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X디오 김종인X도경수 카디 “김종인 결혼한대. 들었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주형의 목소리가 전해준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경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닥 친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같은 반이었던 동창의 소식을 같은 반도 아니었던, 게다가 종인과 친하지도 않았던 저의 친구에게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닥 달갑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고등학교 동창들 중 같은반이었거나 각별히 친했던 아이들에게는 모두 청첩장을 돌린 듯 싶었다.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에게는 청첩장마저 돌리지 않다니, 종인은 그렇게나 저가 싫었던 걸까 싶어서였다. “그래도 같은 반이었잖아. 너도 와 그냥.” [카디] 초등학생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차들을 보며 사치스럽다, 라고 경수는 생각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개인 소유의 자동차보다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경수에게 있어서 고가의 차들이 나란히 줄서있는 실외 주차장은 절로 고개를 젓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하늘은 종인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듯 화창했고, 길거리에는 꽃이 만개했다. 그야말로, 봄이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는 복도는 깔끔했다. 종인과 결혼하는 상대가 상당한 권력을 가진 자의 집안인 모양인지, 화관에 적힌 이름들은 텔레비전 뉴스나 라디오 등에서 자주 언급되던 이름이 많았다. 청첩장은 없었지만, 미리 나와서 자신을 기다리던 주형의 도움으로 경수는 안전하게 식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경수가 도착하자마자 그를 반기는 것은 현우였다. 도경수 왔네, 니 키는 여전히 그대로냐- 등. “도경수가 청첩장 못받아서 결혼식 하루 전에 그 사실을 알게된거라고?” “이야, 김종인이 너를 어지간히 싫어하기는 하나보다, 그거 하나 안돌리고. 같은 반이었는데. 그 자식이 너무했네-” 하긴, 근데 김종인이 도경수를 그냥 괴롭혔나? 우리가 보기에도 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괴롭혔잖아. 아아, 맞아- 그냥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도경수를 혐오하는 건 아닐까 싶었지. 그건 아닌데- 동창들의 말을 들으며 경수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고등학교 2학년의 도경수는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작았다.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아적인 체형은 그에게 있어 최대 장점이자 약점이었다. 남고를 다녔기에 함께 했던 친구들은 여자대신 여자같은 경수를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기도 했고, 도꼬맹이라며 동생처럼 챙겨주기도 했다. 단 한 명 빼고. 기존 출석번호대로 앉다가 열 여덟살이 되어 처음으로 바꾼 자리는 3분단, 문쪽 자리였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최악의 자리, 그리고 그때까지는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최악의 짝. 경수는 저의 옆에 앉은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커다란 곰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덩치, 짙은 이목구비는 두려움을 조장하기 딱인 얼굴이었다. 햇빛에 태닝한 듯 짙게 그을려진 피부는 그의 분위기를 더욱 더 어둡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종인은 사실 유쾌하고, 때로는 수줍음을 가진 순진한 열 여덟살일 뿐이었다. 아마도 그의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김종인은 어떤 아이였냐, 라고 물으면 과장을 조금 보태어 바보같고 순진한 녀석- 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경수는 종인과 친해지고 싶었다.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종인이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가 깨고 싶어, 분위기보다도 더 어색한 몸짓으로 경수는 종인의 팔뚝을 두어번 가볍게 두드렸다. 저... “친하게 지낼래? 난...” “싫어.” 도경수라고 해, 라는 자기소개를 끝마치기도 전에 종인이 단호한 대답을 보내왔다.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할줄이야! 경수는 그 이후에도, 목련이 봉오리를 맺었다가 피고, 땅에 떨어져 거뭇거뭇하게 썩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친해지고자 노력했지만 번번히 단호한 대답과 함께 거절당했다. 땅에 떨어진 목련을 보며 경수는 자신의 마음이 까맣게 썩어버린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친해지고자 자꾸 들이댔던 일이 화근이었던걸까, 4월이 지나고 자리를 바꾸자마자 종인에게 무관심해진 경수와는 반대로 종인은 너무나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지나칠정도로. 하루는 경수가 복도 한구석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코코팜을 마시기 위해 지갑을 꺼내던 참이었다. “나는 펩시콜라.” 경수는 종인을 바라보았다. 어서 돈 안넣고 뭐해? 그런 표정이었다. 경수는 어이없다는 듯 종인을 바라보며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경수의 손에 들려있던 지갑이 사라졌다. “이거 뭐야? 도경수 가족사진?” 손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에 고개를 든 경수는 실실 웃고 있는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내놔. 경수의 단호한 말투에도 종인은 굴하지 않고 지갑 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 경수는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경수와는 다르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 형, 그리고 경수. 종인은 사진 속 경수와 자신을 곧 물어뜯을 것처럼 작은 맹수마냥 노려보고 있는 경수를 번갈아보았다. 괘씸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사진을 찢어버렸다. “야! 미쳤어?” “응.” 종인이 찢어버린 사진은 종인의 손에 의해 그대로 자판기 옆 창문으로 날라가버렸다. 경수는 화가 났다. 둘씩 갈리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세상에 단 네장뿐인 사진이었고, 그 중 하나가 방금 종인의 손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지만 경수는 종인을, “...수야, 뭐해.” 아, 잠시 과거 생각에 정신을 놓고 있었나보다. 경수는 순조로히 진행되고 있는 결혼식을 보았다. 신부 입장, 소리와 함께 신부가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드레스와 어울리는 웃음을 가진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녀와 대비되게 온통 짙은 검은색의 정장을 입은 종인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멋있었다. 뒤이어 결혼식 축가를 부를 시간이었는지, 몇명의 청년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얼굴- 어디서 봤더라? 그런 경수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쟤네 요즘 뜨는 발라드 가수잖아. 그러고보니까 도경수도 노래 잘했잖아. 아 맞아, 합창대회 우승도 사실 도경수때문이었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추억을 남겨야하지 않겠냐던 교장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경수네 학교는 열 여덟살 소년들을 상대로 합창대회를 열기로 했다. 의견은 대부분 이런 쓸데없는 일을 왜 하냐, 였지만 학생들에게는 결정권이 없었다. 음악 선생님을 담임으로 두었던 경수네 반은 특별히 음악실을 빌려 연습을 하곤 했는데, 그날은 주번이었던 경수가 문을 잠그고 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종인은 저를 괴롭히기라도 할 심정이었는지, 음악실 구석진 책상에 엎드려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수는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 종인이 일어날 때 까지 숙제를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정도 지났을까, 고개를 돌린 경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종인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함을 느낀 경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났으면 문 잠그게 나가줘.” “싫은데?” 경수는 어이가 없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 것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도 문도 잠그지도 못하게 뻔뻔하게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 모습이라니! 몇달 전, 자신의 가족사진을 찢어버린 것도 사과하지 않았던데다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자신을 괴롭히던 종인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경수였기에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싫으면 난 그냥 갈거야. 너가 잠궈.” 그것마저도 싫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경수는 정말이지 종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데? 경수가 물었다. “내가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려.” 김종인은 정말 뻔뻔했다.짜증이 날 정도로. 결국 경수는 열쇠를 교실 안에 둔 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음악실 문을 닫고 그대로 집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길, 왠지 모르게 종인에게 미안할 짓을 한 것만 같은 경수였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의 다음날도, 경수의 주번활동이 끝날 때까지 종인과 경수는 장난같지 않은 장난을 반복했다. 매번 결과는 종인을 버리고경수가 음악실을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하루는, 경수는 뛰쳐나와서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음악실 밖에서 종인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종인의 웃음소리가 음악실 밖까지 선명하게 울려퍼져, 경수는 창피함을 느꼈다. 자신이 뛰쳐나간 그 많은 시간동안 종인은 즐거워하며 웃고있었구나. 그 때,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실 문이 열렸다. 저를 본 종인의 표정은 마치 네가 왜 여기있냐고 묻는 듯 싶었다. “그냥, 기다렸어.” “…….” “생각보다 빨리 나오는구나?” 같이 가자, 집에. 경수는 말했다. 종인은 특유의 곰같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응, 이라고 대답했다. “김종인, 넌 왜 날 괴롭혀?” 궁금했다, 경수는. 자신이 뭘 잘못했길래 김종인이 이렇게도 장난치고 괴롭히는지. “재밌어서.” 대답은 단순했다. 그저 자신의 반응이 재밌어서 괴롭힌것이라고 했다. 경수는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을 가려버렸다. 아마도 종인은 자신의 이런 모습에서 놀리는 재미를 느꼈던 것일까. 집에 가는 길동안 그 이상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경수는 종인이랑 한 걸음 정도는 친해진 것 같아서 좋았다. 물론, 그건 그저 경수의 착각이었다. 일주일 뒤의 합창대회에서 경수네 반은 상을 탔다. 그렇게 마지막 고등학교 2학년으로서의 추억을 보내고, 경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종인은 그 사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그렇게 경수는 종인의 존재를 어렴풋이 잊고 있다가, 다른 친구에 의해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끝까지 여기 앉아있어서 종인이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은 좋지 않을 듯 싶어, 경수는 밖으로 나섰다. “아, 혹시 종인이네 고등학교 동창분...” 낯선 청년이 자신을 붙잡았다. 경수는 당황스러움에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동창은 동창이니까. 청년은 웃으며 자신을 종인의 대학 동기라고 소개했다. “혹시, 친구분 중에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반인데 결혼식에 오지 않은 친구가 있지 않으세요?” 김종인 그 녀석이 그랬거든요. 자기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반이었던 친구가 있는데, 굉장히 많이 괴롭혔다고. 사실은 좋아했는데 바보같이 초등학생처럼 괴롭히기만 했다고- 그리고 자기 결혼하는건 보여주기가 싫어서, 청첩장을 안보냈대요. 그 여자분, 종인이가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경수는 청년과의 대화가 끝나고선, 결혼식장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대중교통을 타면 많은 사람들에게 흉한 꼴을 보여줄 것만 같아서였다. 경수는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초등학생처럼, 엉엉 울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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