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ZE(치즈) - Madeleine Love
(오늘은 분량이 좀 많습니다.)
소아외과 전문의 황민현
어느덧 병원의 레지던트가 된지도 약 1년이다.
그동안 병원에서의 하루는 너무나도 각박하고 길었다.
내 자신의 대한 생각 보다는 병원과 환자들의 생각으로 나의 하루를 채우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 그곳이 내가 일하는 곳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턴 과정을 끝내고 나는 소와외과를 선택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말린 길이지만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여러 병들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평소와 달리 낯설 만큼 한가로운 오후였다.
차트 정리를 하며 간호사님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저기 혹시 윤지성 과장님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의 눈빛은 매섭지도 선하지도 않았고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오목조목한 눈코입이 꽤 인상에 남았다.
“혹시 따로 약속 잡으신 건가요?”
“네. 근데 과장님이 전화를 안 받으셔서요.”
“아... 그럼 이쪽으로 따라 오세요.”
똑똑-
“과장님. 저 성유리입니다.”
“응, 무슨 일이야?”
“누가 과장님을 찾으셔서요. 성함이.. 어....”
“황민현입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으시던 과장님이 헐레벌떡 나오시더니 황민현...? 이라는 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다.
이름과 그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성유리 선생도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우리 과 전문의 황민현 선생. 내가 얘 데려오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헐...
곧 새로 올 거라던 전공의가 저 분이라니.
유능한 전공의라고 하기에는 꽤나 어려 보였다.
그러니까.. 저 분이 전공의라면.....
한 30초 동안 상황을 판단한 결과, 내가 앞으로 저 분, 아니 선생님께 겁나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거다.
“몰라 봬서 죄송해요. 소아외과 레지던트 1년 차 성유리라고 합니다.”
“괜찮아요. 제 이름은 아까 들으셨을 테고. 잘 부탁할게요.”
표정이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꽤나 맑은 사람 같았다.
무표정 속에 슬며시 머금고 있는 미소가 참 예뻤다.
모든 진료가 끝나고 오랜만에 회식을 했다.
얼마만의 오프인지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전공의 선생님이 새로 오신 만큼 처음부터 회식 분위기가 한껏 올라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황민현 선생님은 테이블의 중간쯤에 앉으셨고 높은 분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계셨다.
선생님이 불편해 보이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의대생들이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는지 알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내 주량을 한껏 늘릴 수 있었다.
그렇게 소맥을 얼마나 말아 마셨는지 모르겠다.
“성유리 오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놔둬. 몇 주 만에 마시는 술인데.”
오늘따라 술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갔다.
한 1시간 정도 흘렀을까.
황민현 선생님은 해방감에 가득 찬 얼굴로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나는 스트레스에 쩔어서 내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벌써 다들 많이 마셨어요?”
“이쪽은 이미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저 아직 괜찮아요 ㅅ... 생..선....님..”
생선님은 누구냐.. 아오....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실수를 해버릴 것만 같았다.
“저... 오늘은 먼저 일어날게요오..”
자리에 일어나 잠깐 휘청했지만 이정도면 괜찮다 싶었다.
남정네들이랑 술을 워낙 마시다 보니 술고래가 된 것 같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뭔 놈의 빈차가 그렇게 없는지..
한참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시간은 원래 택시 안 잡혀요.”
황민현 선생님이었다.
왜 괜히 반갑고 그르냐..
“어.. 선생님...”
“집이 어디예요?”
“저 상암 살아요.”
“저보다 가깝네요. 가는 길인데 태워줄게요.”
“... 선생님 술 안 마셨어요?”
“저도 알코올 쓰레기라.”
그의 차 역시도 주인을 닮아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그날따라 집에 가는 길은 더욱 더 짧게만 느껴졌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나도 정말 모르겠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했어요. 해장 제대로 하고 와요.”
의사 가운을 입은 황 선생님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때쯤이었다.
그날따라 선생님의 티 없이 맑은 얼굴과 의사 가운이 참 잘 어울렸다.
가운이 원래 저렇게 간지 나는 거였나 싶다.
하루도 쉴 틈 없이 바쁜 소아외과는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내 컨디션이었다.
며칠 전부터 목이 따끔하더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약을 먹으면 졸릴까봐 약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침 회진을 돌 때 선생님이 내 상태를 눈치를 채신 것 같다.
“박지훈 환자 수술 어시 할 수 있겠어요?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말해요.”
“아니요. 저 할 수 있습니다.”
지훈이의 수술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꼭 참여하고 싶었다.
지훈이는 6살, 우리 병원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내가 인턴 때부터 봐온 아이였기 때문에 정이 많이 갔다.
신경모세포종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지훈이는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웃어줬다.
“선생님.. 나 오늘 수술해?”
“응. 지훈이 잘 할 수 있지?”
“... 무서워.”
늘 밝게 웃던 아이가 무서워하는 걸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할 수 있어 지훈아. 엄청 잘생기고 엄청 유명한 선생님이 수술하실 거야.”
“혹시 내 얘기해요?”
타이밍 좋게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황민현 선생님이었다.
능숙하게 지훈이 등을 토닥이며 대화를 나누던 선생님은 지훈이의 상태를 직접 체크하셨다.
언제나 아이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농담을 건네고 눈이 휘어지게 웃어주는 그였다.
“좀 이따 수술실에서 봐요.”
결과적으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황 선생님이 워낙 손이 빠르셔서 따라가느라 힘이 들긴 했지만..
그리고 몸살 기운에 취해서 정신을 잃은 뻔 한 적도 있었지만 수술이 끝날 때까지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아.. 응 괜찮아. 나 조금만 쉬다 올게.”
병원 옥상에 있는 아무 벤치에나 앉았다.
안도감으로 뒤덮인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환자를 대할 때 감정적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우리 과의 특성상 그럴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지훈이의 수술이 잘못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정신 차려요.”
“...”
“이렇게 자꾸 무너지면 끝도 없어요.”
“...”
“그리고 아프면 약을 먹어. 그렇게 끙끙 앓지 말고.”
“...”
“성유리 선생 바보예요? 못하면 못하겠다고 말하라고 했잖아요.”
다 맞는 말이었다.
수술에 들어갈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도 맞고 자칫하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
“... 저 신경 쓰지 마세요.”
“허.. 신경이 쓰이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
“자꾸... 자꾸 신경 쓰게 하잖아 성유리씨가.”
“... 죄송합니다.”
병원에 와서 얼마나 많이 혼났는지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근데 오늘은 조금 더 아프고 쓰라렸다.
“... 화내서 미안해요. 레지 때 내 생각이 나서.”
오랜 정적을 깨고 그가 한 말이다.
“...”
“소아외과 선택한 거면 돈 때문에 의사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맞아요?”
“..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길이지만 그 길에도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맞아요. 사실 그래서 저도 소아외과 온 거예요.”
“...”
“술이나 한 잔 할까요 우리? 아.. 아니다 오늘은 좀 쉬어요. 수술도 다 끝났고.”
“아 전 괜찮은데...!”
미친.. 입이 방정이다.
“술은 유리씨 감기 다 낫고 마시는 걸로 해요.”
선생님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 주고는 자리를 떠나셨다.
그가 남기고 간 건 감기약이었다.
이것저것 다 담겨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약들을 보고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날 좋은 5월의 어느 날, 백만년만에 주말을 병원 밖에서 보낼 수 있게 됐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 시간 괜찮아요?
-황민현 선생님-]
...
순간 꿈인가 싶었다.
할렐루야.
[네. 괜찮아요.]
[그럼 1시간 후에 집 앞으로 갈게요.
-황민현 선생님-]
평소에 잘 하지 않는 화장에 고데기에...
혼자 난리를 쳤더니 1시간이 그냥 흘렀다.
“타요.”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알면 됐어요.”
또 생긋 웃어 보이는 그다.
도착한 곳은 유명한 한식집이었다.
“그때 한식 제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건 또 어떻게 기억했는지..
그렇게 둘은 한참을 말없이 밥만 먹었다.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였다.
“그동안 정말 많이 생각해봤어요.”
“... 뭘요?”
“제 마음이요.”
“...”
“처음에는 그냥 관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후배니까.”
“...”
“근데 자꾸 생각나고 눈에 밟혀요 성유리 선생이.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요.”
눈치 없는 심장이 엄청 빠르게 뛰었다.
“좋아해요.”
“...”
“성선생 생각보다 많이. 그런 것 같아요.”
“성유리 선생은 그거 모르죠.”
“뭘 몰라요?”
“본인이 수술실에서 매력 쩌는 거.”
얼굴이 화끈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말을 잘하는 건지 경험이 많은 건지.
그가 하는 모든 말 한 마디가 내 세포를 하나하나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그날 한정식 집에서 나는 고백 아닌 고백을 받았고 꽤나 스릴있는 비밀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한정식 집에서의 고백은 생각도 못했던 그림이지만 그것마저도 설렜다.
(+번외)
“성유리 선생. 잠깐 나 좀 보죠.”
뭐지...
내가 뭘 또 잘못했나.
조심스레 선생님의 방에 들어갔다.
“선생님 저.. 또 무슨 실수했어요?”
“그냥 보고 싶어서.”
미쳤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얼마나 쫄아 있었는데.
“아.. 미쳤어요?”
키득키득 웃던 선생님은 아무 말없이 나를 끌어 안았다.
“농담이고. 너무 피곤해보여서 이렇게라도 잠시 쉬라고.”
크흡...
세상 사람들 모두 황민현하세요..
한없이 다정한 황민현은 그 다음날에도, 일주일 후에도 성유리를 방으로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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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무 반가워요ㅠㅠ 오랜만에 글 쓰니까 행복하네여... 물론 제 시험은 끝나지 않았지만ㅋㅋㅋ 집중력 한계로 인해 도저히 공부를 못하겠어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도서관 로맨스 뒷편이나 청춘의 결말을 쓰려고 한 2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도저히 글이 안 써져서... 어제 독방에 제가 여쭤봤는데 의사 황민현을 외쳐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이렇게.. 네.. 댓글 적어주셨던 분들은 꼭 다 보셨으면 좋겠네요ㅎㅎ 공교롭게도 가운 입은 민현이 사진들이 많이 등장해서ㅠㅠ 사진만 봐도 설렜어요 흑.. 다른 분들 의견도 메모해놨으니까 하나하나 천천히 다 써볼게요♡ 오늘도 역시나 멤버 이름이 등장.. 했고요. 그냥 이름만 빌린 것 뿐입니다! 한없이 달달하기만 한 내용은 아니지만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고.. 감기 걸리지 마세요ㅜㅜ 전 감기 덕분에 넘 고생 중이에요,, 그럼 전 시험 끝나고 다음 주말에 또 등장할게요 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