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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조이 전체글ll조회 1012l

 

 

 

 

 

 

[루민] 그레이(gray)
w.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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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하얀 알약이 바닥을 굴렀다. 길고 납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금새 풀썩 주저 앉아버린 것에 푸욱 한숨을 쉰 민석이 의자를 약간 뒤로 밀어 뺐다. 그는 앉은 자리 그대로 상체만 앞으로 숙였다

 


“민석씨, 또 약이야?”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동료가 약을 주워드는 민석을 보며 말했다. 그 너무 자주 먹는 것 같은데. 혹시 어디 아파? 고개를 들이밀며 물어오는 얼굴이 퍽이나 걱정스럽다는 듯 우겨져 있었다. 그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민석의 쪽이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좀 두통이 있어서..”

 


회사는 회사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딱 그 선을 철저하게 지키는 그는 힘든 일에도 굳이 내색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벌써 삼년 넘게 본 동료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것이 그의 그런 성격을 단편적으로나마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도 그걸 알아 굳이 민석에게 더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그래? ...그럼 다행인데. 아! 부장님!”

 


여기 결제건 때문에 그러는데요. 마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상사의 모습에 남자는 금새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잠시 눈으로 쫓던 민석이 슬며시 주먹을 펼쳐냈다. 하얀 알약 위 몇 가닥 빨간 실먼지들이 붙어있었다. 그것을 떼어내고도 한참동안이나 제 손아귀를 들여다  보던 민석은 결국 책상 한 귀퉁이에 위치한 개인 쓰레기통으로 알약을 집어넣었다. 약 상자를 꺼내 다시 새 것을 까는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입안에  털어 넣는 손짓도 그랬다. 꿀꺽꿀꺽. 세 네 모금 연속으로 넘긴 정수기 물은 하얀 알갱이를 너무도 쉽게 식도 밑으로 타고 내려가게 했다.

 


‘야, 야..! 김민석!’

 


종이컵을 내려놓자 반대편 대각선 자리에서 누군가 민석을 불렀다. 그나마 제일 친하고 또 유일하게 말을 터놓고 지내는 준면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제 앞의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켜 보였다.

 


- 잠시 얼굴 좀 봐

 


대화창을 확인한 민석이 의아하다는 듯 준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참을 그러고 있어도 준면은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게 다시 업무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한번 갸웃한 민석이 대충 알겠다는 답을 적어 보냈다. 잠시 후 준면이 복도로 나갔다. 민석 또한 화장실 좀 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

 

 

 

 

 

‘어..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진 말고. 내가 혹시나 해서 한번 알아봤는데.’

 


오후 네 시, 조퇴를 한 민석은 어떤 건물 앞에 서있었다. 그것은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일층은 약국, 이층은 내과, 삼층은 정신신경외과. 눈으로 쭈욱 간판들을 올려보던 민석이 입술을 약간 깨물었다. 한단어로 줄이면 그냥 정신과였다. 그게 좀 더 규모가 크면 정신병원인 거고.

 


‘그깟 꿈이 대체 뭐 길래.’

 


손끝이 미간을 몇 번 문질렀다. 민석은 제가 지금 정신과에 올 만큼이나 심각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입니다 누구나 병 한 두 개쯤은 있어요 라며 말을 해대지만 일단 정신과는 정신과였다. 한번 가게 되면 진료기록이 남고 만약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불리한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석은 한 발짝 더 그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회색바탕에 군데군데 하얗고 검은 점이 박힌 대리석 재질로 된 건물이었다.

 


‘정 그러면 스트레스 때문에 왔다고, 푹 잘 수 있게 수면유도제만 처방해 달라고 해. ..사실 그 동안 아주 일이 없던 것도 아니고. 아마 부장님도 이해해 주실 걸.”

 


“그래. 스트레스 정도야 다들 안고 사는 거니까.”

 


그래봤자 그것은 정신과 기록이었다. 민석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발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불행보다 현재의 피곤함이 먼저 머릿속 경고등을 건드렸다. 그래. 준면의 말대로 수면제 몇 알만 받고 오면 되는 거였다. 며칠 잠을 푹 자고 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지 몰랐다. 그 이상한 꿈도 없고 계속 나타나는 남자도 없고 어쩌면.. 어쩌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그 맨 처음 시점으로다가.

 

몇 개의 계단을 오르자 허름한 엘리베이터 하나가 그를 맞이했다. 겉만 리모델링한 건물인 모양이었다.

 

 

 

 

 

 

“그래요. 그럼 완전히 처음이신 거네요.”

 


네. 고개를 짧게 끄덕인 민석에 의사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어째 오셨네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아직까진 정신과라 하면 좀 오기 꺼려하시거든요. 잘 오셨다는 둥 그냥 편하게 수다 떨다 간다고 생각하라는 둥의 말을 하는 남자는 꽤나 품성 좋아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도 그리 많아 뵈진 않았다. 많아봤자 사십대 초중반 정도로 생각되는 남자의 모습에 민석은 조금 안심했다.

 

오래된 엘리베이터와 또 그와 별반 다르지 않는 내부시설. 병원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낡아빠진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들에 그는 사실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칫였었다. 프론트의 간호사도 한명이었고 잠시 후 깨달은 사실이었지만 그 병원 안에는 대기인원도 저 한명이었다. 나름 시내에 위치한 병원이었는데도 그랬다. 그 흔한 티비 하나 없는 대기공간이었지만 민석은 단지, 수면제 하나 처방받으면 생각으로 또 다시 자신을 다독이면서 진료를 기다렸다.

 

그런데, 생각 외로 괜찮은 것 같았다.

 


“음. 일단은, 잠 때문이라면서요? 혹시 밤에 잠이 잘 안 오나요? 가끔 가다보면 계속해서 중간에 깬다거나 그런 경우도 있더라구요.”

 


그냥 편하게 말해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 진료라는 것이 말이다.

 

결국 민석은 방금까지 생각한 것과 다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놓았다. 나름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좀 신기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의사의 능력일 지도 몰랐다. 환자의 얘기를 유도해내는 것 또한 그들의 일일 테니 말이다.

 

그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털어놓았다. 어머니를 여의고 장례를 치르고 이사를 하고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일어난 기이한 꿈의 내용까지. 차근차근 하나씩 곱씹으면서 말하는 민석에 의사는 가만히 그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그렇게 이야기의 내용은 점점 흘러가 나중에는 꿈속의 의문의 남자를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아..”

 


꽉 잠긴 목소리가 새벽공기를 갈랐다. 민석은 몇 번의 헛기침과 함께 손끝으로 침대 헤드 부근을 휘휘 저어댔다. 잠시 후 잠긴 목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그제야 이리저리 무언가를 짚어보는 듯 옮겨졌던 팔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민석은 매트리스 뒤로 넘어가 버린 것에 팔을 주욱 뻗어 그것을 밖으로 잡아 빼내었다. 비좁은 틈새를 비집고 끌려나온 것은 표지가 딱딱한, 그냥 평범하고 조그만 어느 수첩이었다. 그는 수첩 스프링에 꽂힌 까만 볼펜을 손에 쥐고선 급하게 표지를 넘겼다. 무언가 계속 그의 입안을 맴돌고 있었다.

 


‘루한’

 


“…….”

 

 

하얀 속지 위로 단정한 두 글자가 적혔다. 동시에 민석의 중얼거림도 함께 멈췄다.

 


“..루한이었구나.”

 


그 사람.

 


민석은 여전히 침대 위에 엎드린 채 글자 위로 동그라미를 두어 번 그렸다. 뭔지 모를 한숨과 함께 얼굴 위로 약간의 미소가 떠올랐다. 기록을 시작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며칠 전, 의사의 권유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석씨. 약물은 끊으면 다시 증상이 재발된다는 거 아시죠? 혹시나 증상이 악화돼서 도저히 잠을 못 들겠다 싶으면 그땐 어쩔 수 없겠지만 제가 봤을 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아주 근본적인 걸 해결해 보자구요.

 


의사의 말은 이랬다. 모든 증상에는 이유가 있으니 일단 그 원인을 찾아내자는 거였다. 원인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증상도 사라질 거고 매일 같은 꿈을 꾸며 스트레스를 받은 일도 없을 거라는 게 그의 견해였다. 민석도 동의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딱 집어내기가 어려웠다. 사실 아직까지도 그 꿈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이 수첩 기록이었다. 원래 꿈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 내용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잊지 않게 매일 아침 일어나 지난밤의 꿈을 기록을 해야했다. 그러면 그 안에 실마리가 있을 것이고 곧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가 의사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그 기록법은 꽤나 효과가 좋은 편인 것 같았다. 스트레스만 쌓였지 그동안 한 치의 진척도 없었던 지난 이주간과는 달리, 기록을 시작한 지 채 며칠 되지도 않은 기간 만에 그 남자의 이름을 알아냈으니 말이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던 민석이 펜을 고쳐 쥐었다. 마저 기록을 끝내야 했다.

 


지난밤, 기억의 시작은 어느 도서관 안이었다. 실제의 민석에게는 조금 낯선 공간이었지만-그가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간 것은 아주 어릴 적 중학생 때 수행평가 과제를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 곳에 앉아있었다. 물론 현재 그대로의 모습으로다가 말이다. 그리고 앞에 있는 건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바로 그 남자였다. 서로를 마주보며 앉아 있었고 그들은 각자의 책을 앞에 둔 채 공부를 하고 있던 듯 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은 규칙적으로 도서관 내부를 흔들었다. 남자의 고개도 마찬가지였다. 꾸벅꾸벅 조는 갈색 머리통 그 옆으로 두꺼운 서적들이 세 개정도 퍼헤쳐져 있었다. 민석은 책 옆면에 적힌 크고 두꺼운 글씨를 발견했다. 그는 단숨에 그게 남자의 이름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냥 그게 그의 이름이란 걸 알았다. 꿈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때부터 민석은 한 순간도 잊지 않고 계속 입안으로 두 글자를 오물오물 곱씹었다. 이 꿈이 깨더라도 그 이름은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었다.

 


루한. 루한 루한. 루, 한. 루한. 루..

 

왜 자꾸 불러.

 


결과적으로 민석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입모양만 낸다는 게 그만 소리를 내고 만 것 같았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봄 같은 미소. 어느새 바람은 민석의 머리카락마저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참 평온했다. 그 말이 제일 적합했다. 공기마저 부드러운 꿈속은 아무런 걱정도 또 아무런 스트레스도 느낄 수 없는 공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라리 그 꿈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꿈 안에서도 그랬고 또 밖일 때도 심지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랬다.

 

도서관. 창가. 부드러운 바람. 전공서적 몇 권. 갈색 머리. ....그리고 루한.

 


“루한.”

 


모든 기록을 마친 민석이 그 남자의 이름 위를 툭툭 펜 끝으로 탁탁 두드렸다. 그리고 그는 수첩을 앞 페이지로 넘겨 어제의 기록을 펼쳐냈다. 그저께의 꿈은 어느 카페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는 내용이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덧붙였다.

 


카페라떼 - 남자의 머리색

 


눈을 한번 깜박인 민석이 다시 글을 고쳐 적었다.

 


카페라떼 - 루한의 머리색

 


곧바로 수첩을 덮은 민석은 이만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시간을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았다.

 

토요일 아침은 평소보다 할 일이 많았다. 주중동안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고 또 오늘은 잠시 나가 장을 봐 와야 했다. 켜진 폰 화면은 8시 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오후 한시까지는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것이었다.

 

 

 

 

 

 

*

 

 

 

 

 


“어, 잠시만!”

 


민석이 가스레인지 불을 줄이고는 급히 집을 가로질렀다.

 


“야아.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잠시 저거 좀 본.. 힉 뭐야 뭐가 이리 많아?”

 


검은 봉지를 건네받은 민석이 묵직함에 팔을 아래로 쑥 떨어뜨렸다. 다시 봉지를 고쳐 쥐자 안에서 무언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많기는. 다 내가 먹으려고 산 건데?”

 


그래. 그런 것 같네. 준면의 목소리와 함께 들여다 본 봉지 속에는 맥주병과 소주병이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다. 픽 웃어버린 민석이 고개를 들자 준면이 한쪽 눈썹을 밀어 올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건 그렇고 뭐 만들고 있었어? 안에 맛있는 냄새난다.”
“아 맞다. 잠시만! 아니아니 일단 들어와.”

 


헐레벌떡 여전히 봉지를 쥔 채 뛰어 들어가는 뒷모습에 준면은 현관문을 앞발로 쓰윽 밀어 열었다.

 


“칫. 더 많이 사왔는데.”

 


그가 밀어낸 현관 밖에는 커다란 짐 뭉치가 두 개는 더 대기하고 있었다. 두루마리 휴지와 세제 등이 들어 있는 것은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로 준비하는 그런 흔한 집들이 용품이었다. 문을 잡으랴 짐도 옮기랴. 그는 낑낑대며 혼자 짐을 옮겨 넣기 시작했다. 현관문 발걸이가 고장 나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아 김민석. 역시 깔끔해. 응?”

 


대충 어느 귀퉁이에 짐을 내려놓은 준면이 내부를 빙 한번 둘러보았다. 거실과 부엌, 방 하나에 욕실 하나가 딸린 집은 민석 혼자 살기에는 조금 크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은 깔끔했다. 깨끗하게 치워진 식탁도 그랬고 언뜻 방문사이로 보이는 침대 위에는 이불이 반듯하게 접혀 각이 잡힌 모습이었다. 심지어 베개도 그 위에 예쁘게 올려져 있었고 말이다. 어휴. 회사에서 하던 거랑 똑같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뭐?”
“아, 아니야. 너네 집 진짜 좋다고.”
“..싱겁긴.”

 


한번 웃은 민석이 붉은 국물을 한 숟가락 떠올렸다. 후후 불어서 식히고 그것을 입 안에 넣어 음미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소금통을 손에 쥐었다. 조금 싱겁나.

 


“야 근데, 나 오다가 이상한 사람 만났다?”

 


다시 한 번 국물을 떠 마신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보았다. 준면이 식탁 의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어떤?”
“아니 여기 너네 아파트 앞에 왔는데 갑자기 누가 내 팔을 턱! 잡는 거야. 뭐지 싶어서 돌아보니까 다짜고짜 어떤 할머니가 막 훈계를 늘어 놓더라구. 뭐, 물을 조심하라고 했나? 그래서 비라도 오려나 싶었더니 웬 걸 날씨만 좋던데? 또 막 뭐라더라. 만물은 물에서 오지만 또 물이 뺏어 간대나 뭐래나.”
“아아. 신경 쓰지 마.”
“뭐야. 너도 만났어?”
“그 할머니 자주 그러셔. 노망이시래. 나도 이사 와서 세 번이나 뵀고.”

 


음 그래? 준면이 턱을 긁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어딘가 찝찝한 듯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가서 손부터 씻고 와. 너 좋아하는 매운 어묵탕 했다. 이만 불을 끈 민석이 주방장갑을 끼곤 냄비를 통째로 들고 다가왔다. 이어 받침과 함께 내려진 탕국은 마침 이제 막 부풀어 올라 쫄깃쫄깃 탱탱해 보이는 어묵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헐.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어묵국이 요리냐. 얼른 씻고 오라구.”

 


툭 주방장갑 째로 어깨를 치는 손길에 준면이 얼른 일어나 욕실로 뛰어갔다. 역시 우리 민석이는 못 하는 게 없다며 극찬을 늘어놓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내 맴은 어떻게 알고 그랬대. 소맥엔 오뎅탕이 딱이지.”
“오뎅은 일본어야. 어묵.”
“알았어, 어묵 어묵.”

 


어느새 씻고 나온 준면은 손을 제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민석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선물 사온 값은 하네. 저기 저거 보이지? 네모난 박스. 나중에 풀어봐. 엄청 고마워 할 걸. 민석은 팔짱을 낀 상태로 그런 준면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손을 씻기나 한 건지, 수건이 분명 있을 텐데 왜 하필 옷에다 닦으면서 나오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도 사람이고 쟤도 사람인데 어째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어쭈. 야 웃어? 내가 너 생각해서 병원도 가보라 하고 어? 저기 휴지에 세제에다 또 시계까지 사 오...”
“아 시계야?”
“…….”

 


에이씨. 허리춤에 한번 손을 올린 채 낙담하던 준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아 몰라. 어묵탕이나 먹을래. 건네준 나무젓가락을 홱 잡아채는 손에 민석이 한쪽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누구는 생각해서 해줬더니 결국은 아무 소용이 없다며 툴툴거리며 앉아 먹는 모습이 꼭 삐져버린 여섯 살짜리 남자애였다. 그래도 어묵탕이라 말했네 싶은 순간, 급하게 먹다가 데였는지 준면이 입을 엑 하고 벌렸다.

 


“으.. 기분 나빠. 야 김민석 앉아. 오늘 너 죽고 나 죽는다. 이거 다 마실 때까지 절대! 네버! 아무도! 여기서 못 일어나.”

 


그래. 언제는 안 죽는다는 날이 있었냐. 두꺼운 유리컵 두 개를 가져온 민석이 준면의 앞에, 또 제 앞에 각각 하나씩 내려놓았다. 잔은 곧 진한 맥주들로 가득 찼고 그것은 비워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여느 때와 같이 소주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준면은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쯧쯧 이래가지곤 뭘 맨날 술타령이래. 안주나 먹지. 밖으로 나왔던 소주들은 처음 모습 그대로 다시 봉지 속으로 넣어졌다. 탕 냄비는 그래도 많이 비워진 모습이었다.

 


“근데 그 할머니, 물이 아니라 술을 잘 못 말하신 거 아닌가.”

 


술 조심해라. 술로 얻은 것은 술로 망한다. 바뀌어 진 문구는 꽤나 준면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를 방안으로 옮긴 민석은 혼자 거실에 앉아 준면이 가져온 선물을 풀어보았다. 뭘 이렇게 많이 사왔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범한 두루마리 휴지, 아직도 나오나 싶은 세제세트, 그리고 갈색 파지 박스로 포장된 시계 하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시계는 동그란 형태에 테두리가 진한 파란색으로 둘러져 있었다. 또 내부 판은 체크무늬 면, 숫자부분은 직각 위치부분만 색색의 단추로 표시 되어 아기자기하고 또 한편으론 심플한 면이 있기도 했다.

 


“그걸 또 기억했네.”

 


민석이 약간 미소 지었다.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옛집에서 사용하던 시계가 모두 고장나버렸다는 걸 회사에서 한번 말한 적이 있었다. 별 의미 없이 그냥 한번 스쳐지나가듯이 중얼거린 부분이었는데 그걸 또 준면이 생각해 이런 식으로 사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시계를 들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건전지를 찾아 뒷면에 끼웠다. 살며시 귀를 갖다 대자 째깍째깍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앞면의 초침도 잘 돌아갔다. 일단 시계는 거실 한 모퉁이에 세워졌다. 내일 준면이 일어나 가고 나면 제 방에 못을 쳐 걸어둘 생각이었다.

 

 

 

 

 

 

gray 2.

 

 

 

 

 

 

 

 

 

--

안녕하세요 조이입니다

저 이 글은 정말 개인적인 제 욕심으로 적는 글이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내 주시더라구요ㅠㅠ

감사합니다ㅠㅠ

 

암호닉을 신청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제 욕심으로만 쓰는 거라

언제 올라올지 몰라요

제 맘에 들 때까지 계속 수정을 하거든요

그 부분은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ㅠㅠ

 

 

 

 

 

 

암호닉 분들!

 

몽블랑 님(으앙 내사랑)

안예쁨 님(어서오셔요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오게 해보겠습니다!

 

 

 

클릭해 주세요

사실 저 위의 내용 중 물을 조심하라는 부분은 처음 글을 구상했을 때부터 짜여져 있었습니다 이번 큰 사고도 있었고 글을 적으면서 과연 이 내용을 적어도 될까 많이 망설여졌는데요 일단은 그 일에서 영향을 받아 나온 부분이 아니라는 걸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사고와 피해자분들 그리고 고인분들과 유가족분들에 대해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아 되도록이면 글 안에서는 심지어 작가의 주저리 같은 부분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잠시 그런 말을 해도 될 것 같아요 실종자분들 모두 빠른 시일내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안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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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늦게올라와도괜찮아요ㅠㅠㅠㅠㅠ 진짜재밌는거같아요ㅠㅠㅠㅠ 다음편내용이궁금하네용ㅎㅎㅎㅎㅎㅎ
10년 전
조이
그런가요ㅠㅠ 재밌다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좀 빨리 데려오도록 노력해볼게요!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오.. 완전 흥미진진해요. 제 기분탓인가 뭔가 비극일 것 같아 무섭기도 하구용 ㅠ ㅠ 비회원도 암호닉신청되나요? 블루로 신청해도 될까요? 수줍ㅎㅎ
10년 전
조이
암호닉 받아요! 당연히 받지요! 블루님 꼭 불러드릴게요 음 비극일지 희극일지는 조금 더 있어봐야 알겠죠? 아직 장르도 잘 안 드러난 것 같은데.. 일단 분위기는 약간 어둡게 잡았는데요 그게 잘 드러나는지 잘 모르겠네요!
10년 전
독자2
그레이는 암호닉이 따로 있는건가요?알로에로 신청이요! 왜 자꾸 민석의 꿈속에 루한이 나오는건지 궁금하네요ㅠㅠㅠㅠ할머니 말이 가장무서워요ㅠㅠㅠㅠ할머니 말좀 잘 듣지 거참ㅠㅠㅠㅠㅠ나쁜일이 안났으면 좋겠네요ㅠㅠㅠ글 잘보고가요!!
10년 전
조이
아유 제가 아는 그 알로에님 맞으시죠? 사실 그레이는 짧기도 하구요 제 만족이기도 하구 해서 독자님들 없으셔도 혼자 적을 예정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신청을 해주시니ㅠㅠ 미리 어떻게 할지 생각안한 제 잘못이네요 알로에님! 암호닉 바로 받았습니다! 루한이는 과연 누구일지 이게 왜 나오는지 밝혀지면 벌써 반 온거에요 짧은 이야기니까 말이죠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봬요!
10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0년 전
조이
몽블랑님!! 뵈고 뵈고 또 뵈도 반가운 몽블랑님ㅠㅠ 민석이를 병원에 보낸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야 민석이가 루한이에 대해 알 수 있게 되거든요 뭐랄까 루한이를 알게 된다고 해야할지 아님 이 꿈을 알게 된다고 해야할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요 할머니는 바람잡이 역할만 해주시는 분이에요 분위기를 잡아준다 해야하나 그렇구요 준면이ㅋㅋ 준면이가 술을 마신적이 있었던가요? 음 하지만 준면이가 술이 세다는 건ㅋㅋㅋ 상상이 가지 않아요ㅋㅋㅋㅋ 항상 먼저 술잔을 들어놓고 또 놓는 것도 먼저인ㅋㅋㅋ 왠지 그런 타입일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조는 루한이ㅠㅠ 진짜 평온해 보일 것 같지 않나요 으앙 저라면 앞에서 그것만 보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아요 아님 심장어택으로 사망할 지도 몰라요 그래요 사실 모든 제 글에는 사심이 담겨있습니다 음란대마왕이라고 손가락질 하셔도 할 말 없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4
안예쁨이에요!!ㅠㅠㅠㅠㅠㅠ어휴 세상에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신선하고 재밌는 소재인거같아요 ! 꿈속의 남자라니!! 언제 오시든 기다릴게요 ㅎㅎ
10년 전
조이
안예쁨님! 아아ㅠㅠ 소재칭찬해 주시다니ㅠㅠ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제가 좀 좋아하는 장르거든요 이런 얘기.. 아직 완전히 다 나오진 않았지만요 감사합니다! 그런의미에서 준비하고 있는 루민 소재 하나 더 스포??!? 할까요 말까요ㅋㅋㅋ
10년 전
독자5
헐! 여기서 암호닉 신청을 안 했다니! 산딸기로 신청이요 작가님~♥와 저도 저런 꿈 꿔보고 싶네요 뭔가 요상하긴 하지만 그래도ㅠㅠㅠㅠㅠㅠㅠ 근데 꿈 일기 쓰는건 저도 한번 생각 해 보긴 했어요! 뭔가 재밌을것같아요ㅋㅋㅋㅋㅋ 항상 꿈이 생각이 잘 안 나고 흐려서ㅠㅠㅠㅠㅠㅠ
10년 전
조이
산딸기님! 어서오세요! 바로 불러드릴게요! 꿈이라는 게 참 기분좋기도 하고 또 일어나면 뭔가 찝찝하기도 하고 흐릿하기도 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뭔지 모르겠고 꼬이고 그렇죠?ㅋㅋㅋ 어떤 장면이 먼저였는지조차 헷갈리구요 하지만 민석이는 그렇진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잊기야 하지만 흐릿하지도 않고 꼬이지도 않고 왜일까요?ㅎㅎ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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