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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부 BGM을 꼭 들어주세요, 끝이 나면 다시 틀어 들어주세요ㅠㅠ 탁드립니다.



복숭아 시즌 2




W. Bohemain Heal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장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 방울들



10: 그 애 (권순영 번외)



***



"그래서 이렇게 가겠다구요? 애는요, 순영이는!!"



야 나 그거 먹을래. 그래, 여기. 아니다, 둘 다 먹을래. 그래, 먹어.

딸기맛도 주고 복숭아맛도 주었다. 넌 안 먹어? 네가 두 개 다 먹는다며.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너무도 귀에 잘 박혔다. 문을 꽁꽁 닫아 놓아도 나를 놓고 가겠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선명했다. 적어도 우리집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열 살배기여도 눈치밥을 먹을 줄 알고 그래서 더 작아지기도 했다. 말을 잘들으면 돼지 않을까, 사고를 치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까. 그러나 엄마도 아빠도 그냥 나는 두고 떠나고 싶은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한 개 더 주면 안돼? 내가 수학문제 풀어줄게, 너 수학 30점이잖아. 그건 니가 똑똑한 거야. ㅇㅇ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나도 모를 걸 그랬다.



"시설에 보낼 거에요.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 ㅇㅇ엄마"



엄마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이모를 붙잡아 울었다. 너 뭐해? 나도 모르게 문에 귀를 대고 있었나보다. 이거 접어줘, 알겠어. 엄마의 시작은 대체 무엇일까. 사실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모의 한숨이 들렸고, 아저씨는 아빠에게 화를 냈다.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 같았다. 오늘따라 꼭 잠가준 단정한 옷차림새가 갑갑했다. 다 접었어? 응. 또 접어줘! 그래. ㅇㅇ에게 두번째 비행기를 접어주었다, 이건 너 해. 가지고 놀다 찌그러진 비행기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근데 너 좀 웃으면 안돼? 내가 웃겨 줄까? ㅇㅇ는 내 볼을 마구 잡아 올렸다.



"순영이한테 미안해서라도 다시 생각해, 이건 아니야"


"이미 도장 찍은 일이야. 나는 이게 최선인 거 같아"



최선? 최선이 뭐지. 잘 모르겠다, 엄마가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이모가 엄마를 따라 나갔다. 아빠는 안방으로 아저씨와 들어간 거 같았다. 비가 온다, 야 비온다 비! 창문에 볼을 철썩 붙인 네가 내 목부근을 잡고 끌어 당겼다. 저기 이모있다, 이모 가는데? 엄마가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이모가 뒤따랐지만 택시는 골목을 멀리멀리 빠져나갔다. 엄마는 가버린 걸까, ㅇㅇ가 넌 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엄마도 아빠도 나를 데리고 떠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그 날은 비가 아주 많이 왔고 나는 그 방 안에서 울었다. 하루 아침에 엄마가 떠났다, 야 왜 울어. 미안해, 너 이거 먹어, 야 권순영. 그 애가 엉엉 우는 나에게 사탕을 까 넣었다. 이거 먹고 그만 울어, 억지로 소매를 끌어 눈물을 벅벅 닦아주었다. 나는 서러워 울었다, 입 안에서 복숭아향이 퍼져 나갔다.



***


"얘 아픈데요"



너는 자주 아팠다. 시험기간에는 감기를 달고 다녔다, 그래서 나는 항상 휴지를 달고 다녔다. 수시가 끝이 나고 너는 더 아팠다, 그제는 너를 업고 병원에 다녀왔다. 교복도 덥다며 조끼를 던져 그것도 줍고 골목을 걸었다. 가방 두 개는 더이상 무겁지가 않았다. 기운이 없어 자꾸 흘러내리는 너를 들쳐 업는 게 조금 무거웠다. 너를 내려 주었을 땐 등이 축축했다, 달라 붙은 셔츠를 벗고 침대에 누웠다. 책상에 나열된 감기약이 쌓여 있었다. 내가 왜 이걸, 짜증이 났다. 숨기고 있는 비밀의 무게가 불어날 수록 버거웠다, 진짜 미쳤나. 억지로 눈에 팔을 들어 눌렀다. 야속한 잠은 끝내 오질 않았다.



*



"권순영, 너도 마실래?"



"난 싫어"



졸업여행이라는 타이틀에 다들 들떠 숙소의 분의기가 시끌벅적했다. 첫 날부터 술은 무슨 술, 바깥 바람을 쐐고 오니 얌전히 누워 잠이나 자고 싶었다. 이래서 숙소가 싫다고, 옆 방은 이미 만취였다. 잠 안 오냐? 최승철이 윗 침대에서 물어왔다. 오겠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꺼진 방 안에서 이어폰을 찾아 부스럭 거렸다. 여깄다, 줄이 쓸데없이 꼬인 이어폰이 잡히고 음악을 키려는데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하 진짜 미치겠네,



"니 가방에 과자 있지"



"있지"



"두 개만"




적어도 이유는 만들어 가야 할 거 같았다. 잡힌 게 두 개 밖에 없어 대충 꺼내 후드를 걸친 뒤 나왔다. 어디가? 바람 쐐러.

권순영 등신. 머저리 병신, 잠 못 들어 뒤척이고 있으면 어쩌지. 아 그냥 아까 줄 껄, 괜히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여자 숙소로 들어가는 건 절대 용납 못한다며 으름장만 다섯 번 정도 들었으나 사실 별로 상관이 없었다. 눈치 두어번 본 뒤 뛰어가니 걸린 거 같진 않았다. 열두시가 넘었는대 자면 어떻게 깨우지, 휴대폰을 하도 만지작거려 땀이 찼다.



- "뭐"


"나와"


-"아 꺼져"


"잠깐 나오라고, 니 방 앞이야"


"에이씨"



진짜 귀찮다는 표정으로 얼굴만 내민 너를 끌어 당겼다. 왜, 뭐, 이 밤에 뭐 때문에 오는데?

이어폰 때문에. 까칠한데 왜 까칠하지 않게 들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어폰을 뽑아 건넸다. 얘가 웬일이래하는 표정이 귀여웠다. 그와중에 슬금슬금 웃는 너에 나는 굳었다. 아씨, 네 손에 쥔 과자를 쏙 빼 입에 물었다. 말을 할 수가 없을 거 같아서, 세상 먹을 거 뺏길 때가 가장 속상한 너인 걸 알지만 나도 뭔가가 필요했으니까 네가 이해해라. 입에 있는 것도 빼먹을 네가 손을 뻗자 빠르게 네 후드를 덮어 씌였다. 이 ㅆ, 그리곤 그냥 내달렸던 거 같다. 여자 숙소를 아예 빠져 나와 숨을 고르니 짠내가 훅 끼쳤다, 주머니에 과자가 부스러졌다.



"너 안 자?"



"어, 그냥. 너 먼저 자라"



"그래 잘 자라"



옆방은 고사하고 앞방도 난리가 났다. 3시가 넘으니 최승철도 꽤 졸렸는지 같이 밤을 새워주다 잠들어 버렸다. 잠이 올 턱이 없다, 워낙 예민한 내 탓이었지만. 바다는 실컷 봐서, 사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애둘러 조금 추운 바람이 목을 감았다. 이렇게 밤을 새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팔로 베개를 베고 할 것 없이 휴대폰이 꺼지면 다시 누르고 또 꺼지면 다시 켜기만 반복했다. 일년 전이었는데, 얼빠진 얼굴로 응시한 별 볼일 없는 내 옆에 나른하게 비춘 달만큼 환한 미소를 떨어뜨릴새라 한가득 머금고 어깨동무인지 목을 죄인 건지 모를 폼새로 웃고 있는 네가 있었다.



졸업여행은 급변한 날 덕에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꽤나 기대를 했기 때문에 그 애는 버스에 타서까지 볼을 주먹만큼 부풀린 채 앉아 있었다. ..저걸 어쩌지.


속상해서인가, 옆에 앉지 말껄. 불편한듯 자꾸 뒤척이며 눈을 부비는 너에 조명도 꺼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 거 같았다. 조금 불편하게 가지 뭐, 네 쪽으로 몸을 기울여 툭툭 치니 너는 그나마 편하게 어깨에 기댔다. 오늘따라 뽀얗게 부푼 볼이 폭 눌린 게 귀여웠으나 가까운 거리에 몸이 굳었다. 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쌩썡하던 너는 작게 숨을 오르 내리쉬며 잠들어 버렸다. 잠이 오질 않았다, 고개가 뻐근했지만 네가 너무 은은하게 나에게 스며 잠이 들 틈이 없었다. 아까 헤집어 버린 머리에 이마가 드러났다. 


[세븐틴/권순영/최승철] 복숭아 시즌 2 10: 그 애 (권순영 번외) | 인스티즈

아, 이거. 이마 한 켠에 중학생이었나, 어디서 크게 다투고 이모의 손을 잡고 돌아와 한참을 혼났던 그 날인 거 같았다. 그래도 자기가 이겼다며 대들었는데, 그때 치료해준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새삼 네가 보였다, 이렇게 컸었나. 버스는 조용했다, 그리고 조용히 네 이마에 입을 맞췄다. 숨이 막혀 죽어버릴 거 같았는데, 그 죽어버릴 거 같은 숨막힘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네 이마에 입을 맞추었는데 내 이마에서 뜨겁게 열이 났다. 자꾸 튀어나오는 웃음을 집어넣느라 죽을 뻔 했다.

 



***



"너 누구 좋아해 본 적 있어?"


"나 고민 상담 좀 해주라"



누군가 물었다, 같은 반인 거 같은데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2년 째 짝사랑하고 있다는 얘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너무 좋아서 뭐 하나 행동 하는 것도 떨리고 몸이 굳어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고. 걔 이야기를 듣는 데 내가 그 애를 좋아하는 시간의 모든 것과 너무 비슷해 어느새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원래 누구 좋아하면 다 비슷비슷한 건가.




"가끔 물어볼게"



"그러던지"



*



ㅇㅇ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같이 가려 보니 없어 먼저 갔나, 왜 갔지 싶어 전화를 하니 받질 않아 집으로 달려가 봐도 없었다. 안 받을 얘가 아닌데, -"ㅇㅇㅇ 본 사람" 단톡에도 못 봤다는 말 뿐이었다. 우선 기다렸으나 계절의 밤은 빠르게 저물어 다가왔다. 오늘따라 추운데, 교복을 갈아입을 생각도 못하고 동네를 뛰었다. 편의점에도 없고, 놀이터에도 없고, 독서실에도 없다. 땀으로 젖었는지, 그래서 더웠는지, 가로등의 불이 전부 켜질 때쯤 돌아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뭐하다 이 시간에 들어왔냐고, 전화 내가 몇 통 했는지 몰라?


"최승철하고 영화 봤다. 전화 안 왔었거든?"


.


"할 말 없냐?"


"무슨 할 말"


"연락 씹은 너 걱정하면서 기다린 나한테 할 말 없냐고"


"그럼 넌, 아까 화 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조용히 입 다물었잖아. 고의건 실수건 괜찮단 말 한 마디 못해주냐고"



사실 이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니었고 너에게 여러가지로 실수한 건 나였는데. 네가 안전하게 돌아온 것에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들키기가 싫어서 언성을 높였다. 네가 울라고 그런 게 아닌데, 네가 울었다. 왜 나는 너한테 항상 부족하게 구는 건지 내가 싫어지게 만드는 너였다. 미안하다고 말하려 너를 따라 올라가려 했지만 방문이 크게 닫히는 소리에 계단에서 멈췄다. 권순영 등신이다 시발.



*



"우리 딸 얼른 자라서 시집이나 보내버렸음 좋겄네, 임자"


"그치? 순영이 반만 닮아봐. 평생 끼고 산다, 살어. 저리 꾸며 놓으면 뭐해, 하루가 전부인데"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 들었다. 어쩌면 나는 너에게 저들에게 가족의 일부분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럼 두고 가요, 나는 순영이 시설로 못 보내. 애가 무슨 죄야!!"



아빠는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저들은 숨겼으나 머리가 자라면서 너무도 당연하게 알게 되었다. 일말의 죄책감일까, 아무 조건 없이 나를 거둬 그 애와 같은 사랑을 주고 같은 관심으로 키운 저들에게 실망도 좌절도 그 무엇도 드리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나는 갚을 도리가 없었다, 일주일 나흘을 야근하고 주말에 출근을 하는 것도 두 아이를 부양한다는 것이 얼만큼의 짐인지 무게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이해가 갔고 그래서 몇 번이고 그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스물 될 때까지 너흰 애야, 내가 아무리 아이를 키우는 요령은 없었지만 그래도 네가 나가면 아저씨가 너무 미안할 거 같다. 사랑도 많이 못 주고,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순영아"


"성적 오르면 나가, 대학 못 가면 너도 ㅇㅇ가도 스물 넘어도 이모가 안 내보내? 너도 저기 ㅇㅇ가 옆에 가 손들어, 어딜 콱"



같은 사랑을 받은 것만으로도 내가 돌아서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



"좋아해"



"알아"



"알 거 같았어"



"그럼 내가 싫다고 할 것도 알겠네"



절대 그러면 안돼는 데 나는 그 애가 미친듯이 좋았다. 네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귀여웠고, 웃는 건 사랑스러웠으니. ㅁㅁㅁ은 울지도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차라리 나았다 그게.



"친구할래?"



"자신있냐"



"없어도 하지 뭐, 널 좋아한 시간이 아까워서"



남자랑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



"너 ㅇㅇㅇ랑 사귄다며? 이야 걘 뭐 남자라곤 다 차고 다니더니,"


"이미 했겠네?"



책상이 무너졌다. 떨어졌음 입이라도 닥쳤으면 했다, 같잖은 것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것도 화가 나는데 왜곡이 선을 넘었다. 정신을 잠깐 놓았다 잡으니 네가 보였다, 나와 비슷하게 그 애에게 시선을 주는 새끼가 소름끼치게 화가 나 다시 주먹을 드니 최승철이 나를 막았다. 그리곤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얘 다쳐 그만해." 나를 쥐고 교실 밖으로 끌었다.



.



"왜 싸웠어?"


 

계절감을 잊는 농구를 끝내고 들어가는 길에 그 애는 등 뒤로 와 조용히 물었다. 쌈박질을 했다고, 크게 다쳤다고 너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단지 그 말에 너무 속상한 표정이 나를 답답하게 했을 뿐. 대답을 들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을 거 같은 그 애 머리 위로 차가운 솜들이 쌓여 우선 그것을 털었다. 너 때문에 싸웠다고 하면 안 될 거 같다. 그냥, 너는 더 묻지 않았다.



"왜 싸웠어?"



..아니구나.




***



대체 어떤 감성이었는지. 다같이 온 남산은 그냥 추웠다, 여기에 자물쇠는 왜 채우는 걸까. 이뤄지지도 않을 거, 그 애는 좋다고 달려갔다. 빼곡한 자물쇠 사이에 제 자물쇠를 채울 곳을 훑으며. 그 뒤를 최승철이 따랐다. 내 자리였던 거 같았는데, 좋아야 하는 건지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건지. 이제 네 뒤에 내가 없어도 돼지 않을까, 누굴 위한 짝사랑인지 모르겠다.


저 애랑 마주치지 않게 해주세요.


뭐라도 써야 할 거 같아서 적었다. 좋아하지 않게 해달란 말은 너무 불가능할 거 같아서, 대신 휘갈겨 대충 채웠다. 이제 정말 추워졌다, 손이 얼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걸었다. 쉽게 오지 않을 거 같은 곳이다. 계속 멀어졌음 좋겠다, 그렇게 다시 너를 볼 수 있었음 좋겠다.



***



"같이 안 쓸거면 줘, 도와주는 거야"


"자"



적재적소에 ㅁㅁㅁ은 도와줬다. 돌아갈 수 있게, 멀어져야했다. 그 애랑 같이 쓰던 우산을 줬다. 잘가, 그리고 ㅁㅁㅁ는 돌아갔다. 그 애가 있을 자리로 눈을 돌렸을 땐, 그 애가 없었다. 우산 없을텐데. 나 역시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좀 그치면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비는 그치질 않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하나만 했음 좋겠네, 둘 다 안 맞고 돌아갔음 좋겠지만 그 애가.


결국 비를 맞고 뛰어 왔고 문을 열었을 땐 너 역시 흠뻑 젖어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싶었는데 너는 그냥 올라가 버렸다. 쟤 진짜, 결국 이층으로 따라 올라가 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옷이 젖어 기분 나쁜 촉감이 올라왔다.



"화내서 미안... 집에 어떻게 왔냐고"


"최승철이랑"


"둘이?"


"어"



걔한테 고마워야 하는 건가, 결론은 고마워야 하는데 전혀 고맙지가 않았다. 너에게 더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워야 했는데, 뭐든 쉽지가 않았다. 뒤죽박죽인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더이상 물을 것도 없었고.



"이럴거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나 다치고 화나 내지 말지. 화해하고 안아주지나 말지, 일일히 챙기지 말지, 그러지 좀 말지. 괜히 기대하게, ...이 나쁜 새끼야"


[세븐틴/권순영/최승철] 복숭아 시즌 2 10: 그 애 (권순영 번외) | 인스티즈

말에서 감정에 격해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잘못한 거였다, 애초에 티를 낸 것도 여지를 준 것도 다 내 잘못이다. 비는 너무 거세게 쏟아졌고, 그 비처럼 그 애는 울었다. 울음이 커졌다, 애처럼 이층이 울릴 정도로 목이 다 아플 것처럼 울었다. 딱 한 번만 달래주려 했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에,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에. 눈물이 얼굴을 전부 적신 너에게 너의 손목을 꼭 쥐었다. 첫 키스였다.




***



"ㅇㅇㅇ 줘"



"미안한데, 못 줘"



그 뒤로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흐리다. 어색함이 싫어 ㅁㅁㅁ과 있었고 너는 곧 아파 보였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놀이공원이었고, ㅁㅁㅁ은 나에게 솜사탕을 내밀었다. 너도 못 먹고 나도 못 먹고 그 애에겐 못 주는, 패자끼리 길이나 걷자. 이제는 ㅁㅁㅁ과 의문의 동지가 되어버렸다, 그래 패자끼리 길이나 걷자. 바람이 살을 에워 그 애가 생각 났다. 더위도 추위도 참지 못하는, 목도리라도 줄까 싶어 뒤를 돌았을 때 그 애는 고백을 받고 있었다.



.



"안 만나, 안 만난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만나? 이게 대체 왜 궁금한데? 그럼 나도 좀 묻자. 너 ㅁㅁㅁ이랑 사귀어? 근데 왜 나랑 그때 키스 했는데, 그러면서 왜 자꾸 여지를 주고 건들이는데!!!"



"그게, 왜 궁금한데"



"좋아하니까 묻지 아무 감정, 사이도 없고 아닌데 이 질문을 하겠어?!!! 좋아하니까!!"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으며 산타도 없다. 그딴 건 다 개소리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네가 잠들지 않았을까봐 소리 하나 못냈다. 너무 추운 고백을 듣고 딱 느꼈다. 죽을만큼 미안했다, 내 잘못은 영영 너에게 아픈 그 무엇이 되지 않았음했다. 




***



너와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새해 첫 날을 보냈다. 적어도 마지막이길 원했고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얼굴이 보고싶다고. 9년 동안 단 한번도 보고 싶다고 한 적도 연락을 한 적도 없는 엄마는 와 줄 수 있냐 물었다. 엄마를 보는 건 힘들었지만 그 애와 함께 있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거 같아 좀 빠르게 이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모는 결국 그 애를 마지막 이별에 집어 넣어주셨다, 



"엄마를 이해 못해도 돼, 순영아"


"그냥, 너 잘 큰 모습만 보여주고 다시 돌아와도 돼"



그 애가 먼저 탄 택시 앞에서 이모가 말했다. 끝까지 짐을 함께 지자고 하지 않으셨다.


야속하게 기상 악화로 연착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어둠은 졸린 지 급하게 쏟아내리고 있었다. 끝인데 좀 좋게 끝을 내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권순영은 등신이 맞는 거 같다. 등신 새끼. 결국 본능적으로 나간 말에 다투고 사과를 하기엔 할 이야기가 끝이 없어 일어섰다.




"권순영"



옷깃이 급하게 끌어 당겨졌다. 너는 아주 어색하게 나에게 입을 맞췄다, 떼어내지 그랬냐고 물으면 다시 되묻고 싶다. 당신들이라면 떼어낼 수 있겠냐고. 키스라는 걸 해본 적도 없으니 짧지만 꼭 붙어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미친듯이 떨렸다, 네가 좋아서도 있었지만 정말 가기 싫어서 끝을 내야 하는 지점에서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 힘들게 떨렸다. 내 팔을 잡아던 네 손이 떨어졌다, 탑승 비행기의 안내 방송이 짧은 거리를 파고 들었다 떠났다.



[세븐틴/권순영/최승철] 복숭아 시즌 2 10: 그 애 (권순영 번외) | 인스티즈

이번엔 내가 널 당겼다, 허리를 숙여 더 깊게 입을 맞췄다. 나의 간절함이었다, 또한 가슴의 아우성을 들어주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정신 없이 나의 감정에 충실했다, 이것도 마지막이다. 한참 너를 놓지 못하고 입술을 찾다 정말 놓았다. 네 머리라도 쓸어주고 싶었다,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고. 적어도 이 감정은 마무리 하고 싶었는데, 돌아섰다.




***




"오늘 회식 튀어도 됩니까?"



"그래, 이 장마에 무슨 회식이냐. 도망갈 수 있을 때 도망가라 야"



비가 내리는 날은 본능적으로 별로다. 선배의 재량으로 끼기 싫은 회식에 빠져 나왔다. 운전을 하자니 슬슬 내리는 바에 밀리기를 미친듯이 정체 되어있는 길을 보고 운전을 접고 오랜만에 걷자 싶어 차키를 주머니에 넣었다. 덥다, 심지어 잡소음에 시끄럽기까지 했다. 괜히 걷는 건가 뒷머리를 헤집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멎었다. ㅇㅇㅇ가였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여전히 하얀 얼굴이 확대경이라도 쓴 것처럼 너만 보였다. 아는 척을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너는 습관처럼 폰을 들고 길가로 발을 내딛었다.



"정신 나갔어?!"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건 나였던 거 같다. 얼빠진 표정에서 점점 눈이 커다래지는 너를 그냥 보냈다. 인파에 섞여 돌아보는 너를 보고 싶었는데, 정말 자신이 없었다. 너무 반가웠고 보고 싶었고 그렇게 안고싶었다. 너에게 소리친 나는 정신이 정말 나간 거 같았다, 그렇게 첫사랑을 보냈다. 등신.




***




"너 그렇게 하고 사진 찍을거야?"



"뜬금없이 무슨 사진이야 사진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갈 곳이 있다며 멱살을 쥔 채 숨도 제대로 고르지 않고 뛰어온 곳은 사진관이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 네 옆에 기대 서 물으니 너는 그냥 닥치라고 했다. 아저씨 잘 찍어주셔야 돼요! 얘 제일 멋있게 나오게, 나는 예쁘게 나오게! 그리곤 대뜸 나를 끌고 들어가 앉혔다. 환하다 못해 시린 플래쉬가 터지고, 그렇게 끝이 났다.




"네 생일이니까 네가 두 개 가져. 난 하나 가질게"



"그래 고오맙다. 너 이렇게 생일 퉁 칠 꺼지?"



"넌 날 뭘로 보냐?"



일로와.

나보다 한참 작아진 네가 나를 끌었다, 그리곤 안아주었다. 안아준 건지 안긴 건지 모르겠는 이 자세에서 너는 정말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꽉 안았다.




"어른처럼 안해도 돼, 너 충분히 멋지거든"



손이 닿지 않아 너는 발끄트머리로 서 내 뒷머리를 쓸어주었다.



"힘들었지"



아, 어쩌면 어른은 너였나보다.



"생일 진짜 진짜 축하한다 권순영"



네가 나에게 떨어져 웃었다. 그 웃음이 매우 해맑아, 나는 굳었다. 알겠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미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너를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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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에 굉장히 원하시고 궁금해하셨던 순영이의 시점을 가져와 봤습니다, 시즌 1의 시점이기 때문에 현재는 어떻게 변화했는지, 하고 있는지 글로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편을 준비하며 지인들에게 욕 많이 먹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구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애정전선의 시작 을 알리며 조용히 물러가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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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진짜... 왜 둘 다 빙빙 돌고있는거야... 진짜 뫼비우스의 띠 위에 올려놓은것마냥 마음이 만나지를못해... 순영이는 순영이 나름대로 마음고생도 한것같은데... 내가 다 안타깝다ㅠㅠㅠ
6년 전
독자2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순영이 마음을 제대로 알고나니 이 둘이 함께보내지못한 9년이 너무 안타깝네요ㅠㅠ
6년 전
비회원213.124
보면서 너무 답답하고 맘이 아파서 댓글을 못달았어요. 차마 못보겠어서 스크롤을 내려버린 장면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보고있는 저는 변태인가봅니다 ㅠㅠㅠㅠ 하... 9년 너무 길잖아요!!!!!!!!!! 만날사람은 결국 언젠가 만나게 되겠죠??
6년 전
독자3
순주입니당!!진짜ㅠㅠㅠㅠ순영이도 힘들었겠어요ㅠㅠㅠ순영이 부모님 너무 이기적....으헝헝헝헝헝 순영이 이제 행복해져라유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5
추천받아서 시즌1부터 주우우욱 다 읽었어요!!! 학생때부터 성인까지ㅠㅜ 간질간질ㅜㅜㅜㅜㅜ 정말 잘 읽었어요! 다음편도 꼭 보러 올게요
6년 전
독자6
작가님 복숭아 생각나서 오랜만에 정주행했어요! 둘이 너무 안타깝고 몽글몽글하고 ㅠㅠ 빨리 꽁냥대는 거 보고싶어요 ㅠㅠ
6년 전
비회원41.82
암호닉이 무엇이였는지도 기억이 안 나서 뭐라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ㅎㅎ 3년 전 유학과 짝사랑을 병행하던 중 작가님의 글을 보고 울기도 울고 수십번 곱씹기도 했는데 이렇게 또 뵙게 되니까 그저 반갑고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ㅜ 이번 입시가 끝나면 또 다시 한 번 정주행하려고 합니다! 연재 텀이 얼마나 길던 괜찮으니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 늘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7
작가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생각이 나 이렇게 다시 정주행을 하네요ㅎㅎㅎ 작가님 준비되시면 다시 돌아와주세요 늦더라도 기다릴게요 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5년 전
독자8
안녕하세요, 새벽에 작가님 글을 정주행했네요. 옛날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이후에 몇 편이 더 있길래 가장 최근 이야기까지 읽었어요. 옛날에는 발견하지 못한 감정이나 복선을 찾으며 간만에 재미있는 글을 읽었어요ㅎㅎ 좋은 글을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년 전
독자9
우연하게 글을 접하고 앉은 이 자리에서 첫 화부터 여기까지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고등학생 권순영과 여주의 사이가 좋기만 했는데 읽을수록 작가님 글에 집중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엄청 특별하게 느껴진 글이네요! 작가님이 언제 돌아오실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 관계의 엔딩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게요 정말 좋은 작품 잘 읽었어요 ❤️
5년 전
독자10
안녕하세요 작가님 새벽에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짝사랑 한 마냥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ㅠㅠ 순영이의 진심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편인 것 같아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이별과 재회를 반복해서 그런지 어제의 감정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을 저도 알 것만 같아요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좋아하는 감정들이 갈 곳을 잃은 채 사라져서 덮은 채로 잘 지냈었는데 그 아이의 카톡 하나에도 심장이 요동치더라구요 참 사람 마음은 신기한 것 같아요 추운 겨울 감기 조심하시구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길 ♥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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