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마음의 뿌리는 좀처럼 찾기 힘들 때가 많다. 사람들은 죽고 싶을 때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 나처럼 불쌍한 이는 없을거야, 라는. 물론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다. 예컨대 가족의 학대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나, 극한에 도달한 우울증이나. 그와 반면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저 파란 하늘을 보며 막연히 죽고 싶다는 나와 같은 이들도 있다. 하쿠나 마타타 하늘이 푸르렀다. 높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거센 비바람이 내리쳤던 어젯밤과는 달리 화창했다.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길거리는, 평소와 조금 달리 적막해보였다. 길을 걸을 때마다 찰박이는 웅덩이 소리가 들렸다. 천사의 울음소리처럼, 간절한 울림을 가지어 귓가를 맴돌았다. 멈추지 않고 걷던 도중 솜사탕을 손에 쥔 어린 아이가 제 곁을 지났다. 팔뚝 부근에 소복이는 솜사탕이 닿았다. 빗줄기와 다름없는, 틀림없이 끈적일 거라고 줄곧 생각해왔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찰나의 온기가 묻은 그 부근을 손바닥으로 가만히 감싸쥐다 고개를 돌리고서 다시 길을 걸었다. 여전히, 하늘은 화창했다. 우울증은 아니었다. 아니, 확신없이 그저 그렇게 믿을 뿐인 것에 그쳤지만. 아마 분명 우울증은 아닐 것이다. 하나도 우울하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울고 싶지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동정하며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그럼에 사람들이 흔히 칭하는 우울증은 아니었다. 그저 마알간 하늘과 끝없이 이어지는 길. 뻗은 수평선을 보면 죽음이 생각났다. 아니, 꼭 무언가를 보고 있지 않아도 늘 죽음이란 감정은 제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소꿉친구와 다름없을 정도로 아주 깊게 스며있었다. 네모진 것이 무뎌져 원이 될 때까지. 그러니까, 남들에게 생소할 그런 것이 나의 안에서 무감해질 때까지 나는 그것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굳이 그 감정을 잠재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죽으면 이 하늘이 좀 더 높게 보일까. 간단하고 쉬운 생각을 해대며 잠에 들었다. 그것 뿐이었다. 옥상에 있기를 좋아했다. 집 앞 사거리엔 폐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곳의 옥상에 오르면 동네의 지붕들이 한눈에 보였다. 수탉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빨간 지붕이 보였고 조금은 낡은 듯한 녹색의 지붕이 보였다. 녹이 슬어버린 철물점의 지붕도 보였다. 간절하리만큼 세세히 바라보다 난간에 손을 대고서 몸을 좀 더 기울이기를 잘 했다. 좀 더 트인 곳을 향해 몸을 숙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다. 학연은 그곳에서 죽고 싶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제 자신은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막연하게 바람을 맞으며 죽고 싶을 뿐이었다. 그 옥상에 있는 동안이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아마 나의 안에서 그 비정상적이라면 비정상적인 생각이 무감해질 때까지. 그러나 여태까지 흩날리는 허공 속에 온전히 몸을 맡기지 못한 이유는, 보잘 것 없는 삶에 무슨 미련이 있었기에. 학연의 기다란 목이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아래에서는 옥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넘어갈 듯 걱걱대는 위태로운 난간만이 보일 뿐이다. 조용하고 텁텁한 공기가 몸의 구석구석을 감쌌다. 온몸이 메말라버릴 것만 같았다. 사막 한가운데에 놓여, 내리쬐는 절망을 오롯이 받아내며 서서히 죽어가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태양이 눈부셔 오른팔을 들고선 눈꺼풀 언저리를 가렸다. 그러나 하늘을 배경삼아 놓인 그 난간을 바라보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다 발걸음을 옮겨 폐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움직였다. 여느 때의 일상과 다름없었다. 정처없이 길을 걷다, 결국 마지막으로 호흡하는 것은 하늘과 맞닿은 곳이었다. 하늘은 언제나 그 모양이 달랐다. 하물며 계속해서 비가 내릴 때도, 끊임없는 가뭄이 지속될 때도. 언제나 보기에 따라 달랐다. 눈물 젖은 눈으로 응시하면 한여름 장마와 다름없어보였고, 건조한 눈으로 응시하면 한없이 건조한 초겨울 같았다. 오늘도 그랬다. 문을 열자 반기는 것은 아래와 조금 다른 공기,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하늘. 익숙하게, 천천히 발을 떼었다. 습관이 되어버린 이 모든 것들은 오늘도 저를 따스히 받아주었다. 제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틀림없이 이들은 따스하게 감싸줄 것이다. 틀림없이 반기어줄 것이다. 난간은 부러질 것 같았다. 녹이 많이 슬어버려 볼 품 없는 외양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직은 기대어 쉬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손을 맞대어 지탱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직 너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속삭여주고 싶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보다는 위를 바라보는 편이 좋았다. 아래보단 위가 넓고 청아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죽으면 어떨까, 생각하는데도 떨어져 죽지 못 한다. 그랬다간 피로 얼룩져버릴 아래가 너무도 불행하기에. 변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상 죽으려니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냐고. 그것은 나에게 있어 틀릴 수도 있고,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선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오직 나만이, 나만이…… 내가 옳아. 오늘은 하늘이 높지 않았다. 낮게 가라앉은 그것은 나의 가슴까지 내려앉게 만들었다.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시리도록 얼어붙었다. 눈을 감았다. “하쿠나 마타타.” 변함 없다고 생각했으나 딱 한 가지. 변한 것이 있었다. “걱정 거리가 없다, 라는 스와힐리어.” “…….” “마치 주문같지.” 오직 나만이 존재했던, 고독한 하늘 언저리에 누군가가 있었다. 학연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동시에 힘이 들어간 손바닥이 평온을 되찾았다. 누구야, 라고 물으면, 하늘을 닮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웃었다.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지은 적 없었던 웃음을 보였다. “너 항상 이곳에 오지.” “…….” “난간에 손을 얹고,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며.” 너는, 언제나 보고 있었던 걸까. “너는.” 나를. “죽고 싶은 거야?” 입술을 뻐끔거렸다. 확실히 무언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저 들썩임에 그치고 말았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까. 죽고 싶다? 아니면, 죽고 싶지 않다? 남자는 웃음을 거두었다. 하늘을 등지고 서 있는 그 모습에, 그냥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에 기대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좋아.” “…….” “기분이 좋아. 이곳에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거든. 남자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너는 여름일까, 겨울일까, 가을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봄이려나. 그에 맞춰 학연의 머리칼도 함께 흩날렸다. 멈추지 않을 시간. 그 속에 단 둘만 남은 것처럼. 남자가 움직였다. 머리맡 정가운데에 떠 있는 태양은 발치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도록 했다. 남자는 다가오며 입술을 벌렸다. 난간 아래를 내려다 봐. 그러면, 고개를 돌려 다시금 난간을 짚었다. 매일 손에 닿았던 것인데도 어쩐지 차갑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감각이 소름끼쳤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혼돈. 이것은 혼돈일까. 나는, 분명히 하늘에 몸을 맡기고, 죽어도 좋을 만큼……. “환상이 아니야.” “…….” “죽는다는 건.” 하늘은 넓고 푸르지. 그러나 그것은 너를 온전히 감싸주진 못 할 거야. 그건 끝없이 이어져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와 같거든. 남자를 보았을 때 그는 다시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손을 뻗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사라질 것 같아 그만두었다. 뜨거웠다. 공기가 뜨거웠고, 태양이 뜨거웠고, 작열하는 빛을 받아내는 온몸의 체온이 뜨겁게 상승했다. 늘 차갑게 식어졌던 그 모든 것이, 뜨겁게. “다시는 여기에 오지 마.” 여전히 웃고있는데도, 하늘은 여전히 푸른데도, 나는 왜…… 왜, 이리도 무너질 것만 같지. 모든 걸 견뎌내지 못할 것처럼. 남자는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밀었다. 질끈, 눈을 감았으나 바람이 몸을 옭아매지 않았다. 고통 또한 느껴지지 않음에 다시금 눈을 뜨고서 앞을 보았다. 떨리는 다리를 곧추 세웠다. 낡은 옥상 문이 열려져 있었다. 막혔던 숨이 뚫렸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아 목을 움켜쥐고 숨을 쉬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하쿠나 마타타. 걱정 하지 마. 그것을 마지막으로 옥상 문은 닫혔다. 남자의 모습 또한,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곤 한다. 여전히 햇발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휘어진 난간은 걱걱대었다. 그러나 변한 것이 있었다.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옥상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살아있음에 여전히 기억한다. 하쿠나 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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