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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백도] spicy

 

 

경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큰 소리를 내며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이 교실을 박차고 나가 3학년 선생님 교무실에 도착했다. 아직 쌤 안 왔네. 경수의 일과는 이렇다. 수업이 끝나면 - 물론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생각을 하느라 한눈 판다 - 3학년 교무실로 와 선생님의 자리에서 기다리다가, 선생님이 오면 만담을 한다거나 방금 교시 수업은 어땠느니,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사실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경수에게 중요한거지,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였다.



" 아, 진짜. 영어 시간 너무 지루해 죽겠어요. 빨리 3학년이 돼야 쌤 수업을 들을텐데! "

 

백현의 담당과목은 기술가정이었다. 처음엔 무슨 남자가 기가를 가르친대? 하는 거부감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선생님에 매력에 폴링인럽 한 다음에는, 그런 생각을 내가 했었다고? 말도 안돼. 하며 부정하는 경수였다. 더군다가 성교육 …. 경수는 백현도 모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아무리 그래도, 찬열 선생님도 매일 열심히 준비하시던데. 수업을 잘 들어야 성적이 올라가죠. "

 

백현은 경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경수는 말투가 딱딱해서 싫다며 툴툴거렸지만, 백현은 항상 언제나 존댓말만 했다. 경수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아, 그건 그렇고 찬열쌤이 수업준비를 열심히 한다고? 경수는 코웃음을 쳤다. 사실 이번 영어 시간에도 찬열의 필기를 대충 따라적던 경수였는데, 갑자기 조용해진 교실에 고개를 들어보니 찬열은 물론이요, 학생들이 다 잠에 들어 있었다. 찬열은 아무래도 가르치는 능력보다는 기막힌 잠재능력으로 사람을 재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가보다. 교실이 조용해지자 경수는 책을 덮고 백현쌤한테나 가볼까 …. 생각했지만 곧 자신의 벌점 상태가 부모님께 문자가 가는 10점보다 딱 1점 아래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다시 교과서를 폈다.

 

" 오늘도 찬열쌤 졸던데요? 아니, 완전 조는게 아니고 자는 거에요. "

 

울분을 토하며 말하는 경수의 모습에 백현은 살풋이 웃고 선, ' 어제 밤까지 열심히 준비하셨는 걸. 정말이야. ' 하며 경수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 선생님. 대체 무엇을 드셨길 래 이리도 상냥하신가요! 혹시 백현교 있어요? 제 1의 창립자가 되겠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는 경수를 보며 뿌듯한 웃음을 지어냈다.

 

" 아, 종쳤다. 저 갈게요! "

 

경수는 당차게 교무실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아, 얘 또 문 안닫고 가네. 백현은 툴툴거리며 문을 닫으려다, 저 멀리 백현의 모습을 어떻게든 보면서 뛰어가려고 뒤로 뛰어가는 경수를 보며 손을 흔들며 소리내어 웃었다. 경수는 방긋 손을 흔들다가 튀어나온 조형물에 걸려 자빠졌다. 으유, 정말. 백현은 문을 닫아버렸다.

 

 

 

 

경수는 자신의 짝 - 여자보다 예쁘지만 남자다 - 종대에게 지금이 몇 교시냐 물었다. 종대는 수업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지, 선생님이 들어온 지 오래였는데 여전히 책상에 얼굴을 묻고 선 웅얼거리며 ' 4교시 …. ' 라며 다시 얼굴을 묻었다. 경수는 종대를 깨우지 않고 그저 무제 공책에 'ㅅ' 만 연신 그렸다. 아, 이번 수업도 망했다. 경수는 계속 시계만 쳐다보았다. 이제 이 수업이 끝나면 점심시간. 밥을 먹는 것도 내 삶의 낛중 하나지만 점심시간엔 대부분 백현쌤과 같이 앉아 먹으니까, 백현쌤의 먹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고. 얼마나 귀여운 지 알아? 오물오물. 우물우물. 쩝쩝.

 

종이 치고 나서 종대는 ' 아, 끝났네. ' 하고 일어나 옆을 보니까 아무도 없다. 뭐야, 벌써 갔어? 종대는 아랑곳 않고 거울을 보러갔다. 왠 오징어 괴물이 있네. 황급히 머리카락을 입에서 구출해 내고, 볼에 난 단추자국을 문질러 없애보려 한다. 아, 뭐야. 완전 안 없애져. 종대는 툴툴거리며 민석을 찾아 점심을 먹으러 간다.

 

" 백현 쌤! 응? "

 

경수가 빛의 속도로 교무실 백현의 자리에 도착했을 땐, 백현은 이미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로 내려갔다고 한다. 찬열 쌤과 함께! 경수는 눈에 불을 켜고 급식실로 총알같이 내려갔다. 급한 마음에 새치기를 되는대로 막 하다가 튕겨져 나왔다. 자빠진 나를 비웃으며 어떤 남자애가 웃는다. 뭐야, 명찰 보니까 후밴데. 선배를 능욕하다니, 세상 말세야. 말세! 경수는 명찰에 붙어져 있던 ' 오세훈 ' 세 글자를 머리에 주입시키곤 저 앞으로 뛰어가 급식을 받는다. 저 멀리 백현과 찬열의 머리가 보인다. 백현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찬열은 키가 매우매우매우매우 - 경수의 입장에서 - 컸기 때문에 바로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경수는 식판을 들고 세계최고 레이서처럼 안전하게 반찬과 밥과 국을 운반한 뒤, 백현의 근처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이미 백현이 경수보다 일찍 온 상태라 찬열과 여학생들이 앞,옆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맞아, 백현쌤은 나한테만 인기 있는게 아니었지 …. 더군다나 찬열도 준수한 외모로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가까운 데에서 밥을 먹고 싶다며 백현의 옆옆옆뒤뒤뒤옆옆 자리까지도 여학생 지분율 99.7% 로 차있는 상태였다. 00.3%는 나임.

 

경수는 힘들게 바나나 우유를 계약조건으로 백현의 옆옆뒤뒤뒤옆옆 자리에 앉았다. 간신히 백현의 코와 왼쪽 눈이 보인다. 아, 거 좀 비켜봐. 안보이니께. 순간 경수는 백현의 얼굴을 못보게 시야를 본의 아니게 가리는 저 6반 여학생 김민숙에게 시래기를 던지고 싶었지만 백현쌤 근처라서 참는다.경수는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시래기 국에 밥을 퍽퍽 말며 중얼거렸다. 백현 쌤도 나한테 말도 안하고, 완전 의리없네. 난 맨날맨날 가서 기다렸는데 어떻게 몇 분을 못 참고 그냥 가버리냐 …. 이렇게 혼잣말하는 경수의 코가 찡해졌다. 괜히 짜증이 나 시래기국에 만 밥을 퍽퍽 퍼먹는다. 옆에 있던 여학생이 표정을 찡그리며 더러워한다. ' 아, 밥풀 튀었어. 씨발! '

 

경수는 완전히 삐져서는 다음 교시에 거의 처음으로 백현의 교무실에 찾아가지 않았다. 백현은 경수가 왜 안오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찬열과의 만담으로 금새 잊어버렸다. 경수는 그 시각 잠든 종대에게 괜히 화풀이중이다. ' 너는 왜 침을 흘리고 자, 더러워! ' 하며 세미콜론을 마구 흘리던 경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 괜히 책상을 발로 찼다가 발을 부둥켜안고 아파한다. 뒤에 앉은 민석이 경수를 보고 ' 지랄하고 자빠졌네. ' 하며 혀를 찬다. 아, 물론 경수는 모른다.경수는 종례 후에도 교무실에 찾아가지 않았다. 평소 같았다면 벌써 찾아가서 뭐라고 뭐라고 떠들었을 경수인데, 오늘따라 얼굴보기 어려웠다. 백현은 ' 뭐지? ' 하는 마음에 경수의 반을 찾아가 보지만 이미 종례가 끝나 몇몇 학생만 남아 청소 하고 있을뿐이다. 그 새 백현을 본 여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라붙을 뿐. ' 꺄악! ' 거리는게 마치 뱀이 ' 캬아아악 ' 거리는 것 같았다.

 

백현은 교무실로 돌아가 업무를 마친다. 찬열이 백현에게 ' 끝나고 뭐 먹으러 갈래? ' 하고 묻는다. 백현은 그러자며 가볍게 가방을 챙긴다. 백현과 찬열이 도착한 곳은 학교 근처의 떡볶이 집! 외모와 비슷하게 취향이 어린 덕분에 자주 떡볶이나 튀김을 먹으러 이 곳에 온다. 이 학교가 역사가 깊은 학교라서, 백현과 찬열의 모교도 이 곳이었다. 백현과 찬열의 나이가 그닥 많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백현은 찬열의 고민을 들어주며 ' 이번 수업에도 잤나봐 …. ' 하며 자책하는 찬열을 위로해주었다. 사람이라는 게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하는거지 뭘. 하며 태연하게 떡볶이를 한 점 집어먹는다. 누가 보면 연인인 줄 알겠 …. 아, 둘 다 남자였지.

 

그 때, 마침 백현이 언제 끝나나 정문에서 기웃거리던 경수가 아무리 기다려도 항상 백현이 나오던 시각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후문으로 나오셨나? 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원래 같으면 백현을 집요하게 쫓아 우연히 만난 척 인사하겠지. 하지만 경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떡볶이 집의 창문으로 우연히 - 절대 우연이다. 일부로 본 게 아니다! 라며 주장하는 경수다 - 무엇을 떠드는 지 하하호호 웃으며 즐거워 보이는 백현과 찬열의 모습을 보았다. 경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하니 서있다가, 백현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가던 길을 서둘러 간다. 백현은 ' 방금 경수 아니었나? 에이, 아니겠지. ' 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예끼, 경수 맞아.

 

경수는 집에 돌아와 베개를 마구 차댔다. 백현은 소중하니까 함부로 때리거나 하면 안되거든, 때리는 상상도 해서는 안되거든. 그래서 애꿏은 베개만 폭행을 당하는 중이다. 경수는 한참이나 베개폭행을 하다가, 민석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고선 정체를 알수 없는 ' 으어엉얼흑끄헉끄극끄흑끄흑 '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 했다. 민석은 장난전화로 자부하고 그냥 끊어버렸다. 경수는 상처 받았다. 상처!

 

다음 날, 아침 시간에 조회대신 체조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경수의 반 옆에 3학년 1반이 있었다. 3학년 담당 선생님인 백현은 잠시 사정이 있어 자리를 비우신 1반 선생님 대신 학생들을 인솔하는 중이었다. 백현과 경수는 눈이 마주쳤지만, 경수가 쌩 하며 눈을 피했다. 백현은 ' 잘못 본거겠지. ' 하며 그냥 지나쳐버린다.

 

경수는 이제 선생님이 나를 더 이상 좋아해하지 않는구나! 하며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드라마 촬영 스케쥴을 보내고 있다. 백현은 그저 'ㅅ' 하며 새천년 국민건강체조를 지켜볼뿐이었다. 경수는 분노에 차 새천년 국민건강체조를 격하게 실행하다가 뒤에 있던 종대의 면상을 후려갈겨 버렸다. 종대는 ' 뭐 하는 건데에에에에! ' 하며 흐르는 코피를 보았다. 종대는 여자들의 비명소리 처럼 캬아아악 거리고선 교실로 뛰어들어 가는지, 식수대에 가는지 모르게 이탈해버렸다. 아, 미안한데 병신 ….

 

그 때, 다시 경수와 백현의 눈이 마주쳤다. 역시나 이번에도 경수는 눈을 피했다. 이번엔 백현이 확실하게 경수가 눈을 피하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러지? 화가 났나. 하며 영문을 모르는 백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이 사적인 이야기로 학생에 반에 찾아가는 건 이상하잖아. 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백현이었다. 뭐, 중요한 일이 생기면 찾아오지 않을까?

 

새천년 국민체조시간이 끝나고, 경수는 자신의 실내화가방과 종대의 실내화가방을 챙겨 교실로 들고갔다. 종대가 본의아니게 자신때문에 코피를 쏟게 되었으니, 이 정도는 ' 매너 ' 라고 할까? 쿸. 나, 이래봐도 매너있는 위트있는 남자다! 하며 경수는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왔다. 그 날은 하루종일 엎드려 있었다. 가끔 선생님들이 ' 도경수, 일어나! ' 라며 지적하긴 했지만, 경수의 눈 밑이 퀭한 것을 보고 흠칫하며 ' 어디 아프니? 그럼 다시 엎드려 있어 …. ' 하며 포기했다.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경수는 백현의 교무실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말이 되어 빈둥빈둥 놀려던 경수가 엄마의 슈퍼울트라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려고 하는데, 마트 입구에서 백현과 찬열의 뒷 모습을 어렴풋 본 것만 같았다. 뭐야, 환각인가? 이젠 하다하다 환각까지! 하며 민석에게 당장 화풀이하고 싶은 경수였다. 어디서 민석이 짜증내는 소리 안들려요?

 

경수가 채소코너에서 고던하던 중이었다. 어렴풋이 또 백현과 찬열이 지나간것만 같아 그 뒤를 쫓았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앞쪽의 과자코너로 가서 얼굴을 확인하니 역시, 백현과 찬열이 맞았다. 보통 선생님들은 주말에 따로 장도 보고 그래 …? 아니잖아. 경수는 무의식중에 둘을 연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터덜거리며 집에 돌아가려는 데, 둘의 모습이 또 다시 어른거려 보였다. 원래 이러면 안되는 거지만, 몰래 둘의 대화를 숨어 엿들었다.

 

백현이 찬열에게 ' 토마토 소스가 낫겠어? 아님, 까르보나라가 낫겠어. ' 하며 물어본다. 찬열은 ' 난 오늘따라 까르보나라가 땡기네, 자긴? ' 하며 답변한다. 경수는 둘의 대화를 듣고 확신했다. 둘은 연인이구나 …. 어쩐지, 저번에 찬열쌤을 신명나게 까댔을 때 백현쌤이 열심히 했다며 자기가 본 것처럼 이야기했지. 정말로 같이 있던 거였어. 바보 같이 난 그것도 모르고. 경수는 더욱더 실망한 채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이제 경수는 백현의 교무실에 얼굴도 비치지 않았다. 백현은 내심 걱정했지만, 찬열이 무슨 걱정있냐고 물어오는 통에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시험 시즌이라, 업무가 많이 늘어난 탓에 예민한 것도 있었다.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경수를 잠깐 잊어버렸다. 경수는 시험 공부용 문제집이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서술형 답을 1번 변백현 2번 선생님 3번 좋아해요 4번 보고싶어요 5번 ㅠㅠ 로 썼을까. 민석은 일주일이나 지속되는 경수의 우울함에 ' 이 아이는 정말 조울중이 있는게 아닐까 …. ' 하며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시험 기간이 끝났다. 경수는 다른 아이들의 환호에도 동요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손장난을 칠 뿐이다. 민석과 종대는 걱정되는 마음에 자꾸만 장난을 걸어보았지만, 경수는 역시 반응이 없었다. 노래방에 가서도 경수는 앉아서 조용히 잠깐잠깐 박수를 칠 뿐이었다. 민석은 버럭 화를 내며 ' 너 요즘 왜 그러는데? 친구한테 말을 해줘야 우리가 알거 아냐. ' 하며 섭섭함을 보였다. 종대도 ' 그러게, 도와줄게 있으면 우리가 도와준다. ' 하며 경수의 어깨를 두둔해주었다. 경수는 훌쩍거리며 ' 백현쌤이 …. 애인이 있어. ' 라며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 그 애인이 누군데? "

 

종대의 물음에 경수는 " 박찬열 …. 쌤. " 하며 대답했다. 종대와 민석의 눈이 커지다 못해 불어났다. 제 정신 맞냐며 경수의 볼따구를 후려치기도 했고, 눈을 벌려보기도 했지만 사실이었다. 명백한 사실. ' 사실 내가 마트에 갔다가 …. 자기라고 하는 걸 봤어. ' 경수의 말에 종대와 민석은 경악했다. 경수가 백현을 잊지못해 거의 처음보는 2주 이상 우울 모드였다는 사실에도 2번 경악했다. 종대와 민석과 경수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둘을 헤어지게 할까! 하며 생각해냈다.둘이 헤어지면 백현쌤이 힘들어할거라며 경수가 극구만류했지만, 종대와 민석은 자신의 친구가 이렇게 힘든 상태로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냅두냐며 화냈다. 경수는 살짝 감동했다, 짜식들 ….

 

그래서 짠 작전의 명은 특명 ' 브로큰하트 대작전 ' 제목부터 망한 냄새가 나지만 제목따윈 중요하지 않다! 내용은 대충 찬열에게 새로운 여자를 소개시키고, 백현만 떼어낸다! 이거였다. 그런데, 새로운 여자가 누구냐고? 바로바로 김여주 선생님이었다. 뒤에서 몰래 찬열을 열렬히 좋아하고 있었던 여주선생님이 이 작전엔 적격이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찬열에게 소개시켜준다는데, 마다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며 그날 경수는 말달리자를 불렀다.  

 

셋은 몰래 여주의 자리에 찾아가, 소근소근 작전의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주는 무슨 그런 작전이 있냐며 웃었지만, 약간은 솔깃한 모양이었다. 셋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표정으로 ' 선생님 아니면 저희 안돼요 …. ' 라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 안약 사용 - 부탁했다. 여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셋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여주는 내심 좋았다. 셋은 찬열쌤에게 오늘 저녁에 약속을 잡아놓을테니까, 잘 부탁드린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갔다. 여주는 방긋 웃으며 수업 준비하러 가라며 등을 밀어냈다.

 

그 날 저녁, 하교하기 전 종대와 민석은 - 경수는 백현의 얼굴을 보게 될까봐 싫다며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 교무실에 들려 찬열에게 ' 끝나고 여주 선생님이 할 말이 있으시대요. ' 라며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찬열은 갸우뚱하였지만, 알겠다며 종대와 민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 선생님. 소오름. 종대와 민석이 나가고 나서 백현은 찬열에게 슬그머니 ' 무슨 일이야? ' 하며 물었다. 찬열은 혹시나 백현이 질투하게 될까봐 ' 아무것도 아냐. ' 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나서 찬열은 민석과 종대가 알려 준 식당으로 향하였다. 뒤에 백현이 몰래 따라가고 있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백현은 들어오자마자 ' 우아. ' 하고 탄성을 내지를뻔 했다. 찬열과는 여태껏 이런 곳은 한번도 온 적이 없었다. 물론 교사월급으로 이런 곳 오는건 좀 사치겠지만. 하는 백현이지만 내심 서운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찬열이 만나기로 한 상대를 몰래 관음하던 중이었는데, 다름 아닌 김여주 선생님이었다. 백현은 놀란 마음에 좀 더 귀를 기울였다. 백현은 떨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아무것도 아니라더니 …. 고작 여자선생님 만나려고 날 속인거야? 백현은 분노에 가득찼다. 그리고 식당을 박차며 나왔다.

 

그리고 나서 백현은 이유없이 찬열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찬열은 무슨 일이냐며 계속 매달려댔지만, 백현은 입을 꾹 다문 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찬열은 그런 백현에 자신도 삐져버렸다. 서로 삐진 모습은 말 하지 않아도 웃기다. 민석과 종대는 작전의 성공 사실을 경수에게 알렸다. 하지만 예상외로 경수는 기뻐하지 않았다. 백현이 힘들어 할 것만 같아서.

 

경수는 오랜만에 백현의 교무실에 찾아왔다. 백현의 얼굴 표정은 예전과 다르게 매우 초췌해져있었다. 더불어 찬열의 표정까지도. 경수는 백현에게 가는 길이 살얼음판 같았지만, 용기 내어 백현의 옆자리에 섰다. 백현은 고개를 들어 경수를 보았다.

 

" 아, 오랜만에 왔네. "

 

백현의 말에 경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백현의 눈망울을 볼 뿐.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고민하게 되었다. 백현의 얼굴을 보자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 선생님,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

 

경수는 허리를 푹 숙이고서는 그대로 나와버렸다. 백현은 영문을 모르는 사과에 그저 멍하니 나가는 경수의 뒷모습만 지켜보았다. 경수는 교실에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나 진짜 바보같네. 나 하나 행복하자고 좋아하는 사람을 저렇게 힘들게 하고 말이지. 경수는 교실에 도착해 자신의 자리에 털썩 앉아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백현과 찬열이 헤어진 것 같다는 말을 종대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작전대로라면 나는 기뻐하며 행복해해야했다.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걸까. 선생님을 괴롭게 하고나서 내가 얻은 건 뭐지, 나는 왜 행복하지 않지? 하며 경수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언뜻 지나가다 본 백현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눈 밑이 어두워진게 암울해보였다. 백현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둘러쌓여서 도저히 선생님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렇게 회피하고 회피하던 날이 이어지고, 찬열과 여주의 연애소식마저 들리고 난지 3일 후에 백현은 갑작스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찬열쌤을 찾아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우물쭈물하다가 ' 나 때문일거야 …. 몸이 아프다네. ' 라며 대답했다. 경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닌데, 찬열은 오해해서 조퇴증을 끊어줄까? 하며 경수를 일으켜세워준다. 경수는 감사하다며 나가는 길에 물었다.

' 혹시, 백현쌤 집 주소 아세요? '

 

띵동, 초인종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경수는 가방의 끈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되지 않아 기침소리와 함께 들리는 어두운 백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 라고 물어오는데, ' 저 경수에요. ' 하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던 때에 문이 살짝 열리고, 백현의 눈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경수가 ' 선생님! ' 하고 말해버렸다.

 

실내는 의외로 귀엽게 생겼다 …. 깔끔할 줄 알았는데, 노란색 벽에 고양이 인형도 세개 쯤 있고, 그러네. 경수는 집을 처음보는 사람 같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집안을 훑었다. 백현은 과자를 몇개 내오며 ' 미안, 먹을게 이거밖에 없네. ' 라며 멋쩍게 웃는다. 경수는 손과 고개를 동시에 도리도리 흔들며 ' 아니에요! 제가 병문안 온건데, 오히려 죄송하죠 …. ' 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낸다.

 

그렇게 한참동안은 과자만 집어먹었다. 과자통이 바닥날 쯔음, 경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선생님, 저 다 알고 있어요. "

 

경수의 말에 백현이 티비에 시선을 꽃았던건지 허공을 보았던 건지 빈 눈동자에 경수를 담았다. 그러니까, 줄여서 경수를 봤다고.

 

" 찬열 쌤이랑 …. "

 

경수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백현이 ' 헤어졌어 ' 라고 말한다. 백현의 말에 경수가 움찔해서 백현을 쳐다보았다. 백현은 아직 미련이 남은건지 어쩐건지, 서운한듯한 표정으로 ' 여자가 생겼대. 물론 축하해 줘야 할 일이지만 …. 왜 이렇게 슬픈건지 모르겠네. ' 라며 애꿏은 과자통만 계속 만지작거린다.

 

" 선생님, 좋아해요. "

 

경수가 무의식적으로 백현에게 내뱉었다. 경수는 자신도 말할 줄 몰랐다는 듯 입을 막아버리곤 주먹을 꽉 쥐었다. 귀까지 빨개져서는 자기 집도 아닌데, 방으로 뛰어들어가선 문을 잠궈버렸다. 그런 경수를 백현이 쫓아가 문을 두드렸다. ' 문 열어줘, 경수야! 응? ' 하며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경수는 너무너무너무나도 창피한터라 아마 한 30년은 흘러야 제 의지로 열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누구의 집? 백현의 집! 백현은 서둘러 열쇠를 찾아 와 간편하게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경수는 백현의 침대에 이불을 꽁꽁 둘러싼 채 김밥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 경수야. "

 

백현의 말에 경수의 이불뭉치가 움찔한다. 백현은 경수의 이불뭉치를 손가락으로 꾹꾹 찍으며 말한다. ' 귀엽다 …. ' 백현이 자신도 모르게 낯간지러운 말을 뱉어놓곤 창피한지 헛기침을 한다. 경수는 김밥말이처럼 데굴데굴 침대를 굴러다녔다. 숨이 막혔는지 얼굴만 쑥 이불에서 빠져나온다. 하필 그 때 백현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 선생님, 아직 헤어진 지 3일 됐는데. 미련도 아직 남아있을지 몰라. "

" …. "

" 그래도 괜찮겠니? "

 

백현의 말에 얼굴이 자신의 가방색처럼 새빨갛게 변한 경수가 고개를 폭풍끄덕거린다. 백현을 경수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백현은 이미 경수를 좋아하고 있는 걸지도! 갑자기 경수의 배에서 꼬륵 소리가 들렸다. ' 배고파서 …. ' 경수는 우물쭈물거렸다. 백현은 웃으며 ' 그럼 뭐 먹을까? ' 하며 경수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fin.

 

은 무슨. 번외에서 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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