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강중위랑 연애하는 썰 1
카니발(Carnival)
w. 랑데부
1900년대 영국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흡하지만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세워요"
"세워요 당장"
차 새로 뽑은지 얼마 안됐다며, 다시 뽑게 해줘? ㅇㅇ는 창문을 똑똑 노크했다. 이 하나로 쭉 뻗은 좌우로 그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 세워달라니. 이 여자도 참 대단하다. 상대는 알겠다며 순순히 ㅇㅇ를 내려주었다. 우리 다신 보지 맙시다 응? 아빠한테 잘 말해요.
"자, 출발"
오케이 그대로 출발 나는 알아서 걸어가든 태워가든 갈테니 비호감 너는 출발, ㅇㅇ는 친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길에서도 보지 맙시다 비호감씨. 이름을 알려준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까먹었다. 아무렴 어때 내가 쟤 이름까지 굳이 기억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당당하게 차에서 내리긴 했으나 딱 일차선 도로였다. 좌우론 초원과 목장 울타리 뿐이었다. 나 집에 어떻게 가?
"에라이 시발"
이 상황에 고운 말은 안 나가지. 당연한 거 아니야? 아니 어디로 가냐고 묻기나 하고 내릴 걸 너는 무슨 생각으로 내린 거야 진짜. ㅇㅇ는 뭉친 종아리를 꾹꾹 매만지며 신고 나온 붉은 구두를 바라보았다. 선본다고 구두장이인 부가 친히 만들어 신겨준 구두다. 그래 네가 좋겠다. ㅇㅇ는 망설임 없이 한쪽 구두를 벗어 손가락에 걸었다.
"와 이 정없는 시대를 봤나"
중요한 건 그 구두도 별로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이 없는 건가 다들, 이렇게 히치 하이킹을 하는데 모든 차가 쌩쌩 그것도 몇 대 안 다니는데 다들 쌩쌩 허 참. 다섯대를 보내고 적어도 두 시간은 흘려보낸 ㅇㅇ는 손을 포플린 드레스에 쓱 닦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굶어죽는 거나 치여 죽는 거나.
"어어 스탑스탑, 어!"
조금 더 도로에 나와 마주오는 차에 붉은 구두를 마구 흔들었다. 어 실수, 그 붉은 구두는 사이드 미러를 쭉 긁고 그 차는 조금 나아가 멈춰 섰다. 우선 성공은 했는데,
"뭐하십니까?"
"차 좀 얻어탈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초행이라 태워드릴 수 없,"
"브랜튼 5번가 거기까지만"
어차피 탈 거였어요 그렇게 신사적으로 사과하지 마요. ㅇㅇ는 무작정 앞좌석 문을 벌컥 열고 앉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히치하이킹이요.
"자 출발"
"내리시죠"
"아 한번만요. 정말 사례 꼭 할게요 네? 아 제발"
운전대를 쥔 남자는 잠시 한숨을 내뱉고 머리를 쓸어올렸다. 브랜튼이요? 출발하겠습니다. 안전벨트 매세요. 남자는 ㅇㅇ의 구두를 ㅇㅇ의 발 앞에 내려 놓아주고 악셀을 밟았다. 굉장히 조용했다, 그 흔한 라디오도 음악도 없었고 유일한 소음이라곤 ㅇㅇ가 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 뿐이었다.
"운전 되게 잘하시네요"
"네"
와 칭찬에 "네"라고? 이 사람도 캐릭터 이상해. 뭐야, 조금 그 싸늘하게. ㅇㅇ는 더이상 말을 걸지 않고 왼손으로 운전대를 쥔 남자의 차림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트렌치코트와 넥타이, 아 무엇보다 군모를 쓰고 있었다. 아 군인인가?
"혹시 군인이에요?"
"네. 휴가 나왔습니다"
"아, 그럼 지금 나오셔서 집으로"
"네 가는 길이고요"
당신이 차를 덜컥 탔네요. 처음으로 남자는 "네"이후 다른 말을 뱉었다.
"저도 거기 살거든요"
"정말요? 어디에요?"
"세부사항 말 안 해도 되면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 내가 너무 갔네요. 미안해서 어쩌나, 아니 그래도 같은 동네 사는데 물어볼 수도 없나. ㅇㅇ는 입술을 삐죽였다. 남자는 조용히 운전대를 틀었고 ㅇㅇ는 다시 창문에 기대었다. 여전히 그 구두 한 짝은 그대로 벗어둔채 말이다.
2.
"..하 내가 왜 간다고 일을 쳐서"
아 담배냄새, 하 진짜. ㅇㅇ는 소박하게 챙긴 짐가방을 꼭 안고 결국 기차 칸을 옮겨 연결공간에 섰다. 티켓 상 더 앞으로 나아가 앉은 자리는 없었다. ㅇㅇ는 잘난 공작이나 백작 적어도 준남작의 후손이 아니었다. 그냥 평민계층 브랜튼가 구둣방 막내딸이었다. 평민계층의 칸은 담배연기와 가축의 냄새로 진동하였고 배달을 위해,꽤 오랜 외출을 감행했다. 이런 외출이 설레 쓴 붉은 모자가 소용이 없었다. 담배연기만 베일 뿐이지 뭐.
"어, 어어. 어 안돼"
야야 너 어디가. 야! 연결칸에서 바람을 맞던 차 날아버린 모자에 ㅇㅇ는 놀라 잡으려 뛰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운좋게 금방 역에 정차한 기차에 ㅇㅇ는 바로 뛰어 내려갔다. 아 근데 문제는 너무 멀어, 저기까지 가다가 기차 출발할 거 같은데. 기차 맨 앞칸쯤 떨어진 모자를 줍기에 거리가 너무 멀었다. ㅇㅇ는 열심히 달리다 다시 출발 기적을 울리는 기차에 어쩔수 없이 몸을 싣는 차, 누군가 모자를 주웠다.
"어 그거 제 모자! 이봐요!"
다행히 눈이 마주쳤다. 와 다행이다, ㅇㅇ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늘어진 원피스 자락을 쥐고 앞으로 앞으로 급한 걸음을 옮겼다.
"아! 저기 조심 좀.."
"..어"
"어?'
급하게 누군가의 가슴팍에 부딪혔다. 아 아퍼, 근데 당신. ㅇㅇ는 이마를 손으로 부비며 올려다 보았다. 붉은 모자를 들고 얼빠진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남자, 영현이었다.
*
"아 공군이었구나, 정확하게 조종사. 전투기?"
"네 그렇습니다"
유독 검은 머리칼에 날카롭지만 온화한 눈이다. 각이 잡힌 군복을 입고 있었고 처음 만났을 때보단 누그러진, 아니 다정한 사람으로 보였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통해 긴 여행의 친구가 됐고, 술 산다는데 마다할 사람 누구 있나. 당연히 함께 작은 바에 앉았지. 영현은 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근데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근데 우리 통성명 아직도 안 한 거 아라여?"
"아까했습니다"
"언제?"
나는 기억에 없는데. ㅇㅇ가 작은 술잔을 쥔 채 퍽 가까히 다가갔다. 깜짝 놀란 영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고 영현은 꼴깍 침을 삼켰다.
"ㅇㅇㅇ가에요"
"...콜록, 강영현 중위입니다"
ㅇㅇ는 베시시 웃었다. 언제 나도 태워줘요. 전투기는 일반인 못 탑니다. 아 거참 빡빡하게구네. ㅇㅇ의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눈도 조금 풀린 거 같고, ㅇㅇ는 술잔에 남은 술을 털어 넣고 병을 들었다. 영현은 저도 모르게 그 손을 저지했다. 마시면 안 될 거 같은데,
"더 안 마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요?"
"예"
"그래도 한 잔만 더어"
여전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ㅇㅇ는 다시 한번 베시시 웃었다. 끅, 저도 모르게 영현은 딸꾹질이 나왔다. 그리고 저지한 손에 힘이 탁 풀려 버렸다.
"이렇게 하는 건가요? 추웅성"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아아 이렇게"
취기에 올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고 갑작스레 엉성한 손을 올려 인사를 보였다. 영현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그 작은 손을 펴주었다. 황당한데 굉장히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아니 뭐래.
나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 ㅇㅇ는 뒤를 돌아 창을 보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어어, 금방 흔들거리는 기차 안에서 비틀거리는 ㅇㅇ의 허리를 끌어 안아 영현이 반사신경적으로 잡아주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 여자는 잘 웃는구나. 영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금방 또 비틀거리는 ㅇㅇ에게 시선이 갔다. 넘어질 거 같은데, 어어. 저렇게 마지막칸까지 어떻게 가지. 거긴 좌석 밖에 없는데 잠은, 영현은 정말로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ㅇㅇ에게 다정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살며 여자라곤 권위적인 어머니와 할머니, 정말 그뿐이었다. 강영현 너 취했어 지금.처음으로 만난 여자에게 두번째 우연한 만남에 사랑스러움을 느낀 영현은 고개를 털어냈다. 정신차려 무슨 감정이야 이건.
"저기 불편하지 않으시면,"
"좋아요"
"..네?"
"뭐든"
ㅇㅇ가 영현을 보고 맑게 웃어보였다. 아, 영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붉어진 얼굴에서 오르는 뜨끈한 온도를 손으로 차갑게 꾹꾹 눌러 식힐 수 밖에 없었다. 정신차려 뭐하는거야.뭐하는 거긴 진짜 미친거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야. 영현은 밀실칸 중 저가 사용하고 있는 방으로 ㅇㅇ를 데려왔다. 근데 문제는 다방면이었다.
"내가 무서워요?"
"...아"
"아니이 나는! 나는 그냥 취해서 그런거지 뭐어.. 이봐요 내가 무섭냐구요"
ㅇㅇ를 이층침대에 눕히고 영현은 1층이 아닌 반대편 소파에 기대 앉았다. 아니 내가 잡아 머거요?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영현은 대대로 군사집권을 맡았고 보수적인 가정 아래 자랐다. 당연히 군인이 되었고 더더욱 여자라곤 만나본적도 이야기를 오래 나누어본 것도 다 처음이었다. 소심하고 배려라고 생각해 떨어져있었던 건데 오히려 혼이 났다. 나 잘못 한 건가.
"다가오지 마십시오. 원래 이렇게 끅,"
"워!"
그리고 굳이 이층에서 내려와 영현에게 가까히 다가오는 ㅇㅇ에 영현은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여자 뭐지, 영현이 다시 딸꾹질을 하던 차 ㅇㅇ는 양손을 약하게 오므리고 깜짝 놀래켰다.
"멎었죠?'
영현은 말을 잃고 시선을 방황하다 옆에 두었던 붉은 모자로 ㅇㅇ의 얼굴을 가렸다.
아 이 사람이 진짜.
3.
"..다 갈아입었습니까"
"네. 금방요 조금만"
영현은 어차피 잠겨 있는 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등지고 꼭 붙어 있었다. 사람이 지나갈때마다 약간의 경계를 했다. 고마워요, ㅇㅇ는 하늘색 원피스에 오늘도 발목에 꼭 채운 붉은 구두를 신고 머리를 묶으며 방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매너가 좋은 사람이네요. 나보다 훨씬 더. 아니 난 매너가 없지 뭐래.
"창문 열어도 돼요? 사실 나 한번도 이런 곳에서 지내본 적 없어서 다 신기하거든요"
그러니까 조금만 맞춰줘요. ㅇㅇ는 해맑게 웃었다. 영현은 쟁반과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다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항상 저렇게 사랑스럽게 웃는 건가. 식빵도 되게 조금씩 뜯어 먹네, 귀엽다. 커피 못 마시나 왜 홀짝 홀짝 마시지. 영현은 ㅇㅇ의 식사에 자꾸 눈길이 갔다.
"커피 못 마셔십니까?"
"어, 사실 네. 처음 먹어요"
"여기 설탕"
영현은 종이에 쌓인 제 몫의 설탕 조각도 내밀었다. 원래 이렇게 쓴 거에요? 넣으면 좀 맛있어질까요? 아니 이거 처음 먹을 때 정말 감기약인줄 알았다. 뭐가 이렇게 써. 영현은 그런 ㅇㅇ를 보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 ㅇㅇ는 자꾸 바람에 날려 눈을 가리는 앞머리에 답답하게 손을 움직였다. 아 진짜 자르던가, 아씨.
"..."
"어, 어 죄송합니다"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영현의 손가락이 살살 ㅇㅇ의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한쪽으로 앞머리를 넘겨주고 영현은 흠칫 놀라 두번이나 ㅇㅇ에게 사과를 건넸다. 왜 사과하는 거야 뭘 잘못했다고. 이 사람 특이하네. ㅇㅇ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고 깔깔 웃었다. 특이하고 웃기다 이 사람. 깔깔 웃는 ㅇㅇ의 앞에서 영현은 다시 딸꾹질을 멈추기 위해 가슴팍을 탁탁 내리쳤다.
"근데 군화 많이 헤졌네요"
"예? 아"
"줘봐요"
"예?"
아니 괜찮습니다. 아니 나 구둣방 짬밥이 몇년인데, 줘봐요 빨리. 영현은 거절의 거절의 거절을 했고 ㅇㅇ는 가뿐히 영현을 이겼다. 식사를 마치고 정말 한 시간 만에 새것처럼 광택이 나고 튿어진 부분이 깔끔하게 고쳐진 군화를 내미는 ㅇㅇ를 영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드레스 더러워졌는데.
"새 것 같죠"
"아, 네"
"근데 이거"
"응?"
"닦아요"
영현은 가슴팍 안쪽에 넣고 다니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 괜찮은데. ㅇㅇ는 처음 받은 손수건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런 것도 건네는 건가, 정말 별 거 아닌데. 구두약 조금 묻었는데. ㅇㅇ는 영현의 손수건으로 얼룩을 닦고 이층 침대에 올려 두었다. 빨아서 줄게요. 이런 거 빨아서 주는 거 맞지? 맞겠지.
"빨아서 줄게요"
"아니 그냥 주셔도 됩니다"
"너무 더러워졌어. 빨아서 줄게요"
영현은 더 거절할 수 없었다. 정말 항상 저렇게 사랑스럽게 웃는 건가
*
"외동이에요? 외롭겠다"
"나는 언니가 있었어요, 아파서 몇 년전에 빨리 갔지만"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저녁식사 또한 함께 했다. 대부분의 대화는 ㅇㅇ의 이야기였고 영현은 대부분 듣기만 했다. 실수로 떨어뜨릴뻔한 포크를 잡아 ㅇㅇ의 앞에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하는 ㅇㅇ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저, 말이 너무 길었나요?"
"아뇨, 더 해주셨음 좋겠습니ㄷ,끅"
더 듣고 싶은데. 그쪽 이야기가
4.
"어 조심"
와 그대로 선로에 떨어질뻔. 그대로 사라질뻔했다. 기차에서 내리며 영현은 다시 한번 ㅇㅇ의 허리를 끌어 안아 ㅇㅇ를 붙잡아주었다. 고맙단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역에서 밀려드는 인파에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ㅇㅇ는 두 번 정도 뒤를 돌아 보았지만 키가 작아 영현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아 저기 있는데. 영현이 ㅇㅇ를 찾았을땐 이미 ㅇㅇ는 모자의 리본을 매며 당찬 걸음으로 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붙잡았어야 했나, 그때 손을 흔들때 무언가 다시 만나잔 약속을 했어야 했는데, 아 강영현 이 등신. 끝내 ㅇㅇ가 사라진 자리에서 영현은 머뭇거렸다. 그렇게 또 ㅇㅇ를 놓쳐버렸다.
5.
"아 빨리 와"
"싫다니까"
훈련 고되서 죽겠는데 무슨 좋은 곳이야. 영현은 동료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탔다. 아 그 여자, 그 사람 보고싶다. 어쩌다 시선에 둔 백미러를 보고 영현은 머릿 속에 이주 전 ㅇㅇ를 떠올렸다. 되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데, 되게 사랑스럽게 웃었고. 아 근데 어디 가냐고 그냥 좀 쉬면 안 되냐.
"그러니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재밌지 않냐? 완전 암흑 거기서 이야기하는 거야"
"굳이?"
굳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랑 대화를 나눠야 하는 이유가 뭔데. 이게 뭐가 재밌다고. 영현은 어이없는 룰을 듣고 지하에 위치한 가게로 끌려가며 체념했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한 시간 채우고 난 간다. 가게의 주인이 안내해준 자리에 더듬더듬 앉아 영현은 지금 자신이 뭘 하고 있는 건가 헛웃음이 나왔다. 금방 반대편에 소리가 들렸고 착석하는 소리 또한 의자의 끌림으로 알았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어색하죠, 제 친구는 벌써 저두고 어딘가로 가버렸네요"
그러게 아니 저도, 아 김원필 어디갔어 이 새끼 또. 영현은 머리칼을 긁적이며 상대의 목소리에 그래도 집중했다.
"전 여기 처음이거든요. 어.. 이거 먹어 볼래요? 딸기케잌인데 진짜 환상적이에요"
"아 네, 근데 손이 어디에 있습,"
"아 미안해요. 뭐죠? 저 어디에 지금"
"괜찮아요. 그냥 볼에 묻은 거라서"
"빰에요? 진짜 미안해요. 근데 지금 어딨죠?"
어둠 속에서 마구 짚다보니 영현의 손이 잡혔다. 정말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아 생각보다 재밌구나. 안보이는 것도 매력있네, 원필아 욕한 거 미안. 영현도 모르게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맞는 부분이 많았고 취향이 비슷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소리가 굉장히 사랑스러웠다.
"이제 제가 많이 이야기했니까 그쪽이 이야기 해줄 차례죠. 아는 이야기 있어요?"
"..어"
아는 이야기가 뭐가 있지. 전술, 조종의 방향 아 강영현 이딴 거 뱉으면 진짜 등신이다. 영현은 머뭇거리다 이주 전 자신이 기록해두었던 자신의 노트를 생각했다.
"지루하면 중간에 끊으셔도 됩니다"
"음 우선 들어볼게요"
돌아가야할 곳이 있는 남자가 있었어요. 잭이라고, 지루하게 삼일이나 기차 안에서 보내야 했죠. 밀실이 갑갑해 바람을 쐬기 위해 나왔는데 눈 앞에 붉은 모자 하나가 굴러온 거에요. 그래서 그 모잘 주웠는데 멀리서 누군가 달려와 잭은 그 사람에게 갔죠. 어쩌다 부딪혔는데 달려오던 그 여자였던 거에요. 모자의 주인이었고요. 그 여잔 캐리였어요. 캐리라는 여자.
"그래서요?"
잭은 사실 캐리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첫눈에 반한 거죠. 단 한번도 여자라곤 만나본 적도 없는 쑥맥인 잭이 캐리를 붙잡고 저녁을 먹었죠. 술도 한 잔 했는데 그때 잭이 캐리를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캐리는 잘 웃었는데, 되게 사랑스러워서 말이에요. 두 사람은 어쩌다가 그 지루한 삼일을 같이 채웠어요. 잭이 떠나며 캐리를 붙잡았어야 했는데,
"강영현 이제 그만 가자"
"어?"
얘기 중이잖아. 아니 어떡하지 자리 뜨기 싫은데. 영현은 끊긴 말에 머뭇거렸다.
"나가서 얼굴 볼래요 우리?"
"네?"
"곧 나갈 거에요. 기다려줘요"
영현은 원필과 나왔다. 너도 기다리는거야? 응 오늘 같이 있기로했어. 이래서 나오자했고만? 하 새끼 진짜 초치네. 근데 그 목소리 정말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았는데,
"저기"
아 아니구나. 그 사람. 영현은 한번도 보지 못한 얼굴의 여자에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ㅂㅂ씨 그쪽이 아니고 저"
"아, 미안해요"
"나 간다. 알아서 가라"
"어 다신 오지마"
그래 차라리 꺼져. 원필은 상대와 함께 먼저 거리를 떠났다. 그냥 형식적으로 답한 걸까, 모르는 새에 가버린 건가. 영현은 조금 오래 코트에 주머니를 넣고 기다리며 군화를 내려다 보았다.
"잭?"
"..아"
"안녕"
영현은 그자리에서 굳었다. 아니 그리곤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붉은 원피스를 입고 손을 흔들며 다가온 여자는 다름아닌 ㅇㅇ였다. 알고 있었던 건가, 아 나 지금까지 뭐라고 짓껄인거야.
"캐리가, 앞에 있네요'
"..그러게요"
"부끄러워요?"
ㅇㅇ는 잠깐 돌아선 영현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얼굴을 확인했다. 굉장히 빨개졌네요. 아 너무 웃었나 아니 너무 반가워서.
영현은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헛기침만 몇번이나 내뱉었다. 사실 조금 심장이 뚝 떨어졌다 올라와서. 그쪽을 다시 만날 줄 몰랐거든요. 영현이 말을 잃는 동안 ㅇㅇ는 붉은 원피스 자락을 쥐고 영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어디 아픈건가. 아니 실망한건가, 뭘까.
"안녕 잭"
"아니 저, 그게"
"그냥 강중위님이라 부를까요?"
예 제발. 영현은 민망함에 얼굴을 잠시 감싸 쥐었다. 아 왜, 나 그 얘기 정말 재밌었는데.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ㅇㅇ는 영현을 보고 밝게 웃었다.
"계속 이렇게 서 있을 거에요?"
"아, 아 그게 ..혹시 차 한 잔 괜찮으십니까?"
"우리 방금 맥주 마셨는데요?"
"..아 아 맞다"
되게 낯을 많이 가리나. 기차 안에선 엄청 무뚝뚝한 줄 알았는데 당황도 잘 하는구나. 신기한 사람이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머리 굴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ㅇㅇ는 영현의 왼손을 조심히 쥐었다.
"너무 늦어서 전 집에 갈 건데"
"아 아, 네"
"데려다줄래요?"
영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이내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럼 갈까요?"
이렇게 걷는 것도 괜찮은 거 같고. 두 사람은 옅은 가로등 사이 골목을 지나 도보를 걸었다. 기차 안에서도 그랬지만 생각보다 잘 맞는 사람이 분명했다. 가끔 말이 끊기고 그 정적을 어색해하고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맞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은데. ㅇㅇ는 영현의 이야기에 눈을 맞추고 걸음을 옮겼다. 물론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들어주는 것에 더 소질이 있어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 영화 봤어요? 와 그거 제 인생 영화인데"
"두 번? 두 번 정도 본 거 같습니다. 정말 재밌게 봤나 보네요"
"네. 진짜 재밌게 봤어요. 특히 그 남자주인공이 여자에게 청혼할때"
"보트에서?"
"네 맞아요. 보트에서!"
영현은 영화를 상기하며 방긋방긋 웃으며 행복해 하는 ㅇㅇ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자연스레 잡은 손이 가끔 ㅇㅇ가 박수를 짝 치거나 제스처에 놓을 때면 영현의 손은 아쉬움에 쥐었다 펴고 땀을 닦았다.
"제 집은 여기에요. 다 왔어요"
거리에 작은 빌라였다. 옹기종기 다닥다닥 층이 붙은 건물이었다. 영현은 쥐고 있는 ㅇㅇ는 작은 손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거, 놓아야 제가 들어갈 수 있는데"
"아 아 죄송합니다"
"갈 게요. 조심히 가요"
이렇게 보내면 안 될 거 같은데. 또 이 사람을 이렇게 보내면 안 된다, 진심으로. 영현은 돌아선 ㅇㅇ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아 실례인가 이건.
"전화해도 될 까요?"
"그럼요. 어 어디에 적어서 줄 종이가, 아 근데 아빠가 받아도 놀라지 마세요. 그냥 전화기를 제 방에 놓죠 뭐"
종이가, 아니 매일 들고 다니면서 이럴 땐 꼭 없어요. 모든 게 영화는 아니고만. ㅇㅇ가 작은 가방에서 뒤지고 뒤져 겨우 찾은 종이라곤 영수증 하나 뿐이었다. 미안하게 그 영수증을 흔들어 보이고 뒷면에 전화번호를 적어 건넸다.
"복귀하자마자 전화 걸어도 될 까요?"
"그럼요"
"그럼, 들어가세요"
"안녕"
ㅇㅇ는 웃으며 돌아서 계단을 향해 걸었다. 어? 왜요. 그리고 금방 영현의 따뜻한 손에 의해 다시 한 번 뒤돌아섰다.
"..잘자요"
영현이 보인 웃음 중 가장 다정하고 따뜻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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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에는 '어바웃타임' 오마주 장면이 포함 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운명 4부작의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머릿속 구상만 해왔고 굉장히 오랜 경주가 될 거 같아 망설이며 시작했고 재밌게 읽어주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정말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보잘 것 없는 글을 기다려주셔셔 정말 감사드립니다.