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Majesty
stigma ; 오점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옷을 팔러 나온 여자가 사람이 모여 있는 무리에 가서 말을 꺼낸다.
“황후폐하께서 또 후궁을 죽였다며?”
“뻔한 이야기지, 다른 이를 시켜 죽인 후에 그 이도 같이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겠어.”
“장안에 미녀라고 소문 나면 입궁시킨 뒤에 죽여버리니, 그 악독함을 황제폐하께서도 감당하지 못하고 놓으신게지.”
무리에서 한 여자가 혀를 쯧쯧 차며 말을 받는다.
“그래도 어떡해, 제 1 공작가의 여식이자 황태자 전하의 생모인 것을.”
“귀족가의 여식들만 불쌍하지…. 아, 그런데 그 소문 들었는가?”
“무슨 소문이요?’
“제 2후작가의 막내 딸이 그렇게 아름답다며. 아프로디테의 현신이라고 소문이 자자 하더군.”
“아 맞아, 듣기로는 황후폐하보다 훨씬 예쁘다고 하던걸.”
한 남자가 허풍을 떨며 말하자 처음 말을 꺼낸 여자가 조용히 하라는 듯 입가에 손을 대고 말한다.
“쉿, 조용히 하세요. 이리 말하다가 또 황후폐하의 투기가 뻗칠라.”
“우리끼리 하는 소리인데 큰일이야 나겠어?”
“하긴, 그렇긴 하네. 그리 예쁘다던가?”
“매일 그 앞에서 그 분을 보려고 줄을 서는 사람이 어마어마 하다더군. 황후폐하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는 것 같지만.”
“아쉽게 됐어, 얼른 결혼을 하는게 후작가에서는 한 시름 놓고 좋을 텐데.”
“황후폐하 때문에 이게 무슨 사단인지, 쯧.”
무리 지어 있던 이들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그들과 조금 떨어져 있던 사내가 묘한 얼굴을 하고선 날쌘 몸짓으로 사라진다.
-
"그게 사실이더냐?"
"장안에 파다하다고 합니다."
"나보다 아름답다라....흠."
자신의 심복이 전한 말에 열이 오른 황후가 자신의 손에 들린 화려한 부채로 부채질 하며 열을 식히려 하였다. 그 아이를 어떻게 괴롭힌담.... 황후의 눈이 반짝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종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반짝이는 황금빛 눈동자가 어떤 피바람을 불러올지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황후의 금빛 눈동자가 아름답게도 반짝였다.
-
현 황제가 즉위 한지 18년, 제국은 대외적으로는 평화로웠다. 이미 약소국은 합병을 하여 제국의 세력안에 두었고, 그렇지 못한 제국과는 평화 협정을 맺고 매년마다 공물을 보내 협정을 단단히 하였다. 전쟁이 없으니 백성의 삶은 안정되었고, 민생을 살피려 노력한 황제덕에 그 평화는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단 한곳, 황궁을 제외하고는.
“이번에 들어온 후궁도 죽었다더냐?”
“예, 살펴보기로는 그 전에 들어온 후궁이 투기 때문에 죽였다고 합니다….만….”
“또 황후의 짓이겠지, 평안히 보내주거라.”
“폐하의 뜻을 받잡겠나이다.”
자신을 보필하는 시종이 물러가자 황제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악독하고 표독스러운 황후. 하지만 그녀의 본가는 제국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 제 1 공작가였다. 또한 황태자의 친모이기도 하였으니, 아무리 황제라도 함부로 폐하거나 벌할 수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황궁내에서는 귀족파와 황제파가 서로 대적하여 서로를 헐뜯는 추한 싸움을 하고 있었고, 내궁을 잘 다스려야 하는 황후는 후궁들을 괴롭혀 소란스러움이 끊이지 않으니 황제의 근심은 날로 심해져 갔다.
“폐하,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그래, 들라 하라.”
열린 문 사이로 정복을 차려 입은 황태자, 태형이 들어왔다. 황제가 근심 어린 표정을 거두며 태형을 바라보았다.
“부황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모후 폐하께서 저의 황태자 빈을 들이신다 하십니다.”
태자빈. 태자비도 없는 지금 태자빈을 들인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조금은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는 태형에, 황제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구나. 내궁의 일은 황후의 소관이라, 아무리 황제라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예, 부황폐하. 건강은 어떠신지요.”
“늘 같구나, 너도 건강 조심하거라. 황궁은 위험한 곳이니.”
“명심하겠사옵니다, 부황폐하.”
부자간의 따뜻한 말을 건네진 않지만 겉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건조한 말에서도 느껴지는 다정함과 따뜻함에 태형이 웃으며 물러갔다. 물러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황제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가득했다.
-
황제궁에서 나온 태형이 태자궁을 향해 걸으며 낮에 황후궁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모후 폐하, 태형입니다.”
“아, 태자. 이리 오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급해 보이지만 반대로 신이 나 보이는, 평소 답지 않은 황후의 들뜬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태형이 테이블에 앉자 마자 황후는 평소보다 조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빈을 들이시게 되실 것입니다.”
황후가 꺼낸 말에 태형이 시선을 돌려 황후를 빤히 쳐다보았다. 태자빈? 제국의 법도상 황제는 황후와 황비를 들여야 하며, 그것은 황태자의 경우 황태자비와 황태자빈의 형태를 띠게 된다. 아직 황태자비조차 맞아들이지 않은 자신이 황태자빈을 맞는 것은 법도에도 어긋나기도 하지만 황태자빈이 될 여인의 가문에도 큰 무례였다.
“아직 저는 황태자비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후 폐하.”
“하하, 태자. 모든 일에 법도가 있다고 한들 격에 맞아야 하는 법입니다. 황태자빈으로 들일 여식은 후작가의 여식인 것을요.”
태형이 꺼낸 답에 황후가 재밌다는 듯 크게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태형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작가의 여식이라고 황후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모후 폐하.”
자신의 말에 반박하는 듯한 태형의 어조에 황후가 하던 부채질을 멈추고 태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어미가 내린 결정에 반기를 드는 것입니까, 태자?”
“…어찌 소자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내궁의 모든 일은 모후 폐하의 뜻인 것 을요.”
“그렇지요. 태자, 황태자빈으로 내정된 여식이 궁금하진 않으십니까? 이 어미가 손수 태자를 위해 골랐는 걸요.”
황후의 뜻에 따라 자신의 뜻을 굽힌 태형이 마음에 든다는 듯 황후가 다시 부채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애당초 태형의 반응은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이.
“제 2 후작가의 막내 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절세 미인, 절세 가인이라는 칭호는 물론이고 미모의 신인 아프로디테의 현신이라고 하더이다. 그렇게 아름다운이는, “
이어지는 황후의 말을 듣던 태형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 황궁안에 있는 모든 이가 아는 황후의 취미이자 특기. 자신보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를 후궁으로 들여 괴롭히다가 죽이는 것.
“궁에 가두어 놓아야지요. 그리고 제 눈 앞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어두워 진 태형의 낯빛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눈치채고도 즐기는 것인지, 황후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생겼다는 말투로 없어져야 한다는 잔인한 말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뒤, 태형에게 이르듯 말했다.
“그러니 태자께서는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내궁의 일은 모두 황후의 소관. 한치의 애정이나 관심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에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황후가 목소리를 낮추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의 마음이 산산조각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 목소리가 섬뜩하여 태형은 애써 지켜온 낯빛을 한번에 무너뜨렸다. 태초의 존재가 주는 공포감이란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테이블에서 일어나며 무너진 표정을 애써 감춘 태형이,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황후에게 고했다.
“모후 폐하의 말을 받들겠나이다. 소자,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제 2 후작가는 뒤집어졌다는 말이 되려 약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문이 크게 들썩였다. 수도 안에 있는 8개의 가문에 속할 정도로 세력이 큰 가문의 여식이 황태자비가 없는 이 시점에 황태자빈으로 내정되었다는 말은 곧 가문을 욕보이는 행보이기도 하였다. 황후의 명령의 형태를 띈 구혼서가 본가에 도착하였을 때, 예를 차려 그를 받은 가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별 말없이 허혼하였다. 일절의 말 한마디도, 조건을 거는 것도 없이. 조용하고 차분하게 국혼으로 치뤄질 결혼식을 준비하였고, 성황리에 거행하였다.
그렇게 제 2 후작가의 막내, 윤이는 제 2 후작가의 여식이 아닌 황태자의 ‘황태자 빈’이 되었다.
-
황후의 눈에 잘못 들어 입궁하게 된 황태자빈에게 좋은 처소를 내어줄 리가 없었다. 윤이의 처소는 황태자궁에서도 후원에 가까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그저 그런 궁이었다. 옆에서 모시는 시녀 또한 많지 않았고, 황궁안에 이미 황태자빈이 황후의 눈에 잘못 들었다는 소문이 퍼진 뒤였으므로 인적 또한 많지 않았다. 황태자빈으로 입궁하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윤이는 종종 성대했던 국혼과 황태자궁에서의 첫날밤을 생각하곤 했다.
귀족, 그것도 후작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연애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정략 결혼이라고 해도 첫날밤을 잘 보내고 사이 좋게 지내는 부부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 결혼은 너무나도 달랐다. 황실의 예법이라는 말 아래에 눈앞에 흐트러진 면사포는 황태자의 얼굴을 잘 보지 못하게 했고, 말 한번 섞어볼 수 있을까 내내 고대하던 첫날밤은 황태자 없이 날을 꼬박 샜다.
처음에 느낀 감정은 수치였고, 두번째 느낀 감정은 절망이었다.
첫날밤에 합궁을 하지 않는 것은 황태자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뜻이라고 자신의 곁을 지나가던 시녀들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첫날밤에도 찾아오지 않으신 황태자 전하께서 나를 곁에 두실 리가.
더 없는 절망과 외로움에 빠져 식음도 전폐하고 힘들어하던 윤을 구해준 것은 우연히 나선 밤산책에서 태자궁 근처에서 만난 아기 고양이였다. 원래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던 윤이 작은 아기고양이를 놓칠 리 없었다. 사람의 손을 피하지 않고 잘 따르는 순한 고양이를 자신의 궁으로 데려온 윤이는 시녀들 대신 말동무로 삼아 이런저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시녀들에게, 혹은 자신의 가족에게조차 하지 못했던 말들을. 그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외롭다는 말이었다. 후작가의 막내로 태어나 온 가문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무관심과 외로움이었으니까. 이것 또한 황후의 핍박 중 하나라는 걸 모르는 윤이는 그날도 태자빈 궁에 딸린 작은 정원을 고양이와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정원은 작지만 시리도록 아름다웠고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그 탓일까.
“…누구세요?”
인적이 드문 황태자빈 궁 정원에서, 가면을 쓴 한 남자와 마주쳤다.
-
조금의 대사나 이런 부분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백업은 전체적으로 다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만, 소중한 독자님들의 피드백이 다 사라져서 그게 제일 아쉽습니다.
심지어 5화의 댓글은 다음편 업로드할 때 보겠다며 아직 읽지 않고 있었는데....하아.... 세상... 댓글을 백업해놨어야했어요...
너무 속상하지만 마음 추스리고 업로드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시만난 독자님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