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영어로
W. 식스센스
" 이창섭, 일어나. "
내 부름에 이창섭이 눈까지 푹 눌러 쓰고 있던 비니가 움찔거렸다. 사람이 불렀으면 대답을해. 자는척 하지말고.
" 좀만 쉬고 공부하겠다며! "
책을 펴자마자 병든 닭마냥 꾸벅꾸벅 졸길래 불쌍해서 좀 쉬라했더니.. 이젠 아예 침대에 드러누워버렸다.
애초에 도서관보다 자기 집이 더 집중이 잘된다는 말을 믿는게 아니였어. 어떻게던 끌고 갔어야 했는데.
야, 이럴거면 난 왜 불렀냐. 짜증나서 침대에 있는 이창섭을 발로 뻥뻥 찼다. 끄응.. 몰라아.. 앓는 소리까지. 가지가지한다, 너?
" 이번엔 임현식 이겨보겠다며. 어떻게 허구헌날 운동만하는 현식이보다 성적이 안나올수있냐. "
" 걔능 걔고 나능 나다.. "
배게 속에 파묻혀 안그래도 특이한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귀에 박혀왔다. 물론 임현식이나 이창섭이나 꼴찌를 다투는 유력한 후보들이지만.
간발의 차이로 매번 임현식이 꼴찌를 면해 이번에야말로 임현식을 이기겠다고 기가 바짝 들어있어놓고.. 또 책을 펴면 저모양 저꼴이다. 으휴.
" 너가 그따위로 나오면 나도 안할거야. "
이젠 협박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창섭 때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진짜 잠들었나보네..
야, 나도 눕는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이창섭을 구석으로 굴리고는 옆에 자릴 잡고 누웠다.
" .... 여자애가 겁도 없이. "
" 아씨, 깜짝이야! "
자는거 아니였어?! 여전히 비니로 눈을 가리고 입술만 달싹이는 이창섭에 기가 막힌다. 일어났으면 공부나 할 것이지!!
" 야, 그럼 깨어난김에 공ㅂ.. "
" 좀만 더 쉬고. "
" 계속 쉬었잖아!!! "
넌 한글자도 안봤잖아!!! 몸을 일으키려는데 이창섭이 커다란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곤 그대로 침대에 다시 눕혔다. 야이씨.. 진짜 시험 얼마 안남았다고!!!
" 이대로 공부하면되지~ "
" ... 장난까냐. 이대로 어떻게해. "
" 니가 나 모르는 영어단어 알려주면 되지~ "
" ..... 어.. 그런가? "
또 이런식으로 이창섭한테 말리는 기분이 드는데.. 일단 들어나보자싶어서 물었다. 모르는단어가뭔데?
내가 묻자 이창섭은 그제서야 비니에서 눈을 빼꼼 내밀더니 말했다.
" 뽀뽀가 영어로 뭐야? "
" ... 존나 명존쎄. "
미친놈 그럼 그렇지. 한숨을 쉬곤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걸 이창섭이 알았어, 알았어. 하며 내 몸을 끌어안았다.
꺼져 미친아!!! 온 힘을 다해 이창섭을 밀어내려는데 뭘처먹었는지 꼼짝도 않는다. 결국 포기하고 가만히 누워 천장만 노려보는데 이창섭이 콕콕 찔러댄다.
" 치워라. 존나 패고싶다. "
" 씁. 말 이쁘게. "
" ......... "
" 이번엔 진짜 모르는거 물어볼게. "
" 하.. 뭔데 또. "
이젠 니 멋대로 하세요. 반쯤 포기한 눈빛으로 이창섭을 쳐다보는데 뭔가 눈빛이 진지하다. 이번엔 진짜 모르는거려나.
" 사랑은 뭐야? "
" 개쓉사리야. "
결국 배게를 집어들고 이창섭의 멱살을 잡았다. 당장 일어나서 책이나 펴.
" 악!!!! 지짜!!!! 지짜로 몰라!!!!!!!! "
" 우리 창섭이 영어보다 한국말부터 배울까요? 빨리 쳐일어나라. 발음 똑바로 될때까지 쥐어 패기전에. "
" 므서운 지지배.. "
침대에 일어나서 연필을 들고 누워있는 이창섭에게 쥐어주었다. 입술은 구백리정도 튀어나와서는 표정은 뚱하다. 이걸 진짜 어떡하냐.
" 일어나시지. "
" 일으켜줘. "
" 사뿐히 즈려밟고가기전에 일어나라. "
" 그럼 안아줘. "
" ....... "
" 안아주면 일어날게. "
" ....... "
" 진짠데. "
... 연필을 쥐어주는게 아니라 이마에 찍어버리는건데. 내 행동에 자책하며 누워있는 이창섭 위로 몸을 겹쳐 안았다. 됐지? 일어나.
그러자 나를 안은채로 진짜 몸을 일으키는 이창섭. 헐뭐임? 진짜 일어났네.
또 안은채로 땡깡 피울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눈빛으로 이창섭을 보자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는다.
" 이제 뽀뽀해줘. "
" .... 일어난다며. "
" 일어선다고는 안했어. "
미친.
"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뽀뽀를 왜 해. "
" 음.. 뽀뽀를 영어로 몰라서? "
" 그게 대체 뭔 상관이야. "
" 아님 빨리 알려줘. "
" 아오씨, 그래! 키스다! 키....! "
쪽.
" ....스... "
" 응? 뭐라고? "
" 키.. "
쪽.
지금.. 이창섭이.. 나한테..
" 너... "
" 이제 알겠네. 아까 또 뭐 물어봤더라? "
" 너 지금 나한테 뽀뽀했냐? "
이 미친자식이 하다하다 뽀뽀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입만 벌리고 이창섭을 쳐다보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한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라 빨리 몸을 일으키려하자 이창섭이 내 양팔을 잡고 꾹 앉힌다. 물어볼거 남았다니까.
여전히 장난스런 목소리지만, 표정만큼은 웃음기하나없는 얼굴.
" 너랑 난 손도 잡고, 둘이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는데. "
" ..... "
" 사랑은 영어로 뭐라고? "
전혀 상관관계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놈의 질문에 할말을 잃은채 아까 닿았던 입술의 감촉만이 멤돌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장난치지 말라고 얼굴을 밀쳐야하나? 그러기엔 이창섭이 너무나 진지하다.
" ... 러브지. "
" 뭐라고? "
" 러브라고. "
" 그럼 너랑 내가 하는건 뭔데? "
" ..... "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걸까. 이창섭의 눈을 보자 피하지 않은채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 ... 너랑 내가 하는게 뭔데? "
이창섭이 내게 한 질문을 되물었다. 이창섭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 사랑이 영어로 뭐라고? "
" 너랑 내가 하는게 뭐라고? "
" 그니까 러브가 뭐냐고. "
" 씨... 니가 좀 대답해!! "
" 뭐긴 뭐야 사랑이지. "
쪽.
" 뽀뽀는 영어로? "
" ... 키스. "
" 사랑은 영어로? "
" 러브. "
" 너랑 내가 하는건? "
얄미운 놈.
" ... 사랑. "
이창섭이 웃는다.
" 공부끝. 이제 다시 쉬었다하자. "
식스센스 |
오랜만이네요 여러분;_; .... 너무나 안좋은 사건때문에 장기간 글을 중단하게 되었네요. 실은 아직도 가벼운 글쓰기가 꺼려지지만 ㅠㅠ그래도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뭐라도 올리고 싶어 단편이라도 올려요!! 많이 부족하지만 이거라도..(쥐구멍을 찾는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사람들은 너무 빨리 잊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제가 글을 올린다 안올린다로 달라지는 문제는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의 생각이니 이해해주세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