.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완벽해요.”
“ 그나저나 경수 옷은 어떡해요? 태은이누나 옷 입혀야되나?”
“ 내 옷은 다 보수적이라서… 일단 친구들한테 빌려볼게. 어떤 스타일로?”
태은선배가 받아적을 준비를 하며 물었고 변백현과 김종대는 또 신나하며 줄줄 스타일을 늘어놓기시작했다.
“ 아무래도 치마는 너무 불편할 것 같구요. 그냥 조금 짧은 반바지? ”
“ 위는 큰 후드티! 너무 보수적인가? 에이. 어차피 춤이 야해서 상관없을거에요.”
“ 근데 가발은 어디서 구하지?”
그때 구 선배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 나 가발 구할 수 있어.”
“ 오! 형형! 긴 머리로요!”
“ 아냐. 웨이브넣어야해. ”
변백현과 김종대가 더욱 신이 나 구선배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피식 웃다가 날 빤히 보고 있는 김준면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걸까.
“ 왜요, 형?”
“ 어,아냐아냐. 수고했다고.”
“ 형도 수고하셨어요. ”
해맑게 싱긋 웃어보이자 김준면도 애써 웃어보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왜 그런 눈일까. 니가 그렇게 아껴하는 동생 도경수가 설마 그랬으려니싶어?
“ 형. ”
“ 응, 경수야. ”
“ 이따가 저녁 같이 먹을래요?”
“ 아, 어쩌지. 오늘 약속있는데…”
“ 누구랑요.”
“ …어? ”
“ 누구랑 무슨 약속있으신데요? ”
“ 아는…친구 만나기로 해서.”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가득한 말투가 튀어나와버렸다. 난 잠시 당황하며 얼른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 그럼 다음에 먹어요, 형. ”
“ …그래. 그러자.”
대답하는 김준면은 날 보고 있지않았다. 이상했다. 나도, 김준면도. 이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인데.
*
“ 아, 시바.”
“ 왜 갑자기 욕질이야. ”
나란히 학교 앞 닭갈비 집으로 향하던 중, 변백현이 갑자기 쌍욕을 뱉었다. 박찬열한테 전화왔어. 변백현은 전화가 온 화면을 내게 보여주며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번호를 저장도 안 한건지 화면엔 11자리의 숫자가 둥둥 뜨고 있었다.
“ 그 번호가 박찬열인지는 어떻게 알고? ”
“ 사실 아침부터 계속 문자오는거 씹었거든… 아, 또 폰 번호 바꿔야하나.”
“ 일단 받아봐. 받아서 전화하지말라그래.”
“ 울자기가 대신 해주면 안돼?”
“ 내 말은 똥구멍으로도 안 듣는 새끼라서.”
“ 아아, 개짜증나. ”
변백현은 제자리에 멈춰서 발을 동동 구르더니 결심했는지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 미친 이 스토커새끼. 왜. 뭐, 우리 멍뭉이? 진짜 노얼탱이시네. 뒤진다 전화하지마라. 내가 어딘지알면 뭐하게. 뭐? 야, 꺼져. 진심 찾아오지말랬다. 어라? 이 자식이.”
화난 변백현은 조금 무섭다. 전화기 너머로 여전히 들뜬 박찬열의 목소리가 들렸고 변백현의 미간은 점점 좁아졌다.
“ 아니 내가 널 왜 잠깐 봐야하는데?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던 그 쪽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구요 아저씨. 끊으셔요. 뭐? 학교 앞 ? 헐, 미친. ”
학교 앞이라하면 우리가 서있는 곳이었다. 변백현은 전화를 홱 끊더니 내 뒤로 몸을 가렸다.
“ 나 존나 무서우려고 해, 이제.”
“ 내 뒤에 숨는다고 니가 숨겨지냐.”
“ 우리 경찰,경찰부르자. ”
“ 똥강아지야! ”
그때 반대편 횡단보도앞에서 누군가가 나와 변백현을 보며 손을 휘휘 흔들었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내 어깨위로 빼꼼히 고갤 내민 변백현은 인상을 찌푸리려다가 '어?'하며 고개를 완전히 들었다.
“ 안녕. 우리 똥강아지. 경수도 있었네.”
“ 너… 박찬열?”
난 눈을 한번 감았다 뜬 뒤, 내 앞에 있는 박찬열의 전체적인 차림새를 훑었다. 며칠전까지만해도 노란색의 파마머리였는데 오늘은 단정하게 왁스로 매만진 검은색 머리다. 게다가 평소 입던 정장스타일이 아닌 흔히 볼 수 있는 대학생 스타일에 어디서 주워왔는지 백팩도 매고 있다.
“ 백현아, 백현아. 이거 봐봐. 머리도 이렇게 검은 색이고 귀걸이도 안 했다? 옷도 대학생처럼 입었어. 어때? 가방도 맸는데. 아,참. 그리고 성격은 이제 앞으로 고치면 돼. 니가 말한 거 다 바꿨어. 이제 맘에 들지?”
줄줄 늘어놓는 박찬열의 모습에 난 기가 차서 웃었고 변백현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 백현아. 왜 아무 말이 없어… 나 이거 염색하느라 두피 따가워서 죽는 줄 알았단말이야. ”
“ 누가 하랬냐.”
“ 헐. 우리 백현이 지금 밀당하는거야?”
“ 경수야, 그냥 가자. 쟤 무서워.”
내 손에 홱 팔짱을 낀 변백현이 빠른 걸음으로 닭갈비 집으로 향했고 박찬열이 긴 다리를 이용해 다시 우리 옆으로 바싹 붙었다.
“ 지금 어디가는 중이야? ”
“ 나랑 변백현이랑 저녁으로 닭갈비 먹으러.”
“ 어? 나도 저녁 아직 안 먹었는데! 잘 됐다! 같이 가자, 백현아! 그리고 경수야!”
박찬열이 변백현의 반대편에 팔짱을 꼈다. 변백현이 짜증을 내며 팔을 흔들었지만 매미처럼 찰싹 붙어서는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
치이이 - !
빨간 닭갈비가 불판위에 올라가며 맛있는 소리를 냈다. 변백현 옆에 자리를 잡은 박찬열은 나는 보이지도 않는지 계란찜도 변백현 앞에, 상추도 변백현 앞에, 사이다와 소주도 변백현 앞에 밀어주고 있다.
“ 야, 박찬열. 니 눈엔 나 안 보이냐?”
“ 어? 왜? 뭐 문제있어? ”
“ 됐다, 됐어. 집게나 내놔..”
“ 아냐. 먹어먹어. 내가 뒤적거릴게.”
“ 니가 들고있으면 존나 변백현한테만 처맥일 거 아니야. 내가 할래.”
“ …야, 더우니까 좀 떨어져라.”
변백현이 물수건으로 이마에 땀을 닦으며 박찬열을 밀어냈다. 이제는 박찬열이 좀 불쌍해지려고한다. 나는 집게로 닭갈비를 뒤적거리며 변백현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 백현아. 그래도 좀 봐줘라. 박찬열 쟤 집에 저런 옷 없을텐데 너 보여주려고 따로 산 것 같은데….”
“ 헐. 도경수 어떻게 알았어? 나 이거 오늘 산 건데.”
“ 미친 놈아 너 후드티에 가격표 붙어있어.”
“ 아하. ”
내 말에 박찬열이 서둘러 후드를 앞으로 당기더니 가격표를 얼른 떼어낸다. 그 모습이 웃긴 모양인지 변백현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어, 웃는다 웃는다. 백현이 입꼬리 실룩실룩거린다! 박찬열이 변백현 입꼬리를 손가락을 콕 찌르며 웃었고 변백현은 꺼지라며 그 손을 쳐냈다. 참 귀엽게들 노네. 쯧쯧 혀를 차며 닭갈비를 뒤적거리는데 갑자기 박찬열이 입구쪽을 보며 나를 불렀다.
“ 야야야, 경수야.”
“ 왜.”
“ 저 사람 그 사람 아냐? 저번에 클럽에서. ”
클럽이란 말에 얼른 입구쪽을 쳐다봤다. 김준면과 여자 두 년이 나란히 들어오고 있었다. 저 년을 어디서 봤더라. 아. 김준면이랑 아침 교양 같이 듣는다고 좋아했던 년이지. 그 옆은 그 년 친구였고. 이제 별게 다 거슬리게하네.
“ 준면이형한테 인사드리고 와야하는거아냐? ”
변백현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난 고개를 저었다.
“ 아니. 뭘 가서 아는 척까지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너 혼자 가서 하던가.”
“ …… ”
내 차가운 억양에 변백현은 무안했는지 시무룩해졌고 박찬열은 변백현을 팔로 감싸안으며 날 흘겼다.
“ 야 , 도경수! 넌 왜 백현이한테 그르냐! 울지마, 백현아. 내가 혼내줄게. ”
“ 아, 니 자신이나 좀 혼내. 그리고 더우니까 자꾸 붙지말라고! ”
난 속이 부글부글끓었다. 아는 친구? 지랄하네. 그냥 김준면이 여자랑 있는 꼴 자체가 보기 싫었다. 근데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았고 난 욕을 뱉으며 소주병을 땄다.
*
다음 episode . 12 [아이러니]
아 쓰고 나니까 경수도 눈치고자.
준면이 좋아하면서 괜히.
괘짜증나 도경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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