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마녀사냥
:켄과 캔디
너는 재환이네 집 제일 꼭대기 층인 3층의 작은 방에 머물게 되었어.
침대 책상 옷장 등등, 생활에 필요한 가구들은 구비되어있던 방이었어.
재환이네 부모님의 부대에서 훈련하는 군사들이 머물 곳이 없을 때 내어주는 일종의 객실이라 기본적인 방의 형태가 갖춰졌던 거야.
전에 살던 집에선 늘 엄마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났는데, 혼자 자야한다니.
어린 맘에 두렵고 무서웠지만, 재환이의 부모님께 때를 쓸 수는 없어서 혼자 자기로 결심했지.
그러나 얹혀사는 처지일지언 정 ‘나만의 방’이 생긴 것만 같은 오묘한 생각이 들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기도 하고, 침대에 몸을 던져보기도 했어.
푹신한 느낌이 생소해서 몸을 파르르 떨다가 몸을 돌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웠어.
그리고 ‘켄’을 꼭 끌어안았지.
켄은 너의 곰인형이야. 엄마와 숲으로 도망칠 때 가져온 유일한 물건이었어.
켄은 까맣고 큰 눈에 밝은 갈색 털을 가졌지.
발바닥엔 KEN이란 이름이 세겨져 있고, 목에는 예쁜 리본이 달려있어.
이건 너희 엄마가 네 생일선물로 만들어주신 곰인형이야.
집밖에 나가지 못했던 너에게 유일한 친구가 바로 켄이었던거야.
비록 짧지만 엄마의 기억이 담긴 인형이니, 얼마나 소중하겠어.
켄과 침대에 누워서 천장의 벽지 무늬를 바라보니 마치 엄마와 누워 있는 것만 같은 포근함에 잠이 솔솔 밀려왔어.
그렇게 넌 여기서 백밤을 세어 가기 시작했어.
***
오른손엔 연필을 쥐고 왼손엔 지우개를 들고, 재환이네 집에 오게된 이후론 넌 만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어. 재환이가 너에게 준 검붉은 가죽 표지 노트에 말이지. 사진앨범만큼 굉장히 크고 또 두꺼워서 몇년은 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어.
너의 켄이 외로울까봐 일기장에도 이름를 붙였어.
일기장의 이름은 ‘캔디’야.
캔디!
오늘은 여기서 지낸지 3일이 되는 날이야.
오늘도 켄을 끌어안고 나 혼자 잤어. 잘했지?
앞으로 97밤만 더 자면 엄마가 날 찾으러 오겠지?
너의 일기 내용은 거의 변하지 않았어.
매일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오겠지? 로 끝났지.
너에게 그 일기장은 정말로 소중했어.
숨김없이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고, 그렇기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
캔디!
오늘은 여기서 지낸지 24일이 되는 날이야.
사실 내가 재환이의 사탕을 몰래 훔쳐 먹었어.
식탁위에 놓여져 있는 사탕을 보니 너무 맛있어보이는 거야.
말하려 했지만 재환이가 엉엉 울어버리고 어머니께 일러버리는 바람에 괜히 혼이 날까봐 말하지 못했어.
76밤 뒤에 올 우리 엄마가 나를 많이 혼낼까? 걱정된다.
어린 넌 나때문에 누군가 울었단 사실이 굉장히 마음이 쓰여서, 끝내 말하지 못했어.
캔디!
오늘은 30일이 되는 날이야.
한달이 지났어.
재환이가 나보고 답답하지 않냐며 나를 데리고 나갔어.
내가 멀리 나가긴 싫다 하니까 집마당(사실 정원에 가까워)에서 놀기로 했어.
집밖에 있는 거 자체가 많이 생소한데, 나름 즐거운 것 같아.
앞으로 70일이 남았네. 엄마는 뭘 하고 있을 까?
집안이 아닌 바깥에서 잔디를 밟고 뛰어놀고, 꽃을 꺾어 반지도 만들고.
재환이의 어머니께서 너희를 보고 나오시더니, 네 긴 머리를 총총 땋아 중간중간에 꽃을 꽂아주었어.
넌 동화 속에 나온 공주님 같아서 기분이 너무나 좋았지.
재환이도 네 머리가 신기했는지 너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킁킁 냄새를 맡더니, 우와! 머리에서 꽃냄새가나! 하며 좋아했어.
캔디!
오늘은 53일이 되는 날이야.
요즘은 재환이랑 밖을 자주 나가.
이제 이 마을의 구조를 알 것 같아!
예전엔 깊은 산 속이라 보이는 것은 나무 밖에 없었는데, 여기는 빵집, 옷가게, 과일가게, 식료품점 등등 뭔가 굉장히 많아.
재환이가 자기 집이 이 마을에선 제일 크다고 계속 자랑했어.
마을의 한쪽 끝은 내가 재환이를 처음 만난 그 숲이고, 다른 한쪽은 재환이네 부모님께서 근무하시는 군부대로 가는 길로 연결되어있데.
아침마다 군복을 입고 나가시고, 저녁마다 군복을 입고 들어오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보여.
나도 나중에 군인이 되고 싶어!
나는 잔다르크같은 용감한 여자가 되어 우리엄마랑 재환이랑 재환이네 엄마아빠를 꼭 지켜줄거야!
47일이 남았어. 반이 넘었어.
근데 재환이가 말한 이-만큼은 못컸어.
내가 이-만큼 안컸다고 엄마가 안오면 나는 어떡하지?
너의 일기장안에 엄마가 돌아온다 외에 처음으로 꿈이란게 생겼어.
너무너무 멋있어보이는 군인.
재환이 어머니께선 머리도 숏컷에 키도 크고 날씬하신데, 거울에 비춰진 넌 머리도 길고 6살 어린아이 답게 볼에 살만 통통올라와 있어서 슬펐어.
그래도 넌 꿈을 꾸었지.
멋있고 용감한 여자가 되고야 말 것이라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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