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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만약 평생 동안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
 넌 그런 노래일 거야. 

 Murakami Haruki - 〈Norwegian wood> 중에서 

 


 


 


 


 


 


 


 


 


 


 


 


 


 


 


 

누나, 담주 수업 있잖아요. 그거 다음으로 미뤄도 되죠?
 

한적한 거리에 때아닌 흙바람이 분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삐딱한 이 찬이었다. 오늘부터 골골대는 배가 다음 주까지 아플 예정이니, 선생인 네가 눈치가 있다면 적당히 빠져 달라는 암묵적 메시지였다. 게임 현질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상자깡을 해야 하는 바쁜 유저로서, 한낱 과외에 시간 낭비 따위 하지 않는 현명한 소년임을 첫 만남 때부터 진즉 느끼고 있었으니 이런 문자에도 당황보다 이해가 더 빨랐다. 

*상자깡: 게임에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상자들을 모아 한 번에 까는 행동. 


 

억지로 책상 앞에 붙들어도 갖은 핑계로 빠져나갈 잔머리를 알기에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나기로 한다. 혹시 오해할까 미리 말해두지만, 삐딱한 눈썹에 쫄린 건 절대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 [다음 시간부터 두 배 각오해] 


- [생각은 해볼게여] 


- [PC방에서 또 체포당하기 싫으면 말 좀 잘 듣자 ^ ^] 


- [알겠다] 


- [반말?] 


- [요~~]





 

하루 중 가장 높게 떠오른 해가 정오를 알린다. 가로수 그늘에 숨어 무의미한 하트 질로 시간을 죽이던 손가락이 이번엔 하늘을 향해 셔터 질을 시작했다. 운이 좋으면 볼 수 있다던 낮달도 오늘만은 내 편이니 이 정도면 출발은 꽤 좋은 편이었다. 배율과 초점이 사라진 과감한 셔터 질로 괴로워하던 하늘이 어느 순간 자유를 맞는다. 야매 사진작가가 복잡한 도심 속 당당한 자태로 걸어오는 완벽한 피사체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패션' 하면 역시 '교복' 아니겠는가. 야무지게 맨 백팩과 스쿨룩의 완벽한 조화를 보라! 이지훈 학생, 오늘 너무 자비 없는 거 아니에요? 다시 돌아온 열아홉의 지훈은 어색한 고갯짓과 표정으로 자신의 자아에 대해 묻는다. 360도 캠으로 빙의해 빙그르르 주변을 도는 나를 따라 원을 그리며 움직이던 그가 이내 어깨를 들썩였다.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 “취향 진짜 독특해.” 


- “솔직히 말해 봐, 어제 졸업했지?” 


- “어제는 너, 오늘은 나.”


- “아, 맞다.”

 


 


 


 


 

능청스런 연기가 나날이 늘어간다. 곧이어 닥친 현타에 얼굴을 감싸 쥐는 것도 이지훈다웠다. 그는 간만에 본 얼굴에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계속 방방 뛰는 날 진정시키려 진을 뺐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진행 중인 공모전 덕분에 좀처럼 데이트를 하지 못했으니 얼굴만 봐도 애타는 건 당연한 지사였다. 우리가 만나는 날이 올까? 기다리다 눈을 감는 건 아닐까? 새벽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가끔 그와 통화하며 님을 보지 못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전했으며, 그때마다 그는 현대편 견우와 직녀가 아니냐 우스갯소리를 했다.






- ‘직녀는 지금 너 때문에 울고 있대.


- ‘견우도 옆에서 같이 울고 있어.’


- ‘너 근데 뭐 먹어?’


- ‘콜라.’






새벽에도 끊지 못한 콜라를 마시는 그를 생각했다. 학교 매점에서 몽쉘도 아니고 피자 빵도 아니고 콜라만 고집하던 교복 입은 이지훈이 보인다. 기억난다, 그때 옆에서 펩시 로고를 한국인이 그렸네 어쨌네 승관이 침을 튀겨가며 코카콜라 배척 엄청 했었는데……. 그러다가 콜라 쏟아서 교복에 다 젖고……. 알음알음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에게 말했다.





- ‘교복…… 입고 와.’ 


- ‘뭘 입으라고?’


- ‘명찰 없으면 벌점…….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사방을 경계하며 굳건한 눈빛으로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너무 자연스러워 순간 ‘너도 잘 가’를 외칠 뻔했다. 지훈아, 지금 도망가면 네 이름 진짜 크게 부를 거야. 옆구리가 주욱 늘어질 만큼 셔츠를 잡은 손이 도주자를 막는다. 자신의 명찰을 가리며 찍찍이 눈으로 쏘아보는 귀염둥이가 내 명찰을 가리킨다. 너도 조심해. 네 이름. 그는 김여주 너야말로 도망치면 메가폰으로 동네를 쓸어버리겠다는 의미였다.





- “사람들이 우리 보는 것 같다.”


- “다들 놀러 가느라 바빠.”


- “건너편 사람이랑 눈 마주쳤어.”


- “손 흔들어 봐.”


- “……그게 무슨 재미야.”





교복에 남다른 소화력을 뽐내는 그가 붉어진 얼굴을 감싸 쥔다. 어언 1년에 걸친 이지훈 행동 분석 베이스를 바탕으로 결과를 도출한다. ‘난 지금 너무 어색하다’였다. 한 손으로도 가려질 조막만 한 얼굴이 두 손에 담긴다. 지훈아, 혹시 나 보라고 꽃받침 하는 거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야. 길게 뜬 눈으로 으흥흥- 콧김을 뿜자, 그는 해탈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너도 결국 내 매력에 빠져든 게야. 확실해.





-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게 있어.”


- “뭔데.”


- “짜라란-.”





묵직한 가방에서 꺼낸 책 뭉치가 드디어 빛을 본다. 두꺼운 하드보드지를 엮어 만든, 일명 ‘훈이와 함께하는 신비한 도시 탐험’이 주인공 손에 들린다. 서툴게 그린 지도에 평소 그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을 별 모양으로 표시해 둔, 그야말로 이지훈 맞춤 길라잡이였다.





- “그리다가 졸았네. 거의 뭐, 새벽 네 시에 완성한 작품인데.”


- “그림에 집중하지 말고 장소를 봐줄래.”


- “인형 뽑기는 뭐야.”


- “이지훈 집중력 최고치 보고 싶어.”





곰돌이 한 백 마리 뽑아주면 안 돼? 인형 도박을 권유하는 연인을 안타까이 쳐다보던 그는 별첨으로 딸려온 곰돌이 스티커를 내 볼에 붙이며 대답을 아꼈다. 탐험 종료 후 마지막 페이지에 500자 이내 후기 작성까지 약속한 그가 ‘이지훈’ 이름 석 자 옆 멋들어진 낮은 음자리표 사인을 남긴다. 시그니처도 주인을 닮아 동글 거리는 걸까.





- “나도 높은음자리표로 사인 바꿀래.”


- “잘못 그리면 엄청 꼬여.”


- “내 인생처럼?


- “가끔.”





……이런 건 진지하게 하지 말라고. 애꿎은 교복 타이를 당기며 그를 괴롭히자, 장난스레 끌려오던 그가 덥석 손을 잡는다. 넥타이는 밤에 풀고 낮에는 손.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남몰래 유혹하는 그를 뿌리치기 어렵다. 아아, 참아야 하느니라. 그의 말마따나 밤엔 반드시 타이와 더불어 셔츠까지 풀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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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쪽 길이 맞나.”





그가 탐험 맵을 가리키며 루트를 재탐색한다. 평일 대낮, 지금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학생들을 대신해 뻔뻔한 교복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스무 살들이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아니, 저희는 불량 청소년 아니고요. 담 넘은 건 더더욱 아닌데요. 선량한 눈빛으로 초면들과 안부를 나누면, 지훈은 사람들을 공격적으로 바라보지 말라 내 눈을 가렸다.





- “착하게 산다고 약속했잖아.”

 

- “삥도 안 뜯었는데 나한테 뜯긴 것처럼 보잖아.”


- “인상 쓰지 말고.”


- “웃은 거야.”





삐딱함으로 무장한 양아치가 공원에 들어서자 구부정한 지팡이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는다. 벌건 대낮에 손잡고 뭐 하는 짓들이냐, 하늘 아래 남녀가 유별하거늘 철딱서니가 없는 건지 저집 자식 부모도 알만하다, 나라에 도움도 못 되는 것들은 쫓겨나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언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텔레파시를 보낸다. 깍지 낀 손을 보란 듯이 흔들던 우리는 서로의 손등에 입을 맞춘다. 이런 표현은 언제나 좋다.





- “지훈아, 보충 잘 갔다 왔어?” 


 - “귀찮아서 안 갔어.” 


 - “난 담임이 오지 말래. 수업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 “양아치네.” 


 - “자퇴할래?” 


 - “어제 했는데.”





지팡이가 게거품을 문다. 따가운 매질을 견디고 울타리 밖으로 여름 숨을 틔워 내자, 마치 일탈한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아니, 끓어오른다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예전에 털어버려야 했을 그것들이 지금에서야 터져 나온 것이다. 곪은 시간만큼 앓는 것도 오래 갈 듯싶었다. 학생이란 틀 안에 갇혀 금기했던 것을 부러 경험하고 있는 우리가 뒤늦은 사춘기를 맞는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 “낮술 어때?”


- “이미 하고 온 거 아니었어?” 


 


 


 


 


 


 


 


 


 


 


 


 


 

교복을 입은 스무 살의 반항,

여전히 내 옆자리는. 














OH MY RAINBOW
;Caramel Drizzle






























Chapter 23. 〈보통의 하루>


 


 


 


 


 


 


 


 


 


 


 


 


 


 


 


 

#42. 

- “자꾸 옆으로 밀지 마.”


- “내가 언제.”





청계천을 따라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던 그가 물가로 휘휘 미는 시늉을 한다. 잘못하면 그대로 입수인지라 목숨을 위협하는 상대의 손을 움켜잡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완전 좋은 생각 났어. 같이 빠지자. 엉덩이에 무한한 중력을 싣고 물귀신 작전을 펼친다. 일방적인 바둥거림에 지겨워진 그가 순간 손을 당겨 제 품에 폭삭 나를 안긴다. 궁극적인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뭔가 큰 이득을 본 느낌이다. 이거 뭘까, 나쁘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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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나랑 가까이 있으면 눈 피해?”


- “…….”


- “신경 쓰이게.”





왠지 모를 뚱한 표정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유를 묻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라면 지금 당장 제1장 〈좋아하면 즉시 나타나는 증상>을 배워보도록 하자.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청중 없이 열강하는 멍청이는 곧 호흡 곤란에 닥칠 운명이었다. 가까워진 순간부터 주야장천 그의 입술만 보는 욕망스런 눈동자는, 만약 김칫국 지옥이 있다면 그곳에서 영원히 썩어야 하는 죄명을 달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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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뽀해 달라고 계속 입술 내밀고 있는 건가.”


- “…….”


- “교복 입고 하는 건 오랜만인데.”





나른한 목소리에 취한 정신을 억지로 깨운다. 아직 잃으면 안 된다. 저 넥타이 풀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해. 김여주, 너 할 수 있잖아. 인내심 테스트 십팔 점 맞았잖아. 그 정도면 충분해. 스스로 의지를 다독이며 벌건 하늘을 쏘아 본다. 방금 전부터 내 뺨을 반죽하던 손가락이 입술을 스친다. 또 생각 뺐네. 그는 어색한 손짓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생각은 굳이 읽지 말아줬으면 좋겠지만, 저 행동은 필히 그러함이라.





- “하늘은 갑자기 왜.”


- “아니, 내가 살다 살다 민짜 하늘은 처음 봐서. 구름이 없다니, 진짜 웃기지 않아?”


- “대체 웃긴 포인트가 뭐야.”


- “하늘에 구름이 없잖아.”


- “엉, 넌 아직도 나 안 보고.”





구몬 선생님들도 울고 갈 노련한 반복 학습이었다. 덕분에 민짜 하늘 핑계로 피하던 시선이 그에게 닿는다.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는 곧바로 뒤로 돌아 앞서 걷는다. 젠장, 매일 봐도 떨리는 병의 원인을 알고 싶다. 이럴 땐 명의 윤쌤을 찾아가야 함이었다. 일정한 간격 차로 졸졸 따라오는 발소리에 슬쩍 뒤를 돌자, 그는 뒷짐을 쥐고 짐짓 옆으로 돌아섰다. 반복 패턴은 그 후로도 계속됐는데, 문제는 사람 모양을 한 고양이가 솜뭉치로 내 뒤를 밟는다는 거였다.





- “왜 뒤에서 걸어?”


- “허락 아직 안 받았으니까.”


- “무슨 허락?


- “옆으로 가도 되는지.”


- “……이지훈.”


- “왜.”


- “혼자 걸으면 심심하지?”


- “엄청.”





손을 뻗자 기다렸다는 듯 큰 보폭으로 다가와 깍지를 낀다. 손 차갑다. 계속 잡고 있어야 하나. 그는 자신의 뺨에 내 손등을 부비며 가끔 새벽에 하다만 노래를 흥얼거렸다. 마시멜로우 반죽에 손을 얹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녹는 점에 도달한 그가 펑-, 폭죽을 쏜다.





- “매일 보는데 부끄러울 게 뭐 있어.”


- “……내 맘이야.


- “하긴, 난 매일 반하잖아.”


- “승관이랑 그만 놀아.”


- “방금도.” 





약간 샤랄라 했어. 진지한 샤랄라 공격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큭큭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사람은 봤어도, 단어 하나로 마음을 들었다 놨다 저글링 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이지훈밖에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이번 생은 인간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갈대로 태어났어 봐, 사시사철 내내 춤추면서 따라다닐지 누가 알겠어.


- “지훈아, 타이 삐뚤어졌다.”


- “해줘.”


- “가까이 와봐.”





인내심 테스트에 당당히 십팔 점을 등극한 꼴찌는 참지 못하고 결국 타이를 당겨 입을 맞춘다. 얼빠진 그가 눈을 꿈뻑이며 입술 도둑의 손목을 잡는다. 아무래도 곧 마시멜로우 반죽에 딸기 잼이 끼얹어질 모양이었다. 타이를 고르게 정리하던 손마디가 '이지훈', 그의 명찰을 톡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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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훈아, 나 평생 말랑 모찌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이유는 비밀이야. 이미 알고 있으면 더 좋고.

이런 건 밤에 하고 싶었는데, 기다리기엔 낮이 너무 길어서 말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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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 잘하네. 괜찮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들어간 곳은 '개'선배의 추천이 자자하던 맛집이었다. '서울 구석탱이 명가'라는 화끈한 상호명이 특징이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밥 요정은 발그란 홍조를 달고 적극적인 식사에 임하는 중이었다. 먼저 한 공기를 끝낸 그가 나머지 공깃밥을 꾹꾹 집어넣는다. 밥 먹을 때 제일 행복해 보이고 신나는 거 나만 느끼는 거 아니지. 나 만날 때보다 즐거워 보이는 거 실화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줘.





- “더워?”


- “아니.”


- “열나는 것 같아.”


- “그런가.”





그는 오로지 테이블만 보고 대화를 이었다. 눈 피한다고 꽁해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복수란 말인가. 밥 먹다 말고 빤히 쳐다보는 날 알아챈 그가 입을 오물거린다. 별로 맛없어? 다른 거 먹고 싶으면 시켜. 밥 요정은 메뉴판을 가리키며 이윽고 두 번째 공기를 비워냈다. 난 지금 저 밥보다 못한 인간일까 싶기도.





- “부끄러울 게 뭐 있냐던 사람이 이젠 왜 나 안 봐?”


- “우리 뽀뽀한 지 얼마 안 지났잖아.”


- “……뽀뽀?


- “자꾸 생각이 거기로만 가니까.”





그래서 못 쳐다보겠어. 그는 답답한 듯 타이를 내려 단추를 풀어냈다. 별거 아닌 것처럼 행동할 땐 언제고 지금에서야 왜 이러는 건지 정말 기분 좋고 떨려. 인내심 십팔 점을 괜히 맞은 게 아니야. 모든 게 오늘의 뽀뽀를 위한 빅 픽쳐였다니까. 장난스레 입술을 내밀자 그도 앙증맞게 입을 모은다. 지훈아, 우리 너무 귀여운 거 아닐까. 오늘을 난 이렇게 정의하고 싶어. 우리는 마치…….





- “신성한 밥집에서 뭐 하는 쌍쌍바냐?


- “…….


- “님들 뭐 하세요?





아찔한 목소리에 지훈이 먼저 즉각 반응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그는 차마 탄식을 숨기지 못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외면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외면을 당할수록 기상을 떨치는 엄청난 존재감은 아예 옆자리에 앉아 주문을 기다리며 말을 걸었다. 여기 아무도 모르는 맛집인데 어떻게 찾았냐요? 내 인스타 뒤졌냐요? 좋아요 왜 안 눌렀냐? 요? 이유가 어찌 됐건 오늘의 컨셉은 ‘반 존대의 나쁜 예’인 건 알겠다 개새야.





- “너희 뭐하냐요?” 


 - “반말을 하던가 존대를 하던가.” 


 - “설마 교복이냐요?” 


 - “근데 뭐.” 


 - “석민, 일로 와봐라요!”





입구에 서서 메뉴판을 정독하던 사내가 요염히 뒤를 돈다. 승관, 여기 자리 많은데 거기서……. 여주? 지훈도? 석민의 팡파레같은 환호가 터진다. 야하하,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잖어! 살가운 석민은 승관의 맞은 편에 앉아 목에 걸린 커다란 DSLR을 테이블에 올렸다. 사진에 맛을 들여보고자 무려 어제부터 시작한 취미가 서서히 질려가고 있다는 고백에 승관이 혀를 찬다.





- “석민, 넌 이미 글러 먹었어. 인물 사진에 레드 아이 좀 그만 만들어라.


- “너는 애 기 좀 죽이지 마.”


- “우리 지훈이와 여주 교복 입은 거 봐라, 취미가 얼마나 확고하냐?”


- “확고하게 맞아 볼 거냐고.”


- “교복은 엘리트 미만 잡.”





저희도 주문받아주세요! 승관이 카운터 알바생에게 손가락으로 '2'를 그리다 급히 테이블 안으로 집어넣는다. 오늘 석민과 종일 사진을 찍느라 생긴 병적인 브이 같았다. 밥 요정 지훈은 숟가락을 놓고 교복 소매를 뒤집어 무언갈 찾기 시작했다. 승관이 교복은 엘리트 미만 잡이라고 했으니 일단 최소 엘리트인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승관은 이를 놓치지 않고 지훈을 놀렸다. 님 그거 엘리트니까 자부심 가지세요. 지훈은 승관을 흘긋거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를 넘겼고, 오늘도 해피한 석민은 새로 산 신발을 자랑하며 허연 이를 보였다.


- “완전 잘 사지 않았어?”

 

- “택은 좀 때는 게 어때.”


- “일주일 동안은 저러고 다녀야 행운이 찾아온다고 씨부리더라.” 


 - “못 본 사이에 더 살벌해졌구나.” 


 


 


 


 


 


 


 


 


 


 

……이로써 A대의 박살 나는 4인방이 다 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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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거의 다 먹은 것 같은데 너희들 안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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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시로! 뜽가니 디조뜨도 모글고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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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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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 메뉴판에 하겐다즈 있어! 대박!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 “부승관 이석민을…… 없애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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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인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 나는 금년 스무 살 난 애입니다. 내 이름은 김여주고요, 우리 집 식구라고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지훈이와 나, 이렇게 단 두 식구뿐이랍니다. 아차, 큰일 났군. 옆에 있는 화상들을 빼놓을 뻔했으니.

지금 방학을 맞은 화상들은 어디를 그렇게 싸 돌아다니는지 집에는 끼니때 외에는 별로 붙어 있질 않으니까 어떤 때는 한 일 주일씩 가도 화상들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빡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 “김여주, 뭔 생각함?” 


 - “우리 만나서 기분 좋은 건가 싶어.” 


 - “그 반대겠지.” 


 - “쟤 지금 속으로 지푸라기 인형 만들어서 내 이름 박았는데?” 


 - “이름만 박았겠냐.” 


 - “지훈, 그게 보여?”





석민은 두 손으로 눈을 확장하고 미지의 물체를 찾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동공을 확장한 자와, 가슴을 움켜쥐며 흑마술을 느끼는 자와, 그것을 지켜보다 가만히 눈을 감는 자가 동시에 공존하는 이곳은 골목길 밥집이다. 자리를 앉아도 꼭 중앙이라, 말로만 듣던 양 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맘껏 즐기는 중이었다. 지훈은 명상을 마치고 A대 주옥들의 설렘 가득한 용안을 감상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용사의 모습이었다.





- “여주, 축제 때 입었던 옷이랑 비슷한 거 같어.” 


 - “저건 찐이야.” 


 - “진짜 교복?” 


 - “소매에 엘리트 찍혀 있는 거 내가 봤음.”





부승관은 이지훈 옆에, 이석민은 내 옆에 나란히 앉아 패션을 분석했다. 옆을 슥 스치는 승관의 붕 뜬 까치집을 본 순간, 그 즉시 자리를 떴어야 했다. 내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낱 거름이 되어 사라졌어야 했다. 흰 티셔츠에 나이키 바지로 멋을 낸 그들의 취향은 어찌나 똑 닮으셨는지, ‘영혼의 쌍둥이’는 아마 그들을 보며 정의했을 것이다.





- “오늘은 특별히 시밀러 룩으로 맞춰 봤어.” 


 - “티셔츠에 볼펜 자국이 포인트네.” 


 - “공책에 이름 쓰다가 멋지게 묻혔다.” 


 - “네가 뭐 어딜 가겠냐.”





승관은 턱을 까딱거리며 지훈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석민은 승관을 보며 소심하게 턱을 들었다. 영혼의 쌍둥이 아니랄까 봐 하는 짓도 똑같다. 지훈은 일관된 무표정으로 승관의 입가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떡볶이 비슷한 빨간 양념이다. 지금 녀석이 먹고 있는 건 간장 베이스, 고로 밥집에 오기 최소 포장마차에서 한 탕 했다는 거다. 석민은 흠칫 놀라며 제 입가를 닦아냈다. 공범이었구나, 둘이.





- “우리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학기 초 생각나지 않어?” 


 - “그때만 해도 하루걸러 소개팅할 줄 알았는데 이게 뭔 꼴이냐.” 


 - “소개팅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건 아니잖어.” 


 - “석민, 너희 학과 애들한테 입 좀 잘 털어 달라고 부탁까지 했잖냐.” 


 - “여주가 과 애들 모이면 네 얘기 많이 했는데.” 


 -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었겠지.” 


 - “기공에 귀여운 뿌랄둥이가 산다고 자랑도 했다!” 


 - “뿌랄 아니고 뿌랑둥이.” 


 - “그리고 내가 너랑 닮았다고…….” 


 - “그거 욕이야.”





석민은 동의한다는 듯 훌쩍, 코끝을 훔쳤다. 승관은 체념한 채 거꾸로 든 메뉴판을 훑는다. 고치돈이랑 쫄면에 마요네즈도 맛있는데. 거꾸로 된 글자를 술술 읽으며 석민에게 추가 메뉴를 묻는다. 그러자 석민은 ‘나도 그거’라며 아주 독특한 취향을 나타냈다.





- “서쿠, 너도 이렇게 먹는 거 좋아하냐?” 


 - “당연하지, 가끔 안 먹으면 속이 상해서.” 


 - “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어줘야 직성이 풀리는데.” 


 - “내 말이! 이걸로 학식 콤보 내 달라고 건의하고 싶다니까?”





승관의 하늘에 빛줄기가 내린다. 쫄면에 마요네즈를 왜 섞어 먹냐 식성 변태라 치부하는 나와는 정반대로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승관이 굉장히 수줍은 미소로 입을 가린다. 석민은 그걸 또 받아준다. 아주 둘만의 세상이 따로 없다. 저 광경을 보기 싫어 눈을 감는 건 지훈이, 깊은 한숨은 나로부터, 알콩달콩 깨를 볶는 건 각자 옆에 있는 부 씨와 이 씨의 몫이었다.





- “근데, 너희들 옷은 무슨 일이야?” 


 - “내년 만우절 기념?” 


 - “여주는 그렇다 치고 지훈 너는 왜?” 


 - “이쥰 쟤도 맛 간지 좀 오래야.” 


 - “아이구, 어쩌다 그런 일이.” 


 - “석민 친구 옆에 있는 오징어 때문에.”





야, 오징어가 너 쳐다본다. 먹물 토하니까 조심해라. 승관은 석민의 등 뒤로 얼굴을 숨기더니 어깨너머 슬쩍 큰 눈을 굴렸다. 내 눈치를 보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오늘만큼은 절대로 화 안 낼 거거든. 무작정 화내기엔 오늘 옷도 예쁘고 기분도 좋아. 심지어 내 앞에 열아홉 이지훈도 있잖아.





- “지훈아, 오늘 우리 좀 괜찮지 않아?” 


 - “많이 괜찮지.” 


 - “맞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평상복으로 입을 만해.” 


 - “겨울엔 과잠처럼 입고 싶기도 하고.” 


 - “학생회에 건의 넣어 봐.”





당황한 기색 하나도 없이 답하고는 멍 때리는 승관과 석민에게 자비로운 미소를 날린다. 나이키 츄리닝은 언제 적 거야. 옷 없으면 교복 입고 다녀. 얼음 동동 띄운 물을 단숨에 넘기고 얼음을 와작 씹는다. 해볼 테면 더 해봐라, 지훈은 준비된 용사였다. 

올해 들어서 가장 흐뭇한 날이 있다면, 맛이 어떻든 해준 음식은 싹싹 비우는 지훈을 보는 일 다음으로 이 순간을 꼽겠다. 승관은 눈을 흘기며 애꿎은 테이블 다리를 신발로 툭툭 쳐댔다. 지훈이 준 패배감에 쓴맛을 느끼는 중이었다. 석민은 그러지 말라 승관의 다리를 저지했다.





- “승관, 속에 화가 많어?” 


 - “서예 말고 웅변을 더 배웠어야 했어.” 


 - “둘이 잘 맞아 보이고 이상해 보이고 좋은데 왜-.” 


 - “잘 맞든 안 맞든 지금 내가 말 빨로 졌잖냐!” 


 - “그게 뭐 한두 번도 아니잖어.” 


 - “넌 도대체 누구 편이냐?” 


 - “난 중립국.” 


 - “네가 나라냐? 너도 A대 특례지?” 


 - “누가 또 있어?” 


 - “김여주도 특례야.”





친절한 밥상을 기대했던 내가 비속어다. 쿠사리를 먹여도 정도껏 먹여야지, 이건 거의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맥락이었다. 샐러드를 씹는 건지 부승관 이름을 씹어 먹는 건지 눈을 부라리며 젓가락질을 하고 있을 때, 내게 쏟아지는 루머를 잠자코 듣고 있던 그가 고개를 틀었다.





- “야, 부승관.” 


 - “성 떼고 불러주지 않으련?” 


 - “앞으로 학교 작업실 오지 마. 두 번 말하는 거 싫어해.”


- “뭐?! 아 왜에!!!!” 


 - “가뜩이나 사람도 많은데 센터에서 부루마블을 하고 싶어?” 


 - “야아, 그래도 갑자기 이런 식으로 통보하면 엉아가 마음이 아파요.” 


 - “이석민 너도 연락 그만하고.”





김여주보다 네가 전화를 더 많이 해. 입술이 댓 발 나온 승관과 울상이 된 석민이 매정한 지훈에게 서운함을 표한다. 우리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 와서 버릴 생각이냐, 그동안 업어 키워 허리가 다 나갔으니 입원비는 줘야 할 것 아니냐 먹다 뱉은 말본새로 지훈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는 가벼운 눈길도 주지 않는다. 다 먹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 그는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향했다.





- “애들 아직 다 안 먹었…….” 


 - “이제 막 시작한 커플은 방해하지 말자.”





트루럽, 인정한다. 엄지와 검지로 하트를 만들어 벙찐 그들을 저격하는 지훈이의 분홍 손가락. 트루럽들은 기가 막힌 듯 입을 벌리고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 “이렇게 가도 돼?” 


 - “애도 아닌데 알아서 잘하겠지.” 


 - “그래도…….” 


 - “저렇게 쿵짝이 잘 맞는데 누가 봐도 권태기 없는 커플이야.”





‘훈이와 함께 하는 신비한 도시 탐험’을 펴 다음 목적지를 확인한 지훈이 금세 미소 짓는다. 저녁에 진짜 보고 싶었는데. 그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들뜬 발장난으로 기분을 냈다. 높은 서울의 중심, 남산타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44.  

‘남산 N 타워’, 그가 세 번째 랜드마크에 곰돌이 스티커를 붙인다. 나보고 귀엽게 논다더니,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제 일처럼 여기는 고딩을 어찌해야 할까. 가방에 주섬주섬 책자를 밀어 넣고 뿌듯해 보이는 옆모습마저 귀엽다. 저녁에 오니까 분위기 진짜 다르다. 낯선 주변을 살피며 케이블카를 기다리던 그가 휴대폰으로 풍경을 담는다. 그러다 간혹 내 쪽으로 앵글을 돌렸는데, 그럴 때마다 난 짐짓 모른 척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 “또 부승관 튀어나오는 거 아니겠지.” 


 - “흥칫뿡이라고 아까 문자 왔어.” 


 - “집에 갔네.” 


 - “석민이랑 노래방.”





댄스 메들리 조지겠다고 찾지 말라더라. 지훈은 열린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휴대폰을 전원을 눌렀다. 우리도 남산 조져야 하니까. 방해 요소들은 완벽히 차단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내 휴대폰까지 잠재운 그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낮과 밤의 경계를 달리는 황홀함에 넋을 잃는다. 지훈은 지나쳐온 높은 건물들을 가리키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윽고 짧은 여행을 마친 그가 타워 1층에서 전경을 내려 보며 활짝 웃는다. 일렁이는 빌딩 불빛을 바라보며 펜스에 몸을 기댄다. 난 그런 그를 보고 있고.





- “날씨 좋으면 학교 뒷마당에서 남산 타워 보였던 거 기억나?” 


 - “알지, 전학 첫날에 부승관이 학교 마당에서 남산 타워 보인다고 그것부터 자랑하더라.” 


 - “걘 정말…….” 


 - “통성명도 안 하고 2교시 쉬는 시간에 갑자기 끌고 갔어. 화장실보다 남산이 어딨는지 먼저 알았다니까.” 


 - “도망치지 그랬어.” 


 - “마이 움켜잡고 안 놔주는데 뭘 어떡해. 우리는 이제 남산을 공유한 특별한 사이라면서 그때부터 번호 교환하고 친구 먹고.”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봤던 부승관의 말도 안 되는 친화력은 무뚝뚝한 이지훈도 당황케 했다. 매점 가는 순간마저 남산과 함께한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고 싶다 안개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배경으로 사진까지 박았더랬다. 미친놈이 확실하다,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녀석이라 깨달았을 땐, 이미 그도 남산과의 하루를 녀석과 함께 기록하고 있었다. 이를 어쩐다, 그도 어쩔 수 없이 승관의 매력에 푹 빠져 영원한 친구 계약을 맺어버린 듯싶은데.





- “아직이야.” 


 - “어차피 걸면서 볼 텐데 뭘.” 


 - “그래도 안 돼.” 


 - “맨날 다 안 된대.”





꼭대기에 올라 각자 펜과 자물쇠 하나씩 품에 안고 곧바로 내외를 시작했다. 누가 훔쳐볼까 바짝 얼굴을 묻고 조그맣게 글씨를 새겨 넣는 날 보며 그가 펜 꼬리를 툭툭 건든다. 심심해, 빨리. 구석진 철조망을 가리키며 보채던 그는 가만히 있으라 조곤조곤 타이르는 내 옆에 쪼그려 앉아 아래로 입꼬리를 죽 늘어트렸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커다란 미로에 두 마음을 엮었을 때, 태양은 느지막이 사라진 뒤였다.





- “다음에도 같이 와, 나랑.”


…….


- “이게 내 두 번째 소원.”





이제 한 번 남았다. 버릇처럼 소리 없이 웃는 얼굴이 투명하다. 빛이 사라져 감에도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유는, 다만 이 세상 아래 그가 살아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눈을 깜빡이면 잔잔히 내려앉는 짙은 속눈썹이 밤에 녹아드는 것마저 그림과도 같았다.





- “밤에 오길 잘했네.”


…….


- “예쁘다.”





펜스 위로 얹은 두 팔에 얼굴을 묻고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다. 지금은 김여주 감상 중. 그의 입 모양이 날 보며 조심스레 ‘예쁘다’를 그린다. 이로써 블러 처리된 배경 앞에 오직 지훈이만 보이고 만다. 어쩔 줄 모르는 아찔한 눈웃음으로 쐐기까지 박아버리면, 사람 많은 이곳에서 난 어떡하면 좋을까요. 아무래도…….





- “그건 나중에.” 


 - “……응큼한 생각 안 했어.” 


 - “다 들려, 바보야.” 


 


 


 


 


 


 


 


 


 


 


 


 


 


 


 


 


 


 


 


 

Interview.
 


 

Q. 여주 씨, 당신에게 ‘응큼’이란 뭐죠? 


 A. 그건 왜 묻죠? 


 Q. 막간을 이용한 인터뷰니까요? 


 A. 프라이버시 존중 안 하나요? 


 Q. 대답하시면 다음 학기 씨 밭은 면할 수 있습니다.  


 A. ……아니, 그런 거 있잖아요. 한 공간에 둘이 같이 있다 보면 갑자기 입술만 보인다거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거나…… 그러다가 넥타이가 불편해 보이면 풀어줄 수도 있는 거고……. 


 Q. 야동 몇 년 차죠? 


 A. ……너 부승관이지. 


 Q. (무시 지훈 씨, 남산은 어떠셨어요? 


 A. 뭐, 괜찮았는데. 


 Q. 자물쇠에 뭐라고 적으셨나요? 


 A. 부승관, 사라져. 


 Q. 야!!!! 나도 자물쇠에-!!!!! 


 A. 김여주, 버스 왔다. 빨리 와. 


 


 


 


 


 


 


 


 


 


 


 


 


 


 


 


 


 


 


 

Q. 자물쇠에 뭐라고 적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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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A FOOL FOR U 

I GET BUTTERFLIES EVERY TIME I SEE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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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A. 난 당신의 바보. 

당신을 보는 모든 순간마다 가슴이 떨리는걸요. 


 


 


 


 


 


 


 


 


 


 


 


 


 


 


 


 


 


 


 


 


 


 


 

Epilogue. 


 

- “저 꼼돌이가 애타게 날 찾고 있어.” 


 - “인형은 영혼이 없어.” 


 - “방금 나한테 꺼내 달라고 하지 않았어?” 


 - “환청이야.”





막대 사탕 좋아하는 맛 하나씩 물고 당차게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섰다. 그렇다, 한 시간 째 서 있다. 교복을 입고 진짜 고딩들과 섞여 한판 대결을 하고 있었다. 굉장히 미칠 노릇이었다. 오천 원이네 만원이네 몇 개를 뽑으면 오늘 하루 알차게 썼다 말할 수 있을까 행복한 고민도 잠시, 갈고리 나사 한 통을 죄다 잃어버렸나 싶을 만큼, 오리 물갈퀴를 잡거나 거북이 등껍질을 용케 낚아도 공중에서 강제 방생시키는 저놈의 갈고리 때문에 열이 난 상태였다. 기계 탓일까 다른 곳으로 옮겨도 문제는 같았다. 이젠 꼼돌이의 환청이 들린다. 영혼이 없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인형이지만, 저 구슬픈 눈동자를 보라. 당장 집에 데려가 별똥별 이불 덮어주고 재워야 할 어리디어린 꼼돌이를 보라!





- “지훈아, 우리 그만 포기할까.” 


 - “이제 시작이지.” 


 - “아까 신상임당을 날렸어.” 


 - “지갑에 몇 분 더 계셔.” 


 - “자가 복제 중이시니?” 


 - “엉, 21세기라.”





지훈은 가방까지 던져 놓고 인간이 만든 가장 더럽고 추악한 게임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어쩐지 저 승부욕이 안 나오나 했다. 여러분, 뭐든 한번 시작하면 끝장 봐야 만족하는 제 남자친구를 한번 봐주시겠어요? 담배가 아닌 사탕을 꼬나물고 가장 폭력적인 눈빛으로 게임을 불사르는 이 친구를 제발 말려 주시겠어요?





- “좀만 더하면 할 수 있겠는데.” 


 - “외박을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 “……아! 이거!”





다 잡은 꼼돌이 손을 문전 앞에서 놓친 그는, 기계를 강하게 때리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지훈아, 지금이라도 랜드마크에서 인형 뽑기를 지울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뭐든지 할게. 조이스틱을 움켜쥐고 다음 판 만큼은 절대 안 된다 강하게 제지하지만, 그는 이미 인형 도박에 미쳐 있는 중이었다.





- “내가 이번 판에 못 잡으면 교복 또 입는다.” 


 - “조건 없이 입어도 괜찮아.” 


 - “처음에 시작할 때 저 부분 각 잡고, 내리기 직전에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야 돼.” 


 - “계획도 참 멋지다. 역시 A대 건축과 수석이야.”





내 말은 이제 들리지도 않는 집중력의 아이콘은 그렇게 몇 판이고 운명의 승부를 겨뤘다. 앙상한 뼈만 남은 막대를 잘근잘근 씹어 대며 한여름 밤의 노상을 즐기고 있을 때, 별똥별 이불을 꼭 덮어주고 싶었던 꼼돌이가 쭉 뻗은 두 다리에 안착했다. 이지훈의 고단한 승리였다.





- “인형 뽑기 왜 하는지 모르겠어.” 


 - “모르시겠다는 분이 얼마를 쓰셨는지.” 


 - “잠 온다.”





그는 눈을 비비며 내 앞에 쪼그려 앉아 꼼돌이 뒤에서 영혼을 불어넣었다. 저기요, 집에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인형을 방패 삼아 하고 싶은 말을 주절거리는 모습에 실룩대는 볼을 억지로 내린다. 제발 단 한 번이라도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까? 여주야? 어?





- “집에서 맥주 마실래? 편의점 들려서 가자.” 


 - “우리 지금 교복 입었어.”


- “당당하게 민증 이마에 딱 붙여.” 


 - “네가 내 꺼까지 그냥 두 개 붙여.” 


 - “오늘은 누구 빼고 꼼돌이랑만 자야겠다.” 


 


 


 


 


 


 


 


 


 


 


 

 

[세븐틴/이지훈] O.M.R (Oh My Rainbow) Returns _ 11 (Reupload) | 인스티즈 

 - “……내가 두 개 붙일게.” 


 


 


 


 


 


 


 


 


 


 

……그 인형 모자는 또 어디서 난 건데. 


 


 


 


 


 


 


 


 


 


 




 
독자1
트윅슈 입니다! 하얗고 말랑말랑한 딸기모찌를 의인화한다면 그건 바로 지훈이가 아닐까 싶어요,,,, 😘 이번 화는 새롭게 쓰여진 만큼 그만큼 새롭고 설레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넘나 귀여운 저 둘,, 이제 둘이 맥주 한 잔 하면서 꼼돌이랑 재미있게 노는 일만 남았겠죠? 어쩌면 꼼돌이 빼고 둘이서만 놀 수도 있겠지만요 ( ͡° ͜ʖ ͡°) 다시 쓰느라 넘넘 고생 많으셨어요 8ㅅ8 울 스윗님 꼬오옥,,, 에어컨 길만 걸으시길,,,,, 오늘도 많이많이 사랑해요 💛💙💜💚❤
6년 전
독자2
김왈왈 입니다! 이 글 날아가서 슬퍼서 또 정주행 다 하고 이제야 읽네요... 스윗님 글은 읽어도 읽어도 넘 체고 ㅠㅠㅠ 심장이 몰랑간질거리는 느낌이네요 >.< 응큼한 생각하는 여주... 아주 좋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바래요🐿🧡
6년 전
독자3
어젯밤 이 글을 보고 처음부터 정주행했어요! ㅎㅎ 글도 쏙쏙 몰입되는 느낌에 정말 정신없이 봤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할게요 작가님~~❤️
6년 전
독자4
헐 다시 쓰신 거였군요ㅜㅜㅜㅜ 올라왔길래 읽는데 익숙해도 재밌어서 다 봤어요ㅎㅎ 작가님 수고하셨어요!! 최고♡
6년 전
독자5
작가님 ..... 진짜 오엠알은 제 인생에서 최애작입니다 ㅠㅠ 그래서 다음편올라오기전에 계속 들어와서 읽었던거 또 읽곤합니다 ㅠㅠ 그럴때마다 노래가 너무 설레고 비지엠만 들어도 막 내용이 생각나요 ,,, 혹시 비지엠 정보 알수있을까요 ,,,, ㅠㅠ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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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五2 11.07 12:07
기타[실패의꼴]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셨습니다 한도윤10.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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