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은 재생해주세요
15
"왜 계속 넋을 놓고 있어."
며칠사이에 바보라도 됐냐? 다니엘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던 성운이 농담조의 말을 던져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과 주인에 대해서 무슨 말도 안되는 연애상담을 해주겠다고 왔으면 별 거 아닌 말이라도 꺼내던지, 아니면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을 하던지 둘 중에 하나는 했으면 좋겠다. 성운은 다니엘을 만난 시간동안 가끔씩 그가 저답지 않게 조용한 날이 오면 다른 것보다 두려웠다. 얘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럴까.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대뜸 느닷없이 이상한 얘기를 하는 걸 수차례 보았기 때문에 아마도 성운은 그에게 휩쓸려서 인간들과 어울려 다니게 되어버린 몇 년전부터 다니엘을 감당하기에 벅차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언젠가 죽겠지?"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궁금해서."
그리고 그런 성운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다니엘은 또다시 이상한 말을 꺼내왔다. 이상하고 가끔은 우습지만 결코 쉬이 넘기기는 어려운 말들을. 글쎄, 원래 본체인 동물의 시간보다는 오래 사는 것 같아. 내가 토끼 수명대로 산다고 치면 지금쯤 늙어서 할아버지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 어깨를 으쓱하며 성운이 대답을 해왔다. 최소한 반인반수로 만들어 놨으면 인간들의 평균 수명으로 맞춰줘야 하지 않냐, 아니면 신이 되게 생각이 없는 놈인거고. 다니엘도 성운도 제가 동물과 사람 사이에 어느 쪽에도 낄 수가 없는 존재라는 건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훗날 지나가는 말들로 그 어떤 누구도 그들같이 징그러운 존재들을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험담을 쉽게 지나칠 수도 없었다.
"왜, 우리는 아무한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다녔잖아."
"응."
"근데 나도 너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니까."
그럼 꽤 괜찮은 인생이지. 유독 뒷맛이 쓴 와인이었다. 언젠가 인간이 되면 꼭 이런 곳에 와서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던 것도 엊그제 같았는데 이젠 와인잔을 드는 것도, 술맛을 아는 것도 제법 인간스러웠다. 인간스럽다는 게 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것들은 많았다. 그들이 뱉어낸 악담 아닌 악담들을 들으면서 마음을 졸이고 살았던 일들도 쉬이 잊혀지지 않았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너는 너랑 같이 떠나고 싶다고 하는 ㅇㅇ씨도 있는데 뭐가 문제야.
"ㅇㅇ가 나 때문에 모든 걸 다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게 싫어."
"뭐?"
"그렇게 다 포기했는데 내가 ㅇㅇ보다 빨리 죽으면 어떡해. ㅇㅇ가 나 때문에 슬퍼하면 어떡해."
기쁜데 불안하고 무서웠다. 평생뿐인 자신의 짝과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쁜데 그 시간이 얼마만큼 유효할지를 생각하면 괜스레 불안했다. 다니엘은 그 때 우진을 떠나보내고 밤이 되는 시간이면 항상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떠올렸다. 혼자 남겨진다는 건 그랬다. 이미 떠나간 사람의 몫까지 더 많이 아파하고 슬퍼해야 했다. 그런데 ㅇㅇ에게 그런 슬픔을 안겨주지 않으리란 보장을 다니엘로서는 할 수가 없었다. 죽을 때면 홀연히 무리에서 이탈해 죽는 게 관습이었던 늑대들이었는데 다니엘은 막상 그러한 일이 생긴다면 그녀를 남기고 돌아설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으니까.
"너 그 분이 우진인가 뭔가 하는 놈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마지막까지 잘 안들었냐?"
"......."
"내가 요즘 주인한테 배우는 건데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댔다. 끝에 말이 가장 중요하대."
남은 겨울 내내 계속해서 눈이 내릴 요량인지 끝도 없이 하얗게 쌓여가는 눈발이 거세져만 갔다. 걔가 있어서 좋았대잖아. 그 강아지 새끼를 키워서 좋았다고,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그 애를 만나러 갈거라고. 성운의 말이 바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에 묻혔다. 언젠가 흘러가다 들었던 노래치고는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이 노래가 유행인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성운은 곧이어 다니엘의 어깨를 가볍게 쳐왔다. 그가 다니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유한적인 삶은, 더군다나 반려견을 먼저 보낸 그녀를 만난 다니엘과 성운, 자신에게는 유독 그런 문제들 앞에서 취약해지기 일수였다. 근데 언제는 당차게도 ㅇㅇ와 결혼을 하겠다고 설레발이나 쳐대던 놈의 입에서 약해빠진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성운이었다. 막상 시작도 안했는데 원체 생각만 깊어지는 다니엘에게 뭔가 더 형답게 한마디를 거들어 주고 싶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연애나 사랑 앞에서는 젠병인지라 무뚝뚝한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게 전부였다지.
"늑대면 늑대답게 굴어."
"......"
"우리가 노력해도 안되는 거에 신경쓰느라 다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나 말고."
그 이후로 둘 사이에선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먼저 자리에 뜨는 사람 없이 채워진 두 자리는 딱 성운과 다니엘의 관계와도 같았다. 여타의 표현이 오가지 않아도 그냥 함께한 시간, 그것 하나로 그들은 충분히 힘이 될 수 있는 존재. 그거면 됐지, 뭐. 따지고 보면 아직 제 주인과 이렇다할 진도도, 사랑표현도 받지 못한 성운이 다니엘의 고민을 듣고 있자면 안타까움보다 더한 부러움이 오가고 있었지만 다니엘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은 퍽이나 다정스러웠다. 그래도 영 거실린다 싶으면 말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테니까.
"그 황민현인가 뭔가 하는 놈 내가 한 대 때려줄 수도 있어."
같은 반인반수여도 한참 작은 토끼가 인간에게 냅다 덤비겠다는 말이나 하는 성운이 그리도 웃길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을 다니엘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유독 그가 고마워서 한껏 크게 웃는 웃음소리만이 조용한 공간을 맴돌았다. 눈 진짜 많이 온다. 그리고 어쩌면 다니엘은 창문 너머로 소복하게 쌓이는 눈이 제가 여기서 볼 마지막 눈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지.
What Does The Fox Say?
W.LIGHTER
입고 나온 외투 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왔다. 이제 좀 날이 풀렸나 싶었는데 아직도 여전히 겨울의 한가운데인걸 보면 생각했던 봄은 좀 늦게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ㅇㅇ는 문득 아파트 단지 내의 의자에 앉아 있는 저와 민현의 사이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예전에는 추운 겨울이라면 질색하는 민현을 위해 어디에 있든 항상 그에게 꼭 붙어있는 게 버릇일 때도 있었는데 문득 멀건히 앉아 있는 자신이, 또 민현이 낯설기만 했다.
"나 조만간 회사 그만둘거야."
괜스레 추워서 빨갛게 물든 손가락을 두어번 쥐었다 피기를 반복한 ㅇㅇ의 말이 정적을 깼다. 회사도 그만 둘거고 어쩌면 한국을 떠날 수도 있어. 민현과 만나면 풀어야 할 일들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더구나 자신과 그가 헤어진 이유가 사소한 일들이라는 걸 알고 민현이 결코 헤어지자는 뜻이 아니었다는 걸 말했을 때는 답도 안나오는 문제를 가지고 머리를 싸매고 있던 제 수험생 시절보다 더 힘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게 설사 사소한 일 때문이든, 그가 자신에게 돌아와 달라는 말을 한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우리는 헤어졌고 그녀에겐 다니엘이 있었다. 그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떤 말이 둘 사이에서 오가야 할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 때문에 그래?"
공백의 틈 속에서 나온 말치고는 민현의 물음이 단조로웠다. 굳이 그런거면 나 피하려고 그러지 마. 그의 말에 꽤나 놀란 얼굴을 하던 ㅇㅇ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나 증오하고 미워했던 민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ㅇㅇ, 저에게 있어 그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헤어진 마당에 그를 볼 때면 이따금씩 설레기도 했었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들었을 땐 그가 제게 내민 손을 잡고 싶기도 했었다. 근데 언제부터였지. 민현을 봐도 더이상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그리고 간간히 그를 생각하고 나면 끝을 맺는게 더디고 힘들 뿐, 그마저도 지나갈 거라 믿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너를 신경쓸만큼 나한테 넌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 이젠."
"......."
"앞으로도 그럴거야. 네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떻게 지내든 신경쓰지 않을게."
내가 너한테 뭐라 상관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니까. 민현은 왜 그 말이 이다지도 슬프게 들렸을까. 꼭 그녀가 꺼낸 말 한미다, 한마디로 인해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리던 그는 자꾸만 뿌애지는 제 시야가 못내 속상했다. 다 끝났다. 끝났다는 걸 뻔히 다 알게끔 말해주는 그녀를 붙잡는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붙잡으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었으니. ㅇㅇ와 만났던 그 식당은 아직도 민현이 혼자 밥을 먹으러 가는 곳이었다. 음식이 유별나게 맛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곳에 외에도 먹을 곳은 즐비해 있었음에도 그는 유독 눈길이 향하는 곳이 거기가 전부였다고 스스로를 변명하고 있었더랬다.
"미안해."
이러다가 정말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차마 ㅇㅇ를 마주하지 못한 민현은 말을 이어가는 내내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우리 기념일에 챙겨주지 못해서 그렇게 말도 없이 가버려서 미안해. 무작정 집을 나온 것치곤 꺼낸 말이 볼품이 없었다. 남을 통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는 ㅇㅇ가 미웠다. 아직 자신은 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 왜 혼자서 이렇게 끝내려는 건지, 만나면 해줄 말이 많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사과가 다였다. 이왕이면 더 좋은데 데리고 갈 걸 그랬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둘이서 좋은 곳으로 여행도 가면, 그래서 우리 기념일도 네가 아플 때 힘들 때 전부 내가 곁에 있었으면.
"그럼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오빠."
헤어지고 난 뒤로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고 했던 ㅇㅇ가 민현을 오빠라고 불렀던 때는 그녀가 그에게 고백을 했을 때였다. 그 둘의 시작이 그 단어로 시작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 말을 들을 줄이야. 한참이나 뿌연 하늘만 바로보고 있는 민현이 그제야 놀란 얼굴을 하며 그녀를 마주보았다. 어쩌면 저와 같이 울고 있는 건지 꽤나 붉어진 눈가를 하고 있는 그녀를.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하면 뭐해."
"......."
"우리는 헤어졌는데."
조용히 뱉어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울었다. 아, 내가 잘 몰랐구나. 민현은 자신과 그녀 사이가 다 끝날 무렵에 뒤늦게 알아차렸다. 제가 아는 그녀는 아주 찰나의 일부 뿐이었다고. 서로를 다 안다고 자부했었던 그 날들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ㅇㅇ는 웬만해서 울지 않았다. 그래서 민현은 그녀가 어떻게 보면 저보다 더 강하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의지가 되어주겠다 했으면서 언젠가부터 그는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못난 자존감 하나로 똘똘 뭉쳐있는 그를 옆에서 봐주고 기다려주었던 ㅇㅇ를 당연하게 생각한 그의 착각이었다.
"그래도 오빠랑 사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아주 늦었지만 오빠랑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좋다. 티내기가 싫었다. 울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까지 했음에도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 슬픔을 억제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 눈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른 ㅇㅇ는 꾹 참아둔 울음 대신 깊은 한숨만 내뱉고 있었을까.
"나도."
".....어?"
"나도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고 좋았어."
민현이 웃어 보였다. 환하게 웃는 건 아니었다지만, 웃음보다 더 먼저 떨어진 눈물들이 눈에 밟히고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어, ㅇㅇ야. 아직도 많이 좋아한다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나중에 다시 와주면 안돼냐고 그런 말도 하고 싶었는데. 굳이 내색을 하지 않았어도 ㅇㅇ는 약했다. 눈물이 많아 그걸 숨죽이며 우는 게 더 익숙했다고 제게 어렴풋이 얘기를 했었던 걸 그는 지금에 와서야 기억을 해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그녀는 손바닥 위로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눈 한 줌,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 한 줌으로 그녀를 다시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마 민현, 자신조차도 지금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저의 최선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춥다. 들어가."
오랜 뜸을 들이고 나서 민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현과 ㅇㅇ의 짧으면 짧은 대화가 끝날 시점에 하얀 눈들이 점차 바닥 위로 쌓여가고 있었다. 추위는 자신보다 더 잘 타는 사람이 바로 그였는데 제 볼을 두 손으로 감싼 민현의 손이 왜인지 모르게 따뜻하기만 했다. 추워서 그런가, 볼 엄청 빨개졌다. 문득 그녀를 보면서 눈가를 반달로 휘어져라 웃는 그의 눈에서 끝끝내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올렸던 ㅇㅇ의 손이 멈칫했다.
"오빠도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
"응."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져."
그럼 결혼식 하는 때엔 내가 한 번 가줄테니까. 우리 그정도는 해도 되잖아? 그의 눈물을 닦아주기엔 너무 늦었다. 모든 것에도 때가 있듯이 지금 민현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제 몫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해야할 일은 후에 민현이 만날 인연과 일들에 안부를 전하는 것 뿐. 겨울이라 하늘이 금방 어두컴컴해질 때에 ㅇㅇ는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들었던 손을 펴서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잘 가."
서로가 서로에게 미처 전하지 못할 말들을 속으로 삼켜내기를 몇 번, 민현이 먼저 건넨 인사에 ㅇㅇ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잘 있어."
뭐가 그리 급했는지 짝짝이로 신겨진 그의 신발을 애써 무시한 채.
끝이었다.
'오빠, 야 황민현!'
'야, 황민현?'
이게 아주 맞먹을려고 하네. ㅇㅇ의 이마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으로 살짝 튕겨낸 민현은 곧 무섭지도 않을 무서울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작 몇 살 차이도 안나면서. 둘이서 사귀고 처음으로 맞는 봄이었다.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름 예쁘다는 원피스도 샀고 불편한 구두도 신었건만 저 놈의 황민현은 더럽게 눈치도 없지. 툴툴대면서 민현을 째려보던 그녀는 길가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쳤다고 내가 왜 구두를 신었지.
'왜, 다리 아파?'
아오, 진짜. 순간 눈치코치 하나는 죽어도 없는 그의 앞에서 뒷꿈치가 다 까질 정도로 구두를 신고 다닌 제가 다 미련해질 지경이었다. 예쁘다는 말이야 그는 항상 입에 달고 살았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하물며 며칠간 바빠서 씻지도 못했을 때도 그는 매번 그녀에게 예쁘다고 해주었다. 정작 예쁘게 차려입고 나온 오늘같은 날에는 그 흔한 말들 한 번 해주지 않는다는게 문제였지만.
'그래, 아프다 아파!'
내가 오빠 때문에 구두도 신고 옷도 이렇게 입으면 뭐해, 알아주지도 않는데. 정작 그리도 센 저의 자존심 때문에 하고 싶은 얘기들은 속으로 꾹 참은 채 ㅇㅇ는 온 힘을 다해 민현을 째려보고 있었다. 주말에도 좀처럼 쉴 틈이 나지 않은 업무들 때문에 그녀나 민현이나 꽤 오랜만에 만난 데이트였다. 거기다 오늘이 벚꽃이 가장 예쁘게 핀다고 해서 정말 설렜는데. 하루 빨리 그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좀처럼 잠도 자지 못해 지난 밤들을 샜던 어제의 그녀, 자신은 알고 있었을까. 도중에 공원을 가기도 전에 길가에 앉아서 퉁퉁 부어버린 제 발목이나 주무르고 있을 거라는 걸.
'이리와, 업혀.'
어? 갑작스럽게 제 앞에서 등을 보이는 민현의 행동에 잠깐동안 벙찐 표정을 하고 있는 ㅇㅇ의 구두가 순식간에 벗겨져 나갔다. 구두는 신지 말고 이따가 나중에 운동화 보러 가자. 민현은 제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의 허리 위로 제 가디건을 둘러주었다. 얼른, 업혀. 주차해둔 곳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해. 채근하는 말을 연달아 하고 나서야 ㅇㅇ를 업은 민현이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기가 무섭게 한숨을 쉬었다.
'너는 무슨 구두도 잘 못 신으면서 이걸 신고 걷는다고 그랬어.'
'그럼 어떡해.'
웬만해서 굽이 있는 신발들은 모두 다 신기가 꺼려진다고 했던 건 다름아닌 ㅇㅇ였다. 제대로 걷는 것도 힘들어 보였는데 피가 흥건히 묻어난 뒷꿈치까지 절뚝이며 걷는 걸 보고 있자면 괜스레 미간이 찌푸려지곤 했다. 핀잔조차도 다정하기만한 민현의 말에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어떡해. 간만에 만나는 오빠한테 예뻐 보이고 싶은데. 옅은 분홍색 구두를 두 손으로 쥔 채 내쉬는 작은 숨들이 목 뒤로 느껴졌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이렇게 입고 와도 예쁘다는 말도 안 해주는 오빠가 더 너무했거든. 눈치도 없어서는.
'다른 때는 매일 예쁘다고 해주면서. 정작 이럴 때는 해주지도 않고.'
'예뻐.'
민현의 어깨로 얼굴을 기대오는 ㅇㅇ를 보며 그가 낮게 웃었다. 어제도 예쁘고 오늘도 예쁘고 지금도 예뻐. 그가 움직이는 발걸음에 맞춰 ㅇㅇ의 몸이 가볍게 움직였다. 매번 자신보다 더 어른스러운 척은 있는대로 다했으면서 꼭 이럴때면 민현, 제가 어린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눈치를 못 챌만큼 제가 둔한 편도 아니었거늘. 평소라면 움직이기 편한 정장들과 셔츠를 달고 살았던 그녀가 대뜸 원피스를 입고 제 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온갖 고민을 다 했다. 그러다가 오늘 가디건을 걸치고 나온 자신을 칭찬을 했고 구두를 신고선 공원을 걷자는 말에 언제쯤 그녀를 업어야 할 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할 ㅇㅇ도 아니었던지라 그 때를 가늠하는 것이란 꽤나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며.
'그러니까, 괜히 힘들게 구두 신고 그러지 마.'
그러지 않아도 예쁘기만 한데 왜 그래. 밑을 내려다보자 언뜻 보이는 상처난 발이 못내 속상한 민현의 말투가 차분했다. 가는 길에 약을 사서 가야하나. 아쉽게도 그 날, 공원을 가지는 못했다. 만개한 벚꽃들이 가득한 거리들을 걷는 것도 못했지만 ㅇㅇ는 혼잣말로 제 상처를 걱정해주는 민현이 뭐라 말 할 수도 없이 좋았더랬다. 구태여 많은 벚꽃들이 아니어도 가는 길목마다 간간이 피어난 벚꽃이 머리께로 떨어지는 것도, 저를 받치고 있는 그의 따뜻한 손길도, 허리 위를 두르고 있는 가디건도 모두 다 설레고 좋았으니까. 한동안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에게 지금 이 순간은 유난히 봄 같았다.
'그럼 나 운동화 신고 올테니까 우리 다음 봄에도 같이 오자.'
'응, 그러자.'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때 ㅇㅇ를 업고 다니더라도 벚꽃놀이를 같이 보았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민현은 뒤늦은 후회를 했었다. 하기야 그 순간에는 알지 못했겠지만. 사계절이야 돌고 돌아서 또 오는 것이라고, 우리는 그 때도 여전히 함께일거라고. 그녀와 자신은 매번 그런 기분 좋은 착각 속에서 살아왔었다. 뒤를 돌아 혼자서 온전히 하얀 눈을 맞고 있는 그는 감은 제 눈 앞에 괜한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분홍색 구두를 들고 있었고 저는 그런 그녀를 업고 있는,
'사랑해, ㅇㅇ야.'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그 때의 봄을.
What Does The Fox Say?
Episode 15, fin
안녕하세요, 라이터입니다
현생에 뒤쳐져셔 늦게 돌아와서 너무 미안해요ㅠㅠ 이번화는 민현이와 정리를 하기 위한 에피소드라 봐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민현이 편이라 다니엘의 비중이 적었지만 다음화에는 거진 다니에리를 위한 에피니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짧게나마 말하자면 솔직히 15화 뿐만이 아니라 컴백 기념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쓴 글들도 있었는데 작은 불씨가 점점 커져가는 일을 겪다보니 글을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어요.
우리 워너원을 처음 보았던 작년 봄부터 지금의 봄까지 한 번도 좋아했던 걸 후회한 적은 없는데 힘들지 않냐, 하면 그건 거짓말 같아요
큰 인기를 얻고 모두에게 알려지는만큼 유명해지는 것과 동시에 남의 입에 올라가게 되면서 여론의 여파를 면치 못한다는 걸 이번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태들을 몸소 느끼다 보니까 지치기도 지치고 정말 감정소모가 말도 못할 정도더라구요. 그러니 아마 이걸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애들은 어떤 심정일지 일개 팬인 저는 다 감히 알지도 못할 것 같아요
컴백을 해서 항상 좋은 일들로만 가득해도 부족한데 본의 아니게 올려진 영상으로 워너원도 우리 독자님들도 많이 힘든 날들이네요
저는 경솔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절대 하지도 않았던 말들까지 회자 되면서 부풀려지고 온갖 궁예들로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두고 볼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저는 글을 쓸 거예요. 워너원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큼이라도 옆에서 팬으로 있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제 짧은 견해와 글로 절대 우리 독자님들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같이 애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독 고단한 날들이 겹쳐서 폭풍우처럼 오는 밤들인데 워너원도 독자님들도 조금은 덜 힘든 하루가 되기를,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은 날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게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부터 예쁜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분들까지 많이 많이 사랑해요!
우리 앞으로도 오래 함께 보았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좋은 꿈 꿔요
p.s. 제 노트북에서 새로 첨부하려는 인티 움짤이 첨부가 되지 않거나 다 뭉게져서 나와서 움짤은 16화에 담아서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ㅠㅠㅠㅠㅠ정말 죄송해요....(눈물)
아, 맞다. 폭스 글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암호닉 신청은 다음 16화까지만 받도록 할게요.
#암호닉 신청은 16화까지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 으어 실수로 포인트를 25로 걸고 올려버렸어요ㅠㅠㅠㅠㅠ5포인트로 수정했는데 다들 착오 없으시죠?,,,
오늘도, 내일도 예쁜 우리 암호닉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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