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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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혹 동 화 ; 왕좌의 게임
w. 영애
Ep. 11
<꼬인 위치>
#1
"......어찌됐어."
"아무래도 제 5국에는 안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럼 대체 어디 갔다는 말이야!!"
○○이 없어진지 어언 5일 째. 세훈은 5일동안 제 5국의 전역을 샅샅이 수색하며 ○○을 찾아 헤맸다.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행방의 어떠한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의 부재는 세훈의 광기를 더 증폭시켰다.
특히, 그녀에게 보여준 세훈의 마지막 모습이 12시가 되어 그가 아닌 그의 몸 속에 살고 있는 다른 이로 바뀌는 모습이어서,
세훈이 그토록 증오하고 경멸하는 '괴물'의 모습이었다는 점이 그를 더욱 미치게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그의 저주를 하필이면 ○○에게 들켜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간다. 제 5국이 아니라면 다른 네 나라들 중 하나겠지."
"폐,폐하. 저번 전투에도 직접 참여하셔서 큰 파장..."
"닥쳐!"
세훈이 병사의 칼을 빼 그의 목을 베었다. ○○이 사라진 후 제 5국의 성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세훈을 겨우 잡아놓고 있던 이성의 끈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세훈은 대장군에게 군사들을 소집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뒤, 갑옷을 챙겨 입었다.
원래라면, ○○이 있었다면, 그녀가 해줬을 일이었다.
그는 피냄새가 베어있는 갑옷을 입으며 다짐했다.
그 어떤 누가, 그것이 심지어 하늘에 존재하는 신이라 하여도, 절대 그녀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2
"...왜 저러는거야 저 새끼는."
큰 사건 없이 산발적인 교전만 일어나고 있던 게임의 한복판에 세훈이 등장했다.
거울을 통해 게임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준면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며 제 4국의 마을을 도륙하고 있는 세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제는 제 4국을 쓸어 놓았던 세훈이었다. 아직 제 1국에는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쳐들어올 기세였다.
"제 5국에서 머물던 ○○공주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
"지난 3일간 제 5국을 샅샅이 수색하셨다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었나봅니다."
"○○이 없어졌다고?"
준면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안 그래도 이 비석 때문에 머리 아팠는데, 잘 됐네. 두통이 싹 가실 정도로 재밌겠는데?"
세훈이 ○○을 찾아 헤매는 3일동안 준면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비석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모든 것의 열쇠' 라는 메세지와 함께 나타난 이 비석은 준면이 아는 그 어떤 언어로도 해석이 되지 않았다.
바다 건너 섬으로 흘러 들어온 것 같아 여러 섬과 고대 언어까지 모두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같은 문자가 없었다.
"폐하, 대장군입니다."
"들어와."
"명령하십시오."
"원래는 다른 거 시키려고 했는데 말이지. 방금 엄청 재밌는 소식을 들었거든?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제 1국을 샅샅이 뒤져서 ○○의 행방을 찾아봐.
아무래도 그 공주님이 대단한 사고를 친 것 같거든."
"○○공주라면.."
"너 살려준 여자. 그 여자 찾아 오라고."
"알겠습니다. 분부 받잡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부탁하신 책 가져왔습니다."
대장군이 준면에게 책을 전해주기 위해 준면에게 다가왔다.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려던 대장군은 준면의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에 시선이 쏠렸고,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비석의 글에 빠져들었다.
"대장군."
"....."
"대장군?"
"....."
책을 주기 위해 몸을 숙이려던 대장군의 이상한 행동에 준면이 그를 유심히 쳐다봤다. 대장군의 눈이 비석에 꽂혀있었다.
다시 대장군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해석을 그 비석의 내용을 읽고 있었다.
그 어느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던 그 언어를, 그가 해석하고 있었다.
"....읽을 수 있는가?"
"예? 아, 송구합니다. 폐하. 저도 모르게 그만."
"읽을 수 있냐 물었다."
"...예. 저희의 말과 같지 않습니까."
"...말이 같다고?"
"....예."
준면과 함께 비문을 해석하던 학자가 고개를 저었다. 준면은 다시 대장군을 바라봤다. 그에게 무언가 있었다. 그만 아는 무언가가.
"내용은? 내용은 뭐라고 되어있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대장군은 순간 당황했으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가 해석한 내용을 준면에게 보고했다.
"모든 이가 부러워할,
모든 이가 갖고 싶어하는 능력을 가진 축복받은 그 이는 불행하다.
이 세상 모든 이를 살릴 수 있을지라도
그녀의 심장을 뛰게하는 자,
그녀가 심장을 뛰게하는 자는
결코 살리지 못하리니."
난해했다. 준면은 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의미를 해석하려했다.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능력, 모두가 부러워하는 능력,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준면은 비석의 문구를 계속해서 곱씹었다.
그러다 순간, 준면의 뇌리에 며칠 전 있었던 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죽은 이를 살렸던 ○○.
왕좌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 모두가 원하는 존재. 비석의 '그 이' 는 ○○이었다.
그 내용의 미스테리는 풀렸지만, 저 글자를 어떻게 대장군이 해석한 것일까? 준면은 비석에서 시선을 돌려 대장군에게 고정시켰다.
그는 제 1국에서 나고자란 뼛속 깊은 곳부터 제 1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차있는 무인이었다.
칼과 친한 자이니, 최고 학자도 알지 못하는 글을 알고 있을리 만무했다. 대체 무엇이 그의 눈을 띄워준 걸까.
"....○○이 가진 능력..○○..대장군.......설마?"
이 세상에는 '생명의 언어' 라는 것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창조자가 생명의 나무에 새겨놓았다 하는 전설의 문자가.
생명의 나무의 축복을 받은 이만 읽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신비의 문자가.
만약 ○○이 생명의 나무에 의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받게 된 것이면 그녀는 그 문자를 읽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가 인지하지 않더라도.
대장군은 그런 그녀가 살린 사람이었다. 죽은 그를 살리는 과정에서 그녀의 무언가가 그에게 전달된 것이 틀림 없었다.
그랬기에 대장군은 아무도 읽지 못하는 그 비석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살리지 못한다고 했나?"
"예? 아, 예. 그녀의 심장을 뛰게하는 자, 그녀가 심장을 뛰게하는 자는 결코 살리지 못할 것이라 적혀 있습니다."
심장을 뛰게하는 자라면 그건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심장을 뛰게하는 자라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그녀'가' 심장을 뛰게하는 자라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 말은 그녀의 능력이 사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말이었다.
"큭....큭.....크하하하하하하하하"
준면의 광기어린 웃음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 붙었다. 그녀가 이 세계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리는 만무하다. 다섯 왕국의 왕이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미친 놈들이니.
그러나, 누구보다 뛰어난 미모를 가진,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능력을 가진 ○○이라면, 왕들의 마음을 뺏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만약 다른 왕들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면 ○○은 왕좌의 게임이 끝나는 그 날, 모든 왕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그 날, 그 누구도 살리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준면을 제외하고.
"대장군. 그대는 내가 왕좌의 게임에서 이기길 바라지?"
"물론입니다, 폐하."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왕좌의 게임 따위는 필요가 없는, 힘의 균형 따위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왕국의 주인을 섬기는 건."
준면은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그의 의자에 앉았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써 군사작전을 세울 필요도, 다른 왕들을 심리적으로 건드리는 일도 다 필요 없었다. 단지, 다른 왕들이 ○○을 사랑하게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3
"누가 없어졌다고?"
"그 공주께서 없어진지 5일째라고 합니다."
○○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백현의 눈이 커졌다.
세훈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그녀라서, 아무 일 없을거라 안심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니 그도 당황스러웠다.
안 그래도 오늘 그녀의 목소리가 미친듯이 그리워 그녀를 만나러 세훈의 성에 가려했던지라 그 당혹감은 배로 커져 다가왔다.
"...오세훈 그 새끼는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안 그래도 지금 제 5국이 쑥대밭이 되고 있다 합니다. 아마 곧 5국과 근접한 국경지대도 비슷한 꼴이..."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목소리. 그 목소리를 어떻게 듣지? 들어야하는데. 듣고 싶은데."
백현은 당장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는건지 미친 사람처럼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중얼거렸다.
백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병사는 얼른 예를 갖춘 후 백현의 집무실에서 빠져 나왔다.
아니나다를까, 병사가 집무실의 문을 닫자마자 백현의 고함소리와 함께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들이 성을 뒤덮었다.
그러나 성 안의 그 누구도 백현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목소리에 대한 백현의 집착이 이성의 끈을 자르고 광기가 되어 새어나왔을 때, 그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얼마나 극대화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대체...대체 왜....내가....내가 듣겠다는데....대체 왜!!!!!!!!!"
집무실 안은 말그대로 난장판이었다. 그 어떤 것도 온전히 남아있는 게 없었다.
백현의 손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눈동자 역시 초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더 이상 부술 물건이 없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바닥에 떨어진 사진 한 장이 백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살짝 바랜듯한 흑백사진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어머니,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자마자 백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늘 '백현아' 라며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그 여인,
한 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성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온전한 '변백현'이 되어 안길 수 있었던 그 여인이,
사진에서나마 그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사진을 보니 그녀의 목소리가 더 미친듯이 듣고 싶었다. 지금 듣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는 깨진 유리 조각 틈에서 사진을 꺼내 품에 넣고 집무실 깊은 곳에 감춰져있던 상자에서 작은 물약을 꺼냈다.
떠올리는 이미지의 사람을 찾아주는 물약이었다.
이 물약만 있으면 그 사람이 어느 곳에 있던, 살아만 있다면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딱 한 시간만 그곳에서 머물 수 있고, 그 한 시간의 대가로 돌아온 후 3일동안 깊은 잠에 취해 있어야했다.
왕좌의 게임의 마지막 일주일에 접어든 지금, 백현의 선택은 자살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머리 속에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대한 열망, 그녀의 목소리와 꼭 닮은 ○○의 목소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들을거야. 꼭."
백현은 은은한 파란 빛이 도는 물약을 삼키고 ○○의 모습을 떠올렸다.
길고 탐스러운 흑단같이 검은 머리를 풀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던, 백현의 손목을 치료해줬던 그 날의 모습을.
#4
"으....."
시공간이 뒤틀리는 느낌이 사라지고, 깨질듯이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백현이 눈을 떴다.
그는 흐릿한 시야의 초점을 맞춘 뒤 다시 주위를 찬찬히 바라봤다. 가득 찬 나무들 틈새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아 숲 속인 것 같았다.
"..하필이면 숲 속이야."
주위가 온통 나무와 풀로 가득해서 이곳이 어느 국가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평소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이제 마지막 일주일에 접어든 이상 다른 나라에 와 있다면 조심, 또 조심해야했다.
"젠장."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백현은 결국 무작정 숲을 돌아다녀보기로 결정했다.
그가 이곳에 떨어졌다는 건 어찌됐든 이 안에 그녀가 있다는 이야기니까. 쏟아지는 햇살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은 발소리를 죽이고 그 소리의 방향을 찾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까이 있지 않아 희미하게 들렸지만 얼핏 들려오는 목소리가 분명 ○○의 것이었다.
그는 소리의 방향을 좇아 계속 달렸다. 그가 그토록 찾아헤맨 그 목소리를 향해서.
"푸하하 우리 아랑 진짜 예쁘다! 아주 꽃할배가 따로 없네~"
"너 자꾸 할배라고 그럴래?"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로 백현이 마주한 건,
꽃으로 만든 화환을 종인의 머리에 얹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과 그런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종인의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광경에 백현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종인이 저렇게 사랑 가득 찬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는 것도, ○○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웃고 있는 모습도.
"손 내밀어 봐요! 내가 반지도 만들어 줄게요!"
○○은 종인의 손을 장난스럽게 쥐고 작은 꽃을 꺾어 그의 손가락에 메어주었다.
"진짜 예쁘네 우리 아랑~"
○○은 이게 뭐냐며 뾰루퉁해져있는 종인의 볼을 쥐고 이리저리 늘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백현은 너무 낯설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는 항상 얼어있었다.
대관식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버거운지 핏기없는 얼굴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세훈의 성에서 봤을 때는 창백하고 야윈 얼굴로, 생기가 사라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였는데
지금 백현이 보고 있는 그녀는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받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도 꽃반지 만들어줘요!"
"꼭 반지 아니어도 되지?"
자기도 반지를 만들어달라며 손을 내미는 ○○의 입술에 종인의 입술이 포개졌다. 그 둘은 그렇게 한참을, 달콤한 키스를 나눴다.
입술이 떨어지고 난 후에도, 그들은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예쁘게 웃었다. 백현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둘이 서로를 어마어마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걸.
"사랑해. 정말 많이."
"나도요. 나도 정말 많이 사랑해요."
○○의 목소리로 '사랑해요' 라는 나즈막한 고백을 들은 순간, 백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단순히 목소리만 닮았다고 생각한 ○○이었는데, 환하게 웃는 오늘 그녀의 모습은 백현이 기억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5
"어머니! 어머니 제발...제발 그러지 마세요..어머니 제발..."
"현아..우리 예쁜 백현이...항상 이렇게 예쁘게 커야한다. 알겠지? 엄마가 많이...정말 많이 사랑해..."
"어머니!!!!!"
순식간이었다. 평소처럼 정갈하게 머리를 올리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던 어머니가 성의 탑 꼭대기에서 몸을 던진 건.
백현이 뒤늦게나마 달려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의 어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붉은 선혈로 바닥을 적신 채로.
"어머니!!!!!!!"
소년이었던 백현은 차마 그녀의 시신 근처로 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그녀의 마지막이 피로 얼룩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백현은 탑 꼭대기에 주저앉아 쓰러질 때까지 울었다. 그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를 보고 항상 웃던 어머니가, 절대 그를 떠나지 않을 줄 알았던 어머니가 이제 그의 곁에 없다는 사실을.
"....정신이 드느냐."
"....아바마마."
"네 어미는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장례식이 벌써 끝난.."
"장례식은 치르지 않았다."
".....예?"
"불미스러운 죽음이다.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죽음조차 숨기시려는 것입니까? 어찌되었던 아바마마의 피를 이어받은 저를 낳은 여인입니다! 어찌..어찌 죽음 조차도 숨기시려 하신단 말입니까!!"
백현의 어미는 야심으로 가득 차있던 여인이었다. 빼어난 미모와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평민의 색깔없는 삶이 아닌 왕실의 화려한 삶을 원했다.
그녀는 성으로 들어가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미모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왕의 마음을 사로잡고 백현을 뱃속에 품었을 때,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아직 혼인하지 않고 있던 왕이였으니 그의 핏줄을 품고 있는 그녀를 그의 옆에 앉힐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녀가 왕에게 백현을 가졌다고 말한 바로 다음날, 왕비가 될 여인이라며 한 여인을 성에 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현의 어미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백현이 조금 더 자라면, 언젠가는 그가 다시 그녀를 바라볼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왕과 왕비의 사이에서 10년동안이나 아이가 생기지 않고, 왕비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임이 밝혀지고 나서야 백현은 왕의 아들로 인정받고 세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미는 백현이 세자로 책봉되고 난 후에도 아무런 인정도,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했다.
왕은 왕비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는 백현과 그의 어미의 존재가 왕비에게 상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어미는 성 안에서 철저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평생을...아바마마를 바라보며 사셨습니다. 한 번쯤은 봐주실 것이라면서, 항상 힘들어하시면서도 제 앞에서는 늘 웃으신 가여운 분이신데,
그런 분이신데 어찌 죽음까지도 묻으려 하신단 말입니까!!"
"......."
"단 한 번만...단 한 번만 따뜻하게 제 어머니를 바라보실 수는 없으셨습니까? 그 눈길...그 작은 눈길 한 번만 있었어도 어머니가 그리 아픈 선택을 하지는....그러지는...."
백현은 쏟아지는 눈물과 메여오는 목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왕은 그런 그를 잠시 응시하다 한숨과 함께 그의 방을 나섰다.
홀로 남겨진 백현은 서럽게 울었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머리가 어지러워 눈을 뜰 수 없을 때까지.
#6
주어진 한 시간이 끝나고 다시 백현이 그의 궁전으로 돌아올 때, 백현의 기억 중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어머니의 마지막에 대한 기억이 그의 뇌리에 스쳤다.
어머니를 잃고, 그는 그 공허함을 달랠 수 없어 그녀의 것처럼 아름다운 목소리에 집착했다.
그런 목소리들을 찾고, 듣다보면 꿈에서라도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소리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의 마음은 만족이 아닌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아무런 행복도, 기쁨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행복했다.
그의 어미와 똑 닮은 목소리로 '사랑해요' 라고 속삭이던 ○○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늘 그리워하던 '사랑받던 시절'의 그녀의 모습이 ○○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수록, 그녀와의 기억이 생생해질수록 ○○의 목소리와 모습이 어머니의 그것과 겹쳐졌다.
백현의 머릿속에 항상 존재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대고 '어머니' 하고 불렀을 때, 어머니가 아닌 ○○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가 지키겠습니다. 이번에는 결코.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백현은 다짐했다. 어머니를 살리지 못한 대신, 그녀와 꼭 닮은 ○○을 지켜내겠다고.
당신의 목소리를 닮은, 당신이 사랑받던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녀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그러니까 제발...제발 살아 있어줘. 3일만, 딱 3일만 버텨줘."
백현은 물약으로 인해 점점 몽롱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말했다.
준면을 비롯한 나머지 왕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지 누구보다 잘 아는 백현이었기에 그는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다.
그가 잠들어 있는 시간동안 그녀를 지켜달라고.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그녀를 또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여러모로 바쁘네요~ +)텍본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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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점점 완결로 다가가네요~ 텍본 원하시는 분들은 이번 편에 댓글 남겨주셔야 제가 보내드립니다! 이메일 주소 틀리지 않게 꼼꼼하게 써서 올려주세요!
언제나 알라뷰♥
완결이 어떻게 날 것 같아요~?흐흐흐 날이 갈수록 댓글이 줄어서 많이 힘들어요.. 주말마다 이렇게 시간내서 오는 저에게 힘을 주세요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