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 작은 손으로 나를 안아주었지. 나는 그 답례로 너의 손을 핥아주었어. 그렇게 너와 나는 처음 만났다. 너의 부모는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고, 나 또한 너의 부모를 마음에 들어했지. 따뜻한 집을 주었고, 맛있는 밥을 주었고, 재밌는 놀이를 해 주었지. 네가 자라면서 나도 자라났다. 나는 아주 크게 자랐어. 다른 사람들은 네가 날 데리고 산책하는 것을 신기해했어. 넌 그때 꽤나 자라있어서 배시시 웃으며 그 반응에 응답해 주었을 거야. 그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면 나는 네게 해 주던 것처럼 그 손에 가만히 내 머리를 맡겼지. 그리고 네가 나를 커다란 공원에 데려가서 장난감을 물려줄때 나는 아주 기대가 되었단다. 그때가 아마 몇년 전 이었을 거야. 우리둘은 신나게 놀았지. 이것도 꽤나 즐거운 추억이었어.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넌 더 자라서 공부를 했어. 매일 늦게 들어와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너는 매우 지쳐보였다. 그래서 나를 봐달라고 할 수가 없었어. 나는 조금 섭섭했다. 몇 번은 들으라는 듯 밤중에 왕왕 짖어도 보았지만 돌아오는건 따가운 눈총과 너의 부모님께서 물려주시는 간식들 뿐이었지. 나는 그걸 원하는게 아니야. 놀아달라는 뜻인데. 아니, 내 머리를 한번만 쓰다듬어 달라는 뜻인데. 그렇게 시간은 쭉쭉 흘러갔어. 너는 더 자랐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하는 시기였나봐. 예전보다 더 늦게 들어오고, 너의 방 불빛은 예전보다 더 늦게까지 켜져 있었으니 말이야. 난 마당에서 네 방을 올려다보며 낑낑거렸지만 끝내 창문은 열리지 않았단다. 난 무척 우울했지.
내가 더이상 자라지 않던 무렵부터 입맛도 없어지고 속이 끙끙 아파왔어. 너의 부모님이 챙겨주시는 밥도 잘 삼키지 못했단다. 너의 부모님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어. 너도 날 이렇게 쓰다듬어 준다면.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처음으로 그때 눈물이 났어. 슬펐지.
난 병원에 다녀왔다.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 그들은 조금 아파보였어. 어떤 친구들은 작은 유리방에 들어가 쿨쿨 잠자고 있었단다. 나는 너무 커서 들어갈 수가 없대. 내가 많이 아픈가봐. 촉촉한 코는 바싹 메말라 있었어. 나도 내가 아프다는 걸 잘 알아. 그렇지만 눈을 감으면 너를 못 볼것 같아서 눈을 감을 수가 없어. 잠이 와. 그치만 잘 수가 없어. 몸이 으슬으슬 춥지만, 네가 나올 때 까지, 그때까지만. 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까지만. 그때까지만, 제발.
눈을 떴어. 흐리멍텅해진 내 눈은 이제 잘 보이지가 않아. 냄새를 맡았는데, 네가 앞에 있더구나. 흐릿한 모습이라도 널 담아두고 싶었어. 난 왕왕 짖었어. 눈물의 냄새가 났어. 너 울어? 우는거야? 울지마. 나는 낑낑거리며 처음 만났던 때처럼 너의 손을 핥아 주었어. 그런데 숨이 조금 가빠온다. 나의 커다란 몸뚱이가 바닥에 닿고, 네가 내 이름을 크게 부르고. 저기, 있잖아. 나 지금 곧 눈을 감을 것 같아. 큰일이야. 그러니까, 울지 마. 울지말고 내가 가기전에 마지막 한번만, 딱 한번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래?
또다시 눈을 떴어. 온통 하얀 곳이다. 그곳엔 맛있는 음식들이 있었고, 재밌는 놀잇감들이 있었고, 포근한 잠자리가 있었어. 더이상 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펐고, 내가 여기에 와 있다는게 슬펐어. 나는 언제까지고 여기에서 널 기다릴거야. 예전에 네가 날 잃어버리고 언젠간 네가 나를 찾으러 올 거라고 믿으며 그 자리에서 기다리던 것처럼, 언젠가는 네가 날 데리러 올거야. 아주 오래걸려도 상관 없어. 그러니까, 다시 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줘. 내 이름을 불러 줘. 잠이 온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네가 내 눈 앞에 있을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