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 지금.......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지루한 강의가 계속되는 강의실 안, 수연은 제 대각선 앞자리에 앉아 손톱을 불안하게 물어뜯고 있는 주하를 관찰하고 있었다. 불안한 눈빛에, 조급한 듯 엄지손톱을 자꾸 깨물어대는 주하는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초조해하면서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였다.
설마.........
수연은 무슨 일 나겠다, 싶어 조용히 주하에게 카톡을 날렸다. 너 뭐하냐? 똥 마려워?
[까똑]
주하의 조급한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주위의 시선이 다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교수님도 열정적인(그리고 지루한) 강의를 잠시 멈추셨다. 작지 않은 크기의 강의실에선 조용하고 뻘쭘한 침묵만이 흘렀다. 주하의 귀가 점점 빨갛게 물들었다.
"핸드폰 사용은 자제하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큼. 교수님은 헛기침을 몇 번 하시고 다시 수업을 진행하셨다. 학생들도 다시 시선을 거두고는 필기에 열중했다. 주하는 창피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카톡을 확인하고는 수연의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모양으로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카.페.인.이.딸.려?
02. 캔커피 말고 켄커피
w. 행정우편
(브금 들으면서 보면 음......좋을 텐데 말이죠........)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커피를 물처럼 마셔대니까 그렇지. "
"야. 넌 물 안 마시고 살 수 있냐?"
"없지, 멍청아."
"똑같은 거야."
얘가 뭐래. 수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등학교 때 잠을 깨려고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다더니, 이젠 아예 몸에 익어버린 듯 시간이 되면 커피를 찾는 주하였다. 늦잠을 자서 모닝커피도 거르고, 수업 중간에 또 한번의 커피 타임을 걸렀으니 지금 주하가 마셔야 할 커피는 두 잔이었다. 보나마나 한 잔은 물 마시듯이 허겁지겁 마셔댈 테고, 나머지 한 잔은 몇 시간에 걸쳐 쪼륵쪼륵 빨아먹을 터였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하에게 끌려 대학가로 나온 수연은 정말 징하게도 마셔댄다고 생각하며 주변 건물로 눈을 바쁘게 굴렸다.
"그래서, 훈남이 커피 내리고 서빙하고 계산까지 한다는 그 카페는 어딘데?"
"두 블럭 더 가서 왼쪽으로."
".......야, 솔직히 말해. 어제 이거 찾느라 늦게 잔거지?"
"그럼 뭐 다른 거 했겠냐? 훈남 맛집 찾아다니는 게 내 일인데."
잘~한다. 수연은 한껏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힘이 빠져 수연에게 거의 기대다시피 걷던 주하는 당연하게도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야, 나 지금 눈을 못 뜨겠어. 더 빨리 좀 걸어봐. 주하는 힘없이 수연을 툭툭 쳤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 대학가인데, 짐더미까지 떠안고 작은 카페 하나를 찾으려니 아주 미쳐버릴 것 같은 수연이었다. 이건 친구다. 이건 친구다. 웬수가 아니라 친구다. 수연은 이를 악물고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크로스백에 들어가지도 않는 전공서적 탓에 왼쪽 팔은 얼얼하기까지 한데, 오른쪽 어깨는 남의 머리통에 점령당했으니 내딛는 걸음 걸음이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낑낑대며 짐짝을 끌고 모퉁이를 돌자, 거짓말처럼 인적이 뚝 끊긴 황량한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이 많던 큰길보다는 덜 치여서 낫다고 생각하며 수연은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잠시만, 설마 저거야?"
"으으, 다 왔어?"
".......야, 그 가게 이름 대봐."
".........캔커피 말고 켄커피."
"그냥 '켄커피'가 이름이 아니고 '캔커피 말고 켄커피'가 이름인 거지?"
"어."
"정말 훌륭한 언어유희다. 작명센스 진짜 장난없네. 나 눈물 나려고 그래. 보여? 나 지금 눈 그렁그렁한거?"
"비꼬는 거면,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 방정맞은 입 때리고 싶어진다, 에 내 오장육부를 건다. 사장이 직접 지은 건데."
"오케. 나중에 신장 달라면 곱게 내놔."
수연은 주하를 질질 끌고 켄커피로 향했다. 무거워 죽겠네!
***
작고 아기자기한 카페에서는 향긋한 커피 냄새가 났다. 카운터 한 켠에는 예쁜 조각케익들이 앙증맞게 놓여져 있었다. 가게 곳곳에는 섬세하게 손을 댄 흔적이 가득했다. 적당하게 들어오는 햇빛에, 창가에는 화분이 옹기종기 모여 산뜻한 느낌을 냈다. 카페 한가운데에 놓인 게시판에는 추천 메뉴 등이 동글동글한 글씨로 쓰여 있었다. 탁 트인 공간이 아니라 요리조리 사각지대를 만들어 다른 사람의 시선 없이 수다나 떨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제외하고서 수연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던 건, 카운터 옆 의자에 앉아 가만히 책을 보던 남자였다. 긴 다리를 쭉 꼬아서는, 책을 보느라 눈을 내리깔고서 작게 콧소리로 노래를 하는 그 남자는 다가설 수 없을 만큼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사르륵 사라질 것만 같은 남자의 모습은 그가 운영하는 이 카페와 똑 닮아 있었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수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얼이 빠진 채로 서 있자 주하가 또각이며 인기척을 냈다. 그 소리에 남자가 읽던 책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돌렸다. 새까맣고 동그란 눈동자에 제가 담기는 순간, 수연은 시간이 멈추는 줄 알았다. 날카로운 느낌에 잡아먹힐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작고 따스한 가게가 이 남자의 것이라고? 그는 금방이라도 제 속의 탕아를 꺼내보일 듯한 눈빛으로 잠시 수연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마치 거짓말처럼,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와~ 오늘 첫 손님!"
그 갭에 수연은 혼절할 것 같았다.
***
"석고대죄할게. 미안하다."
"내 오장육부한테도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려라."
"ㅈㅅ"
"이년이"
수연과 주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주하가 마실 아메리카노와 카페모카, 수연이 마실 민트초코플랫치노, 그리고 아침을 거른 주하가 우기고 우겨서 주문하기로 한 허니브래드까지. 둘이서 주문하기엔 많은 양이었지만 주하는 신경쓰지 않았다. 돈은 내가 내니까, 넌 가서 주문을 하거라. 주하가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망할 부르주아 같으니.
"주문하시겠어요?"
그 남자, 재환은 카운터에 단정히 서서 미소를 지으며 큰 키로 수연을 내려다봤다. 참자. 참자. 수연은 당장이라도 번호를 달라고 할 것 같은 제 입을 추스르느라 잠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아메리카노 하나랑, 카페모카 하나랑........"
"아메리카노 하나, 카페모카 하나."
"민트초코플랫치노 하나랑요,"
"민트초코 하나랑, 또요?"
"........허니브래드요."
"허니브래드. 알겠습니다. 총 만 육천원이구요, 드시고 가실 거죠?"
"네. 아 그리고 아메리카노 빨리 해 주세요. 다른 주문이랑 같이 안 나와도 되니까요."
"아메리카노 먼저. 오케이."
"여기 카드요."
수연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하는 말 다 짚어주고 있어......이런 다정한 남자를 봤나. 아주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자신을 보는 재환에 주문하다 말고 정신을 놓아버릴 뻔 했던 수연이었다.
"오늘 처음 오시죠?"
"네? 아, 네."
"쿠폰 만드실래요? 메뉴 하나당 도장 하나씩 찍어드리는데 열 개 모으면 작은 케이크 하나 포장해드려요. 공짜로."
"아......만들게요, 그럼."
재환은 잠시만요, 하고 쪼그려 앉아 쿠폰을 찾았다. 곧 동그랗게 생긴 종이쿠폰을 들고 일어선 재환은 볼펜과 함께 수연에게 쿠폰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카운터에 팔을 괴고 꽃받침을 한 채 쿠폰에 자기 이름을 적는 수연을 싱글벙글 웃으며 쳐다봤다. 이쁘게 생겼다~ 재환의 순수한 칭찬에 수연은 얼굴이 빨개진 채 쿠폰을 슥 밀어 재환의 앞에 놓았다. 재환은 쿠폰에 도장을 찍고 작은 상자에 그것을 넣은 뒤 수연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재환은 손이 컸다.
***
커피는 아주 맛있었다. 수연은 꼭 재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카페에 자주 오겠다고 생각하며 허니브래드를 깨끗이 비웠다. 한 번 앉으면 세 시간은 금방 가는 여자들의 수다는 주하가 모카를 다 마심으로써 끝이 났다. 떠들고, 웃고, 화내며 망가진 화장을 다시 한 번 고치고, 페북에 셀카와 커피 사진 등을 올린 후 둘은 나갈 채비를 했다. 아무것도 안 했지만 보람찬 하루다, 그치.
수연은 문을 열고 나가기 전 카운터를 흘끗 쳐다봤다. 재환은 주방에라도 들어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딸랑, 하며 문을 열고 나서자 선선한 바람이 둘을 맞았다.
"재미있게 잘 놀았다. 이제 매일 여기 오자, 주하야. 케이크 받게."
"하여간, 식탐 대마왕이다 진짜."
"마지막 허니브래드 내가 먹었다고 쌍욕 날린 사람이 누구였더라."
"어머, 그런 사람도 있니? 교양없게."
"잠시만요!"
둘의 대화 사이로 남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재환이었다. 그는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둘에게로 뛰어왔다.
"와, 걸음 엄청 빠르시네요. 이거, 이거 받아가세요."
"이게 뭔데요?"
"케이크요. 방금 만든 거."
"케이크요? 이걸 왜요?"
"만들었는데, 너무 예뻐서요."
예뻐서요, 하며 재환은 수연을 보고 싱긋 웃었다. 단골 만들려고 드리는 거니까 가져가서 드세요. 안녕! 재환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잰걸음으로 가게를 향했다.
"나 이거 못 먹겠다, 주하야. 내 가슴에 평생 박제."
"나중에 상해서 못 먹는다고 찡찡대지 말고 언능 먹어. 너한테 홀딱 반했는갑다."
분홍색 종이 케이스에 담긴 케이크는 딸기로 가득했다. 달달한 봄 냄새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이 쟈니 |
카페도 차리고 능력자네 아주~ 이야~(흥분) 엔치킨 프라이드에 이은 캔커피 말고 켄커피입니다 저의 네이밍센스를 욕하세요 이제 제 최대치.......하핳........ 엔치킨에서 나왔던 '나'는 이번 편에서 그냥 이름을 넣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게 나을 듯 해서요 달달하게 쓰려고 브금을 주구장창 들었더니 이제 노이로제가 올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빅스가 가게를 열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헷
(브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 ost입니다. 일본어를 못 읽어서 제목은 모르겠쪄염 sketch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