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물의 클리셰
04 , 배신의 이해
"전정국."
"응, 여주야."
"너 알고있었지?"
"…."
"… 김태형도, 알았어?"
몸에 지민의 피를 묻히고 돌아온 여주의 표정은 슬픔이 가득했다. 정국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충고라든지 혹은 위로라든지 하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곳에서 여주가 느꼈을 배신감은 오롯이 지민의 몫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말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자신 같아도 그랬을거라고, 수십번을 되뇌며 왔지만 정국을 보자마자 쏟아지는 설움은 이미 제어가 불가능했다. 원망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서러웠다. 지민의 죽음에 한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던 저도, 그래서 지민을 찾는데에 눈이 뒤집혀 온 곳곳을 뒤지고 다니던 태형을 애써 어른스러운 척 말렸던 저도, 어느 순간부터 지민을 찾기는 커녕 말도 꺼내지 않는 태형을 그저 이제 안아파 다행이다 안아줬던 저도. 순간순간의 저마다 모두 서러웠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가만히 제 품에 안겨있는 여주를 한참동안 토닥였다. 거기까지였다. 정국이 태형을, 윤기를 대신 할 수 있는 일은. 정국이 지민을 대신할 수 있는 일 또한.
여주는 사고를 쳐놓고도 뻔뻔하게 주인이 안아주기를 기다리는 고양이 마냥 침대에 가만히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던 태형의 품에 안겨들어갔다.
어쩌면 전정국은 젖어가는 김태형의 셔츠조차 부러웠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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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너 여기서 밤샜어? 구급 상자는 왜…"
이리저리 널부러진 비상 약품들과 붕대들의 흔적을 쫓아 제 책상 옆에 앉아서 열심히 붕대를 감고 있는 지민을 발견한 호석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지민의 의자 위에 대충 걸쳐진빨갛게 물든 제복 와이셔츠와 의자에 앉은채로 당한건지 한가득 묻은 피를 차례로 훑은 호석이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지민을 보자 그새 붕대를 다 감은 지민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탄탄한 몸에 붕대까지 감아놓으니 곳곳에 묻은 피까지 더해져 제법 영화같은 장면이었다.
"저 봤어요, 김여주."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호석과 그의 뒤에서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으로 지민을 쳐다보고 있는 남준을 향해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제복 안입으면 폼 안나서 싫다더니, 그거 세탁할 동안은 사복 입어야겠다?"
"팀장님,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쟤가 아무리 웃으면서 말해도 이건 심각한 일이라구요."
"알아알아, 모닝 커피 한 잔 정도는 하고 얘기해도 괜찮잖아? 치료도 잘 했구만."
"김남준."
"한번은 찾아올 줄 알았어. 그게 지민이가 된건 유감이지만."
스타벅스 커피만을 고집하던 남준이 웬일로 다른 메이커의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웬일이십니까. 그저 작은 호기심만을 담고 던진 질문에 남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주 별 거아니라는 말투로,
"문을 못열었더라고."
"못연건 뭐에요?"
"안연게 아니라 못연 것 같아서. 그냥 느낌이."
"아 뭐라는거야 진짜. 누구는 심각해죽겠구만. 애 상태 안보입니까?"
"저 괜찮습니다 선배님. 대한민국 경찰이 이런 걸로 골골대서야 되겠습니까?"
"까분다, 박지민."
"선배님들 한테야 제가 후배지 이래뵈도 저도 경삽니다."
괜히 단호하게 말하며 어른인 척 하는 어린 애처럼 힘을 주는 지민에 한마디 하려던 호석이 모여보라는 남준의 말에 묻혀들어갔다. 남준의 자리에 있던 언제 빤 것인지도 모른 후드티를 주워 입고는 킁킁대더니 인상을 찌푸리고 다가가는 지민의 이마를 콩 쥐어박은 남준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이게 뭡니까?"
지민의 물음에 남준은 말없이 문자를 다음으로 넘겼다.
One should never listen to the flowers. One should simply look at them and breathe their fragrance.
지민이 침을 삼켰다. 티 안나게 긴장을 숨기는 법은 익숙했다. 티 안나게 입술을 깨무는 법도.
「유명한 작가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대. 꽃들의 말에 절대로 귀를 기울이지 말라. 그저 바라보고 향기만 맡아라. …가지마. 나랑 있자, 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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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의 품에 안겨 한 밤을 내내 지새운 여주가 윤기의 요리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잊고 싶다고 해서 잊을 수 있는 기억도 아니었고 미워하고 싶다고 해서 미워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기에 여주는 그저 자는 태형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침대에서 나와 음식 냄새를 따라 식탁에 앉아서 윤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 잤어?"
"퍽이나요."
"여주야."
"왜"
"미안해."
"… 오므라이스 먹고싶어."
"하고 있잖아, 너 먹고싶을 줄 알고."
윤기가 여주를 향해 옅게 미소를 짓자 여주도 따라 웃었다. 그저 그것이 그들의 전부였다. 그저 그 곳이 그들의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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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 이번엔 조금 늦게 찾아와ㅏㅆ네요 ,,ㅎㅎ
여러분 재밌게 읽으셨으면 댓글 달아주시면 힘이 나요
조회수 신알신수랑 댓글수가 너무 차이나면 저도 사람인지라 슬퍼욥 ㅠ
다들 추석 잘보내시구 맛있는거 많이 드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