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금만 늦게 왔어도 저 집에 갈 뻔 했잖아요." "네,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요." "일 끝나고 바로 온거에요?" "좀 일찍 나온건데도 촉박하더라구요. 병원은 왜이렇게 문을 빨리 닫는 거에요." "하하, 미안해요. 규현씨 때문에 더 오래해야 되려나? 원래는 퇴근시간이 언제에요?" "음... 아홉시? 아침에 출근해서 해 지고 나면 집에 가죠." 내 말에 그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까부터 내 말에 계속 과장된 할리우드 리액션을 보이는 그가 웃겨서 그를 좀 더 골려주고 싶었다. 애들 야자감독 하면 그때 마치는 거 맞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오늘 처럼 아픈 날에도 조퇴도 못해요. 상사는 어찌나 깐깐한지 저희 일하는 데 계속 둘러보고 맘에 안들면 불러내서 막..."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날 보는 그의 눈빛이 측은해졌다. 해명하기가 귀찮아 그냥 가만히 있었다. 대화가 끊기고 창문에 머리를 기대 가만히 비가 오는 걸 바라보고 있으니 스르르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차 안이 너무 따뜻해서 그런가... 분위기가 너무 편안해서 그런가... 나도 모르는 새 눈이 완전히 감기고 말았다. "...씨, 규현씨...다왔..." 날 깨우는 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런데 눈이 안떠진다. 카 시트에 눌러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 몸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놀라 희미하게 눈을 떠 보니 그가 날 안아들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우리집이 아닌데 여긴... 내려달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다시 감겨오는 눈에 그냥 가만히 그의 널찍한 품에 기대 또 정신을 놓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대로 퍼져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힘겹게 눈을 떴다. 처음 보는 곳에서 낯선 침대에 내가 누워있다.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저기요...! 의사선생님!" 엄청나게 쉬어버린 내 목소리에 내가 놀라 입을 헙 닫아버렸다. 나 수업해야 되는데... 혼자 절망에 빠져있는 새 그가 나타났다. "규현씨, 깼어요?" "지금 몇시에요..." "지금이... 아홉시 됐네요." "허업... 얼마나 잔거야." "빨리 밥 먹고 약 먹어야 겠네요. 죽 끓여 놨어요. 어떻게 누가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자요? 집에 도착했는데 안깨어나서 저희집으로 왔어요." 그가 부엌으로 가서 죽 한접시를 들고 침대로 다가왔다. 남의 집에서 이게 무슨 민폔지... 그가 내 몸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초면에 정말 미안해요." "환자가 죽어가는데 보고 있을 수만은 없죠." 그는 무려 죽을 떠서 내 입 앞에 대 주었다. 뭔가 민망해서 그를 올려다보니 쓰읍, 하면서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직접 떠주기 까지 했는데 거절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결국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무려 비싼 전복죽이다. 그는 만족했다는 듯 씨익 웃어보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상해 뭔가. "원래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의례적인 뭐... 그런거 맞죠?" "하하핫, 뭐 사심도 조금 들어있을 수도 있고." "예?" 그가 내 입에 죽을 들이밀었다. 그에 난 입을 다물고 죽을 우물우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좀 과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니 난 남잔데.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쓰러진 환자 살려놨더니 이상한 취급 하는건가?" "아니, 전 남잔데." "이쁘면 장땡이죠." 경악스러운 말에 입을 떡 벌리자 또 죽이 들어왔다. 어쩔수 없이 우물우물 먹으며 눈으로는 그대로 경악을 표현하자 그가 한 손에 죽을 든 채 이마를 짚고는 큭큭큭 웃어댔다. 이사람 또 왜이러는 거야. "아이, 진짜. 규현씨 왜이렇게 귀여워요? 사심 생길 수 밖에 없게 만들잖아요." "대답해야 하나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죽을 떠먹여주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는 누워서 또 다시 끙끙거리며 앓았다. 이제 살만해졌나 싶었더니 이젠 앓는 소리가 저절로 났다. 그가 약을 들고 와서는 내 몸을 다시 일으켜 주었다. "규현씨, 약 먹고 자요." "으... 으으..." 도저히 눈도 안떠지고 목소리도 안나오는 상황이었다. 몸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만 그의 어깨에 머리를 픽 박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한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쥐고 다른 한손으로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집에 혼자 있었으면 이렇게 간호해 줄 사람도 없이 혼자 끙끙대고 있었겠지. 그 토닥임에 뭔가 울컥해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셔츠가 젖는걸 눈치 챘는지 그가 날 더 꼭 안아주었다. "규현씨 많이 아프구나... 뚝 해요. 내일 목소리 안나와." "흐윽... 흡... 흐으...." "안아프려면 약 먹어야 되요. 먹을 수 있겠어요?" 도저히 뭔가를 삼킬 수 있을 상태가 아니라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잠시 날 떼어놓고 약 봉지를 꺼내 약을 손바닥에 털어놓은 후 자신의 입에 털어넣었다. 뭐하는 거야...? 훌쩍거리며 그가 하는 행동을 의아하게 지켜보자 그가 씩 웃어보이며 물을 머금었다. 왜 내 약을 당신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그가 다가와 내 뒷 머리를 감싸고, "으읍..." 입을 맞췄다. 지금 이게 뭐하는...! 깜짝 놀라서 목을 뒤로 빼려고 하자 그는 힘으로 더 끌어당겨 자신의 입 안에 있는 약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얼떨결에 받아 삼킨 나는 그의 팔을 잡았고 그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지금... 뭐하신 거에요?" "목소리 나오네? 이렇게 바로 약효가 오나." "저한테 지금...!" "환자한테 약 먹인 거잖아요." "......" "사심 좀 보태서." 꺄악!!! 이렇게나 진도가 빠른 션규입니다ㅋㅋ 초면에 정말 말도안되는... 제 맘이니까여 걍 뽀뽀도 하고 키스도 하도 섹... 도 하고 다하자 그냥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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