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2년 5월 5일
어제부로 내 나이 마흔일곱, 꽃중년이 되었다.
공부에 찌들었던 고등학생시절이 엊그제만같은데 벌써 중년에 접어들고있다.
정말로 시간이 설겆이 로봇이 접시닦듯 빠르게도 흘렀구나… 하는 생각이들며, 살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주말의 이른 아침, 남편은 오늘도 직장에 나갔고 성인이된 자녀들은 뭐, 이놈의 집구석에 하루라도 쳐박혀있는날이 없으니까.썩을것들.
홀로 멍하니 거실한켠에 앉아있으니 무료한 기분이 들어 오랫만에 컴퓨터앞에 앉았다.
30년 전 만해도 조작도 간편하고 다루기가 쉬워 시간날때마다 마치 숨쉬는것과 같이 컴퓨터를 두드렸었지만
요즘엔 날이 가면 갈수록 최첨단으로 진화해서 다루기가 영 어려워 꽤 오랫동안 멀리했었다.
오랫만에 컴퓨터앞에 앉으니 뭔가기분이 최첨단디지털스러워서 어색해하고있었는데 그러고보니 키보드와 마우스가 보이질않는다.
아참, 그러고보니 요즘은 모니터가 사람 동공의 움직임을 인식해서 키보드와 마우스의 기능을 대신 한다지?
이런식으론 한번도 컴퓨터 해본적이없어서 그냥 때려치울까…하고있는 찰나에 아직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할수있도록 구성되있는
본체가 보인다. 그에 기쁜마음으로 구식 키보드와 마우스를 찾아서 본체에 연결하니 마치 내가 어렸을때처럼 컴퓨터가 수동조작으로 바뀌었다.
“ 막상 컴퓨터를 켜니 또 할께 없구만… ”
엄청 심플해진 인터넷 창을 여기 저기 둘러보며 뭘 해야하나 고민하고있는데
그때, 문득 어렸을적 습관처럼 들어가곤했던 포털사이트하나가 떠올랐다.
“ 아, 그래! 그 초록색사이트!! 이름이 인스티즈였던가…? ”
주룩주룩인가 주르륵인가하는 운영자가 운영했던 포털사이트였던것같은데 벌써 30년도 더 된 사이트라서
아직 있을지가 걱정이였다. 아니, 유지되고있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잘 관리되고 있을지 모르는일이였다.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검색창에 인스티즈라고 치자마자 연관검색어에 ‘인스티즈 초대번호’ , ‘상근이’ 등이 뜬다. 아!!! 그래 기억난다 기억나. 상근이.
어느새 아득했던 옛 기억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걸 느끼며 사이트가 아직 있나 살펴보니
매우 놀랍게도 인스티즈는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라지지않고 유지되고있었다.
내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함께보낸 포털사이트가 이렇게 오랫동안 장수하고있는게 대견하게 보였다.
왠지모를 뿌듯함에 콧구멍을 벌렁이며 메뉴를 살펴보니….
뭐야, 자유잡담, 연인잡담, 글잡담……쉼터 까지 내가 인스티즈를 떠나고 난 뒤로 전혀 달라진게 없었다.
내가 인스티즈를 떠난게 2012년… 그때부터 현재까지 유지는 되어있는데 달라진게 아무것도없다니
심지어 접속자수도 여전히 많기만 한데… 신기하게 느끼며 인티포털을 살펴보니 이게 왠일!? 모든 게시물이 등록된날짜가 2012년 5월에서 멈춰있었다.
최근게시물까지 모두 2012년 5월이 마지막이였다. 이게 뭔가 싶어서 접속자수를 살펴봤지만 접속자수는 50000명을넘긴 어마어마한 수….
이 많은 접속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2012년 이후부터 게시물을 안올린건 아닐테고, 그렇다고 글쓰는게 제한되있는것도 아닌데….
어안이 벙벙해서 인티포털을 계속 살피니까 놀랍게도 1분에 몇개씩 새로운 게시물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있는상태였다.
그러나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게시물들도 모두 2012년의 날짜로 업데이트가 되고있었고, 심지어 게시물의 내용또한 2012년도에 화제가 되었던
내용들이였다. 예를들면
‘ 꽃다운 20살 아이유, 신곡발표 ’
아이유…아이유. 얼마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이름이던가.
내 기억이 맞다면 아이유는 이미 10년도 전에 연예계를 은퇴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있는게 맞다.
게다가 20살이라니, 아이유 이제 쉰살이다.
멍하니 기사를 읽으면 읽을수록
옛말이 떠올랐다.
멘. 탈. 붕. 괴.
거의 반쯤 넋이 나간상태로
내가 자주 놀았던 익명잡담방에 들어가니 그곳또한 2012년 내가 놀았던 상태 그대로 여전히 잉여스러웠다.
‘ 나 피자로 원푸드다이어트 할꺼임’
‘익인들아 우리 조선시대드립 치고놀자’
‘통닭시켰다’
‘와나 설리녀대박ㅋㅋ설리녀 봤음??’
정말 딱 내가 놀았던 그때 그대로 멈춰있었다.
“ 서… 설마… 내가 지금, 인터넷상으로 시공간을 초월한건가!!?!? ”
한동안 경악을 금치못한채 두 눈알만 또르르 굴리고 있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글쓰기를 눌렀다.
(난 예전부터 현재까지 단 1개의 아이디와 비번만 고집해서 로그인은 벌써한상태)
‘ 저는 2042년 미래에서 온 익인입니다.. ’
+ 여기에 첨 써보는데 이렇게 써도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