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주인이요? 06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왜냐구요? 하핫
"재환아, 진짜 한 번이면 되는데. 너 그거 안 하면 더 아플지도 몰라."
"쥬인은 맨날 째아니 겁만 주고, 나쁜 말만 하고!"
"아니 진짜 그렇다니까 요 강생아..."
재환이의 예방접종 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지내기는 하나, 반은 강아지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꼭! 꼭 예방접종을 해야 하는데... 저놈의 겁쟁이 강아지가 글쎄...
"알겠으니까 거기서 나와! 쇼파 뒤에 먼지투성인데 거길 들어가면 어떡해!"
바닥에 누워서 진상 부리다가 안 되겠는지 뿅하고 강아지로 변하더니 저 더러운 쇼파 뒤로 들어가 버린 거 있지요? 야 너 털에 먼지 붙고 더러워지면 씻어야 되는데 또 싫다고 난리 칠 거잖아 따흑...
"재환이 어디 갔어요?"
"저기... 저 뒤에..."
설거지를 마친(시킨 거 아님) 민현이가 손을 탈탈 털며 재환이를 찾길래 손가락으로 쇼파 뒤를 가리켰더니 바로 가서 쏙 빼오더이다. 야 이렇게 쉬운 거였어? 내가 팔 짧은게 잘못이네 그랬네.
뽀얀 털 곳곳에 먼지덩어리를 묻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걸 달래줘 말어... 같은 반인반수인 민현이는 저렇게 성숙하고 똑똑한데 재환이는 왜 한참 애기 같은 거... 아, 재환이가 들으면 삐칠테니까 다물겠습니다.
내가 증말... 주인으로서 너무 치사하고 치사한 방법이라 이것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김재환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더는 방법이 없어.
"아, 정말 재환이는 아직 한참 아가네."
(쫑끗)
"오늘 민현이도 예방접종 맞으러 가는데 민현이는 아~무 말도 안 하잖아. 민현아, 무서워?"
"아니요?"
내 방식을 용케 눈치 챘는지 눈웃음 살살 치면서 고개를 젓는 민현이만 있으면 난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민현이 집에 안 가면 안 되겠니. 진영이 여행 갔다가 안 오면 안 되는 거니.
폴짝 뛰어서 민현이한테서 내려온 재환이가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입에 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호 이젠 남들 보는데서 옷 입고 벗기는 좀 창피한가보지?
금방 옷을 꿰어입고 나온 재환이가 발을 쿵쿵 구르며 내 앞으로 와 섰다. 뭐, 뭐, 네가 안 간다 그래서 내가 그런 건데 뭐.
"째아니도 가."
"응? 뭐라고? 안 들리는데?"
"째니도 가서 주사 맞아."
"진짜?"
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내 손 붙잡고 방에 들어가서 옷도 갈아입고 혼자 양말도 신고... 너만 준비하면 다냐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금방 옷 갈아입고 나올게."
"응."
쇼파에 다리 팔락거리고 민현이랑 나란히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 아닙니까. 이 나이에 벌써 육아를 다 하고 장하다 성이름.
"쥬인~! 언제 나와?"
"...나 방금 들어왔잖아..."
마지막까지 안 챙긴 거 없나 살피고 집에서 나서려는데 타이밍 좋게 전화가 왔다. 그것도 배진영한테. 지긋지긋한 놈. 해외전화 비싸지 않나? 왜 틈틈히 전화질이야.
"여보쇼."
"현이 예방접종 하러 가는 날인 거 알지?"
"어, 안다. 간다."
"우리 현이 떨지도 모르니까 잘 봐주고..."
떤다고?
내 옆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서있는 얼굴을 보아하니 그런 건 절대 아닌 것 같은데 배진영은 대체 민현이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뭘까 싶었다. 엉터리 주인이네 이스애끼...
"어, 알았다. 끊어. 돈 번 거 다 전화 요금에 쓸래?"
"아아, 잠깐만 나 현이 목소리 들려줘."
"너 현이가 고양이인 건 알지? 사람인 줄 알...아..."
말하면서 돌아봤는데 너무 사람이라 놀랐다. 큼. 계속 무슨 변태도 아니고 우는 소리라도 듣게 해달라고 징징 거리는 배진영에 잔다고 대충 둘러댔는데 불굴의 사나이 배진영... 옛날부터 늘 이렇게 날 피곤하게 했지...
"그럼 영상통화 걸테니까 자는 모습 보여줘 진짜 너무 보고 싶어서 현기증 나."
"현기증 나면 약을 먹어."
"현이가 약이야."
아직 집에서 나서기 전이니까 잠깐 고양이로 변하면... 다시 옷 입고 나가서... 하여튼 배진영 때문에 계획이 꼬여버렸다. 병원 좀 늦게 도착할 것 같다고 연락 해놔야 되나.
짜증은 나지만 주인의 마음을 백 번 배려해 민현이한테 손짓 발짓 해가며 한 번만 고양이로 있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고개를 저어...? 당신 왜 그래...?
"어... 야,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무 잘 자고 있어서."
"뭐야, 그럼 더 보여주기 쉽잖아."
"아무튼 병원 예약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또, 음."
"너 우리 현이한테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지?"
"뭐?"
내가 니새끼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라고 하기엔 방금까지 설거지하던 민현이의 모습이 생각 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 했지만. 네 덕분에 내가 남자 둘이나 데리고 사느라 고생 아닌 고생을 좀 하고 있다고.
배진영이 들으면 놀라 뒤집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리고 있는데 신이 내 편이기는 했나보다.
"아 나도 나가봐야 되는데. 알았어 그럼 사진으로 보내."
"오케~ 님 즐여행."
아무튼 더 뭐라고 하기 전에 끊어버렸다. 전화 또 오면 어떡하지 진짜 수신거부라도 해야 되나. 미쳐버리겠네.
그리고 자연스레 향한 민현을 향한 나의 시선... 당신의 최선과 나의 시선... 그게 최선이었습니까 당신은.
"왜 그랬어?"
"뭐가요?"
"왜 싫다고 그랬어... 나 네 주인한테 털릴 뻔했잖아."
"아니 그게, 막 당황한게 너무 귀여워가지구."
? 세상사람들 제가 고양이한테 귀여움도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뭐 아무튼 나중에 사진은 꼭 찍자. 그리고 재환이는... 이제 갈까?"
"옷케~"
"? 뭐라고?"
"쥬인 째아니랑 손 잡고 가는 거야 옷케~"
아... 앞에서 말조심 하자고 했던게 불과 얼마 전인데 금방 까먹고 또 저런 말을 쓰게 하다니 대체 나의 지능은 얼마나 더 떨어져야 스스로에게 만족을 하는 것인가...
난 이 병원이 참 좋아... 선생님이 잘생기고 막 그래...
"환이 밥은 잘 먹어요?"
"네..."
"잠도 잘 자구?"
"네에..."
하얀 털뭉치 같은 재환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물어보는 선생님 때문에 제 심장이 아픈데 그런 건 치료 안 해주시겠죠 하하. 나도 다음 생에는 김재환으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건강 상태가 되게 좋은 편이에요. 좋은 주인을 만나서 그런가본데?"
웃지 말아주세요...
재환이는 작은 지옥과도 같았다. 왜냐구요? 그 작은 게 병원을 뒤집어 놓을 뻔했거든요*^^* 내가 남들보기 창피해서 정말.
주사를 맞아야 되는데 그 때부터 낑낑거리기 시작해서 정말 밖에서 듣기엔 우리가 재환이 데리고 나쁜 짓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 거다. 괜찮다고 달래주는 선생님 손을 앙앙 씹고 간식을 줘도 안 먹어.
차마 말씀 못 드렸는데요 선생님 걔 개 간식은 안 먹어요...
결국엔 민현이 주사 맞을 동안 내가 안고서 한참을 달랬다. 니가 맞으러 오겠다고 했으면 씩씩하게 맞아야지 임마. 하고 속삭여주는 것도 잊지 않고.
예방접종을 마치고 나서도 내가 죄송하다고 여러차레 사과를 드리자 그런 일 자주 있어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당신은 아마도 천사?
끝까지 선생님 눈 꼭꼭 마주치고 나오느라 고생 좀 했다. 휴...
얘네 데리고 어떻게 집에 가지?
한쪽에는 옷이 잔뜩 든 가방을 매고 한쪽에는 애들을 안고 걷...긴 걷는데 이렇게 걸어서는 절대 집까지 못 가. 게다가 강아지로 있기 불편한지 계속 꼼지락거리는 재환이 때문에 급히 상가 안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 옷가방과 함께 들여보냈다. 같이 못 들어가니께...
"쥬인 째아니 양말이가 사라졌어!"
"여기 있어, 여기."
소리를 듣자하니 민현이가 다 챙겨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얼른 좀 나왔으면 좋겠다. 남자화장실 앞에서 망 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서있기가 정신적으로 쉬운일이 아니야.
"쥬인, 쥬인."
"왜, 얼른 집에 가자."
"쥬인 째아니 이제 아가 아니지?"
"응?"
"주사 맞았으니까 째아니 아가 아니지요."
재환이는 보기보다 기억력이 매우 좋습니다.
내가 아까 아가라고 했던 거 기가 막히게 기억해서 지금 꺼내는 것 봐. 와. 완전 지능형 강아지네 얘.
"당연히 아니지, 재환이 이제 어른이네."
"그치? 옷케~"
신이 난 재환이 손을 잡고 가방을 고쳐 매는데 옆에서 조용히 바라만 보던 민현이가 자연스레 가방을 가져갔다. 너무 자연스럽게 가져가서 원래 민현이 건데 내가 들고 있는 줄 알 정도.
"왜? 뭐 필요해?"
"아니요, 힘드실 것 같아서."
매너로 고양이를 만들면 그거 황민현. 매너가 고양이를 만든다.
아, 근데 쌍둥이 애기 둘 키우는 분들은 가방 하나만 들고 어떻게 다니세여? 저는 하나만 들고 다니면 죽겠던데.
"째아니는 가방 없어..."
"...재환이는 주인 손 들어주면 되겠네. 이거 되게 무겁다."
"그으래?"
울 아덜램이 뭐든지 다 민현이만큼 하고 싶어해서 죽겠던데 다른 집은 안 그런가요? 호호.
결국엔 손에 땀 차는 거 다 무시하고 집까지 손 꼭 잡고 왔습니다. 오늘의 퀘스트 달성!
갸악 너무 오랜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