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SOYOU), 기리보이 - 팔베개 (Feat. 기현) (Pillow)
도서관 로맨스 그 후
원래 이 수업이 이렇게 길었나...
오늘따라 유난히도 시간이 안 갔다.
사실 수업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시간만 더 늦게 만나자고 할 걸 그랬나...
아 그냥 바지 입을 걸 그랬나?
오늘따라 못생긴 것 같기도 하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신경이 쓰였다.
수많은 고민들을 뒤로한 채 드디어 수업이 끝이 났다.
고등학교 때 급식 먹으러 가던 그 속도로 걸었, 아니 뛰었다.
그리고 건물을 빠져 나오려고 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빠였다.
“나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어.”
조금은 투정부리는 듯한 말투마저도 나를 설레게 할 뿐이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푸흡 아니야.. 우리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겠다.”
우선 우리는 학교 근처 식당에 갔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았다.
매번 친구들이랑 오던 곳인데 오빠랑 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손발이 꼬이는 것 같고 공기마저 어색한 느낌이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다정한 눈빛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런 오빠에게 어색한 미소로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내가 바보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뭘 할까 하다가 영화를 보러 갔다.
막 특별한 데이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대가 됐다.
다른 커플들처럼 팝콘도 사서 나란히 앉았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불이 꺼졌다.
로맨스 장르는 어색해서 오히려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무난하게 액션 영화를 골랐다.
조금은 뜬금없을지 몰라도 남자 주인공이 참 잘생겼었다.
영화 중간에 팝콘을 먹으려고 손을 갖다 댔는데 오빠와 손이 겹쳐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손을 빼버렸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영화관 안이 어두워서 다행이었지만 아마 얼굴이 곧 터질 만큼 빨개졌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빠 손을 잡아버리고 싶었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멍 때리며 보다가 액션 씬에서 큰 소리가 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민망하게도... 오빠가 그걸 봤는지 계속 웃었다.
“귀여워.”
그리고 오빠는 능청맞게 내 손을 잡아왔다.
그렇게 우리의 영화 데이트는 끝이 났다.
그냥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운 불금이었다.
“오빠.”
“응?”
“치맥 콜?!”
“콜”
그래서 우리는 호프집에 오게 되었다.
술도 잘 못 마시면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꽤나 많은 술잔이 오갔다.
그러다가 문득 데이트 내내 멍청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를 회상하는 것마저도 부끄러워서 애꿎은 맥주만 자꾸 들이켰다.
그러나 내 걱정에 반해 오빠는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그래... 오빠는 경험이 많으니까 아무렇지 않겠지..
이렇게 넘어가려다가도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든 게 처음이고 떨려 죽겠는데!
나랑 사귀는 걸 장난으로 느끼는 건가...
오빠가 나만큼 떨리고 설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저렇게 실실 웃고 있는 오빠가 괜히 미워 보였다.
“유리야.”
“...”
“왜 대답 안 해?”
“화나서.”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 왜?”
“... 우리 서로 대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나 혼자만 대따인 것 같아서요..”
“...”
“100만큼 좋은 게 아니다, 89만큼 좋은 거다.. 그럼 말해요. 내가 89로 맞춰 줄테니까...”
나 뭐래는 거야.
“... 아 그러니까요.. 그니까 내 말은...”
“오늘 하루종일 그 고민 한 거야?”
“...”
“왜 그런 쓸 데 없는 고민을 했어.”
난 역시 멍청이다.
그냥 고민만 하지 그걸 왜 밖으로 꺼내가지고...
술기운이 한껏 올라 다 말하고 보니 급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나의 부끄러움을 막아주던 술기운 마저도...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나도 지금 엄청 떨리고 부끄러운데 참는 거야.”
“...”
“그만큼 네가 좋아서. 조금이라도 더 표현해주고 싶어서.”
“...”
“진짠데... 진심이야.”
오빠도 술기운이 올라오는 듯 얼굴에 손을 비볐다.
많이 부끄러웠지만 그 덕분에 오빠의 진심을 알게 됐다.
오빠가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몰랐을 것이다.
남들이 나를 찌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처음이었다.
그래서 몰랐다.
“그래서 나랑 말 안할 거야?”
“...“
“응? 나랑 말해주라 유리야.”
“... 좀 부끄러우니까 5분만 있다가 말 걸어요.”
아... 부끄러워.
“집에 가요 이제.”
“미치겠다 너 때문에.”
또 헤어지기가 싫은 둘은 집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여기 내 아지트예요.”
“아지트?”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혼나거나 오빠랑 싸우면 여기 혼자 앉아있었거든요. 그래서 내 아지트예요.”
“상상돼.”
“...”
“...”
“아까는 미안해요... 나 진짜 멍청한가 봐요.”
“...”
“그래도 나 안 싫어할 거죠?”
“응. 절대 안 싫어해.”
이 상황이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좋아해.”
“...”
“나 이것도 한 서른마흔다섯번 정도 고민하고 말한 거야..”
아.. 짜증나게도 너무 귀엽다.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이라는 게 아직도 꿈만 같다.
나한테는 오빠가 너무 과분한 사람인 것 같아서, 이 상황이 거짓말인 것만 같아서.
그래서 자꾸 볼을 꼬집었다.
꼬집을 때마다 볼이 많이 아팠다.
황민현이라는 사람이 내 남자친구인 게 사실이어서 다행이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임을 알지만 보내기 싫은 그와 가고 싶지 않은 그녀이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예쁘다.”
문득 예쁘다고 말해주는 그녀의 남자친구.
그는 쑥스러운 듯 홍조를 띠는 그녀가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리고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해달라고 소심하게 빌어보기도 했다.
그녀 역시 그에게 사랑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몹시 좋았다.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눈과 코, 그리고 입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그와 그녀는 그렇게 첫 데이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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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서관 로맨스 뒷 내용을 쓰게 됐네요. 늦게 와서 죄송하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쓰면서도 계속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첫 데이트인 만큼 좀 풋풋한 둘의 모습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독자님들이 어떻게 읽어주실지 모르겠네요ㅎㅎ 아 혹시 익숙한 대사를 눈치채셨을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또 오해영을 다시 보는데 현진님의 대따~~ 하는 대사가 너무 귀엽고 설레서ㅠㅠ 잠시 데리고 왔어요. 재미 없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암호닉을 그냥 단편에도 계속 쓸까 싶어요! 아마 한동안은 단편 위주로 계속 쓸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나중에 암호닉 분들께 번외편 메일링 해드릴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는데(원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아직은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습니당ㅜㅜ 말이 너무 길었네요! 오늘도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