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 되시면 끄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아닌 척, 모르는 척, 흔들리지 않는 척, 좋아하지 않는 척,
연기하고 살아가기를 2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 마련인데, 어째서 둘은 서로를 보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신이치의 명령에 종석은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고, 자연스레 종석을 지키는 우빈도 밖에서 활동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집으로 들어간지 6년 째 되는 해.
자연스레 우빈은 종석의 시선 밖으로 숨어 있었고,
종석은 그런 우빈을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다.
어느 날 마당에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누워 하늘만 올려다 보던 종석.
미동도 않고 누워만 있었던 탓일까,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종석의 길게 뻗은 팔의 그 끝, 손가락 위에 앉았다.
손가락이 간질간질한 느낌에 쳐다보니, 하얀 나비가 종석의 손가락 끝을 간지럽히고 있다.
내쫓으려 손가락을 들자, 잠깐 날아올랐다가 다시 앉는다.
종석은 그 나비를 보며 어느 깊은 밤, 술에 취한 신이치의 말이 떠올랐다.
종석을 보고 있노라면 옛 연인이 떠오른다, 그 연인은 하얀색을 좋아했다, 그래서 늘 하얀색 옷을 입고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팔랑거리는 하얀 나비 같았다.
그 연약한 나비의 날개가 짖이겨질까, 부서져 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그 날개는 처참하게 찢기고 말았다.
종석은 무늬만 다르고 온통 하얀색 뿐인 자신의 옷이 그를 위한 옷은 아니였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하길, 그렇다면 나도 저 하얀 나비와 같을까.
입을 모아 나비에게 후 하고 바람을 불어본다.
나비가 당황한 듯 날개를 팔락거린다. 하지만 이내 그 바람에 맞서 듯 한껏 힘을 내서 버틴다.
그렇게 한참을 종석의 손가락 위에서 노닐던 나비는 이내 나타났던 때처럼 어느샌가 사라져버린다.
종석은 방으로 돌아와 그림을 그릴 준비를 했다.
우빈이 따라와서 먹을 갈자, 종석은 먹을 가는 그 큰 손을 다시 한 번 잡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이런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압니다."
"근데 왜 굳이 니가 하는건데."
"안 하셔도 되니까 제가 하는 겁니다."
"...이런 건 내가 하게 놔 둬. 먹 하나 간다고 내 팔이 떨어지지는 않으니까."
가시 돋힌 종석의 말에 우빈이 잠시 멈춘다.
놓지마.
종석이 속으로 말했다.
그렇게 쉽게 놓지마.
다시 한 번 외치듯 말했다.
하지만 결국 우빈은 손에서 먹을 놓고 만다.
종석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엇을 참는 행동이었을까.
또 다시 그런 행동을 감추기 위해 붓을 들어 나비를 그리고 또 그린다.
우빈은 종석의 입에서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 라는 말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종석은 말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씁쓸한 안도감에 우빈이 창문 밖을 바라본다.
살짝 열린 틈 사이로 노을이 지는 것이 보인다.
곧 방 안에도 불그스름한 빛이 감돌고, 곧 가득 차게 되었다.
"...행복하십니까?"
여전히 창문 밖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연 우빈.
"...뭐?"
"행복.. 하십니까?"
"..나랑 농담 따먹기라도 하자는거야?"
"..그럼 행복 하고 싶으십니까?"
"...."
대답할 생각이 없는 종석은 입을 다물고 멈췄던 손을 움직여 다시 그림을 그린다.
속 모를 우빈의 말이 너무 답답하고 슬프다.
종석의 붓질이 거칠어졌다.
"전 행복하고 싶습니다."
"....?"
"그래서 전, 당신의 옆에 있고 싶습니다."
"....!"
창문 밖에서 자신쪽으로 시선을 옮겨 낮게 읊조리는 우빈.
종석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벌써, 2년이나 지났어.
"줄곧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버텨왔는데.
"이제.. 그만, 저를 보세요."
앞으로 1년만 버티면 된단 말이야.
종석은 끊임없이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우빈의 말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그만.."
"너야말로 그만해."
"..."
"뭘 보라는 거야."
종석이 붓을 놓고 우빈을 똑바로 쳐다봤다.
"널? 이렇게?"
우빈의 눈이 슬프다. 그 슬픔이 깊어 종석의 눈에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종석은 있는 힘을 다해 참는다.
"...혼자서..."
"....?"
우빈의 말이 답지 않게 떨린다.
"혼자서.. 혼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한 우빈의 말에 종석이 심하게 동요했다.
"3년이란 세월을 혼자서 감당해 내면, 그 다음은 어쩔 생각이셨습니까?"
"..너....?"
"보스의 말에 따라 2년을 참았습니다."
우빈의 칠흙같은 눈동자,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그 눈동자를 피해 종석이 고개를 떨궜다.
우빈이 알고 있다. 모든 걸.
"저는 참을 수 있습니다. 원래 감정 같은 거 느끼지 못하는 쪽이었으니까요."
"...."
"근데 그렇지 않은 당신이, 참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이젠 못 참겠습니다."
"...."
우빈의 말이 격하다. 그 답지 않게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종석은 무릎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감추려 연신 소매로 닦아내고 있다.
"이젠 그만하세요. 제가 당신을 생각하는 만큼, 당신도 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문도, 추측도 아닌 단정.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그 누가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저에게는 맞습니다. 한참을 생각했고, 변하는 당신을 보고, 아파하는 당신을 보고,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아니야.."
힘겹게 짜 낸 목소리.
우빈은 그 목소리에 굴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3년동안만 조용히 지내면 조직 내에서의 저에 대한 신임이나 능력판단이 떨어질 거라고.. 보스가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면 3년 후, 당신과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당신에게는 끝까지 말하지 말았어야 할 얘기였지만, 제 아픔보다 당신의 아픔 때문에, 그걸 보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그.. 그만해."
울먹거리는 종석의 말.
목이 메어 잘 나오지도 않는 말.
"그만하셔도 됩니다."
"...말.. 하지마...."
"....늦어서...."
우빈이 뜸을 들인다.
"..죄송합니다.."
결국 종석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참느라 메였던 목도 엉엉 울며 풀리고 있었다.
우빈은 가만히 종석의 옆으로 다가가 눈물을 닦아내는 손을 잡고,
자신쪽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겨,
따라오는 종석의 가느다란 몸을 꽉 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우빈의 품 안에서 울었다.
눈이 부어 잘 떠지지도 않을 만큼.
노을지던 하늘이 어두워지고,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종석은 울음을 멈췄다.
우빈의 어깨가 흥건하다.
울음을 멈췄는데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우빈.
"...나.."
"..."
"..다 울었는데.."
등 뒤에서 우빈의 기분좋은 저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2년치, 그리고 그 전 4년치, 그리고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그 전 세월만큼.."
"..."
"계속 안고 있을겁니다."
이제서야 만난 가족처럼 따뜻한 품 안.
이제서야 되찾은 듯한 보물같은 소중함.
이제서야 손 안에 넣은 소망같은 행복.
이 모든걸 한꺼번에 다 가지려는 종석의 손이 우빈의 넓은 등을 꼭 안았다.
"왜 이제서야 얘기한거야.."
"..보스의 말대로, 저라면 언젠간 당신을 데리고 도망치거나, 손목이든 발목이든 잘라서 조직을 나가거나,
상대 조직 보스의 목을 가져와 당신을 데리고 나갔을 겁니다."
"...."
"그렇게 당신을 포기할 수 없을 때에, 저를 포기하고 당신을 선택했을 겁니다."
"...."
"그러기 전에 보스는 이미 알고 저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우리를 위해 3년이라는 시간을 준 겁니다."
종석은 새삼 신이치가 치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만 주워 먹고 살던 저를 데리고 와 주신 분입니다. 누구보다도 저를 잘 알고,
그리고 누구보다도 저를 아껴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그 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
"그래서 그 말을 듣기로 한 것도.. 있고, 당신을 위해서.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한 겁니다."
종석은 다시 한 번 우빈의 등을 부여잡았다.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지금껏 보스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때리기도,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까지 했는데, 3년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못 들을 이유도 없었구요."
살인, 에 잠시 멈칫했지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기분좋아 종석이 우빈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제 1년만, 1년만 있으면 되겠지?"
"..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둘의 얼굴에 같은 미소가 번졌다.
처마 끝에 쳐진 거미줄이 다시 한 번 출렁거린다.
나비는 결국 혼자 힘으로 거미줄을 빠져나간다.
거미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비가 빠져나갈때까지 기다리는 듯이..
쓰고보니 분량 조절 실패. 좀 짧은가요? 너무 피곤해서 노트보고 대충 썼는데, 이제 위기가... 몇 번 없겠지만, ....? 스포 ㅋㅋ? 뭐 어쨋든, 만족하셨으리라 믿고.. 전 내일 개강이니 딥슬립 하러 가겠습니다 독자님들 재밌게 읽으시고 굿밤, 행쇼!!!!!!!!!!!!!!!! 오타발견, 의견, 비판, 피드백, 암호닉 감사~하게 받겠습니다!!!!!!!!!!!!ㅋㅋ 작기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