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의 여름은 목성.
여름의 증명
w. 랑데부
주먹만한 나라에 점만한 섬, 그곳에 들여다 보면 작은 동네가 있다.
매번 재개발의 농성이 울리고 범죄자들이 가장 많이 이사를 오는 동네. 목지성동, 사람들은 줄여 목성이라 불렀다. 태양의 직사광선을 적나라하게 먹고 아무도 즐거운 접근을 논하지 않는 곳. 목성이었다.
"...안녕하세요"
꽃모자가 냇물에 흘러 떠내려간다, 냇물은 어느 선산에 고이다 다시끔 떠내려간다. 새로 들어선 낯선 교실에 불어 치는 바람은 짠기를 잔뜩 머금고 들어선 그 애의 얼굴에 이따금 붙어 흐르다 곧 허공에 흩어졌다. 은은히 파도의 음율도 바람에 적셔 가끔 바닥에 차오르기도 했다, 반의 갯수라곤 각 학년의 두 반 정도였다. 학생의 수도 소녀가 내려온 지역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수로 형용할 수 없는 공허 역시 존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리저리 학교를 옮겨 다니며 하던 소개는 살이 떨어져 나갈대로 나가 있었다. 금새 떠날 수도, 아니 그렇게 아주 영영 떠날 수도 있는 교실에서 전할 이야기라곤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문장이 전부였다. 그녀가 앉을 자리는 굳이 짚어주지 않아도 눈에 들어찼다, 학기 중반에 불쑥 끼어들었으니 끄트머리에 소개도 깡그리 무시한 채 잠든 아이 옆으로 덜렁 빈 자리 한 켠만 있었다.
ㅇㅇ는 가벼운 가방을 뒤에 걸고 조용히 의자를 끌어 앉았다. 다들 새 얼굴의 궁금증을 안고 흘낏 돌아보는 시선이 한가득이었으나, 그녀는 시간에 해당한 과목의 책만 올곧히 바라보았다. 매번 겪는 어색함이었으나 특유의 이 첫 날은 더욱 갑갑했다. 돌아보는 시선을 피해 과목의 글자 배열과 시선만 꾸준히 주고 받다 텁텁해진 시야에 잠시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시야에 창문을 넘어가기 전 잠에서 깬 아이의 얼굴이 먼저 들어왔다.
"....안녕"
그 애는 금방 고개를 반대로 돌려 다시 누웠다, 아 괜히 인사했다. 나직히 건넨 인사는 그 애가 금방 깔아 뭉개 사라졌다.
***
"필수 동아리라 꼭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확인 해봤니?"
굳이 들어가야 한다면 골라 왔던 동아리들은 전부 선택 동아리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말만 필수 동아리지, 괜히 움직이지 않는 학생들을 자리에서 떼어놓기 위한 두 시간의 체육수업에 불과했다. 그리고 결론은 ㅇㅇ는 체육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번 종목들은 숨이 차다못해 그 원치 않는 답답함만 목에 메이는 것들 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수영으로 들어갈게요"
그나마 들어야 한다면 들어가야 할 동아리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과한 행동은 금지사항 중 하나였다, 천식에 배려깊은 운동 종목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으니까. 얼마나 다닐 지도 모르는 곳에서 아직 풀지도 않은 상자를 뒤집어 수영복을 찾았다. 발만 담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수업 따라가기에도 벅찬데 수영이라니 ㅇㅇ는 작은 손으로 몇 번의 마른 세수를 거듭했다.
수영부는 나름의 분리된 시간이 있었다, 학교 내 정식 수영부의 사용 시간을 합쳐둔 동아리 시간이라 발에 물이 닿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종아리까지만 찬 물에 담구고 훈련 모습만 근근히 눈에 담구었다 빼곤 했다. 그래도 살이 익어나갈듯한 태양 밑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수업이 끝나면 다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함께 샤워실을 사용하는 것보던 늦은 하교가 차라리 나았다. 한 시간이면 다들 나가는 거 같았다, 그렇게 물 몇 번 손에 매만지다 흘려보내는 애매한 기다림이 끝나고 몸을 일으켰을쯤 다른 목소리가 걸음을 붙잡아 돌아 보니 그 자리엔
"야"
"어?
"담엔 체육복 입고 와도 된다, 안 들어간다고 뭐라 하는 쌤도 없다"
"...아, 어"
다른 사람이 있는 지 몰랐으나 돌아보니 이틀 전 잠시 눈이 맞물렸던 그 아이였다. 아까 훈련하는 거 본 거 같은데, 집업을 채워 올리며 그 애는 말을 건넸다. 이 애매한 한 시간에 같이 있었나, 그 애는 곧 남은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짝인 걸 알긴 아는 건가, 그냥 말해준 건가.
"윤도운"
"..어?"
"윤도운이라꼬, 내 이름"
"니 내 짝 아이가"
아, 알고 있구나.
***
목성은 떠나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불분명했다. 도망을 가는 사람도, 숨을 거둬 떠나는 사람도, 도망쳐 오는 사람도. 어쩔수 없이 탐탁치 않은 모습으로 밀려오는 사람도. 불분명한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 어수선한 와중 목성은 두 부근으로 다시 나뉘었다. 이방인들의 나라, 토박이들이 재개발 반대를 내세우는 농성의 나라, 두 의미 없는 부근 두 개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앤 수영부 주장이라고 했다, 매일 들고 다니는 작은 가방은 항상 끄트머리가 젖어 물이 바닥에 고이곤 했다. 그리고 그 앤 반장이었다. 등교해 하교할 때까지 그리 반에서 존재를 각인하는 이가 아니었으나, 그 앤 반장이었다. 하교와 동시에 자습 시간이 되면 그 애는 수영장으로 갔다, 창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이 교내 수영장이었다. 항상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그 앤 운동장을 가로 질러 수영장으로 향했다.
"야"
"..어?"
"니 이거 아나"
그리고 의외로 그 앤 꼭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오늘도 나름 진도를 따라가다 그새 옅은 선잠에 밀려 잠들던 차 손목을 툭툭 찔러대는 인기척에 놀라 옆으로 향하니 문제집이 밀려들어 왔다.
"...아, 아 이거"
문제집엔 낙서가 반 장을 이루었지만, 반대로 계산도 빼곡했다. 다행히 모르는 문제에 허덕이지 않고 부분부분 풀어내다 보니 답이 나와 밀어주니 그 앤 작게 웃었다, 한 번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웃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자율학습이 끝나고 교실의 불을 그 애가 끄면 동시에 목성은 깊은 밤이 함께 찾아왔다. 열 두시만 되어도 밤바다의 얼굴을 비춘 별이 보이곤 했다, 학교의 소등은 섬의 잠을 기울였다. 어쩌다 보니 하교 길이 겹쳐 같이 걸었다, 그 앤 자전거를 끌었고 나는 발걸음을 끌었다.
"니 얼로 이사 왔나"
"어, 나는 저기. 보이려나 저쪽에"
"맞나"
삼개월 전 부서진 잔해를 미뤄두고 금새 지은 빌라였다, 급하게 쌓아 올려 이미 외벽의 부스러기가 조금씩 떨어지는 그럼에도 섬으로 들어온 새 빌라였다. 끝쪽에 밀려나 지은 터라 더 이상의 집은 없었으나 그 애는 자전거를 끌고 함께 걸었다. 이 근처 사나, 골목의 가로등이 또 나갔다.
"드가라"
"...어 너는, 어디 살아?"
"내는 저기"
저 옥탑. 반대 방향 그것도 가장 윗부근에 위치한 옥탑, 학교를 거처 더 아주 더 걸음을 옮겨야 다달으는 거리였다. 그리고 달은 희미해 그 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이유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이 시간 되면 엄청 어둡다, 여 가로등은 고쳐도 맨날 나가버리고"
"내 간다"
"...어? 어. 어 잘가"
바보 같이 손을 흔들었다, 그 앤 고개를 끄덕이고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돌렸다. 그 애가 조금 더 멀어졌을때 나는 조금 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문을 조용히 열어 그 애의 걸음을 쫒았으나, 그 애는 금방 사라져버렸다. 어제 꾼 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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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그래도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