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이제 이건 니가 해야하는거야. 아줌마가 가도 넌 이걸 따놓아야 해. 그게 네 나이니까. "
" 나이요? 그게 뭔데요? "
" 니가 하루라도 더 살아있다는 표식. "
" 그렇게 중요한거에요? "
" 니 어미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일이니, 중요한 일이지. "
" 어미는 뭐에요? "
" 아. 아니다 아니야. 사람들이 수근거리는건 못 들은 척 당당하게 살거라. "
" 아줌마는요? 이제 여기에 없어요? "
" 글쎄다. 대신 택운이는 있을테니까 힘들면 택운이한테 이것 저것 물어봐.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이렇게 태어나서는 …. "
누렇게 떠버린 소맷자락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는 박씨 아주머니가 그렇게 나에게 신신당부했던 것,
나는 아주머니가 지정해준 날마다 내가 자는 곳 앞에 지지 못해 힘없이 피어있는 꽃잎을 한 개씩 따다놓았다.
내가 어렸을때, 그땐 누가 따다주었을까.
어머니에 대한 존재와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인식한 것은 말라가는 꽃잎이 열 하고도 일곱장이나 더 모였을 때였다.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날이 갈수록 더 크게 들려와 나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상상을 할 수도 없는 천박하고 낮은 말로 그들은 나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내가 이 땅에서 가장 낮고 더러운 노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조급하고도 늦은 깨달음이었다.
" 야. "
" 응? 어? "
" 발. "
" 발? 미안! 어떡하지 이거? 정말 미안해. 내가 빨아다줄까? 미안해 "
" 됐어. 니 일 해. "
택운과의 첫만남.
우리는 아주머니라는 공통된 인물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 아이는 마음을 안 여는 것 같다. 좋아도 슬퍼도 화가 나도 한결같은 무표정이었으니까.
" 택운아. 너는 어쩜 이렇게 하얀거야? 진짜 부럽다 완전 신기해. "
" 니가 까만거겠지. "
" 나 그래도 나름 잘 씻는데. "
" 어쩌라고. 니 일 해. "
" 아 이제 잘꺼잖아. 나랑 조금만 더 얘기해주면 안돼? "
" 어 싫어. "
" …알았어 잘자.. "
그날 밤이었나, 그 다음날 밤이었나.
이제는 잘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누군가 자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서 이유없는 무차별적 폭력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런 수치스러운 말과, 폭력을 당하면서까지 나를 더 힘들게하던 것은.
모르는 척 잠을 청하던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었다.
" 저 놈 저거 그년 아들 놈이라며? "
" 그년이 기어코 새끼까지 낳았단 말이야? "
" 그 에미에 그 아들놈이네. 생긴 것도 어쩜. "
그나마 누구 하나가 더 와서 놀지말고 일 하라는 윽박을 지르기 전까지 여인네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나와 내 어머니라는 사람을 욕했다.
서러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여도, 나는 결국 그 눈물을 다 삼켜버렸다.
눈물을 흘려도 봐줄 이 하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