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렇게 무의미한 나날을 소모적으로 보내던 내게, 그날은 마치 한 자락의 신기루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시에 그만큼 내겐 놀랍도록 뜬금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지난밤에 잠깐 날렸던 눈발 때문인지 도로 곳곳엔 하얀 눈들이 소복이 쌓여있었고 추운 날씨에 얼어버린 빙판길은 내가 내딛는 걸음걸음을 더욱 조심스러워지게 만들었다.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인 어스름한 새벽에 이리도 걸음을 재촉하게 된 사연이라 한다면 고교평준화-일명 뺑뺑이-라는 우리 지역 교육청의 방침으로 인해 원치 않게 집과 멀고 먼 학교를 배정받게 된 기억을 떠 올릴 수가 있겠다.
덕분에 우리 집 근처에서 학교까지 한 큐에 갈 수 있는 버스는 우리 집 뒤로 두 정거장만 가면 종점인 노선 하나 뿐으로, 배차간격도 넓어서 이 버스를 놓치게 된다면 그 날은 영락없이 지각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젊은 날의 치기로 자전거를 타고 등교해 보기도 했지만 한 시간 내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폐달을 밟아야 지각직전 교문에 닿을 수 있었기에 일주일도 못 가 포기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가 좋았지. 이젠 고등학교 생활도 눈 깜짝할 새에 1년이 흘러, 곧 겨울방학을 바라보는 시기가 왔다. -물론 말이 겨울방학이지 실질적으론 겨울보충이 더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시린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괜히 신발을 질질 끌며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출해 보지만 이런 나의 모습을 놀리 듯 시야엔 어느새 가까워져 있는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오늘이 몇 요일이더라. 맞다 오늘 수학 숙제 있었는데. 또 빠따로 엉덩이 때리겠지 씨발. 이렇게 삶은 좆 같다.
솟구쳐 오는 짜증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문득 어제 점심시간에 박찬열이 춤을 춘다고 나서다가 그 꼴을 옆에서 비웃고 있던 변백현과 엉켜 넘어진 모습이 생각나 다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치 눈이 멀었던 사람이 눈을 뜨고 난 뒤에 처음 본 세상의 색채에 매혹되는 것 같이, 매일 반복되는 흑백의 세상 속에 살던 나는 필연적으로 그 강렬한 색채에 이끌리듯 매혹되고 말았다.
살을 애일 듯한 추위 속에 나를 노려보듯 내려다보는 너와 그런 너에게 고개를 한껏 꺾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두 사람이요.”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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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개학인데 이제야 첫 글을 쓰는 이유라면... 글쎄요 나는 한참 썼다고 썼는데 왜 이리 짧뚱하지? 아 배고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