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식 호그와트가 보고 싶어서 만든 세계관. 해리포터와 유사성이 있을 수 있음.
* 세븐틴이 최다 인원이라 출연 빈도가 제일 높으므로 카테고리는 '세븐틴'으로 고정합니다.
* 이 편은 분량이 평소보다 좀 많은 것 같아요. .... 아님 말고!
* 노래가 있습니다.
음양학당(陰陽學黨)
복도에서 여주와 지훈은 한창 살벌하게 말싸움 중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간 머리끄댕이라도 잡고 싸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일신과 주작의 싸움에 옆에 있었단 죄로 끼여버린 토끼는 엄청난 신경전에 말리지는 못하고 옆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하필, 싸우는 것들이 일신과 주작이라, 신경전을 벌이면서 일신의 기와 주작의 기가 부딪혀서 생기는 엄청난 기운은 토끼 승관을 거의 울릴 뻔했다.
다행히도 토끼 승관의 눈앞에 구세주로 달려 나온 건 '특별 수업실 1'에서 나온 지훈을 제외한 나머지 사방신들이었다. 다른 때에 만났으면 무섭다고 도망쳤을 승관이지만 지금은 얼마나 이 셋이 반가운지 무섭다는 걸 인지 못하고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살려주세요....! 저 둘 좀 말려줘요! 으헝헝"
"...."
일단은 사방신이란 걸 인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앵기고 본 승관은 앵긴 상대가 동호란 걸 알자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주작의 기운과 일신의 기운에 정신 못 차리고 있었는데 백호의 기운 덕에 말짱하게 정신 차린 승관이었다. 그리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현무와 청룡도 있음에 승관은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아두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특별 수업. 굉장히 무서운 곳이구나. 사방신과 일신이라니. 이건 선생님들도 못 버틸 것 같은데 특별 수업해주시는 선생님은 대체 누구실까. 복도에 가득 채운 사방신과 일신의 기운에 승관은 머리가 잠시 어지러웠다. 사방신까지 나왔으니 나 이제 가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승관은 바로 사방신에게 인사를 하며 '저 둘을 부탁드리겠습니다!'하며 원래 목적이었던 '특별 수업실 2'로 곧장 들어갔다. '특별 수업실 2'에서는 해태들이 가득하지만 복도에 있는 이들처럼 마구잡이로 기운을 뿜어내지 않아 토끼인 승관은 편하게 말을 섞을 수 있었다. 자, 그럼 문제는 이쪽이다. 지훈과 여주 쪽.
"난쟁이 새끼? 말 다 했냐?"
"아니? 다 한 것 같냐? 아직, 한참이거든? 네 새끼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다짜고짜 시비를 걸질 않나, 요새는 면전에다 대놓고 욕을 하질 않나"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지훈덕에 여주의 귀에서는 스팀다리미처럼 뜨거운 증기가 나오는 듯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동호, 예빈, 시연은 썩어들어가는 여주 표정을 보고 어떻게 말려야 할지 생각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구는 욕 안 나오냐? 사람이 윤리의식이란 게 있으니까 참는 거지"
이제는 진짜 한계에 도달한 여주와 앞에서 여유롭게 여주를 비꼬고는 웃고 있는 지훈의 모습에 사방신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건지 말리기 위해 둘 사이에 개입했다. 그리고 지훈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여주는 지훈이 제일 빡이 칠 한마디를 생각하다가 그 말을 툭 뱉었다.
"반쪽짜리한테 윤리의식은 무리인가 봐"
분위기가 싸해졌다. 여유롭게 웃고 있던 지훈의 입꼬리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훈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텅 비어졌다. 그리고 빠르게 여주에게 날라와야 할 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입을 닫아버린 지훈이었다. 말리려던 사방신도, 그 말을 뱉은 여주도 여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지훈의 분위기 변화에 지훈을 잘못 건든 말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그 말을 내뱉은 여주도 지훈의 분위기 변화에 당황스러워 보였다.
사실, 반쪽짜리가 무슨 의미인지 여주 자신도 잘 몰랐다. 그냥 지훈을 자극하기 위해서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다 이제껏 봤던 지훈 중 풀이 죽게 만들었던 말을 해준 것이었다. 그 말이 기훈이 학교 앞에 왔던 날 지훈에게 했던 말이었고, 생각보다 타격이 큰 지 지훈은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텅 비었던 눈빛이 어느새 불꽃이 뒤감은 듯 살기를 띠고 있었다.
"오빠, 뭐 하는 거예요!"
"야, 이지훈! 뭐 하는 거야!"
"이지훈, 미친놈아, 이거 놔!"
지훈은 아무 말 않고 있다가 갑작스레 여주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그 행동에 놀란 나머지 사방신은 바로 달려들어 지훈을 말렸다. 정말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울 것처럼 싸우더니 진짜 뭐라도 하나 잡을 줄이야.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쪼그만 게 힘은 왜 그렇게 센 지 세 명이 달라붙어도 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놀란 건 여주였다. 여주는 지훈의 눈과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고 지훈의 눈은 '화'라는 감정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여주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없애고 그 모습에 비웃어주었다.
"너 되게 어이없다. 남한테 상처 주는 말은 잘 하면서 자기를 상처 주는 말에는 이렇게 반응하는 거야?"
"...."
"아, 이게 그 유명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심리인 건가?"
"여주, 너도 그만해!"
".... 오빠. 저도 할 말은 해야죠"
"...."
"반쪽짜리가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도 앞으로 말 조심해야 할 거야. 내 입에서 '반쪽짜리 주제에'라는 말이 나오... 악!"
결국 지훈은 계속해서 비아냥거리는 여주를 바닥에다 내동댕이쳤다. 이렇게 내동댕이 쳐질 때의 낙법은 못 배운 터라 그대로 엉덩이를 바닥에 박았어야만 했다. 여주를 내동댕이 친 지훈은 씩씩거리다가 몸을 휙 돌려 수업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엉덩방아를 찧게 된 여주는 아파하느라 지훈을 볼 세도 없었고, 예빈은 여주와 지훈을 번갈아보더니 교실로 뛰어들어가 지훈의 가방을 가지고 지훈의 뒤를 쫓아갔다. 남겨진 동호와 시연은 여주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엉덩이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폭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분위기에 서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교실로 들어와 앉았다.
엉덩이에 멍이 든 것처럼 앉을 때, 찌릿찌릿했지만 여주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이 한 말에 후회는 없었다. '세 번 참으면 호구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부합하게 행동했던 것이니 상관 없었다. 어찌 됐던 먼저 욕하고 시비 건건 저 새끼잖아. 자기만 상처받았어? 자기만 상처받았냐고.
아까 지훈의 텅 비었던 눈이 생각남과 동시에 했던 말들이 생각나자 다시 슬슬 열이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수업 종이 쳤고 동시에 예빈이 교실에 들어왔다. 예빈만 교실에 들어왔다. 예빈의 손에는 지훈의 가방이 들려있지 않았다.
일주일 후, 드디어 5월이 되었다. 5월이 되고 나서 처음 맞는 월요일 날, 전교생의 사물함에 시험 채점지가 놓아져 있었다. 각 과목의 채점지에는 무엇이 틀렸고, 틀린 이유, 답에 무엇이 부족했는지 개개인마다 설명되어 있었다. 또한 그 주 동안은 성적 정정 기간이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 후, 성적표가 전교생의 사물함에 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성적 정정을 모두 거쳐 나온 게 지금 놓여 있는 성적표인 것이다.
"아, 주술학 21등 했어. 퇴마사는 무리...."
"솔직히 이번에 요괴학 어려웠다. 인정?"
"아싸, 10등!"
성적표 덕분에 아침부터가 소란스러웠다. 생각보다 다들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에 여주는 머릿속에 정보를 하나 더 입력했다. 아, 여주 머릿속에 음양학당의 무슨 정보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음, 뭐, 음양학당 학생들은 웬만하면 다 시끄럽다. 그리고 대부분이 소문을 좋아하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 또, 쓸데없이 사방신을 무서워한다. 생각보다 불량학생은 거의 없다.-원우는 애매하다.- 이 정도랄까....
여주는 자신도 성적표를 확인하기 위해 긴장된 얼굴로 사물함을 열었다. .... 음? 왜 내 눈에만 성적표가 안 보이는 것 같지. 여주는 책밖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사물함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모두가 손에 들고 있는 종이 쪼가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도난 맞은 건가 싶었지만 잠금 주술이 걸려있는데다가 풀려면 여주의 싸인이 필요한데 사물함에다 손으로 휘적거리며 갈기는 싸인을 누가 외울 수 있단 말인가. 도난은 아닌 것 같았다. 아, 이게 뭐야. 궁금해 죽을 것 같은 여주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사물함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성적 담당 선생님한테 말씀드리러 가야지. 여주는 허탈한 마음으로 교과서를 집어 교실로 향했다.
"여주야!"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이다! 요새 무술부 때문에 같이 등교를 못 하니 볼 시간이 없네..."
종현은 교무실에서 나오는 참인지 손에 알 수 없는 종이 서류들을 잔뜩 안고 여주에게로 달려왔다. 무겁지도 않은가.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는 종현의 얼굴에 물어보는 걸 관두기로 한 여주였다. 시무룩한 종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건 민현이었다. 요괴 소동 이후로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 느낌에 여주는 종현에게 물어보았다.
"요새 회장 놈은 뭐하고 지내요? 학교는 나와요?"
"민현이? 음.... 밥 먹으러 학교는 오는데!"
"그럼 오늘 점심같이 먹자고 해주세요. 식당 앞에서 기다릴 거라고. 아, 오빠도 같이 먹어요"
"그래!"
이쯤 돼서 헤어지나 싶었는데 종현이 여주에게 뒤에서 뭐라고 말하였다. 다행히도 그걸 들은 여주였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여주야! 특별 수업하기 전에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로 와달래! 성적표는 본인이 가지고 있다고 하시던데?"
여주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안녕하세요. 두 번째로 들어와 보는 교장실은 언제 봐도 웅장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저 많은 책들을 교장선생님은 다 읽으셨을까. 엉뚱한 질문을 떠올리며 여주는 조심스레 규원이 손짓하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여주가 자리에 앉자 동시에 차를 내온 규원은 염동 주술로 손을 쓰지 않고 여주 앞으로 갖다 놓았다. 진짜 편해 보인다. 나도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저렇게 편하게 살아볼까.... 규원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것 같은 여주였다,
"신수학 시험 때, 잘 봤어요"
"...."
하필 첫인사가 신수학 시험이라니. 그날이 기억나는 여주는 속으로 쓴 물을 삼켜야만 했다. 신수학 시험 때, .... 다 보셨겠지. 뭔가 창피하고 부끄러운 느낌에 여주는 고개를 숙였다. 교장선생님인데다가 같은 음양의 신수를 가지고 있는 규원 앞에서 그렇게 싸워댔으니 부끄러운 마음을 느낄 만도 하다.
창피해하는 여주의 모습에 규원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여주 학생, 그렇게 창피해할 것 없어요. 여주가 규원의 말에 슬쩍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치자 규원은 시원한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신수와 다퉈가면서 서로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신수와 유대감을 쌓는 과정이죠"
"...."
"가은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고.... 그래서 신수학 성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규원이 하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건네는 말보다 안정감을 주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여주는 규원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한데.... 규원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꿀꺽 마셨다. 그리고 다시 한 모금 더 마셨다. 또, 한 모금 더. 세 모금을 마시고 나서 탁자 위로 찻잔을 내려놓는 규원이었다. 곧, 입을 열었다.
"성적표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우리 내기.... 한 번 결과를 봐야죠?"
"근데.... 왜 제 성적표는 선생님께 있어요?"
규원의 손에서 '딱' 소리가 남과 동시에 손에는 돌돌 말려진 흰 종이가 들려 있었다. 그 종이가 여주 성적표였다. 여주는 물었고 규원은 장난기가 서려있는 눈으로 답했다. 이런 건 둘 다 모를 때, 동시에 공개해야 재밌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몰래 가져왔죠. 의외의 장난스러운 규원의 모습에 놀랐지만 지금 규원의 손에 들려 있는 성적표에 시선이 계속 가는 여주였다. 신수학 시험 때문에 15등 물 건너 갔겠지.... 알 것 같은 미래에 여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똑똑. 규원이 흰 종이를 묶고 있던 빨간 끈을 풀고 있을 때 교장실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규원은 누구냐고 물었고 문 뒤에서는 남학생의 목소가 들려왔다. 저희예요. '저희'라고 하면 규원이 어떻게 알 수 있나 싶어서 여주는 문 쪽을 아니꼽게 바라보았다. 그냥 김새어버린 상황에 투덜대는 것이다. 그리고 여주의 생각과는 다르게 규원은 목소리만 듣고 누구인지 안다는 듯 바로 염동 주술로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꽃사슴 미모를 자랑하는 두 남학생이 들어왔다.
"이제 체육대회 예선전이니까 이거 풀어주셔야죠?"
"...."
들어오기 전 문 앞에서 규원에게 머리를 한 번 숙이고 들어오는 정한과 지수였다. 정말 꽃사슴 미모였지만 거의 한 달 가량 자주 마주친 덕에 이제 더 이상 얼굴에는 별 감흥이 없어진 여주였다. 정한은 스스럼없이 규원에게 돌진하면서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손목을 들어 보여주었다. 옆에 있는 지수도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정한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
자주 마주친 결과, 이 둘은 앙숙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여주는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을 바라보았다. 정한과 지수는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동시에 옆을 바라보았고, 마주친 여주에게 정한은 인사를 건넸다. 어? .... 안녕, 여주야. 네, 안녕하세요.
정한과의 대화는 이게 끝이었다. 원래라면 이것저것 다정하게 물어봐야 할 사람인데 급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규원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내는 모습을 보니 여주는 뭔가 새로워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간은 잘 채웠나요?"
"당연하죠! 하루에 꼬박 열두 시간씩, 일 미터 이하로 떨어져서 다녔다고요"
규원의 물음에 약간은 발끈한 듯 지수는 눈에 불을 켠 채 또박또박 말하였다. 여기서 여주는 둘 사이가 앙숙인 사이라는 것 말고 또 하나를 발견했다. 둘 사이에는 항상 '시간'이라는 주제가 존재했다. 도서관에서도 그렇고 그밖에 만났던 날들 중에 시간 얘기가 꼭 한 번은 있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흥미로워 보이는 둘 사이에 여주의 의문은 더욱 증폭됐다. 그리고 충격적인 건 서로 그렇게나 싫어하는 데 열두 시간씩 붙어 다녔다는 그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것도 일 미터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니.
이때까지 둘을 만났을 때마다 어쩐지 그렇게 가까운 듯 아닌 듯 붙어 있었던 이유가 일 미터를 지키려고 그랬다는 사실에 여주는 속으로 감탄했다. 여주, 자신은 죽어도 죽을 듯이 싫어하는 사람과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예를 들자면 지훈이려나. 지훈을 생각하니 다 나은 엉덩이가 다시 아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럼 시간을 확인해볼까요"
규원의 말에 정한과 지수는 익숙하다는 듯 주먹을 쥐고 손목을 규원에게로 내밀었다. 규원은 그 두 사람의 손목을 잡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여주는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았지만 정한과 지수를 둘러싼 채로 파란빛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거기에 집중한다고 듣지 못하였다.
어딘가 익숙해 보이는 파란빛은 도서관에서 잠시 보았던 파란빛이었다. 파란빛은 금방 사라졌고, 파란빛을 대신해서 정한과 지수의 손목 바로 위, 공중에 회중시계 두 개가 떠있었다. 규원은 그 시계를 가져가서 시계를 자세히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반 동안 정말 잘 채웠네요!"
"이 짓을 2년 동안 했는데 시간 채우는 건 껌이죠"
"그럼 좀 친해졌겠네요"
"아뇨"
"절대요"
규원은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정한과 지수를 칭찬했다. 그러자 정한은 코웃음을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모습에 규원은 눈썹 한 쪽을 쓱 올리더니 친해졌겠다고 말하였고, 정한과 지수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주는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 규원이 정한과 지수 보고 하루에 아홉 시간 이상, 일 미터 이하로 떨어지지 말라고 말했고, 그 둘은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했다. 그리고 그건 정확했다.
"그럼, 이제 체육대회도 있고 하니 시계는 잠시 멈춰놓도록 하겠습니다"
"아싸!"
"예쓰!"
규원이 아까 시계를 만지작대던 건 시계를 멈춰놓기 위함이었던 건지 시계를 멈췄다며 다시 정한과 지수의 손목 위,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그 시계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정한과 지수를 파란빛이 둥글게 감싸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한과 지수는 볼일이 다 끝나다는 듯, 바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교장실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모르겠지만 싸우는 소리..... 다 들린다. 규원은 그 소리를 들으며 푸흐흡하고 웃어넘겼다. 진짜 저렇게 징하게 싸우는 것도 힘들 텐데, 저런 싸움을 2년 내내.... 아니, 승관이 말로는 초등학당때부터라고 했으니까 족히 10년 넘게는 했겠네. 어우, 생각만 해도 질려. 여주는 문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 그럼 우리는 우리 얘기를 해볼까요?"
정한과 지수의 등장에 밀렸던 성적표 발표 시간에 여주는 살짝 긴장했다. 신수학 실기 시험 때문에 이미 십 오등은 물 건너갔음을 알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이상하게도 설마 하는 마음이라는 게 슬며시 피어났다. 규원 손에 들려있던 흰 봉투가 열리고 봉투 속 성적표가 규원의 손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탁자 가운데서 여주도 볼 수 있게 펼쳤다.
아, 아니 그렇게 갑자기 펼치시면....!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여주는 규원에 의해서 갑작스레 자신의 성적을 봐야만 했다. 국어 90점, 수학 92점, 영어 89점,-국영수는 굉장히 쉽다. 무영 세계 중등 수준. 중학교 때 받지 못한 점수를 여기서 받은 여주였다.- 한국사 85점, 체육 B 마이너스, 퇴마론 A 플러스....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여주는 퇴마론 점수를 보고 기쁨을 느낀 여주는 몸을 살짝 움찔거렸다.
다른 때에 받았으면 소리라도 한 번 질렀을 텐데 규원 앞이라서 자제한 것 같았다. 기쁨도 잠시, 문제는 맨 밑에 나와 있는 '신수학'이었다. 얼마나 개판일까 싶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수학 부분을 확인했을 때 여주는 깜짝 놀랐다.
".... 신수학이 C 마이너스....? 뭔가 잘못된 거...."
"푸흡. 아니에요. C 맞을 겁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싸워서 화해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유대감을 쌓았다는 게 증명이 된다고"
".... 하... 하하하하"
F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여주는 의외의 점수에 웃음이 나왔다. 예상치 못해서 그런지 뿌듯함은 커졌다.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게 느껴지는 여주였다. 사실, 점수 옆에 32/32.... 그러니까 1학년 중에서 꼴찌라고 적혀 있었지만 가뿐히 그건 무시하고 오로지 F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여주였다.
이제 성적표 맨 밑에 있는 전체 등수를 봐야 했다. 그걸 보기 위해 시선을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손이 종이 위를 막았다. 아, 뭐야. 여주는 인상을 살짝 쓴 채로 앞을 바라보니 규원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왜 가리시는 거예요. 여주가 투정하듯 물었다. 규원은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한 번에 공개하면 재미없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전체 등수의 앞자리만 손을 슬쩍 치웠다.
"...."
"오, 앞자리 수가 1이네요"
그래도 15등은 못할 것 같은데. 여주는 알아서 자신의 위치를 생각했다. 신수학 빼고 다른 걸 잘 봤으니까 십 칠... 18등 정도는 하지 않을까. 여주는 별 감흥이 없는 눈빛으로 쳐다봤고 규원은 신이 난 표정으로 재빠르게 성적표에서 손을 뗐다.
"10등이네요"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10등이면 신수학 꼴찌했는.... 네?"
"축하해요. 15등 안에 들었네요"
여주는 눈이 커진 채, 성적표를 재빠르게 다시 확인했다. '종합 성적 - 10/32' 정말 10등이었다. 여주가 눈만 커다랗게 뜬 채, 성적표와 규원 얼굴만 왔다 갔다 보고 있으니 규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여주는 10등이라는 등수가 얼떨떨했다. 이게 뭐야. 무영세계에서 학교 다닐 때, 뒤에서 10등은 해봤던 것 같은 기억이 살짝씩 떠올랐다.
전체 32명 중 10등이면 꽤 높은 상위권 등수에 너무 놀란 여주였고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여주를 위해 규원이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여주 학생 말대로 신수학이 꼴찌여서 저도 불안했었는데"
"크흠, 너무 꼬집어서 꼴찌라고 말을...."
"국, 수, 영, 그리고 퇴마론이 다른 학생들보다 월등히 잘 나와서 신수학 커버가 가능했던 것 같네요"
"...."
"보시면 등수가 다 한 자릿 수잖아요"
규원의 말에 아까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등수들을 보니 정말 '2, 2, 7, 1'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여주는 퇴마론은 그렇다 치고 국어, 수학, 영어는 무영 세계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음양학당은 퇴마가 주요 과목이니 무영 세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쉬웠던 것도 있고, 할머니와 고등학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 준비로 타협했던 탓에 열심히 공부했던 것이 득이 되었던 것 같다. 살다가 그쪽 세계가 도움이 되는 날이 오다니. 여주는 그 사실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었다.
"자, 그럼 내기는 여주 학생이 이겼으니 저희가 알아낸 사실들을 알려드리도록 할까요?"
".... 아"
여주가 기대감에 차있는 와중, 하필 종이 치고 말았다. 둘 사이에는 정말 만화처럼 점, 점, 점을 새긴 것 마냥 순간 정적이었다. 규원은 곧 환하게 웃으며 '얘기는 수업 끝나고 마저 할까요?'하며 여주를 특별 수업실로 내보냈다. 여주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로 들어서니 이미 수업이 시작된 후였다.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고 자리에 들어간 여주다. 옆에 앉은 지훈은 여주가 문을 열 때부터 쳐다도 보지 않고 칠판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이 없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수업 내용은 음기의 사용법이었다. 사실 들어도 별 감흥이 없는 여주는 졸린 눈으로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혜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혜린은 여주의 곁으로 찾아왔다. 갑자기 벌을 하나 준다고 하였다. 여주는 벌을 하나 준다길래 수업시간에 졸아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지각한 벌이라는 소리에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지난 주에 지훈에게도 땡땡이친 벌을 줬던 혜린이니까. 그 벌이 뭐였더라.... 되게 고약한 거였는데. 예빈이 지훈을 놀리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내일까지 음의 숲에서 '묘괴(卯怪)의 당근'을 하나 가져오면 벌점은 면하게 해줄게"
그렇게 해서 여주는 지금 음의 숲, 바로 앞에 와 있었다. 앞에 울타리라고 쳐놓은 건지 고작 철사 한 줄로 막아 놓고 있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오는 여주였다. 그래도 철사를 보니 두 달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그때가 원우와의 첫 만남이었나. 그날의 고생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떤 놈이 뒤쪽 입구에 있는 철사를 잘라 놓은 건지, 다음번에 알게 된다면 뒤통수를 한 대 쳐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여주였다. -잘라 놓지만 않았어도 여주가 길을 헷갈릴 일은 없었을 테니- 여주는 조금 뒤로 떨어졌다 달려서 철사를 뛰어넘었다. 중학생 때, 뜀틀 하나는 잘했던 여주였다.
무영 세계에서 적응되었던 몸이 점차 풀리고 있는지 음의 숲에 들어간 여주는 음기에 눌려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음기에 몸이 굳어졌다. 그래도 일단은 들어가 봐야 하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겨야 했다. 무거운 발을 억지로 떼서 들어가 보니 음의 숲은 발현식 날과 다를 게 없었다.
우거진 나무들과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푹신푹신한 흙. 달라진 게 있다면 나무들 사이에 밝은 햇빛 대신에 노을진 빛이 들어오고 있는 점과 음의 숲을 느끼는 여주의 느낌이겠지. 그날, 민경이 원우를 데리러 왔을 때를 생각해보니 원우를 하나 잡겠다는 신념으로 이곳을 들어온 민경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계속 나아가도 같은 곳만 반복되는 느낌에 여주는 슬슬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음기가 진해서 조금 정신이 어지러운데 나와야 할 게 나오지 않으니 더 짜증이 났다. 묘괴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되는 거야. 혜린이 준 정보라고는 딸랑 손에 쥐여준 민들레로 경계심을 풀라는 것밖에 없었다. 짜증으로 인해 얼굴이 한껏 구겨진 여주는 그래도 계속해서 발을 내디뎠다.
부스럭. 어디선가 여주의 움직임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여주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아무것도 없어 다시 고개를 돌려 계속 걸었다. 부스럭, 부스럭. 아, 뭐야. 여주는 안 그래도 구겨져있던 얼굴을 더 구기고선 소리가 난 쪽으로 쳐다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요괴가 지나가는 건가. 음의 숲은 요괴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숲으로 여주의 추측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요괴가 있다고 생각하니 여주는 살짝 겁을 먹었다. 여주가 처음으로 본 요괴는 하필, 그날 징그럽고 거대했던 그 요괴였으니까. 그 요괴가 생각나는 바람에 그때 여주의 뒤에서 칼을 겨누었던 미친놈-여주는 그날 이후로 정한 호칭이다.-이 생각났다.
시험기간에 치여서 잠깐 잊고 살았었는데 떠올리자 여주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몸을 떨었다.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이 나자 그날 있었던 남자의 목소리, 남자의 차가운 손, 남자의 들숨, 남자가 겨누었던 칼까지 되살아나는 기분에 여주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쪼그려 앉았다.
그날 있었던 일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더 생생하게 느껴져 눈을 감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여주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새삼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내가 약한 거야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 남자를 그렇게 무서워했을 줄은 몰랐네. 그래, 그 남자한텐 여주를 떨게 만드는 '살의'라는 게 있었다. 그 '살의'가 여주의 살을 그렇게 떨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저벅 저벅. 여주의 뒤에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여주의 신경은 곧장 그쪽으로 곤두섰다. 지금 여주 상태가 상태인지라 여주는 덜컥 겁을 먹었다. 만약, 또 그 남자이면 어떡해. 물론, 가능성은 엄청나게 낮지만 '혹시'라는 말은 여주의 생각을 합리화시키기엔 충분했다. 몸이 점점 떨려오는 걸 느꼈다. 그날의 부작용과 몸을 무겁네 짓누르는 음기가 여주를 일어서지 못하게 했다. 이젠 식은땀까지도 나는 것 같았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가깝다.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여주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떼어보려고 온 힘을 주었다. 드디어 일어날 수 있었던 그때, 뒤에서 걸어오고 있던 이가 여주의 어깨를 턱하고 잡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여주는 뒤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남자는 아니겠지. 설마 방어 결계가 엄청난다는 음양학당에 어떻게....
그날, 뉴스가 생각이 났다. 민현이 결계를 쳐놓았던 곳에 손쉽게 들어갔다고 학교에 작게 나마 이야기를 하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원래 요괴라면 민현의 결계는 다 튕겨져 나가고도 남는다고 하던데. 그 생각이 드니 음양학당에도 조금 애를 써서라도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여주였다.
"너, 여기서 뭐 해"
.... 전원우? 원우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리자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여주는 원우의 얼굴이 보자마자 안도감을 느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한 번 내쉰 여주는 원우를 바라보았다. 깜짝 놀랐다고 타박하려다가 별안간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 얘는 이렇게 음기가 넘치는 곳에서 항상 땡땡이를 쳤던 건가. 여주가 원우의 얼굴 기색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원우는 얼굴의 어느 한 곳 불편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얜, 뭐지.
- 다음 편에 계속
+ 흐흠 원우의 설정이 이제야 터지는 걸까.... 30화 넘게 와서야... (절레절레)
+ 승관이가 쫄았던 동호와 예빈이의 표정은 아무 생각 없이 지은 표정이랍니다 ^0^ 걍 승관이가 혼자서 쫄은거....ㅇㅇ
+ 지훈이가 못되보이게 나왔는데 요새 지훈이가 심란해서 저렇게 스트레스를 해소했슴다... 잘못된 방법으로 해소ㅎ 작품상 열여덟이니 잘못된 방법을 쓸 수 있으니 봐줍시다!
+ 지훈이가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한 부분에서는 생각보다 여주가 착하지 않단 걸 보여준 장면이 되기도 한 것 같네용... 그 전 편들만 봐도 그렇게 느껴지겠져...?ㅎ
+ 정한이와 지수의 관계가 밝혀졌습니다! 흑막은 교장쌤ㅋ0ㅋ 왜 그렇게 교장쌤이 하라했는지는 나~~~~중에 나올 예정입니다.
+ 앗, 체육대회 편은 바로 다음 화부터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하하핫... 다음 화부터 바로 체육대회를 시작하기 위해서 이번에 분량 좀 몰빵ㅎㅎ
+ 와 인물소개는 할 만한 게 아니었어여.... 저거 수정만 몇 번 했는지 몰라요(울컥)
+여러분 메리 추석~~~~!! 저는 추석 때 올 수 있으면 한 번 더 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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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 롕 3536 젠부 딸기빵 0846 마릴린 요플레 서랑감자 딩동 랭 체리콘 뿌랑둥이 리아 밍 도달도달 뱃살공주 0916 래번클로 몬 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